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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인셉션 (Inception, 2010)

인셉션
Nolan is back! "다크 나이트"로 전세계를 뒤흔든 크리스토퍼 놀란이 신작으로 돌아왔습니다. "인셉션". "다크 나이트"의 성공으로 스튜디오에게서 이전보다 더한 권한을 부여받았을 것이 분명한 놀란은, 그 기회를 자신의 오리지널 각본을 바탕으로 한 첫 대작에 사용합니다.

기억과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는 그간 놀란의 작품세계에 지속적으로 보여지는 공통주제였으나 "인셉션"에서는 그에서 한발 더 나아가 꿈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전 작품세계를 끌어안습니다.

"인셉션"의 큰 스토리의 골격 자체는 어쩌면 매우 단순합니다. 타겟이 된 대상의 꿈에서 의뢰인이 요구한 정보를 빼오는 추출자 돔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어떤 사정으로 인해 고향 미국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고 해외를 떠도는 신세입니다. 그러던 중 사이토(와타나베 켄 분)가 그의 경쟁기업의 상속자 피셔(킬리언 머피 분)의 머리 속에 어떤 정보를 심어준다면('인셉션') 그가 무사히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 제안합니다.

놀란의 거대한 지적 유희의 미로

놀란은 이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며 복잡한 지적유희를 동반한 거대한 미로를 창조했습니다.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아래인지 모를 '펜로즈 계단', 그리고 코브와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 분)가 거울 안에서 끝없이 반복되어 이어지는 이미지를 통해 꿈, 그리고 꿈 속의 꿈, 꿈 속의 꿈 속의 꿈으로 연결되는 그 안에서 과연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꿈인지 구분할 수 있을 것인지 지속적으로 반문합니다. 꿈은 무의식의 현실이자 자아를 비추는 거울이기에 끊임없는 꿈 속에서 현실의 자아와 무의식의 자아를 구분해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그에 더해 반복되어 나타나는 맬을 통해 자아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는,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의 존재와 피셔를 통해 보여주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모습, 각 단계별 꿈에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을 부여하면서 '상대성이론'까지 버무립니다. 롤링 스톤지의 평론가 피터 트레버스가 "인셉션"을 두고, 관객의 수준을 지나치게 높게 보았다라고 언급한 것이 일견 맞는 것도 같지만, 눈을 현혹하는 자극적인 시각효과의 반복만을 통해 사고할 기회를 접게 만든 헐리우드 여름 블록버스터라는, 일종의 타성에 젖었던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그 틀에서 깨어나 생각하는 즐거움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종 영화 포럼과 게시판에서는 "인셉션"에 대한 이야기와 토론이 넘치고 있습니다. 어딘지 보일 것 같으면서, 보이지 않는 미로의 출구의 끝을 찾기 위한 즐거운 게임입니다.

"인셉션"은 분명 이처럼 꿈과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영화에 대한 메타포를 함유한 넓은 의미의 메타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에 대한 영화

영화 보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과연 영화를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는 '꿈을 꾸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눈꺼풀을 덮어 암흑이 찾아오는 그 순간, 자아가 잠시 무의식에 자리를 내주는 그 순간 꿈이 시작되고, 영화관이 암전이 되어 암흑이 찾아오는 그 순간, 스크린에는 영사기가 쏟아낸 빛이, 새로운 세상이 찾아옵니다.

"인셉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영화와 관계된 역할들로 대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코브는 감독, 사이토는 제작자, 아리아드네는 각본가, 아서는 일종의 조감독, 피셔는 관객으로 말입니다.
꿈은 분명 혼자만의 것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여러 사람이 꿈을 공유합니다. 유서프의 공간에서 하나의 꿈을 공유하는, 꿈을 꾸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보면,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한편의 영화를 공유하는 관객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또한, 코브는 아리아드네에게 꿈을 설계할 때, 기억을 사용하면 현실과 꿈이 구분이 되지 않아 위험하다 말합니다. 기억을 가져오더라도 전체가 아닌 일부만을 가져오라 합니다. 많은 관객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갈구하고 진부한 이야기는 싫증냅니다. 하지만,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이야기에는 마찬가지로 거부 반응을 일으킵니다. 보는 관객 대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아주 작은 그리고 결정적인 공통 분모가 있어야만 영화와 관객의 교감이 수월해집니다. ("인셉션"에도 출연한 조셉 고든-레빗의 "500일의 썸머"에서, '누구에게나 썸머가 있다.'를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실력좋은 각본가와 설계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피셔, 즉 관객에게 원하는 주제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놀란은 "인셉션"을 통해 다신 한번 놀라운 꿈(영화와 동일어로써)의 세계로 관객들을 인도했습니다. 놀란은 엔딩 크레딧의 끝머리에서 영화 속에서 '킥'으로 사용되었던 에디트 피아프의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rien, 마리온 꼬틸라르가 "라비앙 로즈"에서 연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케 한 바로 그 에디트 피아프)를 들려줍니다. 이제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가라는 친절한 안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닐 것입니다. 코브가 피셔에게 그랬던 것 처럼 놀란은 영화를 보던, 꿈을 꾸던 우리의 깊은 무의식 속에 분명 '인셉션'을 성공시켰습니다. 지금 당장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 '씨앗'이 점점 커져가 어느 순간 우리의 머리를 가득 채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놀란이 심어놓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