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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The Reader, 2008)

더 리더 : 책 읽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이하 더 리더)는 시대의 흐름 앞에서 고민하는 인간과 용서, 사랑에 관한 영화입니다.

1995년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마이클은 아침 창가에서 서서 그의 과거를 봅니다. 1958년, 15세이던 마이클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구토를 하게 되고 그것을 본 한 여성의 도움을 받습니다. 마이클은 감사의 뜻을 전하러 다시 그녀를 방문해 그녀와 첫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후 한나라고 자신을 밝힌 여성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며 연인과도 같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관계를 가지면서 그들 사이에는 일종의 규약이 생기게 되는데, 마이클이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고 그 이후에 섹스를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마이클은 그저 한나가 시키는대로 합니다. 그러던 중 한나는 사무직으로의 승진을 제안받고 그녀는 돌연 떠나고, 마이클은 상처를 받습니다.

마이클이 한나를 다시 만난 것은 1966년 한 법정에서 입니다. 한나는 과거 나치 수용소의 감시원이었다는 이유와 그 때의 행적들로 인해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단순히 성에 민감한 시기의 한 소년의 경험담처럼 느껴졌던 이야기는 이 시점부터 또다른 차원으로 나아갑니다. 한나가 감추하고 하고 싶은 비밀을 알아챈 마이클이 갈등이 시작된 것입니다. 한나의 비밀을 알게 된 마이클은 고민합니다. 자신이 그 비밀을 밝혀야 할까? 그렇게 한다면 한나는 정상참작을 받겠지만, 그것을 통해 그녀와 자신의 관계가 주변에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수치를 감내하기 위해 더 큰 죄를 택하는 한나와 그녀를 구해낼 방도를 알고 있음에도 고민하는 마이클. 이 둘의 관계는 독일의 현대사를 투영합니다. 나찌 독일을 경험했던 세대와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던 전후 세대. 나찌는 결코 독일인들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입니다. 전후세대는 바로 그 부끄러움을 비난합니다. 그 부끄러운 일이 자행되도록 방관한 것과 나찌의 협력자들을 모른척하며 함께 지낸 그 사실을 비난합니다. 하지만 마이클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한나와 사랑을 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갈등합니다. 그 때 그가 택한 길은 한나에 대한 사랑에 더해 죄책감을 안깁니다.

후에 마이클이 한나에게 보내는 테이프들에는 그가 잊지 못하는, 한나에 대한 마음과 더불어 그녀에게서 돌아서야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한나에 대한 마이클의 마음은 죄책감에 가까워 보입니다. 한나는 그것을 느낀듯 새로운 삶을 거부합니다. 한나가 마이클에게 남긴 부탁은 그녀 자신의 일말의 죄책감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바람과 더불어 마이클이 한나에게 느끼는 죄책감에서의 해방을 돕습니다. 한나 본인은 죄책감에서 벗어날런지 모르겠지만, 희생자의 상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상처는 한나가 양동이로 물을 끼얹어 마이클의 구토 자국을 지우듯이, 혹은 검댕을 뒤집어쓴 마이클을 한나가 씻겨주듯이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두 세대의 독일인 사이의 문제는 몰라도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의 문제는 아닙니다.

영화는 소설의 주제를 옮겨내기 위해 최선의 각색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디 아워스"에서 함께 했던 스티븐 달드리와 데이빗 헤어의 조합은 괜찮아 보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영상화를 위한 함축성이 생략으로 느껴질 정도로 표면적 이야기와 내면적 이야기를 연결하는 것이 버거워 보일 때도 있습니다. 미묘한 어긋남은 지속적이며 이면에 있는 주제보다는 그저 사랑 이야기로 비춰질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 이격은 캐릭터의 감정을 이해하는데도 썩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며 아쉬움을 자아냅니다. 영화는 그 간격을 한나 역의 케이트 윈슬렛의 호연으로 채우려하는 듯합니다. 윈슬렛의 연기가 훌륭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영화가 보여주는 일말의 아쉬움은 그럼에도 길게 남습니다.

"더 리더"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수용소 시설을 둘러보는 마이클의 모습이 길게 연결되는 장면에서 보이는 그런 느낌이 후보에 오르는데 일조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러한 연유로 에드워드 즈윅의 "디파이언스"가 혹 지금의 결과물처럼 실망스럽게 나오지 않았다면, "더 리더"의 자리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더불어 말입니다.

"월-E", "다크 나이트", "다우트". 이 중 어떤 영화가 "더 리더"의 자리에 들어가도 이상할 바가 없지만, 아카데미니까 말입니다.

P.S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진행되는 '아카데미의 보석들' 프로그램을 통해 본 영화로 국내에는 3월 26일 개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