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vie/Review

[리뷰] 4개월, 3주... 그리고 2일 (4 Months, 3 Weeks & 2 Days, 4 Luni, 3 Saptamini Si 2 Zile, 2007)

4개월, 3주... 그리고 2일
* 몇몇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7년 차우셰스쿠 독재정권 아래 낙태가 금진된 루마니아. 여대생 오틸리아는 친구 가비타의 낙태를 위해 그와 관련된 일들을 준비해 나갑니다. 영화는 이 가비타가  임신중절을 하는 그 하루 동안의 오틸리아와 가비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낙태. 임신중절. 한 생명을 저버리는 안타까운 일을 그리면서,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기보다는 그저 묵묵히 바라봅니다. 그런 묵묵함이 이 영화가 추구하는 사실성을 크게 살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관객이 이 영화 속 배경이나 그녀들에 대해 크게,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녀들이 지금 행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영화가 그리고자 하는 것이 후자의 그 이야기니까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두 장면 있습니다. 오틸리아가 남자친구의 어머니 생신 때문에 그의 집에 초대되어서 둘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그 중 하나입니다. 오틸리아는 신경이 굉장히 날카롭습니다. 간단한 인사로 끝날 것 같지 않은 남자친구 부모님과의 만남도 그렇고, 남자친구 아버지의 초대 손님의 말도 그녀의 속을 긁어놓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장 신경쓰인 것은 지금 호텔방에서 낙태시술을 받고 누워있는 그녀의 친구 가비타와 결국 자신도 그녀같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남자친구 아디에게 따지듯이 묻습니다. ‘내가 임신하면 어떻게 할래?’ 그에 대한 아디의 대답은 그녀에게 어떤 만족도 주지 못합니다. 오틸리아와 아디의 대화는 많은 생각을 들게 합니다. 내가 오틸리아의 질문을 받은 아디라면, 과연 어떻게 말을 할까 라고 생각해보지만, 딱히 그가 한 대답 이상은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영화 속에서도 그렇고 지금의 우리 현실에서도 그렇고 원치 않는 임신이 될 경우, 결국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여성임에도 말입니다. 아디가 고개를 숙일 때, 저도 스크린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경험상으로도 항상 피임이니 생리기간이니 다 따져보고하다가도, 결국 흔히 말하는 듯이 확 올라올 때는 그건 잊어버리고 마니까요. 그리고는 나중에야 혹시 어쩌지 하는 생각을 품으니, 참 비겁하지요.

그리고 다른 장면은 마지막 장면인데, 결혼 피로연에서 남은 음식을 먹는 오틸리아. 뱃 속의 아이를 지운 그녀가 임신중절 후 처음 먹는 음식이 소의 간, 척수 등이라는 것은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합니다. 다른 종류의 것이긴 하지만, 그녀의 뱃 속의 빠진 자리가 그것들로 채워진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먹어야 산다는 것이 말입니다. 더 이상 그녀들이 ‘그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한 것처럼 그들의 현실 속에서는 이젠 잊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요즘 들어 계속 보고나서 가슴이 먹먹한 영화들만 보는 것 같습니다. 이젠 좀 밝은 영화를 봐야겠어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