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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쌍화점 (2008)

쌍화점
유하 감독의 신작 "쌍화점"의 제목은 고려속요 '쌍화점'의 그것입니다. (예전 교과서에서 전체를 본 기억이 없으니, 아마도 이름만 언급되었나 봅니다.) '샹화점에 샹화사라 가고신댄 회회(回回)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만두집에 만두를 사러 갔는데 몽고인 남자가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속요는 고려시대의 문란했던 성문화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이 노래를 더러운 것 취급했다고 하더군요. 영화 "쌍화점"은 색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원나라의 간섭에 시달리던 고려 말기의 왕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0년간 동거동락하며, 동성애를 나눠온 왕(주진모 분)과 호위무사 홍림(조인성 분), 그리고 원나라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후사가 필요했기에 왕의 명령으로 홍림과 동침을 하게 되는 왕후(송지효 분)가 극을 이끄는 캐릭터들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개인적으로 우려가 되었던 것이 왕과 홍림의 위와 같은 관계에서 오는 그들의 감정의 흐름을 제가 좇을 수 있을까 였습니다. 전에도 한 감상기 속에서 이야기했는데 동성애자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하는 쪽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퀴어 성향이 있는 영화를 감상하는데 좀 무리가 따르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우려가 불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가 그리는 왕의 캐릭터 묘사가 애초에 그런 우려를 가질 만큼 충실히 쌓여나가는 것도 아니었고, 왕의 캐릭터도 그렇고 왕과 홍림의 애정묘사도 그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딱 그런 모습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의 동성애자인 왕은 그저 주체할 수 없는 소유욕에 사로 잡힌 광기를 선보이는데, 영화에서는 정작 그의 감정의 묘사가 소홀히 되면서 어떤 사랑에 대한 갈증보다는 그저 비정상적인 인물로 밖에 비춰지지가 않습니다. 홍림과 왕후의 이성애의 대비로서는 저런 비정상적인 광기가 유용했을지는 몰라도 말입니다.

그에 비해 홍림과 왕후의 관계는 오히려 과하게 자세합니다. 일생을 왕 밖에 모르던 홍림이 왕후와의 관계를 통해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로서의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가고, 멋모르던 색으로 시작했던 감정이 사랑으로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나갑니다. 이런 이성애는 적절한 반복으로도 그 변화의 감정을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그것이 육체에 대한 탐닉이든, 마음 속 사랑이든)  영화는 이후로 갈수록 좀 과하게 홍림과 왕후의 관계를 묘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위 높은 노출씬을 보여주기 위한 불필요한 반복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말입니다. 또한, 성공적인 롤모델을 따라간다는 것이 안정적이긴 하지만 홍림과 왕후의 관계에서 "색,계"에서의 그 색과 계의 충돌이 빚는 상황을 너무 유사하게 끌고 가는 모습은 조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왕의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부족했던 것은 영화가 결국 홍림과 왕후의 관계에 더 치중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영화는 등장하는 새 캐릭터가 각 축을 담당해 견고하게 돌아가야 하는데, 한 쪽은 너무 취약했고, 다른 쪽은 그와 반대로 과잉이었습니다. 실패한 캐릭터 묘사는 결국 영화 전체적으로 해악으로 작용하는데 중후반부 부터 영화가 늘어지는 것도 홍림과 왕후의 관계에 대한 부차적인 느낌이 들 정도의 반복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기자/VIP 시사회에서 후반부가 늘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개봉판은 뒷부분을 손질했다고 하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그것은 후반부의 이야기의 밀도 자체가 초중반과는 다르게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하 감독의 근작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등으로 인한 기대감은 결국은 실망감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극의 전체적 흐름에 있어서 다른 이야기로 인한 긴장감보다는 노출에서 오는 긴장감이 더 컸고 그 노출이 적합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반복되는 노출로 무감각해지지기 시작한 모습에서 느껴지던 지루함은 결국 영화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또한 이야기보다는 영화가 더욱 중요시했으나 의도했던 바람대로 자리 잡지 못한 캐릭터와 함께 말입니다.

P.S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여자연기자들이 굳이 노출을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여자 연기자가 벗는다는 것은 결국 여자연예인이 벗느냐 아니면 여배우가 벗느냐로 평가가 나눠지는데 그 평가 자체가 한끝 차이의 모 아니면 도식의 위태로움을 가지고 있으며, 요즘 같은 영화계 상황에서는 감독이든 제작자든 여배우가 연기를 위해 벗는다는 모습보다는 여자연예인이 벗는, 그래서 관객의 호기심과 관음증적 시선으로의 유도를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관객이 드니까요. "미인도" 정도의 영화에 그 정도 관객이 든 것은 김민선이라는 여자연예인이 벗었기 때문이지, 김민선이라는 여배우가 벗어서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