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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스테판 in PIFF - 4

7편의 영화들을 본 후 대체적으로 만족감을 얻지 못해 실망을 했기에 남은 작품들에서는 건져야겠다는(..그게 네 마음대로 되냐?!)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스카이 크롤러" + "고모라"를 상영하는 야외상영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개막작 때 쌀쌀해서 바람막이를 걸치고 걸었는데...땀이 뻘뻘...

다행히도 이 작품들은 나름 크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시이 마모루의 "스카이 크롤러"는 현란하고 인상적인 공중 전투씬으로 눈을 사로잡고, 전쟁에 대한 의미,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 질문을 하는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본 14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입니다. 영화 시작할때 태원에서 수입했다고 나오니, 국내에서도 조만간 정식개봉 할 것 같습니다. 이어진 "고모라"는 이탈리아 나폴리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로, 그 사회의 단면을 폭로하는 영화입니다. "일 디보"와 "고모라"를 같이 본다면, 로마의 유적들은 잊혀지고 어느새 '고담 이태리'라는 생각이 이탈리아라는 나라에서 떠오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 디보"는 정치권이라는 위에서, "고모라"는 나폴리 빈민 아파트를 중심으로 아래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4일날의 이 야외상영에서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스카이 크롤러" 상영 도중 상영이 중지된 것입니다. 이게 참 타이밍이 압권인데, "스카이 크롤러"에는 그 안에 다양한 복선과 암시가 깔려있고, 그것이 의도한 해답이 밝혀지는 결정적 장면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아주 난감한 상황이지요.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상영 중단된 직후, 20여분 가까이 이 중단에 대한 어떤 안내도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후에 설명으로는 발전기가 문제를 일으켜서 장내 안내방송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사실, 기계적 고장이야 사전대비를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문제의 발성가능성이란 것이 있기에 그 사고원인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없습니다.

안내가 없는 20분 동안 관객들은 그냥 벙찌고 앉아서 기다려야만 했던 것이 문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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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분이 지나서야 자원봉사자들 몇명이서 확성기를 들고서 상영 중 문제 발생이라고 안내하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수도 많지 않아서 잘 들리지도 않았고, 상영이 중단된 마당에 누가 문제가 발생한 것을 모른답니까...그만큼 안내가 늦었으면 확성기라는 제한된 도구 상으로라도 자세한 정보를 알려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니면 자봉들이 목소리를 내기라도 했던지요. (나중에 장내안내방송이 나올때까지 외국인 관객들은 개별적으로 직접 물어보지 않는한은 안내를 받지 못했습니다.)

상영 중단 시간은 1시간 정도 되었습니다. 그 중간에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고, 언급했듯이 영화의 결정적 부분에 끊겼다가 다시 상영이 재개된지라, 영화가 끌어오던 느낌이 산산히 부서진 뒤였습니다. 15분간의 상영이 끝나고, 또다른 결정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던 중 사과방송 시작. 다른 곳도 아니고 영화제에서 무슨 짓입니까. 더군다나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나오는 중요한 쿠키 상영 중에도 사과 방송을 지속하는 굳은 심지. 에휴.

13회 째를 맞는 국내 최대 영화제에서의 사고, 사고는 문제가 아니고 그 사고에 대한 대처가 너무도 실망스럽습니다. 마지막에는 김동호 집행위원장까지 오셔서 사과하시고, 나갈때는 자봉들이 하나둘 타이밍 마쳐서 허리 90도 숙이면서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는데, 솔직히 그냥 민망해요.

"고모라"의 상영이 끝나고 "미드나잇패션2"를 보기 위해 해운대 메가박스로 이동했습니다. 상영사고가 없었어도 어차피 시간상 "인주"는 못보기에 입구에서 기다렸습니다. "인주"가 끝나고, 박카스 한병을 마신 후(-_-) 두번째 영화부터 보기 위해 상영관으로 들어갔습니다. 박카스를 마실 필요가 없더군요. "카멜레온" 보니 잠이 깼어요. 영화가 좋아서가 아니라 반대라서요. 어처구니없음에 그냥 잠이 싹 달아났습니다. 나중에 감상기를 적게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에 부산에서 본 14편 중을 넘어서 올해 본 150여편의 영화들 중에서도 Worst 순위권에 들 영화입니다. 후에 이어 상영된 장 끌로드 반담이 출연하는 "장 끌로드 반담"도 그저 그랬습니다. (그래서 더 졸린..)

....밤을 괜히 샌건가 하는 일말의 후회가...("인주"를 봤다면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그 후회와 더불어 밀려온 피로와 함께 새벽의 거리로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