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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Even So, I Didn't Do It, 2006)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이 영화의 감독이 수오 마사유키라는 것을 알고는, 조금 놀랐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시사회로 접했던 "쉘 위 댄스"의 그 감독의 오랜만의 신작이 이런 사회비판적 이야기여서 말입니다.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만원의 지하철에서 치한으로 오인받아 장기간의 구치소 생활과 그에 못지않은 기간동안의 법정싸움을 통해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입니다. 미국같은 경우 법정 드라마가 상당히 많은 편인데, 그 이유는 그네들의 배심원 제도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변호사와 검사측의 대립. 그 하나만으로도 이야기거리는 나오니까요. 그에 비해 배심원제도가 아닌 우리나라나(도입은 되었으나, 미국과는 달리 결정권이 없어서 있으나마나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법정을 다룬다면 다분히 딱딱함 가득하고 지루한 이야기 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영화도 그런 면에서는 딱딱한 영화일 수 있습니다. 구치소 생활에 이어지는 수차례의 공판과정에서 피고의 변호인측과 검찰측의 심문, 발언 등으로만 전개되는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 딱딱땀을 일정부분 상쇄시키는 것은 주인공 텟페이의 상태입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입장에 처한 그를 딱하게 바라보며, 어느새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됩니다. 억울함이란 측면에서의 동정이 앞서는 것이지요. 영화는 그런 감정적 흐름을 이용하면서 사회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웁니다. 어쩔수 없이 관료적일 수 밖에 없는 사법계에서 무죄보다는 유죄를 선호하는 풍토, 그에 따라 무죄추정의 원칙은 저멀리 사라지고 99.9% 유죄라는 전제로 시작되는 재판, 허술하기 그지없는 형사취조 등 영화는 그 속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치한 원죄를 통해서 일본 사법계의 시스템적 문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비판에 어느새 관객이 동의를 하게 되는 형태를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영화는 현대 법의 모순에도 그 비판을 가합니다. 어느 곳이 되었던 법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영화에서의 말처럼 법이란, 법정이란 진실을 밝히는 곳과 장소가 아니라, 누군가의(판사나 혹은 배심원) 임의적인 판단과 이해관계에 따라 유죄와 무죄가 갈리는 곳이라는 것이지요. 관객의 입장도 그렇습니다. 관객도 어느새 감정적 이해관계안에서 판단하고 텟페이의 모습에, 그런 법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어쩌면 이 영화의 목적은 법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 깊지 않더라도 보는 이에게 잠시라도 법에 대한 생각을 해줄 기회를 제공해주려는 것일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멋대로 정의해놓고 본다면, 영화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적어도, 법에 관심도 이해도 없는 저란 녀석이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었으니까 말이죠. 그런 이유에서라도 인상적이었던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나오는 문구로 감상을 마칠까 합니다.

'열명의 죄인을 놓친다 하더라도, 죄없는 한 사람을 벌하지 말지어다'
'부디 당신이 심판받기를 원하는 그 방법으로 나를 심판해 주시기를'

P.S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던 작품인데, 조만간 일반 개봉할 듯 싶습니다.
P.S2 상영 중에 필름이 한번 튀고, 자막이 잘 안맞던데 극장에서 정식으로 걸릴때는 안 그렇겠지요?
P.S3 일본영화를 그다지 많이 보지 않는 제가 보기에도 익숙한 얼굴들이 여럿 나옵니다.
P.S4 영화 중 일본 사법계를 비판하는 내용 가운데 이런 것이 나옵니다. '법정에서 유죄를 많이 선고하고 빠르게 처리할수록 판사 개인에게 인센티브가 주어져서 그 이유 때문이라도 판사들이 유죄를 전제로 선고를 한다.' ....어디서 많이 보던건데...2MB가 그랬죠. 개발공사 승인을 빨리 내줄수록 그 공무원 인사고가에 인센티브 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