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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미쓰 홍당무 (2008)

미쓰 홍당무
종종 '올해 한국영화 상반기는 "추격자", 하반기는 "멋진 하루"다.'라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오늘부로 하반기는 바로 이 영화, "미쓰 홍당무"입니다. 29년동안 꾸준히 삽질인생을 살아온 안면홍조증 환자 양미숙을 그리고 있는 "미쓰 홍당무"는 무지막지한 웃음 폭탄을 선사하는 영화입니다.

'세상이 공평할 거란 기대를 버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 열심히 살아야 돼.' 라는 우리 미스 양의 어록이 떠오른후 시작되는 영화는 고등학교 시절 얼굴이 시뻘개친채, 반 단체사진에 찍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뛰어오른 그녀의 얼굴을 비춥니다. 그 때부터 시작된 그녀의 안면홍조증은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고, 그녀는 연모하는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자, 지금은 동료교사인 서종철 선생 앞에서 열심히 (진짜) 삽질 중입니다. 아... 삽질!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왕따 인생을 걸어오고 있는 양미숙은 사실, 동정의 여지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괴팍합니다. 집 살 돈을 모은다고 교무실에 묵고 있으며 요상한 좌욕기에, 거울에 붙어있는 일종의 좌우명은 '1등에 목 맬 바에야 목을 매고 만다.' 일 정도니 말입니다. 미숙은 4년전의 티코 안에서의 일 때문에 종철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오고 있는데, 그때 이쁘다는 이유로 남들에게 대우받는 이유리가 유부남인 종철과 사이에 좋아하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 사이를 방해하려 계획합니다. 미숙은 유리와 같은 고등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쳤으나, 러시아어의 수요가 떨어지면서 유리에 밀려 중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종철 + '이쁜 것들!'에 대한 증오가 그녀의 삽질을 부추깁니다. 그 계획에 미숙이 끌어들이는 이는 종철의 딸 종희. 종희는 학교에서 왕따로, 부모의 이혼을 막기 위해 미숙과 의기투합합니다.

"미쓰 홍당무"의 가장 큰 매력은 양미숙을 필두로 한 캐릭터들에 있습니다. 외모적 컴플렉스와 자기 자신을 옹호하는 각종 궤변으로 무장하고, 사회성에서도 부적합한 성격을 가진 양미숙은 존재 자체로도 큰 웃음을 주며, 그녀의 행동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습니다. 거기에 더해 양미숙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인 왕따 종희는 월등한 'EQ'로 미숙을 당황케 할 정도의 활약을 보입니다. 그리고 미숙이 뒤로는 이를 갈고, 앞에서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이유리는 누구나 좋아할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으나 자기 자신을 내숭으로 감싸고 있으며, 거기에 살짝의 백치미도 더하고 있습니다. 이 주요 여성캐릭터들이 펼치는 소동은 크게는 미숙-종희의 계획이 이행되는 모습을 통해서 보여지지만, 산발적으로도 각각의 캐릭터들이 펼치는 이야기들이 더 크게 두드러집니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주고받는 대화나 상황은 그 각각으로 큰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만큼 영화는 이들 캐릭터성에 기대는 면이 큽니다. 역시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주인공인 양미숙으로 그녀의 캐릭터는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으로 비춰집니다.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어처구니없는 행동들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비웃음은 중간중간 당혹감을 주는데,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드는 컴플렉스의 면모가 종종 우리네가 가지는 그것과 겹쳐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런 비웃음은 씁쓸한 자조적 미소가 되며, 동정할 여지가 없던 양미숙에게도 동정의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아니라면, 당신은 엄.친.아 or 엄.친.딸?!) 영화는 '이상한 행동에도 이유가 있다' 며 양미숙의 삽질을 감싸려하는 듯한 모습을 취하기도 하는데, 양미숙의 비호감적이고 엉뚱한 캐릭터가 불러일으키는 상황으로 인해 그러한 모습조차도 폭소를 자아냅니다.  삽질...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삽질에 이유가 있겠습니까. 하라고하니까는 여기 팠다가 덮었다가 저기 팠다가 덮었다가...되짚어보면 대체 뭐한건지 알 수 없는 그 삽질. 내가 한 삽질에 이유를 붙이려고 들수록 이 역시도 별 필요없고, 그래봤자 달라질게 없다는 것을 느끼는 그 과정을 양미숙이 밟고 있습니다. 영화는 마무리 부분의 해결 과정에서 학교라는 공간 내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축제라는 이벤트를 활용하는 조금은 진부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변함없이 왕따, 아웃사이더이자 삽질인생을 역시나 주욱 살아갈 미숙을 그리면서 그 부분을 그저 약간의 아쉬움 정도로만 남게 만듭니다. 미숙에게 한바탕 큰 삽질 후에 남은 것은 변함없는 현실과 그나마 앞으로의 삽질 인생을 같이할 친구 정도입니다.

미쓰 홍당무

양미숙을 연기한 공효진은 망가지는 모습에도 개의치 않고, 비호감 자체인 역할을 너무도 훌륭하게 연기해냈습니다. 그녀의 필모 중 가히 최고의 모습을 이 영화에서 보입니다. 최근 "미인도", "박쥐" 등의 영화에서 여배우의 노출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여배우의 노출이 곧 이미지 변신이나 연기력 인증으로 비춰지는 지금의 모습에서 "미쓰 홍당무"와 "미쓰 홍당무"의 공효진은 여배우가 노출만으로 자신의 연기력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이고 있습니다.(물론, 다른 여성 캐릭터를 연기한 황우슬혜와 서우도 기대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합니다.) 제작자로 참여한 박찬욱 감독이라는 든든한 방패막 및 지원군도 큰 효과를 내긴 했겠지만, 이경미 감독은 독특한 생각과 이야기로 인상적인 장편데뷔작을 만들었습니다. 이경미 감독의 이후의 행보에도 기대를 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