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vie/Review

[리뷰] 연을 쫓는 아이 (The Kite Runner, 2007)

연을 쫓는 아이
‘뉴욕타임즈 120주 베스트셀러’, ‘전 세계 34개국 800만 독자’. 영화 “연을 쫓는 아이”는 이런 수식어가 붙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원작이 있는 영화는 먼저 원작을 접하고, 그 후에 영화를 보려 노력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 빌리러 가는 것을 미루다 다른 사람이 먼저 대출해 갔거든요. (예상치 못한 연체료도 있던지라, 예약도 못하고...)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지식만 가지고 감상했습니다.

“연을 쫓는 아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미르와 그 시절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 핫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서로 다른 인종(아미르는 아프가니스탄의 대부분을 차지한 파슈툰 족, 핫산은 천대받는 하자라 족)과 신분에도 불구하고 아미르와 핫산은 친한 동무 사이로 지냅니다. 그러나 아미르의 한순간의 비겁함은 죄의식이 되어, 핫산을 멀리하게 되고 둘은 헤어지게 됩니다. 영화는 그 둘의 이별 후, 역사 속의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의 침공을 등장시키고, 아미르와 그의 아버지는 힘겹게 탈출 해 미국으로 오게 됩니다. 미국에서 훌륭히 성장한 아미르가 어린 시절 핫산과 더불어 유일하게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준 라힘 칸의 연락을 받고, 자신의 고향으로 향하는 것이 이 영화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아미르의 어린 시절, 아프가니스탄의 이국적인 풍경을 잘 그려냅니다. 후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음악도 그렇구요. (우리네에게는 익숙하지만) 연싸움 장면 역시도 말이죠. 이런 처음의 모습을 보여준 후, 나중에 소련의 침공, 그리고 탈레반 정권 수립 후의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둘의 대조적인 모습(더이상 연날리기도 하지 못하는...)은 아프가니스탄이 겪는 지금의 아픔을 더욱 배가시킵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이기는 하지만,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되는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은 아미르와 핫산의 이별 직후에 일어나면서 그 둘의 이별에 어떠한 상징성을 부여합니다. 헤어지면 안 됐을 이들의 이별. 그로 인해 일어난 비극이랄까요.

사실, 영화 홍보에서 두 친구의 ‘우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소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영화상에서 핫산의 우정과 아미르의 우정은 다릅니다. 핫산의 우정은 말 그대로의 그것이고, 아미르는 핫산의 그것을 그저 받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할 수 있어!’ 라며 달려가는 핫산과, 핫산의 아픔을 외면하고 도망치던 아미르의 모습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미르의 성장 과정에서도 핫산을 떠올린다거나 그때의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아미르가 핫산을 떠올린 게 된 것은 라힘 칸의 연락 때문이었고, 미안함과 괴로움을 느끼게 된 것도 라힘 칸이 전해 준 핫산의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영화는 ‘우정’ 보다는 ‘속죄’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어릴 적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속죄, 같은 우정을 나누지 못했던 것에 대한 속죄입니다. 속죄라... 최근에 개봉한 어떤 영화가 떠오릅니다. 바로 “어톤먼트”인데요, 배경과 그리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지만 ‘속죄’라는 이야기 면에서 둘은 닮은꼴입니다. 주인공이 작가라는 점도 있지만, 이미 그 속죄할 대상을 잃은 상태라는 것도 비슷하구요. 차이점은 아미르 쪽은 그 속죄의 대상을 대체할 존재가 있다는 것 정도. 그런 점으로 인해서 “어톤먼트”가 비극적이었다면, “연을 쫓는 아이”는 다분히 희망적으로 비치고, 마무리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톤먼트”도 그렇고, 이 영화도 그렇고, 전쟁이란 참으로 비극적이라, 아미르가 미국에서 연(연은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다시 날아오른 우정이기도 하구요.)을 띄우고 어린 시절 핫산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할 수 있어!’라며 달려가지만, 아프가니스탄의 고아원 원장의 말을 떠올려보면, 희망적인 마무리라기보다는 아픔이 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성공한 아프간-미국인의 속죄 이야기의 감흥보다는 오늘도 희망을 날리지 못하고 있을 아프간의 아이들이 더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프간 아이들에 대한 대답은 영화 속에서 아미르 조차도 하지 못했기에 더욱 그렇구요. “어톤먼트”도 그렇고, “연을 쫓는 아이”도 그렇고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자기 만족적 속죄라 더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희망적인 엔딩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 의미가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가 않네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변화시킬 수 없는 역사와 현실의 무게가 너무 큽니다.)

P.S 국내 개봉일은 3월 13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