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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신기전 (神機箭, 2008)

신기전
영화 "신기전"을 본 것이 오늘로 두번째 입니다. 첫번째는 지난 6월 쯤이었습니다. 일종의 워크프린트 버전이었던지라 편집도 완성본이 아니고, CG도 다 입혀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보면서 얼마나 혀를 찼으며, 고개를 저어댔고, 욕을 해댔는지...

영화의 내용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그것이야 도로 바꿀 수 없다하더라도 편집이나 CG는 제대로 되서 나오겠지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더랬습니다.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신기전"의 내용은 별 것 없습니다. 명나라에 쥐어잡혀 살던 세종 시기의 조선을 배경으로 신기전이라는 신무기를 만들어서 명/여진 연합군을 쓸어버리고 한민족 만세!를 외친다는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별 것 없지만 그 내용이 담고 있는 것이 구역질이 나니 문제지요. 세종시대의 대명외교가 사대외교인 것만은 맞으나 그 사이에서 국가내부 문제에 있어서는 나름 자주적인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의도적으로 수탈의 이미지를 덧씌웁니다. 이 부분은 일종의 민족적인 트라우마입니다. 이 트라우마를 이용해 영화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느냐... 신기전이라는 신무기를 만들어 그 수탈의 주체인 명과 그 명과 함께 기어들어온 여진족을 몰살시켜버려서 그것을 쾌감으로 인식시키고 나아가 범민족적 마스터베이션을 선보입니다. 이 영화는 오로지 그러한 목적으로 밖에 계획되지 않은 영화입니다. 홍보용으로 떠들어내는 '우리 역사/우리 조상의 자랑스러움' 이랑은 전혀 상관없습니다. 불쾌한 민족주의적 감상만 가득할 뿐입니다.

영화는 이런 내용을 떠나서라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주인공 설주(정재영 분)의 흐릿한 캐릭터와 진지-코믹-청순-비련 외 기타등등 사이를 정신없이 오고가는 히로인 홍리(한은정 분)의 모습은 너저분하기 그지없습니다. 블럭버스터 액션 영화류에 등장하는 히로인들의 이미지를 한 곳에 모아 끓인, 실패한 잡탕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캐릭터들의 방황을 닮아서인지 아니면 영화의 흐름에 역마살이 끼었는지 전개가 바람따라 구름따라 정처없습니다. 어느새 그냥 신기전을 만들다가 또 어색하게 다른 이야기로 갔다가 또 신기전으로 돌아왔다가 또 다른 이야기로 마실을 나갑니다. 이런 역마살 흐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뻔하게 예측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 예측 범위 안에는 물론 지극히 억지스럽게 연출된 비장미 같은 것도 있습니다.

영화는 그렇게 흘러가다가 야심차게 준비한 모래밭에서의 대결투에 와닿습니다. 뻔히 낮에 찍은 것이 드러나보이는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야심한 밤'이라고 눙을 치는 명나라 장수의 코메디로 시작되는 이 부분은 영화 "영웅"과 "300"을 지나 지리하게 같은 장면을 리와인드하다가 영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마지막을 연상시키는 한 씬을 보여주면서 마무리로 치닿습니다. 예, 딱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입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딱 그것과 일치합니다. 거기에 더해 그 직전 '이게 진정 나랏님의 선택이냐'고 비분강개하는 설주의 모습은 이 영화의 제작을 맡았던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의 것과 같으며, 또 영화는 나아가 "한반도"와 같습니다. 조선시대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실미도" + "한반도"가 "신기전"의 정체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나름의 하이라이트인 이 마지막 부분은 어설픈 CG와 효과로 인해 더 안 좋은 모습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는 정두홍 무술감독이 참여했습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도 그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보일 뿐입니다. 그가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그래서 '한국형 액션'이라고 까지 불리게 된 '개싸움'이 그대로 등장합니다. 다만 손에 칼들만 좀 많이 쥐어줬다라는 점이 차이일 뿐이지요. 정두홍은 자기 자리에서 그저 표류하고 있습니다.

제작자인 강우석 감독은 '민족주의'에 기대고 싶지 않다라고 했지만 글쎄요, 추석을 앞둔 때에 개봉한 이 영화는 말그대로 다분히 '민족주의'에 호소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실미도"로 천만관객을, 영화판의 기대치와는 달랐지만 그래도 400만을 넘었던 "한반도"를 연출한 강우석 감독은 알고 있습니다. 영화가 흥행하려면 사회적 이슈거리가 될 무엇인가가 동반되야 하고, 지금 이 시기에는 어떤 것을 이용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돈 벌기 위해서라지만, 역겹습니다.

P.S 홍리, 한은정의 '당신이예요. 당신이 있기 때문이에요!' 는 예전 딴지일보에서 워스트로 선정했던 "비천무", 김희선의 '그 사람 죽으면 나도 죽어요'와 같은 포스를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