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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색, 계 (色, 戒: Lust, Caution, 2007)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보다는 20분간의 파격적인 정사 장면으로 화제가 된, 이안 감독의 신작 "색,계"를 보고 왔습니다.

20분간의 무삭제 정사장면이라는 자극적인 홍보에 혹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이란 것이 이 영화에 끌린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영화를 본 후 직후에는, 글쎄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찜찜하고, 좌불안석인 상태였습니다. 처음부터는 그랬던 것은 아니고, 왕 치아즈(탕 웨이 분)가 처녀성을 잃는 순간부터였습니다. 왕 치아즈가 이(양조위 분)를 처단하는 계획에 동참할 때, 적어도 그녀에게 구국의 일념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분히 광위민(왕리홍 분)에 대한 호감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그 후에도, 딱히 왕 치아즈, 그녀에게 애국심이 불타오른다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디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처녀성을 스스로 버립니다. 무려 광위민에게도 아닌 사람한테. 직전에 광위민과의 짧게 스치는 시선 사이에서 그를 위해서.. 라고 생각해버릴수도 있지만, 이 영화가 무슨 '서방님, 아니되어요. 제가 하겠사와요.'하는 구식 신파조 영화도 아니고 말이죠.

색,계
이 부분을 이해 못하게 되면서 그 후도 전 이 영화를 이해 못했습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느낌이랄까..

영화 속 왕 치아즈의 캐릭터 역시 불만입니다. 그녀는 결국 사랑 앞에 나약하고, 결국에 사랑때문에 스러져가는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여성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는 소설,영화,드라마를 불문하고 이런 식으로 여성이 그려지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보석과, 반지. 그 후의 왕 치아즈의 행동은 더더욱.) 남성인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여성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왕 치아즈가 결국에는 사랑하게 된 이는 영화 소개 등에서 악역으로 표현됩니다. 그렇지만 영화 속에서는 딱히 이가 악역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일본의 개라고 그를 비난하는 소리나, 그가 고문이나 조사 등이라는 말을 하지만 말입니다. 이보다는 오히려, 우선생이 더 악역같아 보입니다. 우선생의 거짓된 행동, 말. 어떻게 보면 왕 치아즈나 광위민,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은 우선생한테 이용당했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중국과 같은 일본의 식민지배의 아픔을 겪었던 우리나라 상황에서(적어도 저에게)는 불편한 이미지였습니다.

큰 화제가 된 20분간의 정사씬은, 이게 그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인가라는 반문을 하게 될 정도입니다. 혹여라도 단순히 이 영화를 이 정사장면 때문에 보려고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화 속에서의 왕 치아즈와 이의 정사 장면은 둘의 감정적 변화를 표현하는 어쩌면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지만, 전후의 그 둘의 감정흐름에 대한 묘사보다는 이 정사 장면에 그 모든 것을 담으려한 너무 극단적인 방법이 되어버렸습니다. 극단적인 이런한 방법 후에 왕 치아즈의 '그 사람이 뱀처럼 내 몸으로 들어온다. 이러다 그 사람이 내 심장까지 들어오면...' 같은 표현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시대를 조망하는 시선은 다분히 미국적입니다. 중국 편을 들기에도 뭐하고, 일본 편을 들기도 뭐하고, 판단을 흐렸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의(나라 출신의) 감독이 그 사실을 극복하고 만든 시대와 인종을 뛰어넘는 보편적 감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이방인이 감히 미국의 마초성을 대변하는 '카우보이'를 다룬다는 말을 들었던 감독이 그 말을 염두에 두었던 것인지..나는 이제 미국인이라고.) 이 영화의 배경을 그대로 2차세계 대전 당시의 독일 치하의 프랑스, 독일 치하의 폴란드, 독일 치하의... 로 옮겨놓았다면, 상을 준 유럽동네나 미국에서 과연 지금과 같은 평을 주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분류할때 저는 단순히 Good, So so, Bad로 분류하고는 합니다. 이 "색,계'에는 Bad를 주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그래도 머리 속에 이런저런 불만을 구시렁 대던 2시간 30여분의 시간 동안 지루함을 주지 않았던 연출 때문에 So so 라고 말해봅니다. 더불어 베니스에서의 상은 이안이라는 이름과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동양적 느낌. 거기에 더해 대부분의 영화제에서 선호하는 여배우의 파격적 노출 이라는 복합적 요인의 작용이 아닐까, 감히 폄하해봅니다.

P.S 오랜만에 극장에서 탄성을 들었습니다. 그 보석과 반지가 등장할때 두번, 여성분들의 탄성. 그리고 이어지는 웃음.

P.S2 이의 "남자들에게 (보석은) 그저 돌일뿐이다."는 대사는 참 동감을 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당신 손에 끼워져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라는 대사도... 남자들에게 보석, 혹은 그것을 이용한 반지는 사랑하는 여자가 그것을 가지고 좋아하는 모습을 통해서 자신이 더 큰 기쁨을 얻는 도구일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