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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 Lat Den Ratte Komma In, 2008)

렛 미 인
왕따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성별의 구분이 무의미하지만)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렛 미 인"은 영상미와 서정적인 정서, 호러적 장치를 절묘히 활용하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올해 부천국제영화제를 비롯해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12살의 오스칼은 부모님의 이혼 후, 엄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오스칼은 학교에서 왕따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그는 직접적으로는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반항하지 못하고, 그저 집에서 칼을 쥐고 상상 속에서 그 아이들에게 복수를 하곤 합니다. 오스칼은 또한 각종 살인사건 기사를 스크랩해가면서 살인의 방법에 대한 지식도 쌓아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오스칼의 옆집으로 누군가가 이사를 옵니다. 한 소녀와 중년의 남성. 오스칼은 그 소녀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혼자 놀고 있던 오스칼의 곁에 어느새 다가온 소녀. 이엘리라고 이름을 밝힌 소녀는 오스칼과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겉으로 느껴지는 성별의 차이는 물론이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금발의 오스칼과는 달리 이엘리는 칠흙같은 흑발입니다. 이엘리는 오스칼에게 말합니다. '난 너랑 친구가 되지 않을거야.' 오스칼은 말합니다. '누가 언제 너랑 친구한댔어?' 친구가 필요했던 오스칼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미리 선수를 친 이엘리. 소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아이들의 이런 만나과는 다르게 한편에서 잔혹한 살인 행위가 벌어집니다. 소녀와 같이 사는 중년의 남자은 지나가는 행인을 납치한후 그의 피를 받아냅니다. 뜻하지 않은 방해로 피를 가져오지 못한 남자는 집에서 이엘리에게 한소리를 듣고는 그저 사과하기에 급급합니다.

오스칼의 왕따 생활은 계속 되고, 이엘리와의 만남 역시 계속 됩니다. 처음과는 달리 둘은 점차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피를 구하지 못한 이엘리는 직접 나서게 됩니다. 이로써 이엘리가 뱀파이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이엘리는 혼자 걷는 사람을 습격해 피를 빱니다. 하지만, 오스칼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오스칼과 이엘리가 가까워질 수록 마을에서는 정체불명의 살인 사건들이 하나둘씩 일어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오스칼도 이엘리가 뱀파이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오스칼은 이엘리를 여전히 친구로 받아들이고, 이엘리에게 사랑을 줍니다.

영화는 뱀파이어를 이용한 장르적 특성들을 곳곳에 등장시킵니다. 뱀파이어,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따르는 동행인, 낮에는 잠을 취하고 몸에서는 알 수 없는 악취가 가득 나는 등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이엘리에게 피를 빨리고도 살아남은 여자는 역시나 뱀파이어가 되고, 그녀는 극단적인 최후의 수단을 택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뱀파이어 장르에서 흔히 눈에 띄는 섹슈얼한 느낌은 빠져 있습니다. 이엘리와 오스칼의 나이는 그런 섹슈얼함을 배제하게 하는데, 영화에서 보여지는 섬뜩한 피와 죽음의 이미지와 공포는 이엘리와 오스칼 사이의 사랑의 순수함을 더욱더 부각시킵니다. 이러한 순수함은 서로 다른 이질적 존재인 둘이 사랑을 하게 되는 가장 기본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이 둘의 사랑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엘리는 오스칼에게 말합니다. '나는 너야.' 이엘리는 오스칼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스칼은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실행한 어떤 용기도,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스칼과는 다른 존재인 이엘리는 오스칼에게 용기를 주고, 자기가 오스칼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엘리는 또다른 오스칼로, 오스칼이 되고 싶던 그 무엇입니다. '나는 너야.' 이엘리는 오스칼에게 자신이 오스칼의 내면의 또다른 모습임을 그렇게 밝힙니다. 어린이들의 동화의 이면에는 섬뜩한 현실의 진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동화 '왕자와 거지'가 영국 헨리8세 시대의 인클로저 운동과 혹독했던 빈민구제법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사랑이라는 감상적인 동화 이야기의 이면에는 왕따 소년의 분노와 파괴 본능이 만들어낸 결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점차 자신의 내면의 진실과 가까워져간 오스칼은 결국 핏빛 가득한 잔혹함을 선보입니다. 그리고 오스칼은 떠납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가방에 담겨져 있는 이엘리는 표면적으로 드러나 이제는 하나가 되어 자유롭게 소통하게 될 수 있게 된 오스칼의 또다른 자아이며, 가방은 오스칼의 마음입니다.

"렛 미 인"은 점점이 찍힌 핏자국과 그로 인해 더욱 도드라지는 순순한, 순백의 눈밭을 그리다가 그 눈 아래 있는 더더욱 검붉은, 아픈 핏덩이을 드러내보이는 잔혹동화입니다. 동화의 눈밭만 볼 것인지, 아니면 그 눈밭 아래 감춰진 현실을 볼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관객의 몫이지만, 두가지 선택 중 어느 것이라도 만족을 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