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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오스트레일리아 (Australia, 2008)

오스트레일리아
생각해보면 바즈 루어만의 모든 작품은 '멜로' 였습니다. 제목부터 "오스트레일리아"라고, 호주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붙여놓기는 했지만, 어쨋든 바즈 루어만의 신작도 멜로물입니다. 배경이 바뀌었고, 그리고 인물들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는 드넒디 넓은 호주를 배경으로 영국 귀족 여성 애쉴리와 한 몰이꾼의 사랑이 장엄한 역사라는 무대 앞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랑 뿐만 아니라 휴머니즘과 용기와 희망, 감동이 있습니다.

영화는 애쉴리(니콜 키드먼 분)가 목장을 운영 중인 남편을 만나러 호주로 오게되면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만나게 된 인물은 거친 싸나이 냄새 물씬 풍기는 몰이꾼 '드로버' 잭 입니다. 드로버의 안내로 파러웨이 농장에 도착한 애쉴리는 그녀의 남편이 죽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충격에 흔들리기도 잠시, 그녀는 남편이 하려했던, 다윈 시로 소 1500마리를 몰고가는 일을 수행해야합니다. 그 과정을 드로버가 돕는 것은 물론이요, 도중에서 둘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또 하나 빼먹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의 여정을 방해하는 악당의 존재입니다. 파러웨이 농장을 차지하려는, 그래서 호주 목축업을 쥐고 있는 카니(브라이언 브라운 분)를 돕는 닐 플레쳐(데이빗 웬햄 분)는 애쉴리 일행의 다윈 행을 저지하려 합니다. 이 부분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 영화의 1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쉴리 일행의 다윈의로의 여정은 흔히 말하는 롤플레잉 식 전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극에서 흔히 나오는 그 구조. 악당 닐 플레쳐가 방해라는 퀘스트를 던져주면, 우리의 주인공들은 슬기롭게 그 퀘스트를 깨나가면서 레벨업을 해나갑니다. 그 와중에 특수능력도 얻게되지요. 1부가 다윈시에 무사히 도착한 애쉴리 일행으로 인해 카니의 호주 목축업에 대한 독점이 깨지면서 마무리가 되었다면, 2부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감동적 휴머니즘과 더불어 애쉴리와 드로버의 사랑이 강조될 차례입니다. 드로버는 퀘스트를 진행해오면서 '마님의 애인'이라는 지위로 인한 특수능력을 얻게 되었구요. 원주민 혼혈 아이를 찾아 헤매는 애쉴리의 절절함과 그런 애쉴리를 애타게 찾는 드로버의 사랑의 간절함을 일본군의 무차별적 폭격은 돕고 있습니다. 시련이 깊으면 그 후의 감동도 더한 법 아니겠습니까?

바즈 루어만은 이 영화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헐리우드 고전부터 서부극, "진주만"까지 폭 넒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볼거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저것의 볼거리만으로 영화가 재밌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를 굴려나가느냐가 문제인데 단순히 애쉴리와 드로버의 사랑 하나만으로 이 모든 것을 균형 있게,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다고 바라보기에는 큰 무리가 따릅니다. '멜로'가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은 '타이타닉'이 대서양에서 침몰하고, 잭과 로즈가 눈물로 생과 사의 이별을 하면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새로울 것 없는 드로버와 애쉴리의 사랑 이야기로는 이 거대한 이야기를 지탱하기는 무리가 큽니다. 바즈 루어만의 욕심이 과했습니다. 색다를 것은 없는 두 주인공 인물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을 연기한 배우들까지 색다를 것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휴 잭맨과 니콜 키드먼은 분명 그 역에 딱 들어맞는 훌륭한 연기를 했습니다. 그것까지 영화와 함께 빛을 잃을 필요는 없습니다. 니콜 키드먼은 이 영화의 흥행실패로 또 한차례 수모를 겪을테지만, 흥행 문제가 그녀의 연기에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영화가 그렇게 크게 흥미로운 점이 없다보니, 눈에 띄는 것은 의외의 다른 점입니다. 아니면, 영화가 애초에 그걸 의도했었던 것일 수도 있구요. "오스트레일리아"는 호주 출신의 감독과 배우들이 만난 작품이어서 그런지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 광경을 긴 영화의 중간중간 한 텀 쉬어가는 휴식터로 자주 제공합니다. 자연스레 영화의 크레딧이 끝날 때 '호주관광청' 자막이 떠오르지 않아 내심 아쉬움이 들었던 것은 저 뿐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영화야 비록 그다지 재미가 없었을런지 몰라도, 관객에게 '호주 한번 가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 했으니, 바즈 루어만은 적어도 조국에 대한 애국은 한 셈 아닐까요?(...뭔 소리냐...)

P.S 영화의 1부와 본격적인 2부가 시작되기 직전, 무도회 장면. '드로버' 휴 잭맨이 깔끔하게 복장 갖추고, 면도하고 등장해 싱긋 미소를 짓는 순간, 저는 속으로 '제..제임스 본드!'라고 외쳐버렸습니다(-_-) 제임스 본드 역을 휴 잭맨이 맡았어도 다니엘 크레이그보다 더 잘하면 잘했지, 못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아우, 아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