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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똥파리 (Breathless, 2008)

똥파리
개인적으로는 한국 영화를 보면서 종종 과도한 욕설의 사용에 못마땅해하곤 합니다. 말그대로 불필요한, 때로는 단순히 희화적 요소를 위해서만 남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그렇습니다. 그 욕설이 때로는 관객의 배설 욕구를 대신해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점을 감안한다 해도 과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영화 "똥파리"는 다릅니다.

"똥파리"는 아마 한국영화에서 욕설이 가장 많이 나오는 영화일 것입니다. 첫 오프닝에서부터 시작된 욕설은 영화 내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범국민적인 욕설 씨팔부터 해서 다양한 욕설이 들려옵니다. 그 무수한 욕설은 영화의 주인공 '상훈'(양익준 분)을 대변합니다. 남녀노소는 물론 자기 아버지도 상관치 않고 욕설을 내뱉으며 폭력을 행사하는 그는 누구나 멸시하고 피하고 싶어하는 '똥파리' 그 자체입니다. '욕설'이나 (신체적) '폭력'이나 결국은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결국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겁을 줍니다. 상훈은 욕설과 폭력으로 하루하루를 먹고 사는 인물입니다. 그는 일수를 받으러다니거나 용역깡패 노릇을 합니다. 그의 일에 욕설과 폭력은 너무도 가까이 닿아있습니다. 그런 그를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든 것은 가정 폭력입니다. 아버지의 숱하게 휘두르는 폭력은 결국 어머니의 죽음을 부르고, 그는 그렇게 세상에 남았습니다. 상훈은 가정 폭력을 휘두르던 채무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나라 애비들은 집에만 오면 지가 김일성인줄 알어 씨발.' 그 자신이 그러한 폭력에 불만이 많고 이골이 나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폭력을 떠칠 수가 없습니다. 결국 벗어날 수 없는 폭력의 고리가 상훈을 얽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훈에게 다가오는 묘한 로맨스가 있습니다. 어머니를 여의고 베트남 참전 용사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오빠와 함께 힘든 삶을 사는 연희입니다. 참 그답게 침을 뱉다가 연희를 만나게되는 상훈은 누구에게나 처럼 욕설을 날리지만, 연희는 그에 개의치 않고 그에게 점차 다가옵니다. 상훈과 연희는 서로 모르는 과거의 악연이 있지만 닮은 꼴 관계에서 오는 동질감 때문인지 가까워집니다. 상훈과 연희가 일종의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은 마치 꿈같이 몽롱한 느낌으로 그려집니다. 아주 평범한 데이트. 그런 평범한 삶. 상훈이 바라던 삶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삶은 상훈에게는 한 낮의 꿈과도 같은 일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상훈은 '똥파리'이기 때문입니다.

상훈은 자신의 지저분한 삶을 정리하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앞서 말한 그 폭력의 고리가 상훈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훈의 자리를 대신해 연희의 오빠 영재가 그 폭력의 순환 고리 안으로 들어옵니다. '누굴 때리는 개새끼는 지가 안 맞을 줄 알거든. 근데 그 개새끼도 언젠가 좆나게 맞는 날이 있어.' 상훈이 처음부터 말했던 것 처럼 이 악순환은 쉽게 그치지를 않습니다. 상훈의 빈자리에는 오열과 울음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후에는 상훈으로 인해 엮어질 수 없었던 새로운 가족이 들어섭니다. '똥파리'로 인해 다가설 수 없었던 이들이 한 자리에게 모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족의 모습을 뒤로 하고, 상훈과 오버랩되는 영재의 모습은 다시 한번 폭력의 질긴 순환을 드러냅니다. 또한 상훈의 용역업체 사장이던 만식이 폭력의 과정으로 인해 축적한 돈으로 번듯하게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불쾌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됩니다. 영화는 우리 사회 밑바닥에서 부터 밀고 올라오는 폭력을 말그대로 구역질나게 느끼게 합니다. 어찌보면 그런 폭력의 향연은 이 세상의 일부이기도 하고 또는 이 세상 자체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영화의 연출자이자 주연을 맡은 양익준 입니다. 이 영화에서 양익준은 연기라고 하기 뭐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상훈을 연기합니다. 양익준이 상훈이고, 상훈이 양익준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의 그의 연기는 '똥파리' 상훈이 갖는 영화의 의미를 더욱더 도드라지게 합니다. 욕설과 폭력의 이중주가 그로 인해 아름다운(이라 쓰고 구역질나는 이라고 읽습니다.) 이중주를 이룹니다. 또한 그런 상훈을 상대하는 연희를 연기한 김꽃비, 만식 역의 정만식의 연기 역시 너무도 인상적입니다.

작년 한국 영화계에 나홍진과 이경미라는 새로운 피가 수혈되었다면, 올해는 양익준 이라는 걸물이 새롭게 자신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첫 장편의 강렬한 인상을 이후의 작품에서도 잃지 말고 다시 선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