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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박쥐 (Thirst, 2009)

박쥐
박찬욱 감독의 2009년 신작 "박쥐"는 한글 제목뿐만 아니라 영문 제목 "Thirst" 까지도 이 영화의 속성을 너무도 잘 드러냅니다.

'Thirst'. 갈증, 혹은 갈망. 무엇을 향한 갈증과 갈망일까요? 뱀파이어가 된 신부,  현상현(송강호 분)에게는 피를 향한 목마름이고 태주(김옥빈 분)에게는 '평생 그들의 강아지처럼' 산 자신의 지겹고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욕망, 아버지 신부(박인환 분)에게는 단 한번이라도 세상을 보고 싶은 바람입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고,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그 것의 해소를 찾습니다. 수요일마다 마작을 즐기러 태주의 한복집을 찾는 모임의 이름마저도 '오아시스' 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결핍, 그리고 결핍의 갈증의 해소가 그들에게 만족을 줄까요? 아닙니다. 갈증의 해소는 그 과정에 있어서 다른 무언가를 필요로 합니다. 상현에게는 그를 '더 이상 수도자도, 신부도 아니게' 만들고, 태주는 '신앙이 없어 지옥에 가지 않는다며' 자기의 욕망을 상현에게 설득시키고 그 뜻을 이루지만, 지옥보다 더한 죄책감의 무게가 그녀를 짓누릅니다. 그러한 해소는 다른 무엇과의 상호 존립할 수 없는 상충적인 관계를 만듭니다. 뱀파이어가 된 신부처럼 이 모순적인 관계와 상황의 연속이야 말로 이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한글 제목 '박쥐'. 뱀파이어를 상징하는 동물로서 뿐만 아니라, 우화 속에서 등장하는, 날짐승들은 들짐승이라고 하고 반대로 들짐승들은 날짐승이라고 비난하는 박쥐의 그런 애매한 관계 속 모순은 바로 이 영화를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애초에는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을 "Evil Live"라고 지을 생각이었다 합니다. 악과 삶이 철자의 앞뒤를 바꾸는 것만으로 같아집니다. 삶 속에 악이 있고, 악 속에 삶이 있는, 삶에 자리 잡은 본능과도 같은 죄악. 이 역시도 영화와 어울리는 재밌는 제목이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전개되는 원동력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순과 그 충돌입니다. 상현이 뱀파이어가 되어 버린 것도 애초에는 다른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목적으로 자신을 백신 테스트 대상으로 삼았다 뜻하지 않게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행복고전의상실'은 절대 '행복'하지 않고 한복집에서 마작을 즐기는데에 그치지 않고 라여사는 '시마이'라는 말로 영업종료를 알립니다. 상현에게 고백성사를 통해 죄를 사해준 아버지 신부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적 희생양으로 변합니다. 상현은 그를 성자로 믿는, 자신에게서 구원을 바라던 사람들을 위해 강간을 택합니다. 일일이 늘어놓을 수 없는 영화 속 모순의 합창은 잔혹한 치정극 속의 블랙 코메디라는 형태와 더불어 박찬욱 감독이 전작에서도 이야기했던 죄악과 그 구원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집니다.

충돌하는 강렬한 이미지와 이야기는 단순히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데 그치지 않고, 정신을 자극합니다. 그 짜릿함이 "박쥐"의 재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하는데에 배우들의 호연도 빠질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대표배우라는 말이 이제는 너무도 당연스러운 송강호의 연기는 물론이고, 김옥빈의 연기는 말 그대로 놀랍습니다. 일상의 권태로움에 지쳐가는 여자에서 색기와 요기를 넘나드는 그녀는 이 영화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이전 "올드보이"의 강혜정이 그러했듯 김옥빈은 "박쥐"라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의 한 획을 그을만한 작품을 만났습니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라는 조금은 미흡한 행보 이후에 다시 자신의 자리로 박찬욱 감독이 돌아온 것 같아 더욱 마음에 드는 영화 "박쥐" 입니다.

P.S "쌍화점"의 조인성 씨도 아니고, 송강호 씨의 노출이 여배우의 영화 속 노출을 눌러버리다니.. 이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놀라움 아닌가요?(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