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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비지터 (The Visitor, 2007)

"비지터"는 한 노인의 뒷모습을 비추며 시작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월터 베일(리차드 젠킨스 분)입니다. 그는 오늘 처음으로 피아노 교습을 온 사람에게 오늘로 레슨은 그만하자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녀가 월터에게 묻습니다. 자기 전에 몇명이 거쳐갔냐고. 네 명 째라고 답하는 그에게 돌아오는 답은 당신의 나이에 악기를 배우는 것은 무리라는 말입니다. 노년의 베일은 삶은 무기력합니다. 대학에서 20년째 같은 과목을 가르치고 있고, 그나마 이번 학기에는 강의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책을 써야 한다는 핑계, 또 이러저런 핑계로 계속 그런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그러던 중, 공동저자로 이름만 올렸던 논문 때문에 그는 코네티컷을 떠나 뉴욕에 가게 됩니다. 뉴욕에 있는 또다른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 곳에는 다른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시리아 출신의 타렉(하즈 슬레이만 분)과 세네갈 출신의 자이납(다네이 제케세이 거리라 분) 커플입니다. 그들은 중간의 착오로 인해 허락도 받지 않고 월터의 집에 살고 있었던 것 입니다. 월터는 그들을 그냥 내보내기에는 뭐해 집에서 머무는 것을 허락해 줍니다. 그로 인해 월터에게는 작은 변화가 생깁니다. 타렉이 연주하는 아프리칸 드럼을 보고 흥미를 느낀 그는 타렉에게 아프리칸 드럼을 배웁니다. 그러던 중 타렉은 지하철 역에서 불신검문을 당한 후 체포되어 이민국의 수용소에 갖히게 됩니다.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추방당하게 생긴 타렉을 위해 월터는 변호사를 찾는 등 노력을 하게 되고, 그러던 중 타렉의 어머니 모나(히암 압바스 분)가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서 그는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됩니다.

영화는 한 노교수의 일상의 무기력한 삶의 변화를 그려나가다 타렉이 체포된 후 부터는 미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그 시선을 옮겨갑니다. 타렉은 지하철에서 아주 사소한 오해로 - 그 오해에는 그의 인종 문제도 결부된 - 인해 체포되고 불법체류자인 그의 신분이 드러나 수용소에까지 가게 됩니다. 그가 잘못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타렉과 자이납은 월터의 입장에서는 말그대로 느닷없는 방문객이었지만 월터는 그들을 받아들였고 그에게 마음을 열어 친구가 된 후에는 그들로 인해 삶의 새로운 경험과 활력을 얻게 됩니다. 수동적이고 지루하기만 그의 삶은 그렇게 변화의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앞에 들이닥친 또 다른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용소 대기실의 벽에는 '미국의 힘은 이민자입니다'라는 포스터가, 면회실의 한쪽 벽에는 성조기와 자유의 여신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 모습과는 달리 아이러니 하게도 수용소는 타렉과 같은 이들을 미국인으로 받아들이는 곳이 아니라, 그들을 미국의 경계 너머로 쫓아낼 준비를 하는 곳입니다. 타렉은 배를 타서 자유의 여신상을 볼때면 처음 보는 것 처럼 좋아했다 자이납이 말합니다. ("대부2"에서도 꼴레오네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것처럼)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이란 나라를 상징합니다. 자유와 기회와 희망이 있는 땅. 그렇기에 타렉은 그 땅의 은혜가 자기에게도 적용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토록 좋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그에게 불법체류자란 신분으로 그를 가둡니다. 미국에게 그들은 월터에게처럼 변화를 이끌어줄 방문객이 아니라 테러인자를 지닌 의심스러운 불청객일 뿐인 것입니다.

비지터 비지터
같이 연주하며 기쁨을 나누던 이 둘 사이에 벽을 세운 것은...


리차드 젠킨스는 변화를 겪는 월터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연기합니다. 무뚝뚝한, 그리고 무기력한 60대 노인의 표정에서는 리듬감을 타며 흥미로움이 떠오르며, 어느새 부드러운 인상이 얼굴에 자리합니다. 리차드 젠킨스의 연기는 단순히 이야기에 따라 흘러가는 한 사람의 변화가 아니라 눈으로, 그리고 감정으로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식하게 합니다. 그는 영화에서 그 자연스러움으로 보는 이를 끌어당깁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타렉의 소식을 듣고 분노하는 모습에서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그의 연기에서 비롯합니다. 이런 젠킨스 와 함께 생동감 넘치는 타렉을 연기한 하즈 슬레이만 등 다른 연기자들과의  앙상블 역시 영화를 풍성하게 하는 요인입니다.

"비지터"는 인종을 초월한 우정과 사랑의 감정, 그를 통한 변화를 잔잔히 그려내면서 그들의 관계에 닥치는 현실을 통해 미국 사회의 실제 이면을 들여다봅니다. 월터가 겪은 변화가 크게 다가올수록, 비정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역시 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느껴지는 변화가 주는 희망의 기운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영화의 이러한 측면들을 흐트러지 않게 조율하면서 잔잔함 속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위트와 그러면서도 적절한 무게감을 잃지 않게 극을 유지하는 배우 출신 감독 톰 맥카시의 연출력도 눈에 들어옵니다.

P.S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주최한 '아카데미의 보석들' 프로그램을 통해 본 영화로, 국내개봉일은 미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