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vie/Review

[PiFAN 2008 리뷰] 바시르와 왈츠를 (Waltz With Bashir, 2008)

바시르와 왈츠를
스물 여섯마리의 광기로 가득찬 개들이 거리를 휩씁니다. 그런 모습에 두려워하는 사람들. 하지만 개들의 목표는 그들이 아닙니다. 창가에서 자신을 노리는 개들을 바라보는 한 사내. 사내는 감독인 아리 폴먼의 친구이고, 오프닝은 그 친구가 꾸고 있는 악몽입니다.

아리 폴먼은 친구와의 대화로 자신 역시 참전했던 20년 전의 레바논 전쟁에 대한 기억이 하나의 이미지 외에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을 알게되고 그에 놀라워합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은 감독 아리 폴먼이 그 이미지, 잊혀진 자신의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입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입니다. 다큐멘터리를 애니메이션을 만든 이유는 인터뷰어들이 자신들이 직접 화면에 등장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입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다큐멘터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방식을 통해서 영화는 오히려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해내게 됩니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기억과 진실, 망각을 다룬 영화입니다. 즉, 인간의 내면심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내면의 기억과 환상을 표현해내기에는 실사보다는 애니메이션이 더욱 유용했을 것입니다. 감독 자신은 레바논 전쟁에서 자신과 같이 복무했던 주변인들을 찾아나서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점차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나가기 시작하고 하나의 진실에 다다릅니다.

전쟁은 아이러니입니다. 전장의 일상적인 평온 뒤에는 총알 하나에 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는 진실이 숨겨져있고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산 자가 죽은 자 앞에서 죄책감을 느껴야 합니다. 또한 살기 위한, 적들을 향한 총부림의 모습에 우아한 선율을 덧씌우면 아름다운 왈츠를 추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은 관객이 됩니다. 살육의 행위와 예술이 묘하게 동일시되는 아이러니. 그리고 그러한 전쟁은 인간내면의 아이러니까지 들춰냅니다. 인간의 기억은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아리 폴먼의 또다른 친구가 제시해준 예처럼 어떤 사건에 대해 자신에게 즐거울 일이라면 인간은 없었던 일조차도 스스로 조작해 있었던 일로 기억해냅니다. 그리고 그 반대도 가능합니다. 또 다른 친구의 말처럼 '샤브라-샤틸라' 학살에서 아리 폴먼이 조명탄을 쐈는지, 조명탄을 쏘는 것을 바라만 봤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슬픔에 빠진 팔레스타인 여성을 아리 폴먼이 마주하는 순간, 그 죄의식은 레바논 내전에서 그가 했던 모든 것을 망각이라는 이름으로 감쌌을테니까 말입니다.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지던 영화가 바로 그 부분에서 실사 화면으로 바뀝니다. 소리내어 우는 여성들, 그리고 처참하게 쌓여있는 시체들,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실사로 전환되는 부분에서 더이상 영화는 아리 폴먼 자신의 이야기만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리 폴먼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전체로 확장되고 전쟁의 참혹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망각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지금의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울부짖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모습과 클로즈업되어 보이는 아이의 시신은 더없이 무거운, 강도 높은 비판입니다.

P.S 칸영화제 상영당시 유대계 기자들은 냉랭한 침묵으로 일관한체 퇴장했고, 비유대계기자들은 큰 환호와 찬사를 보냈다고 합니다.

P.S2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국내에서도 개봉할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번 피판에서 못 보시는 분들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