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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체인질링 (Changeling, 2008)

체인질링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체인질링"은 "미스틱 리버" - "밀리언 달러 베이비" - "이오지마" 연작 같은 그의 최신작을 두고 보자면 범작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말마따다 그의 범작은 왠만한 감독들의 걸작 수준이란 것이 나름 의미심장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영화는 1920년대 말 LA에서 벌어졌던 믿을 수 없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화국에서 일하던 크리스틴(안젤리나 졸리 분)는 어느날 그녀의 9살 난 아들 월터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됩니다. 경찰에도 신고하지만 도움은 되지 못하고 그렇게 5개월이 지난 후 경찰은 아이를 찾았다며 한 아이를 그녀 앞에 세웁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크리스틴의 월터가 아니었습니다. 경찰은 사건을 종결하고 자신들의 업무능력에 대한 신뢰성을 위해서 억지로 크리스틴에게 월터를 떠 맡깁니다. 크리스틴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해오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공권력이란 이름의 폭압적인 올가미 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근작들이 캐릭터의 행동에 대한 합법과 불법, 혹은 선과 악의 구분을 짓는데 있어서 의도적으로 모호한 위치를 견지하면서 그를 통해 캐릭터에 깊이와 풍성함을 자아냈다면, 이번 "체인질링"에서는 그 선과 악의 경계가 매우 뚜렷하게 갈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절절한 모성애를 바탕으로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는 크리스틴은 분명 선이고, 그런 크리스틴이 맞서게 되는 부패와 무능력의 온상인 LA경찰 및 LA 시, 그들이 휘두르는 공권력은 악입니다. 이 두 인물 혹은 집단 사이에는 다른 방식으로의 시선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기존과 같은 캐릭터를 연출해낼 수 있을 법도 했던 아동연쇄살인범 노스콧의 역할은 그저 살인을 행한 자로만 마무리를 짓고, 그래서 그의 살인행각이 드러나는 시점 이후부터는 관객들이 크리스틴을 향한 연민보다는 살인범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나아가서는 궁극적으로 영화상에서(그리고 당시 실제) 보여지는 공권력이라는 거대한 힘을 향한 분노와 증오를 일으키게 만듭니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전개가 감독의 의도가 지나치게 뻔히 노출되는 모습이긴 합니다만 감독이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인지시키려고 했던 메세지를 위해서라면 어쩌면 가장 나은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믿을 수 없이 부조리한 공권력을 향했던 분노는 경찰 반장 및, 경찰청장의 사임, 시장의 재선도전 포기 등의 일종의 해피엔딩으로 일단락되고 관객의 마음은 다시 크리스틴으로 돌아옵니다. '
싸움은 먼저 걸지 않되, 마무리는 내가 한다'는 자신의 신념으로 끝까지 굽히지 않았던 크리스틴의 행동은 80여년이 지난 우리네 현실에 비추어봤을 때 과거의 그 순간과 다르지 않은 지금의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그 희망을 통한 의지와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번 영화에서 큰 기교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2시간 20여 분 동안 끊임없이 관객을 쥐었다 폈다하는 솜씨를 선보입니다. 사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공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영화일런지 모르겠습니다.

영화에서 주연인 크리스틴 역을 연기한 안젤리나 졸리는 아이를 잃은 모정을 말그대로 애가 끓게 연기를 하고 있는데 아마도 여러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의 실제 생활과 무관하지는 않아보입니다. "원티드"에서 보여줬던 액션성 강한 섹시한 여전사의 모습에서 그와는 너무도 다른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하는 안젤리나 졸리의 모습은 그런 대비를 인지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인상적입니다. 이런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 뿐만 아니라 존스 반장 역의 제프리 도너번 등의 조연들의 출중한 연기는 이 영화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P.S 곧 개봉을 앞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또다른 연출(및 주연작) "그랜 토리노"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