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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1724 기방난동사건 (2008)

1724 기방난동사건
요즘은 어느 분야든 '퓨전'이라는 말이 그리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1724 기방난동사건"은 '퓨전'사극입니다. 퓨전이라는 의미를 떠올려보자면 '서로 다른 장르의 요소들이 만나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 정도가 될 터인데, 이것이 잘되면 야 웰메이드 퓨전 ~ 이라는 소리를 들을 테지만, 반대의 경우는 그저 난잡한 교배일 뿐입니다. 이 영화는 아쉽게도 전자이기보다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1724년 조선 경종 때, 마포에 살던 건달 천둥(이정재 분)은 어느 날 실수로 주막에 배달되어 온 기생 설지(김옥빈 분)를 보고는 그녀를 마음에 품게 됩니다. 그러나 배송 실수인지라, 그녀는 원래 배달지로 향하고 그에 낙심하고 있던 천둥 앞에 한 무리의 괴한들이 나타납니다. 괴한들의 대장과 서로의 모든 것을 건 격투 끝에 이긴 천둥은 자신이 상대한 이가 양주파의 대장 짝귀임을 알게 됩니다. 짝귀의 수하들은 그때부터 천둥을 형님으로 모시게 됩니다. 천둥은 얼떨결에 양주파의 대장이 되고, 설지가 야봉파에 배달(...) 된 것을 알게 됩니다. 설지의 문제도 있고, 순간의 치기도 있고 천둥은 주먹계를 두고, 야봉파 대장 만득이와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됩니다.

대충의 이야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영화는 배경만 조선시대로 바꾼 조폭물입니다. 사람 좋고, 주먹도 좋다는 천둥은 그래봤자 상인들에게서 자릿세 명목으로 돈이나 뜯는 놈일 뿐입니다. 그 후 전개되는 이야기도 세제인 영조의 모습이 얼핏 보이기는 하지만, 그저 조선시대판 조폭들의 세력 다툼만 전개가 됩니다. 영화가 구역질날 만큼 창궐하던 조폭코메디물을 따른다기보다는 어쩌면 "장군의 아들" 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나이들의 의리, 용기, 꿈, 그리고 기개로 조폭들의 삶을 포장하는데, 그렇다보니 주변 민간인들은 천둥을 마치 영웅처럼 따르고 그들을 응원합니다. (어이, 이봐 당신들 아까는 천둥한테 자릿세 명목으로 뜯겨서 울상이었잖아.) 어차피 만득이나 짝귀나 별 차이 없는 녀석들인데 말입니다. 정계에 있는 대감이 그의 지저분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만득과 짝귀 둘을 고려했다는 말에서도 그것은 알 수 있습니다. 이어서 중간에 등장하는 욕지거리를 이용한 코믹함의 연출시도는 또 조폭코메디의 전형 중 하나이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저 조폭물일 따름입니다. 광고 등에서는 조선시대 히어로라고 말하지만, 그저 그 지저분한 판에서만 이전투구 하는 그들에게 히어로라는 말은 무리가 따릅니다. 단순히 조폭물이라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천둥과 설지, 그리고 만득이 사이의 관계라든지 그안에서의 인물들 사이의 관계도 식상할 뿐더러, 단순한 이야기를 질질 끄는 느낌 역시 강합니다.

영화는 이런 이야기 면에서는 하등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CG 등을 이용한 화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프닝 크레딧부터 만화적인 느낌이 다분히 드는 영화는 그 후에도 곳곳에서 그런 느낌을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싸움 장면에서 얼굴이 흔들린다거나, 침이 가득 튀기는 모습 등이 그러합니다. 이런 부분은 나름 흥밋거리로 작용하는데, 마지막에서는 그것이 과해 우를 범합니다. 최후의 결투에서는 배경이 완전 CG처리가 된, 블루 스크린(혹은 그린 스크린?)에서의 합성장면인데 이 장면은 급작스러운 만큼 뜬금없고, 그간의 영화에서 가장 어색한 모습입니다.  무엇이든 과유불급인데 말입니다.

해놓은 것 없이 꿈만 창대했던 "1724 기방난동사건"에서 가장 아쉬워할 사람은 아마 배우들일 것입니다. 천둥 역을 연기한 이정재나, 설지 역의 김옥빈, 만득 역의 김석훈은 각자 나름의 연기적인 변신도 꾀했고, 그에 대해서도 무리 없다는 인상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영화가 그만큼에 썩 부합하지 못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배우들은 차후 좋은 작품에서의 모습을 기대 해봅니다. 김옥빈은 다음 개봉할 작품이 아마도 박찬욱 감독의 "박쥐" 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