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쫓고, 그리고 달리고 쫓고
영화 "세븐 데이즈"는 한국 영화에서 그 동안 흔히 볼 수 없었던 인상적인 오프닝이 끝난 후부터, 쉴 세 없이 달립니다. 때로는 그 가쁘고 빠른 영화의 호흡을 따라 잡지 못할 정도로 이 영화는 전체적인 호흡에 쉼표가 없이 빠르게 달리는 영화입니다.
스릴러라는 장르가 서서히 조여드는, 차곡차곡 쌓여가는 긴장감을 유지해나가는 과정의 중요성에 그 성패가 달렸다면, 기존 한국 스릴러물은 그런 과정에서 관객에게 오히려 지루함을 주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븐 데이즈"는 그간 한국 영화와는 정 반대의 방법을 택합니다. 관객에게 지루할 틈새를 주지 않는 전개와 어지러울 정도의 카메라 워크가 그것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관객의 지루함을 유발하지 않는데에는 분명 성공했습니다. 지루함을 싫어하는 한국 관객의 취향에 적당한 시도로 보입니다만(저에게도), 개개인에 따라서 이런 호흡을 따라가지 못해 불편한 이들도 상당수 있는 걸로 봐서는 이 빠른 호흡이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약간의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증거찾기
"에이~ 증거도 없이 어떻게 믿어?" 영화 초반의 딸 은영의 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얼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그 증거를 찾습니다. 범행을 입증할 증거. 다양한 용의자, 증인들. CSI를 통해서 익숙해진 그러한 증거찾기를 이 영화는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바로 이 영화입니다. 용의자나 증인들 중 몇몇은 불필요하지 않나 할 정도의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증거 찾기 과정의 흥미로움은 그것을 상쇄시킵니다.
주연같은 조연, 박희순
주연인 김윤진의 연기는 좋다고, 그렇다고 나쁘다고 하기에도 그런 평이한 편입니다. '로스트의 월드스타' 여서 인지 몰라도, 그녀의 한국어 연기는 어딘가 낯설게 다가옵니다. 그런 주연을 받쳐주는 조연이 있으니 바로 비리형사 김성열역의 박희순입니다. 박희순은 비리형사 김성열에 딱 맞는, 분위기를 이끄는데 있어서는 주연 이상의 연기를 펼칩니다. "너는 지금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고, 지금 묵비권을 행사하면 뒤지게 맞는다.", "비리비리 형사~" 등의 대사는 가쁜 이 영화의 호흡에서 관객들에게 웃음을 통해서 잠시나마의 숨쉴 공간을 줍니다. 비리형사라는 나쁜 이미지를 어느새 인식 못 할 정도로 그의 캐릭터의 흡입력 역시 상당한 편입니다. 박희순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없었다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찬일까요?
Se7en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 그리고 마지막 들판장면, 테크니션에서 거장으로 거듭나고 있는 데이빗 핀쳐 감독의 1995년작 "세븐"과 굉장히 유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에 더해 영화 줄거리를 제외한 전체적인 스타일은 분명 "세븐"의 그것과 닮아 있습니다. 장르적 특성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세븐데이즈"는 "세븐"을 향한 오마쥬라고 할 정도입니다. "세븐"이라는 작품에 문외한인 관객들은 상관없지만, "세븐"을 아는 이들에게는 분명히 새로운 시도나 창의성에서는 분명히 아쉬운 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생각을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로 덮을 정도로, 그간의 한국스릴러물에서 크게 획을 그은 작품입니다. "목요일의 아이"가 뒤엎어지고 방황하던 프로젝트를 다시 맡아 짧은 기간동안 이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낸 원신연 감독에게 정말 큰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 기세를 몰아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 더 창의적인, 그리고 호흡의 강약 조절에 능숙한 영화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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