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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PIFF '08 리뷰] 일 디보 (Il Divo, 2008)

일 디보
영화 "일 디보"는 총리 7차례, 장관만 25번을 지내며 전후 이탈리아의 정치계를 지배했던 줄리오 안드레오티에 관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이지만, 그의 삶 전체를 조망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의 정치적 일대기 전체를 다루는 영화도 아닙니다. 영화가 집중하는 부분은 그의 정치생활의 말년입니다. "일 디보"의 시작은(용어설명을 제하고) 그의 어머니의 말로 시작합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말을 할 수 없다면, 그에 관한 말을 아예 꺼내지 마라.' 이어지는 장면은 경쾌한 음악과 함께 자행되는 암살들입니다. 영화는 이 시작부분을 통해서 줄리오 안드레오티의 정치적 자산과 그 성장동력이 무엇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어서 안드레오티가 당수로 있는 기독교민주당(기민당) 소속의 그의 손발들이 등장합니다. 안드레오티의 비서는 그들을 보고 말합니다. '또 먹구름들이 밀려왔네요.' 그들이 한명씩 등장할때마다 휘파람 소리가 울립니다. 그 휘파람소리는 마치 조롱기를 가득 담은 듯 합니다. '보세요. 이 버러지같은 놈들을.' "일 디보"는 영화 내내 줄리오 안드레오티와 그를 압박하는 이전 기민당 당수, 알도 모로의 독백이 그를 압박하는 형국을 취합니다. 알도 모로는 총리이던 1978년 극좌테러단체인 '붉은 여단'에 납치되어 54일째 되는 날 살해된체 발견되었는데, 안드레오티가 그 납치/살해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로의 독백은 모로가 납치되었을때 적었던 수첩에 적힌 내용으로 안드레오티는 그것을 입수해 발표 하려던 'OP'지의 기자 미노 페코넬리 역시 살해했습니다. 그렇게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등장해 그의 내면을 압박해오는 모로의 독백은 안드레오티에게 남아있는 일말의 가책입니다.

"일 디보"의 중심인 줄리오 안드레오티는 영화가 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의 전체가 드러나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비밀이 많습니다. 그런 비밀들로 인해 비어있는 부분에는 다른 것들이 채워집니다. 이탈리아 정치판의 모습, 사회의 모습들이 그것입니다. 영화는 줄리오 안드레오티라는 상징적인 인물을 통해서 전체 이탈리아 정치계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도는 영화 후반부의 줄리오 안드레오티의 독백으로도 드러납니다. 그의 과거 행적들에 대한 의혹이 하나씩 불거지고, 결국 청문회에 불려나가게 된 그는 청문회 출석을 앞둔 어느 날 의자에 앉아서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권력의 핵심과 정의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영원할 필요악이라고 강변합니다. 영화 내내 조용하고, 차분했던 그가 빠르게 내뱉는 그의 말들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이 의도한대로 인정할 수 없는 그의 말.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돌아가는게 바로 이탈리아 정치계입니다. 이는 비단, 이탈리아 정치계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안드레오티는 청문회에 나가서 '기억이 안납니다.'로 일관합니다.

영화는 빠른 편집과 전개로 속도감을 자아내며, 그 속도감 속에서도 각 장면 하나하나마다 공들인 티가 느껴질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화면 내에서 줄리오 안드레오티로 분한 토니 세르빌로의 연기 또한 인상적입니다. 구부정한 등에 깍지 낀 손을 가슴팍에 모은 체 조용조용 말하는 토니 세르빌로는 영화 속에서 그런 모습과는 다르게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가득 드러냅니다. 비밀에 가득 쌓인 존재이면서도, 보는 이를 압도하는 모습. 그의 연기는 영화를 빛나게 하는 또다른 한 축입니다.

P.S 이탈리아와 우리나라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글쎄요, 그 쪽은 이렇게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는데..


P.S2
줄리오 안드레오티 토니 세르빌로 토니 세르빌로
L->R 실제 줄리오 안드레오티, 토니 세르빌로, 영화 속 안드레오티


글을 적다가 알게 된 건데... 토니 세르빌로가 역시 이번 PIFF에서 본 "고모라"에도 나왔더군요. 기억을 떠올려보면, 폐기물처리업자였던 것 같은데..분장을 저렇게 해놔서 동일인물인 줄 전혀 몰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