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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월-E (WALL-E, 2008)

월-E
우리나라에서는 어른들이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아홉수'를 조심하라고 말이죠. 이는 픽사에게는 통하지 않나 봅니다. 하기는 소포모어 징크스도 가뿐히 무시해버린 픽사에게 이런 일종의 징크스 따위는 애초에 범접을 못하는 것일지도요.

픽사의 아홉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월-E"는 아름답고 장엄한 우주를 비추며 시작됩니다. 그리고 화면은 그 우주의 모습을 지나 황량한 지구를 보여줍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쓰레기 더미만 남은 지구. 그 안에 작은 존재가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월-E'입니다. Waste Allocation Load Lifter Earth-class라는 풀네임처럼 지구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게 '월-E'의 임무입니다. 영화는 이런 월-E의 하루를 묵묵히 바라봅니다. 쓰레기를 압축해 처리하는, 프로그래밍된 업무를 마치고 월-E는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옵니다. 유일한 친구인 바퀴벌레와 함께 말이죠. 이후는 프로그래밍된 일이 아닙니다. 월-E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수집품들을 정리하고, 뮤지컬 "헬로 돌리"를 보며 감흥에 젖습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고, 누군가와 함께 춤을 추고 싶고... 700년간의 혼자만의 기나긴 시간동안 월-E는 스스로를 조금씩 발전시켜나갔고, 그 와중에 외로움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영화의 초반부는 이러한 월-E의 모습을 장시간 조용히 비추면서 월-E에 대한 모든 것을 관객에게 설명해줍니다.

외로운 시간이 지나고 월-E는 지구의 생명체 여부를 탐색키 위해 파견된 로봇 이브를 만나게 되고 월-E는 사랑에 빠집니다. 낡고 허름해 보이는 월-E와 달리 마치 애플의 디자인을 연상케하는 흰색의 매끈한 바디를 자랑하는 이브는 두 종의 차이를 극명히 보여줍니다. 월-E는 사랑을 알고, 프로그래밍 이외의 행동도 알지만 이브는 사랑도, 입력된 프로그래밍 외의 행동도 알지 못합니다. 서로 너무도 다른 두 존재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 로맨틱 드라마의 가장 기본이 아닐까 합니다. 틀린 점이 라면 "월-E"는 그 대상이 로봇이라는 것이지요. 이브에 대한 월-E의 일편단심 사랑은 유머와 함께 가슴 떨린 첫사랑의 감정까지도 느끼게 합니다. '로봇 주제'에 말입니다. 픽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픽사 스토리"를 보면 존 라세터 등이 수학한 칼 아츠에서 나인 올드맨이 강의한 캐릭터 애니메이션의 핵심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캐릭터의 내면 감정을 중요하게 여길 것. 내면 감정은 인간의 본성과 느낌에 대한 생각과 관련 있다' 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는 그 캐릭터가 생명체가 아니어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존 라세터의 단편 "룩소 주니어"가 그 예입니다. 하나의 평범한 램프임에도 존 라세터는 '그 모습을 유지하면서 그 속에서 개성과 움직임'을 끌어냈고, 거기에 자신이 배운 캐릭터 애니메이션의 핵심을 부여해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월-E는 룩소 주니어의 연장선상입니다. 월-E는 단편적인 단어를 말하는 보이스의 높낮이, 렌즈(눈)의 움직임으로 감정을 표현합니다. 이런 캐릭터와 초반의 장시간동안 이 캐릭터의 행동을 보여줌으로 인해 영화는 관객에게 감정의 동질화를 이끌어내었고, 그로써 로봇 월-E에게 생명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로봇'이 동경과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룩소 주니어 월-E

이런 목적을 둔 초반부가 성공하면서,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월-E는 이브를 쫓아서 거대한 우주선 엑시엄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곳에는 700년전 지구를 버리고 떠난 인간들이 있습니다. 그 곳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기술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모두 포동포동한 비만인이 되어버렸고, 인간으로서의 일부 행동들은 거의 퇴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홀로그램 모니터를 통한 간접적 소통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고 있는 모습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랑은 터치'라고.(터치폰 광고 문구 아님!) 월-E가 이브의 손을 잡았을때의 그 떨림을 사람들은 월-E를 통해 배웁니다. 또한 월-E를 통해 기술이라는 것이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것이지, 인간의 기본까지도 제한하고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한 것을 깨닫게 해준 것이 자신들이 만들었던 과거의 기술의 결과물이라는 일종의 아이러니는 기술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인간들은 700년 전 자신들이 오염시키고 떠났던 지구로 돌아오고, 그 곳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들의 삶에는 월-E도 이브도, 7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바퀴벌레도 함께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이 있게한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영화는 월-E, 그리고 이브를 통해 사랑과 유머, 감동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줍니다. 과연 한계가 어디인지 의심가는 픽사는 역시 3D 애니메이션 기술의 선도자, 흥행의 보증수표, 그리고 진정한 작가주의 집단입니다. 이번에도 픽사는 여전히 픽사였고, 앞으로도 픽사일 것입니다. 픽사 만세!

P.S  여타 3D 애니메이션들도 마찬가지만 이번 "월-E"도 꼭 디지털로 감상하세요. 역시나 막강한 화질을 보여줍니다.

P.S2 "월-E"에는 SF장르를 포함한 여러 영화들의 오마주가 등장합니다. 그 중 하나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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