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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PIFF '08 리뷰] 스카이 크롤러 (スカイ クロラ: The Sky Crawlers, 2008)

스카이 크롤러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신작 "스카이 크롤러"는 또다른 현재, 아니면 멀지 않은 미래의 유럽 어느지역으로 추정되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눈을 사로잡습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격렬한 도그파이팅을 선보이는 전투기들, 슬로우모션으로 흩뿌려지는 탄피들, 360도, 전후좌후로 이동하는 시점. 이 공중전이 끝나고, 구름 너머 영화의 제목이 등장합니다.

오프닝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작부분에서 주인공 간나미 유이치가 한 공군기지로 배속받는 모습이 보입니다.
기지의 책임자인 구사나기 스이토는 유이치의 보고를 받으며, 기다렸다는 말을 합니다. 기지를 둘러보며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는 유이치. 유이치는 다음날 동료 도키노와 함께 정찰 비행을 나갑니다. 그 정찰비행 중 유이치는 자신의 전임자인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진로에 대해 궁금해진 유이치는 그에 대해 묻고다니지만, 다들 그에 대해서는 숨기는 기색이 역력하고, 구사나기가 진로를 쐈다는 이야기만 듣게 됩니다만 여전히 그 정체는 안개 속에 쌓여 있을 뿐입니다. 영화는 진로의 정체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이 베일에 쌓인체 전개가 됩니다. 그 전개 중에 하나씩 이야기되는 식입니다. 현재 이 전쟁은 어떤 국가와 국가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라우테론과 록스톤이라는 군수회사가 위임받아 치루고 있는 전쟁으로,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파일럿들은 그 회사의 직원들입니다. 그리고 이 파일럿들은 나이가 들지 않고 계속 청소년의 모습인체 전투 중 죽지 않는 이상 영원히 사는 '키르도레' 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전쟁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합니다. 기지에 방문을 온 민간인들은 유이치에게 '당신들때문에 우리가 평화 속에 살아요.'라며 고마움을 표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후반부의 이 전쟁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집니다. 이 영화 속의 세계의 모습은  대부분이 공군기지와 그 주변의 모습으로만 보여주고 있지만, 얼핏 보이는 그 외부의 모습에서는 풍요롭고 안정되어 보이는 사회로 보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전쟁은 왜 발생한 것일까요? 인류의 역사상 전쟁이 없던 날은 불과 며칠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느날 전쟁이 사라진다면, 전쟁이란 불안과 위협을 통해 사람들이 갈망하던 평화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집니다. 오래된 인식과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함이라는 필요악적 명분으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쟁은 국가가 아닌 거대기업체 라우테론과 록스톡이 위임받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 필요악적 명분보다는 기업이 관여하면서 결국은 돈이 크게 관여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는 영원히 나이들지 않고 전쟁을 치뤄야하는 '키르도레'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전쟁이라는 것이 과연 정당한 명분이란 것이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러한 전쟁에 끊임없이 투입되고 있는 젊은이들. 영화는 전쟁과 '키르도레'들을 통해 현재의 전쟁에 대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키르도레'들은 위에 언급된 내용과는 다른 의미도 띄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픈 가장 큰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는 영원히 청소년인 상태로 남아있는 '키르도레'들과 그들과는 반대로 그들이 절대 상대할 수 없는, 성인 남자로 알려져 있는 적 파일럿 '티처'가 등장합니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파일럿들은 전쟁이나 그들이 행하고 있는 전투자체에 대해서는 무감각합니다.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드라이브인 식당의 주인이 전투에 참가할지도 모를 유이치에게 말합니다. '조심해요.' 그러나 유치이는 답합니다. '뭘요?' 그들에게 창공을 향해 날아가는 일은 당연한 일을 넘어 즐거운 일입니다. 유이치는 하늘이 좋다고 말합니다. 하늘에서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모습들과는 다르게, 지상에서의 그들의 모습은 지루하고, 나른한 듯한 모습일 뿐입니다.하지만 그 좋아하는 하늘에는 그들이 상대하기 벅찬 '티처'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창공 가득을 누리지 못하고, 돌아와야만 합니다. 유일한 죽음이 두려워 '티처'를 보면 도망치기에 바쁩니다. 전쟁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 놓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각 회사를 옮겨다니는 '티처'는 현재의 기성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영원히 자라지 않은 '키르도레'는 현재의 젊은이들입니다. 기성세대인 '티처'가 만들어놓은 현재의 모습에 대해 젊은이들은 지속된 패배의 모습에 도전이라기보다는 적정한 균형만을 유지하며, 새로운 모습을 포기합니다. 분명 새로운 것을 꿈꾸는 마음과 열망은 있지만, 적당한 타협만을 찾습니다. 영화에서 유이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간이 어른이 될 필요가 있는가'라며 스스로를 늙지 않는, 현재성만을 갖는 인물로 스스로 정의해버립니다. 하지만, 후반에 가서 자신의 존재론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은 유이치는 '키르도레'임에도 아이까지 낳은, 그들과 같은 존재이면서도 성숙함으로 좀 더 나아간 구사나기에게 '당신은 무언가를 바꿀때까지 살아남아요.'라고 말하고는 '티처를 격추하겠다'라며 출격합니다. 하늘에서 지상의 풍경을 바라보는 유이치의 독백.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은 오늘과 다르다. 매일 다니던 길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설사 그 길이 같다 하더라도 그 곳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독백은 엔딩크레딧이 끝나고 나오는 쿠키영상의 결과가 암울한 비극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작은 한걸음임을 이야기합니다. 감독 오시이 마모루가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메세지입니다.

"스카이 크롤러"는 오시이 마모루의 전작들처럼 존재론적 고민 등이 등장하긴 하지만, 기존 작품들에서 보이던 다분히 현학적인 대사들은 많이 줄어든 편입니다. 이는 오시이 마모루의 그런 점을 좋아하던 팬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 될테지만, 그가 이 영화를 통해 말하는 바를 들어주길 원하는 대상들이나 그런 이전의 모습으로 인해 거부감을 일으키던 기존 관객들에게는 더욱 어필할 수 있는 요소일 것입니다. 또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공중 전투씬의 스펙타클함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주는 메시지를 떠나서라도 단순히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오시이 마모루는 아직 건재합니다.

P.S 이런식으로도 생각해봤습니다. 하늘에는 성인 남자인 '티처'가 있고, 지상에는 '마마'(엄마)라고 불리우는 정비사 사사쿠라가 있습니다. 여자 파일럿이 있긴 하지만, 이 대결을 유이치와 '티처'의 대결로 본다치면, 일종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발현이 아닌가 하고 말이죠. '키르도레'가 청소년시기라는 것도 그렇고, 기성세대의 억압이라고 봤을때도 그렇고...

P.S2 야외상영장에서의 상영중단사고만 없어서도 참 좋았을텐데 말이죠. 뭐, 기계적 오류야 사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