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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번 애프터 리딩 (Burn After Reading, 2008)

번 애프터 리딩
영화 "번 애프터 리딩"은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으로 간단명료하게 설명되는 영화입니다. 저기 우주 밖에서 누군가를 바라보던 시선이 점차 지구로 다가와 CIA 본부로,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그와 반대로 지구 밖으로 나갑니다. 이게 끝입니다.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코엔 형제의 첩보물의 옷을 입은 이 블랙 코메디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한 CD입니다. 그 CD에는 CIA에서 (자기 생각으로는) 정치적 보복을 당해 쫓겨난 오스본(존 말코비치 분)이 회고록을 작성하다 만든 파일이 담겨있습다. CD는 오스본의 아내인 케이티(틸다 스윈튼 분)가 그와의 이혼 준비를 위해 변호사의 조언대로 오스본의 컴퓨터를 뒤져서 만든 것으로 우연찮은 실수로 그 CD는 한 헬스클럽에서 발견됩니다. 헬스클럽 트레이너인 채드(브래드 피트 분)는 그것을 보고는 CIA의 비밀정보라고 굳게 믿고, 마침 성형수술을 할 비용이 필요했던 노처녀 헬스장 직원 린다(프란시스 맥도먼드 분)는 그것을 이용, CD의 주인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 속에 한다리 씩 걸치고 있는 바람둥이 연방경찰 해리(조지 클루니 분)가 있습니다.

CD 하나를 두고 이 등장인물들 사이에는 각종 사건들이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전개가 됩니다. 절묘하게 짜여진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애초에 원래 하려했던 것이 무엇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체 휘둘립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 있으니, CIA입니다. CIA 본부의 간부(J.K. 시몬스 분)는 이러한 모든 상황들을 부하 요원에게 보고받고는 한마디 던집니다. '이후에 말이 되면 다시 보고하게.' 대체 이 말도 안되는 일들을 불러온 그 CD란 녀석은 대체 무엇일까요? 채드나 린다는 그것을 굉장한 기밀정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정보는 말그대로 별 것 아닌 정보입니다. CD 하나를 두고 살인까지 벌어졌지만 결과적으로 CD의 가치가 0으로 수렴함이 (적어도 관객들에게는) 만천하에 드러났고, 그러함에도 여전히 상황은 꼬이고 또 꼬여만 갑니다. "파고"의 돈가방처럼 CD는 철저한 맥거핀으로, 시선을 잡아두기는 하지만 정작 이야기의 주체는 아닙니다. 그 아무것도 아닌 CD 하나로 벌어진 이 어처구니없고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우리네 삶의 또다른 축소판입니다. 그게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던 CIA간부와 부하요원은 말합니다. '우리가 이번 일을 통해 무엇을 배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도 그래, 다시는 이런 일에 엮이지 말게.' 정작 모든 것을 지켜본 그들조차 이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시선은 처음에 말한 것처럼 지구 밖으로 물러나갑니다. 말그대로 전지적작가 시점의 이 모습 속에서 영화 내내 오스본이 외쳐 되던 '저능아 녀석들!'(moron)이란 말이 왠지 모르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 신과 같은 시점에서 보면 넓디 넓은 우주 한 구석의 지구, 그리고 또 그 별의 어느 귀퉁이에 벌어지는 이런 일들은 무의미한 일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선은 그 안에서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며, 'moron'이라고 외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왓치맨"의 닥터 맨하튼처럼 그저 개미들 노니는 모습에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습이 더 가까울 것입니다. 코엔 형제의 이 시니컬함은 킥킥 대는 웃음과 함께 싸한 기운을 불럽냅니다. 더불어 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제목조차도 읽고 바로 태워버리라는 비밀문서를 뜻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문서 자체가 별 의미가 없는.)를 더없이 흥미있고, 스릴넘치게 그려내는 코엔 형제의 연출력은 입 아픈 소리지만, 말 그대로 명불허전입니다. 대체 그 사람들은 뭘 먹고 살길래 이런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