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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멋진 하루 (My Dear Enemy, 2008)

[Movie/Review]
하루의 시간 동안 서울을 배경으로 한 남성과 여성의 이야기. 비엔나를 거닐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비포 선 라이즈"가 떠오를만도 하지만, "멋진 하루"는 그보다는 채권자와 채무자 관계의 두 남성이 도쿄를 '산책'하던 미키 사토시 감독의 최근 개봉작 "텐텐"에 더 가까운 느낌입니다.

아는 누구는 그냥 산 땅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 값이 뛰어 꽁돈 3000만원을 벌었다는데, 정작 우리 자신의 인생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루하루 평범하고, 때로는 그 평범함이 지나쳐 비루해 보일 때도 있고 말입니다. 350만원. 희수(전도연 분)는 1년전 연인 사이였을 때 꿔준 돈을 받기 위해 경마장으로 병운(하정우 분)을 찾아갑니다. 등장부터 무언가 가시가 많이 돋친 희수와는 달리 병운은 세상만사 둥글둥글, 능글맞고 여유롭습니다. 당장 돈이 없는 병운은 오늘 중으로 주겠다는 말을 하고, 그 말을 못 믿겠는 희수는 병운을 따라 나섭니다. 이들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병운의 인간관계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중년의 사업가 여성, 예전에 스키 강습해주던 주차단속요원 아가씨들, 호스티스, 예전 사귀었던 여자후배의 남편, 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딸 하나 있는 이혼녀 등. 병운은 희수와 함께 이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빌립니다. 분명히 카드 돌려막기 같은 것은 위태위태한 일인데 이 남자, 빚 돌려막는 것이 너무도 능수능란합니다. 희수는 그런, 특히나 여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약간의 깨름칙한 시선으로 병운을 바라보지만 병운은 정작 여자들과 그런 관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연인이었던 사이지만, 희수는 병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요? 영화는 이 둘의 과거의 관계에 대해 직접적으로는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과거 모습은 둘이 차를 타고, 또는 걸으면서 겪는 상황 하나하나에 조금씩 스며들어 있습니다. 지금은 문을 닫아버린, 둘이 자주갔던 제주갈치 식당, 햄버거는 식사가 아니라는 병운의 투정, 좋아하는 캔커피, 이어폰을 나눠듣던 음악, 희수의 신발끈을 묶어주며 이별하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병운의 모습, 그리고 둘이 처음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 "텐텐"에서 후쿠하라가 아내와의 추억의 장소들을 찾아다니고, 그 과정에서 후미야가 잊고지내고 싶었던 추억을 찾는 것처럼  희수는 하루의 시간동안 그 일종의 추억이라는 느낌을 떠올리게됩니다. 그것은 병운보다는 대부분이 희수에게서 보여지는 느낌입니다. 영화는 둘의 과거 관계처럼 희수의 현재의 상황 역시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희수의 모습에서 병운을 바라봅니다. 희수가 바라던 것은 추억과 그를 통한 어떤 로맨스적 감성이었을까요? 아닐 겁니다. 평범보다 못한 비루한 인생사(라고 추측되는)에서 희수가 원했던 것은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빌려준 돈 350만원? 희수는 350만원이 당장이라도 필요한듯 절실하게 굴기는 하지만, 중간에는 통장으로 보내라고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350만원은 애초에는 목적이었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수단입니다. 350만원을 빌려 준 채권자 입장의 희수는 채무자인 병운에게는 당연 유리한 입장입니다. 1년만에 병운을 찾아가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고 재촉하는 희수는 그 순간, 일상에서 벗어난 일종의 일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일상에 찌든 압박감을 표출하고 싶었고, 그 대상은 채무자인 병운이 적임자입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영화 내내 짜증내고 화를 냅니다. 그렇지만, 병운의 모습은 그런 그녀를 누그러뜨립니다. 둥글둥글 세상만사 여유로워 보이는 병운 앞에서, 그리고 자신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상황의 병운을 보면서 희수는 잠시나마 자신의 삶에 대한 압박을 조금은 덜어냈을지도 모릅니다.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는 희수의 모습과 더불어 마지막에 짓는 그녀의 미소는, 비록 그녀의 삶이 결코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그 압박감을 잠시 지울수 있었던 멋진 하루에 보내는 미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생사가 그렇듯이 희수와 병운의 관계는 그런 식으로 매듭지어지지는 않을지도... 그 둘 사이에는 여전히 유효한 차용증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생각은 보는 사람의 자유?)

"멋진 하루"는 병운과 희수의 소소한 하루를 찬찬히 조명하고 있습니다. 경마장부터 해서 서울의 구석진 뒷골목, 고급 오피스텔, 패스트푸드점, 지하철. 일상의 혹은 일상에서 상관없이 지나쳐 가는 공간들. 그러한 공간들 사이에 느껴지는 허전함 마저도 어느새 가득채워버리는 무언가. 그것들은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의 살피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희수와 병운을 연기하는 두 배우는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전도연의 그 자연스러운 연기야 이제는 언급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이고, 그런 전도연과 함께 전체극의 거의 대부분을 이끌어가는 하정우도 충분히 좋은 모습을 보입니다. 지하철 창가로 비추는 약간은 노을져보이던 따뜻한 햇빛, 그 감정.
일상의 한자락에서 잠시의 여유를 줄 쉼표로, "멋진 하루"는 훌륭한 선택일 것입니다.

P.S 영화의 버스정류장 장면에서 엑스트라치곤 예쁜 여자분이 있길래, 의아해했는데 엔딩 크레딧을 보니...(직접 확인하세요^^)

P.S2 이윤기 감독의 영화는 처음봤는데(;) 이 영화를 보고나니 그의 전작들에 급관심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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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케노비 [2008.09.25 2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이렇게 별로 큰일없이 소소하게 지나가는 영화가 좋더라구요^^;;

  2. 열혈고딩 [2008.09.26 0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터뷰에서 봤는데, 엑스트라가 부족해서 이윤기감독이 '그배우'를 급하게 불렀다던군요ㅋㅋ

  3. 질풍노도 [2008.09.26 0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배우가 대체 누군가요 ㅋㅋㅋㅋ 아 궁금하네. 한국영화를 볼수있는 형편이 지금 안되서 ㅠ

  4. BlogIcon 주드 [2008.09.26 0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주말에 보기로 한 영화라 보고 읽으려 리뷰를 살짝 건너뛰었는데 마지막 한줄이 눈에 띄네요.
    이윤기 감독님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요. 특히나 '여자, 정혜'는 정말 좋습니다. :)

  5. BlogIcon 산다는건 [2008.09.26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오 배우들의 네임밸류만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한 영화인 줄 알았는데 반응이 괜찮군요. 피프가 끝나도 하고 있으면 한 번 봐야 할 듯...

  6. 아이린 [2008.09.27 0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정우씨가 나온 영화를 처음 봤는데 정말 두시간을 이끌어가는 힘이 느껴지더군요..
    오랜만에 마음이 따듯(?) 해지는 영화를 봤습니다~

  7. BlogIcon 인생의별 [2008.09.29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들이랑 많이 비슷하네요 :) 버스 정류장의 그 배우는 (제가 알기로는) 원래 감독님 작품들이 전작에 나온 주인공을 카메오로 출연시켜온 관습(?)에 출연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정적인 감독님 영화들에서 나름의 재미라고나 할까요. 아무래도 이번 작품은 많이 밝은 편에 속해서, 예전 작품을 보시면 조금 다른 느낌을 받으실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