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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해운대 (Haeundae, 2009)

해운대
어떻게 보면 “해운대”는 영리한 영화입니다. 막대한 CG를 쏟아 붓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같은 외양을 갖기 위해서는 제작비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영화는 초중반까지는 드라마를 구축하고, 막판에 메가 쓰나미를 등장시킵니다. 제한된 제작비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구상은 좋았으나, 효과적인 방향으로의 실현은 요원했을 뿐입니다.

윤제균 감독은 반복해서 ‘한국형’ 재난 영화를 외쳐왔습니다. 그것은 영화의 홍보에도 이어졌는데, 과연 그 ‘한국형’이란 무엇일까요? 윤제균 감독의 말들을 보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헐리우드의 영웅주의를 그 기준으로 둔 것 같습니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그러한 영웅주의를 배제한 이야기가 있는 영화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헐리우드’와 대비되는 ‘한국형’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불만입니다. 차이점을 전혀 내세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내세웠던 기치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투머로우”를 넘어서겠다 였지만, 그리고 “투머로우”와의 비교를 해보자는 뉘앙스였지만 “투머로우”는 “해운대”와 같은 카테고리로 묶여서 비교를 하기에는 핀트가 좀 어긋난 재난 영화입니다.(CG를 통한 비교로 발전된 기술력을 과시할 용도도 물론 있겠지만.) 재난영화 라는 장르가 같을지야 모르겠지만 그 구조 등은 다른 영화라 오히려 더 비슷합니다. 그런 영화들이 이미 헐리우드에 있으니 또 그와는 다른 색다른 것도 없으니 '한국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보다는 '한국 배경' 재난영화라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해운대”는 “괴물” 같은 (모두가 인지하는 공통의) 장르적 속성에서의 일탈을 꾀한 영화가 아니라 그저 장르 안에 안주하는 영화로 보고 싶은 면만 본 ‘헐리우드식’ 재난 영화와의 비교를 꾀한 영화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해운대”의 비교대상은 “투머로우”가 아니라 “타이타닉”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쪽은 더욱 더 넘사벽) ‘한국형’이라는 유니크한 타이틀을 내세우는 것은 그저 말장난입니다.

“해운대”는 해운대 토박이 만식(설경구 분)-연희(하지원 분) 커플, 해운대 해양구조대원 형식(이민기 분)- 삼수생 희미(강예원 분) 커플, 지질학자 김휘(박중훈 분)- 이혼한 아내 유진(엄정화 분)의 세 커플을 주요 등장인물로 등장시키며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이 드라마의 구성 및 전개는 전형적인 윤제균 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구사하는 유머와 그의 캐릭터들, 그리고 전작 “1번가의 기적”에서 쏠쏠히 재미를 봤던 아이를 활용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윤제균 감독이 주장하는 ‘헐리우드식’ 과의 차이를 위해서 영화는 재난을 경험하게 될 일련의 소시민들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 윤제균 식이 주는 재미(와 그에 따른 역기능도)는 분명하나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구심점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분리된 세 커플이 서로 나눠가지는 주목도와 분산된 이야기는 ‘쓰나미’를 향하는 영화의 흐름에 가속도를 붙이지 못합니다. 정작 이야기에 신경을 쓰겠노라고 했지만 클리셰라고 정의할 수 있는 인물이나 상황같은 요소들이 노출되고 구태의연한 흐름으로 인해 정작 차별화를 두는데 실패합니다. 말그대로 전형성을 답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전형성의 답보, 그 구태의연한 상황이 배우들을 어떻게 망치는지 보여줍니다.) 또한 재난이라는 상황 중에 그리고 그 이후에도 불쑥 끼어드는 개그 코드는 고조된 감정을 흩뜨립니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우려했던 CG가 그런 우려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는 헐리우드의 CG의 질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그것을 통해 관객에게 주고 싶었던 느낌을 방해없이 전달할 만큼의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확연히 구분되는 드라마와 CG 등장 재난씬이라는 영화의 전개 구분이 큰 단점으로 작용하지만 반대로 CG의 압박감이 짓누르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효과도 있습니다.

분명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마음을 갖고 몇몇 보였던 장점들을 파악하고 살린다면 좁게 국한된 한국영화의 장르 개발에 도움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게 위안이 된다면 말입니다.

P.S 다스 베이더 경을 경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