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vie/Review

[리뷰] 라자레스쿠씨의 죽음 (The Death Of Mr. Lazarescu, Moartea Domnului Lazarescu, 2005)

라자레스쿠씨의 죽음
근래 들어 루마니아 영화가 국내에 많이 소개되는 듯합니다. “그때 거기 있었습니가?”,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이하 4개월), 그리고 이 작품 “라자레스쿠씨의 죽음”(이하 라자레스쿠)까지. 소개를 통해 보자면, 2005년에 개봉한 이 작품이 해외에도 많이 소개되어 인정받는 등 루마니아 영화에 새 바람을 일으키며, 이후의 루마니아 영화들이 세계적 관심을 받게 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영화의 모습은 “4개월”과 비슷합니다.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라고 할까요. 핸드헬드 카메라를 이용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영화 내내 등장인물을 쫓으며, 롱테이크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 등.

“라자레스쿠”의 시작은 62세의 노인인 라자레스쿠 씨의 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부인과 사별하고 딸은 캐나다로 유학 보낸 후, 고양이 3마리와 함께 지내고 있는 그는, 오늘 아침부터 두통에, 복통에 괴롭습니다. 구급차를 부르고 이웃의 도움도 받습니다만 그 이웃들은 딱 거기까지고, 사실 라자레스쿠 씨와 크게 엮이는 것을 그리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의 집을 떠나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면서 영화는 본 궤도에 오릅니다. 라자레스쿠 씨는 병원을 떠돕니다. 불친절한 의사와의 언쟁, 마침 일어난 대규모 교통사고로 인한 퇴짜, 책임을 회피하는 의사. 그들은 대체 환자를 살리겠다는 건지, 아니면 그대로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하려는 것인. 아니, 확실히 후자에 가깝습니다. '구급차에서 죽으면 당신 책임인걸 아쇼?' 라고 구조요원에 말하는 그들이니까요. 밤 10시부터 계속 병원을 떠돌수록 그의 병세는 점점 악화됩니다. 그가 가는 곳의 의사들은 모두 자신의 의사라는 지위의, 지식의 권위로 라자레스쿠 씨와 친절한 구조요원 아줌마를 내리누릅니다. 라자레스쿠 씨에게서 나는 술냄새에 처음부터 그들은 일종의 편견을 지닌 체 그를 대합니다. 그리고 윽박지릅니다. ‘의사의 의무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오’ 라고 묻는 라자레스쿠 씨에게 그 답은 말하지 않고, 오히려 ‘그럼 환자의 의무는 무엇이오’ 하고 되물으며 무시해버립니다. 처음에는 ‘이런 허름한 구급차는 탈 수 없다’고 투덜대던 고집불통의 라자레스쿠 씨는 눕지 않겠다던, 구급차의 이동식 간이침대에 스스로 눕고, 그 상태로 오줌까지 지리고, 그렇게 점차 힘을 잃습니다. 병원을 떠돌다 결국 그는 마지막에서야 수술대에 오릅니다. 영화 초반에 보여지던 그 고집 센 노인의 모습에서 발가벗겨진 체 수술대 위에 홀로 초라하게 누워있는 그의 모습은 묘한 대비를 이룹니다.

영화는 라자레스쿠 씨가 겪는 그 한밤의 일을 통해서 사회의 아픈 면을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단순히 루마니아의 독거노인과 의료현실의 문제점이 아니라, 소외받고 나약한 이들이 겪는 현실에서의 아픔을 말입니다. 흔히 말하는 가진 이들, 많이 배웠다는 기득권층의 소외층을 향한 그 권위주의라는 이름의 억압,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겪고 있는 이웃 간의 거리감. 그런 모든 것들이 힘없는 이들을 더욱 더 아프게 하고 그들을 현실에서 배제시켜버립니다. 이것이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순히 이 문제가 루마니아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경제성장은 이루었지만, 그 경제 성장의 이면에서 꾸준히 벌어지고 있는 빈부의 격차와 그로 인한 차별.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그런 무관심 등. 라자레스쿠씨의 모습은 바로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P.S 이번에는 필름포럼에서 저 포함 네 명이서 봤네요. 전에 "그것에 관하여"는 저 포함 딱 두명이서 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