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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2007)

[Movie/Review]
이스턴 프라미스
영화 "이스턴 프라미스"는 팬들이 이름 붙이길 전작 "폭력의 역사"에 함께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폭력 2부작'이라고 부르는 작품입니다. "폭력의 역사"에 이어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폭력이란 주제를 바탕으로 다시한번 의미심장한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폭력의 역사"와의 관계성은 단순하게는 주연배우에 있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폭력의 역사"에서 폭력이 수반된 악행에 젖어살던 과거를 잊고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가던 톰 스톨을 연기했던 비고 모르텐슨이 이번 "이스턴 프라미스"에서는 러시아 마피아단의 운전수인 니콜라이 루진 역을 맡아 열연을 선보입니다. 혹자들은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뒤늦게 자신의 페르소나를 만났다고도 이야기하는데, 그 이야기가 결코 틀린 것 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폭력의 역사"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곳에서의 충격적인 살인 장면으로 그 시작을 엽니다. 차이가 있다면, "폭력의 역사"가 대낮이었다면, 이번 영화의 시작은 비내리는 저녁이라는 것입니다. 영화는 폭력이라는 하나의 큰 주제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폭력의 역사"와 때로는 유사하게, 그러다가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영화는 영국 런던의 러시아 마피아와 운전수 니콜라이(비고 모르텐슨 분), 그리고 한 병원의 간호사인 안나(나오미 왓츠 분), 그녀가 지키려고 하는, 마피아보스의 강간으로 인해 잉태되어지고 태어난 후 혼자가 된 여자 아이의 존재를 통해 통해 극을 전개시킵니다. 영화 상에서 그리는 러시아 마피아의 모습은 일견 "대부"의 그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한쪽에서는 딸의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지만 어두운 방안에서는 밀담이 오고가던, 조카의 세례식장에서 악을 멀리하겠다고 하던 마이클의 모습과 대조되는 살인 장면처럼, "이스턴 프라미스"의 러시아 마피아단도 속과는 다른 겉을 가지고 있습니다. '트랜스 시베리아'라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실상 그들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어둠의 일을 합니다. 이런 그들과 달리 안나네는 평범한 일반 가정입니다. 이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두 집단이 여자 아이, 크리스틴이란 존재의 접점에서 만나게 되고, 그 곳에서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 갈등 사이에 니콜라이 루진이 존재합니다. 니콜라이는 역시 러시아 마피아처럼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중적 면모가 드러나는 순서는 반대입니다. 마피아(정확히는 보스)의 모습이 처음에는 포장된 선이었고, 이후에 그 진면목이 드러난다면, 니콜라이의 처음 모습은 애초부터는 악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포장된 악으로 후에 그의 진짜 정체가 드러납니다. "폭력의 역사"에서는 톰 스톨이 마주하고 다시 인정하고 정리하려는 과거의 모습을 통해 폭력의 끊어지지 않는 고리를 이야기했다면 "이스턴 프라미스"에서는 서로 다른 이중성의 그늘에서 펼쳐지는 폭력을 통해서 그 서로 다른 의도에 따라 각각의 폭력에 정당성이 부여되어질 수 있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영화에서는 러시아 마피아의 특징 중 하나로 감옥에서 새기는 문신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문신이 그 사람의 '삶의 기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니콜라이 역시 몸에 문신이 가득하고, 영화 도중에는 마피아에 정식으로 입회를 하게 되면서 새로운 문신을 몸에 새겨넣습니다. 그 추가된 문신은 또다른 그의 삶의 기록입니다. 영화 상에서는 삶의 기록이라는 의미의 또다른 요소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상처입니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클로즈업합니다. 처음 이발소에서의 그것, 시체의 절단된 손가락, 아짐의 조카 목에 깊이 난 상흔이 그것입니다. 그것은 곧 직접적 사인 등으로 판명될 그 사람 삶의 마지막 기록입니다. 그리고 문신이 곧 몸에 행하는 또 다른 종류의 폭력이라고 봤을 때 이 둘은 기록과 폭력이란 점에서 동일합니다. 이러한 요소가 극대화되는 것은 바로 사우나 장면입니다. 알몸이라는, 그 자체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니콜라이의 몸에는 칼이 그어집니다. 알몸으로 피를 범벅을 한 체 바닥을 나뒹굴고, 처절하게 생존을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니콜라이를 담은 이 장면은 말그대로 전율을 일으킵니다. 니콜라이는 가득한 문신 위에 상처라는 타의적인 폭력이 그의 몸에 남긴 기록을 가지고 살아남습니다.

영화는 말미에 안나네의 평화로운 모습을 비춰지면서 밝은 면을 보이지만, 다음 장면에서 어두운 식당 안에 홀로 앉아있는 니콜라이를 비춥니다. 바로 전 장면과 달리 극도로 어두운 분위기는 순간 섬찟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섬찟함은 니콜라이의 향후 모습이 결코 안나네의 모습이 주는 그것과는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습니다. 결국 니콜라이도 새롭게 새겨지는 문신과 상처처럼 점점 폭력이라는 어둠에 몸을 맡길 것 같은 그런 예감을 말입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폭력의 역사"에 이어 "이스턴 프라미스"로 아직도 그가 할 말이, 할 일이 남은 감독이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의 영화가 주는 전율과 긴장을 다시 한번 느낄 날을 기다려봅니다.

P.S 메가박스유럽영화제에서 한번 보고, 그 후에 정식개봉 후에 한번 더 봤음에도 사우나 장면은 정말 후덜덜합니다.


본 포스트에 포함된 이미지와 영상 등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영화의 제작/배급사 및 원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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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콘래드 [2008.12.29 1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스턴 프라이머스 정말 흥미롭게 봤습니다.

    니콜라이의 삶이 차후 어떻게 진행될지, 영화는 의도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두운 폭력의 역사를 몸에 새겨온 니콜라이는 이때까지 와는 다른, 보다 더 나은 역사를 향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안나와의 대화에서도 보여주듯이 그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바라고 있고 과묵하면서도 강인한 니콜라의 모습은 그런 미래를 믿게 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온 몸에 문신을 새긴 비고 모텐슨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장려하더군요. 리뷰 위치가~?

    • BlogIcon Stephan [2008.12.29 18: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지막 부분에서 느껴지는 것이 "폭력의 역사" 때와 좀 비슷한데, 가정으로 돌아와 식탁에 앉는 톰 스톨에게 딸이 하는 행동을 통해 마치 다시 가정의 결속이 될 것 같지만, 정작 분위기상으로는 별로 안 그렇거든요. 딸이 어리고 진실을 모른다는 점에서는 이전과 같은 가정으로는 분명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번 "이스턴 프라미스"도 직전의 행복한 이미지와의 명백히 대비되는 어두운 장면으로 니콜라이에게 새겨진 문신과 상처처럼 차후에 그가 애초 의도 여부와는 상관없이 폭력 그 자체에 빠져들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런 왜 뉴스란에..쿨럭;; 수정토록하겠습니다.

  2. BlogIcon 산다는건 [2008.12.29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폭력의 역사와 함께 dvd로 나오면 좋겠군요....

  3. 질풍노도 [2008.12.30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우나 장면 볼 떄는 진짜 가만히 앉아서 보지를 몬했다는.... 막 제가 아팠어요 ㅠ

  4. BlogIcon 배트맨 [2008.12.30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데이빗 크로넨버그 만세! 배우들 만세!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정말 대단한 영화였어요. (^^)=b
    데이빗 크로넨버그를 찬양합니다~

  5. 설리반 [2008.12.30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작 폭력의 역사도 아직 본적이 없어서.. 얼른 챙겨 봐야 겠군요^^; 프라미스도 이번 주중에 보러 가야 겠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