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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007 퀀텀 오브 솔러스 (Quantum Of Solace, 2008)

007 퀀텀 오브 솔러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뻔 했던 007 시리즈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마틴 캠벨 감독의 2006년작 "카지노 로얄"을 이어서 2008년 돌아온 007 시리즈 22편 "퀀텀 오브 솔러스"는 말그대로의 속편입니다. 그간의 007 시리즈가 몇몇 작품간의 일종의 연계성은 있었지만, 각각의 분리된 한편으로 봐야했다면 이번 "퀀텀 오브 솔러스"는 전작의 스토리가 그대로 이어져 전개가 됩니다.

미스터 화이트를 잡아온 본드와 M은 그 배후 조직에 대한 정보를 캐내다 그들이 MI6에도 침투해 있는 등 생각보다 깊숙하고 넓게 퍼져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베스퍼에 대한 사랑과 배신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본드는 그 조직에 접근해가는 과정에서 그녀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으로 인해 정도를 넘어선 살인행각을 벌입니다. 본드가 알아낸 배후인물은 도미닉 그린이라는 인물로, 겉으로는 환경보호기업을 경영하는 사업가인 척을 하고 있으나 그가 노리는 것은 석유같은 기존의 자원이 아닌, 새롭게 각광받는 천연자원의 독점을 통한 알력 행사입니다. 본드는 그 과정에서 만난, 본드와 같이 복수심에 불타는 여성 카밀과 함께 그린의 계획을 막아서게 됩니다.

영화는 전통적인 프리 타이틀 액션을 선보입니다. 격렬한 카체이스 장면에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 "퀀텀 오브 솔러스"의 오프닝 시퀀스에는 본드와 총, 그리고 여성의 이미지가 합쳐져 선보이는 섹슈얼한 이미지가 느껴집니다. 그 배경으로 잭 화이트와 알리시아 키스가 참여한 테마곡이 흐르는데,아쉽게도 이 곡에서는 왠지 모를 어색함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전작의 오프닝 시퀀스에 흘러나온 'You Know My Name'의 좋았던 느낌과 비교하자면 더더욱 그러한데,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입니다. 이 오프닝 시퀀스에서 선보이는 섹슈얼한 이미지는 전작인 "카지노 로얄"의 오프닝 시퀀스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오히려 전통적인 007 시리즈의 그것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전작이 기존 007과의 차별성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던 것을 보면 이 오프닝 시퀀스는 의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시작부분에 어김없이 등장하던 ("카지노 로얄"에서는 순서가 바뀌었지만.) 건 바렐이 등장하지가 않습니다. 건 바렐 장면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뜨기 직전에 나오는데, 오프닝 시퀀스의 섹슈얼한 이미지가 등장하는, 전통에 대한 회귀와 건 바렐 장면에서 보이는 전통의 탈피가 결국은 이 영화 "퀀텀 오브 솔러스"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액션의 향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속편의 법칙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줄어든 런닝타임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보편적인 법칙을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감독이 "몬스터 볼", "연을 쫓는 아이" 의 마크 포스터라는 점에서 이는 더욱 의외입니다. 마크 포스터는 액션 연출 경험이 전혀 없다는 약점을 의식해서인지 액션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면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전작에서 보이는 '제이슨 본' 스러운 액션도 여전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액션이 육해공 전체에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카지노 로얄"의 느낌보다는 지난 007 시리즈의 그것을 연상케하는 느낌이 강한데, 특히나 보트 액션 장면은 "007 위기일발"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런 모습은 "007 골드핑거"에서의 금칠을 당하고 침대에서 죽은 여성의 모습을 오마쥬한 장면이라던지,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의 장면이 본드가 영국 수상 최측근의 경호원을 상대하는 장면으로 설정만 바뀌어 그대로 등장하는 것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의도적인 연출입니다. 캐릭터가 주는 전작의 이질감을 이런 일종의 오마쥬들로 완하시키고, 많은 사람들이 007 시리즈 최고작품으로 꼽는 "007 골드핑거"의 명장면을 등장시켜, 그 작품을 이어 최고의 007 시리즈로 거듭나보이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전체적인 모습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영화의 액션장면의 경우는 굉장히 빠른 호흡을 보이는데, 이를 속도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편집이 지나치게 빨라 어떤 액션의 흐름을 쫓아가기가 버거울 정도입니다. 또한, 거의 모든 액션장면이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 정도로, 신선함이나 인상적인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액션의 배치에 있어서도 이펙트가 오히려 뒤로 가는 액션장면일수록 점차 떨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신경을 쓰기 했지만, 액션 연출을 처음 경험해본 마크 포스터의 약점이 그대로 들어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 모습 하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연출을 맡게 되면서 사람들이 기대했을 캐릭터, 이야기에 대한 깊이는 찾을 수 없고, 액션에만 끌려가기에 바쁜 모습을 만드는 결과도 낳습니다. 많은 이들이 마크 포스터의 007 감독 내정에 의아하다는 입장을 표했습니다. 그가 감독으로 선정된 이유는 의외의 선택이 낳은 (긍정적인) 의외의 결과가 주는 놀라움에 대한 바람이었을 테지만, 그 선택은 실패에 가깝습니다.

"카지로 로얄" 이전 시리즈의 모습은 의외로 본드 캐릭터 자체에서도 어렴풋이 등장합니다. "카지노 로얄"에서 변혁을 꾀하며 취했던 그 캐릭터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그런 모습은 왠지 모를 이질감을 자아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의 본드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새롭게 재설정한 캐릭터를 밀고 나가지 못하는 모습은 시작의 야심찬 모습과 비교하자면 뒷심 부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액션 장면에서 보이던 모습들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아쉬움은 시대적 변화에 따른 제임스 본드의 현재 위치입니다. 이전 냉전시대야 참으로 간단하게 선악을 나누어 이야기를 전개해나갔지만, 냉전시대가 끝난 후로 007 시리즈는 갖은 방법으로 새로운 갈등구조를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했고,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카지노 로얄"에서는 금융자본과 테러의 조합을 선보였는데, 이번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는 선악 구분 자체가 모호하다고 스스로 이야기합니다. 현재 세계정세에서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여부에 따라 활동하고, 그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개발도상국 국가에 대한 착취와 뒷거래에 대해서 영화는 이야기하는데, 도미닉 그린은 그것으로 자신의 목적과 행위를 정당화시킵니다. 영국 MI6의 첩보원 신분인 제임스 본드가 그러한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당연합니다. '난 정의를 위해 살테야.' 라는 슈퍼맨이 아닌 이상 현시점의 제임스 본드는 세계평화와는 무관합니다. 영국의 이익에 어느 쪽이 유리하냐가 본드의 판단이 될 지언데, 이 영화의 본드에게는 그런 모습보다는 (복수심으로 포장한) 왠지 모를 정의감이 느껴지면서, 그런 기준에서 저만치 벗어나 있습니다. "카지노 로얄"에서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21세기 제임스 본드의 딜레마가 이 영화에서 크게 느껴집니다.

영화에는 비중으로 치면 작은 본드걸, 큰 본드걸이 등장합니다. 젬마 아터튼과 올가 쿠릴렌코가 그들입니다. 젬마 아터튼은 본드와 잔 여자의 운명을 그대로 따르게 되고, 올가 쿠릴렌코는 액션도 펼쳐보이면서 현대적인 의미의 본드걸을 지향해보고자 합니다. 하지만 올가 쿠릴렌코는 그 액션에서도, 극 속에서의 존재감도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전작에서 본드의 마음에 크게 자리잡았던 안티히로인 베스퍼 린드, 에바 그린의 모습이 그만큼 인상적이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 "퀀텀 오브 솔러스"의 방향성은 과도기입니다. 이 영화는 3~4편의 영화를 크게 한편의 영화로 봤을때, 그 영화의 전반부가 끝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전반부는 본드와 베스퍼 린드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편에는 본드의 보드카 마티니 주문이나, '본드, 제임스 본드' 대사가 없습니다. 한편으로 볼 경우, 이미 "카지노 로얄"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본드는 베스퍼에게서 벗어났습니다. 이어서 건 바렐이 등장합니다. 전작 "카지노 로얄" 한편의 흐름으로 보자면 이제 막 오프닝이 끝난 것입니다. 그리고 "퀀텀 오브 솔러스" 한 작품만 두고 보자면, 전통과 새로운 변혁 사이에서의 교접합을 찾으려는 모습이 크게 드러나는데, 바람과는 다르게 "카지노 로얄"에서 오히려 한발 뒤로 퇴보한듯 보입니다. 그래서 실망감도 몰려옵니다. 하지만 바로 전 언급했던, 크게 여러편의 영화를 한 작품으로 묶는 관점으로 본다면, '건 바렐' 이후에 펼쳐질 다음 007 시리즈가 나온 다음에야 완전한 평가가 내려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작품은 역시나 이번 작품에서 이어질 것으로 보이니까 말입니다. 그렇기에 문제는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것인가 이고, 그래서 다니엘 크레이그가 다시 제임스 본드를 맡을 수 있느냐입니다.

P.S "카지노 로얄"보다 런닝타임도 짧은데 비해, 액션도 훨씬 많은데..오히려 지루한 느낌이...

P.S2 전통에 대한 회귀는 영화의 마지막 대사에서도 나타납니다. M이 본드에게 다시 돌아와달라고 하자, 본드는 자신은 떠난 적이 없다고 답합니다. 전통으로의 회귀라면, 더이상 다니엘 크레이가 있을 자리는 없을 것인데, 어떻게 될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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