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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 2008)

레볼루셔너리 로드
샘 멘데스의 네 번째 연출작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어쩌면 그의 연출 데뷔작이자, 그에게 오스카 감독상을 안겨주었던 "아메리칸 뷰티"가 말하는 그것과 유사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메리칸 뷰티"는 아메리칸 드림이 표방하는 전통적 미국 가정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그 붕괴를 그리고 있었고,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그 때로부터 50년 전의, 모두가 바라던 이상적인 아메리칸 드림의 표상과도 같았던 한 가정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아메리칸 뷰티" 보다 더 무거운 분위기입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리처드 예이츠의 1961년작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고 하지만 국내에는 출판되지가 않은 것 같아서, 그래서 읽어보지를 못했던지라 이 감상기에서 원작과의 비교는 생략됩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듯이 이 영화에는 주연으로 10년 전 "타이타닉"으로 전세계를 사로잡았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커플로 캐스팅 되었습니다. 이러한 캐스팅은 이 영화의 이야기와 무관하면서도 또한, 관련이 깊습니다. 타이타닉은 비록 1912년 북대서양에서 침몰했고 잭과 로즈는 이별했지만, 많은 분들은 그들이 살아남아서 사랑을 이어나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과 상상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어쩌면 영화는 그 점을 다분히 이용하고 있습니다. 배경이 비록 1950년대이지만, 잭과 로즈가 결혼해 부부가 되었고, 아이들도 낳았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상적인 모습은 영화의 타이틀이 뜨기도 전에 산산조각 납니다.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연기수업을 받고 있는, 배우를 꿈꾸는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 분)은 한 파티장에서 만나 서로 반합니다. 그들의 대화는 무척이나 즐거워보입니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에이프릴은 한 연극 무대에서 서 있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연극에 대해, 그리고 그녀의 연기에 대해 호의적이지 못합니다. 프랭크는 낙심한 에이프릴을 위로해보려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풀어지지 않습니다. 10년 전 안타까운 사랑을 나눴던, 그리고 단 5분전 서로 한눈에 반했던 두 사람에게 지금 남은 것은 그들 사이의 거리감입니다. 그 거리감은 둘이 걷던 복도에서도,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보입니다. 결국 둘은 한바탕 말다툼을 합니다. 그들은 잭과 로즈도 아니고 조금 전까지 풋풋하고 행복해보였던, 시작하는 연인들도 아닙니다. 그들은 '휠러' 부부입니다.

이들 휠러 부부는 외양적으로만 본다면, 이상적이고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들은 코네티컷 교외의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위치한 정원이 딸린 2층집에서 두 남매를 기르고 있는 전형적인 미국적인 가정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그런 모습은 당연하면서도, 부러워할만한 모습입니다. 그들에게 이 집을 소개한 헬렌(케시 베이츠 분)이 그들을 입에 닳도록 칭찬하는 모습에서도 그런 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프랭크는 자신의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에이프릴은 자신의 배우로서의 꿈을 접고 그저 집안일만 하는 것에 허망해합니다. 그들이 처음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이사왔을 때의 삶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게 둘은 처음의 행복했던, 꿈에 가득했던 모습과는 달리 삶에 지쳐가고 서로 갈등을 빚습니다. 그 때 에이프릴이 프랭크에게 제안을 합니다. 파리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고. 프랭크는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결국 에이프릴의 말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그들은 그 때부터 그들의 이러한 계획을 주변에 알려갑니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그들의 계획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이웃인 밀리와 그의 남편 솁도 그렇고, 프랭크의 직장 동료들도 그러합니다. 그들은 모두 당황하고, 휠러부부의 계획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오히려 그들의 부정적인 반응에서 희열을 느낍니다. 그들은 새로운 희망에 부풀었고, 그래서 즐겁습니다. 주변인물들이 모두 휠러 부부의 계획에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웃이자 휠러네에게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 중개인 헬렌(케시 베이츠 분)의 아들 존(마이클 섀넌 분)만큼은 에이프릴의, 휠러네의 계획을 지지해줍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존이 정신병원 신세를 지던 중 잠시 외출을 나온, 정신적으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휠러 부부네의 현실이 그러했습니다. 휠러 가정은 앞서 말했듯이 누가봐도 안정적인 가정입니다. 남편인 프랭크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아내 에이프릴은 전업주부로 집안일을 하며, 두 남매를 키웁니다. 교외의 한적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그들의 이층집을 보노라면 전형적인 미국들이 바라는 그런 삶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행복하고, 또 행복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이 꺾인 에이프릴에게 그 곳은 아무런 희망도 없고, 의미 없는 공간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에이프릴은 시대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녀에게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그 삶보다는 파리에서의 새로운 삶과 도전이 진정 의미있는 삶인 것입니다.

하지만, 프랭크의 회사 일이 의외의 방향으로 잘 풀리면서 프랭크는 결국 좀 더 높은 지위, 높은 연봉에 갈등하고 새로운 희망을, 의미를 찾아나서려는 에이프릴의 탈출구를 결국 막아섭니다. 안정적인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도전은 결국 그렇게 서로 직접 맞닥뜨리고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영화는 휠러 부부를 통해서 안락하고 희망적으로만 보이는 '아메리칸 드림'이란 시대적 가치가 때로는 공허하기 그지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메리칸 뷰티"에서 아내 캐롤린이 이태리제 실크 소파를 챙기자, 남편 레스터가 '그것은 그저 소파이고, 지금 당신은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더 높은 직위의, 더 좋은 봉급을 선택한 프랭크와 달리(하지만 그도 그것이 진정 좋은 선택이 아님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와 상관없이 아무런 희망도 없는 에이프릴의 삶은 '아메리칸 드림'을 부정합니다. 그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입니다. 또한, 마지막에 헬렌이 휠러 부부를 회상하며 그들의 뒷담화를 하는 것에서 그 가치의 허황됨은 더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이미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여주연상으로 노미네이트 되었긴 하지만, 주인공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는 인상 적입니다. 10년 전 아름다웠던, 안타까웠던 사랑을 나누던 연인에서 이제는 갈등을 빚는 두 부부의 모습을 연기하는 그들은 그 과거를 모두 잊게 만듭니다. 봉합되지 않은 갈등의 위태로운, 그리고 깊어지는 골과 그 파국을 그들은 연기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존을 연기한 마이클 섀넌은 그 캐릭터의 존재 자체가 가지는 의미 외에도 무거운 극의 중간중간에서 잠시의 가벼움으로 극을 유연하게 하는 몫을 톡톡합니다. 영화는 등장하는 배우들의 앙상블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샘 멘데스가 그리는 교외의 가정은 분명 평안해보여야 할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 감정적으로 대립하고 그래서 폭발하고, 그러다 다시 잦아드는 휠러 부부의 모습은 분명 따스하게 창안으로 비쳐드는 햇살마저도 불안하게 보이게 합니다. '타이타닉 커플'의 갈등처럼 이상적인 대상의 내면에서 느껴지는 그 불안감을 영화는 좇고 있습니다.

P.S 배급사의 시사회를 통해 미리 본 영화입니다.
P.S2 "레볼루셔너리는 로드"는 북미에서는 지난 12월 26일 제한상영으로 개봉했으며, 국내에서는 2009년 2월 19일 개봉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