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 홍당무
종종 '올해 한국영화 상반기는 "추격자", 하반기는 "멋진 하루"다.'라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오늘부로 하반기는 바로 이 영화, "미쓰 홍당무"입니다. 29년동안 꾸준히 삽질인생을 살아온 안면홍조증 환자 양미숙을 그리고 있는 "미쓰 홍당무"는 무지막지한 웃음 폭탄을 선사하는 영화입니다.

'세상이 공평할 거란 기대를 버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 열심히 살아야 돼.' 라는 우리 미스 양의 어록이 떠오른후 시작되는 영화는 고등학교 시절 얼굴이 시뻘개친채, 반 단체사진에 찍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뛰어오른 그녀의 얼굴을 비춥니다. 그 때부터 시작된 그녀의 안면홍조증은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고, 그녀는 연모하는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자, 지금은 동료교사인 서종철 선생 앞에서 열심히 (진짜) 삽질 중입니다. 아... 삽질!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왕따 인생을 걸어오고 있는 양미숙은 사실, 동정의 여지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괴팍합니다. 집 살 돈을 모은다고 교무실에 묵고 있으며 요상한 좌욕기에, 거울에 붙어있는 일종의 좌우명은 '1등에 목 맬 바에야 목을 매고 만다.' 일 정도니 말입니다. 미숙은 4년전의 티코 안에서의 일 때문에 종철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오고 있는데, 그때 이쁘다는 이유로 남들에게 대우받는 이유리가 유부남인 종철과 사이에 좋아하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 사이를 방해하려 계획합니다. 미숙은 유리와 같은 고등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쳤으나, 러시아어의 수요가 떨어지면서 유리에 밀려 중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종철 + '이쁜 것들!'에 대한 증오가 그녀의 삽질을 부추깁니다. 그 계획에 미숙이 끌어들이는 이는 종철의 딸 종희. 종희는 학교에서 왕따로, 부모의 이혼을 막기 위해 미숙과 의기투합합니다.

"미쓰 홍당무"의 가장 큰 매력은 양미숙을 필두로 한 캐릭터들에 있습니다. 외모적 컴플렉스와 자기 자신을 옹호하는 각종 궤변으로 무장하고, 사회성에서도 부적합한 성격을 가진 양미숙은 존재 자체로도 큰 웃음을 주며, 그녀의 행동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습니다. 거기에 더해 양미숙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인 왕따 종희는 월등한 'EQ'로 미숙을 당황케 할 정도의 활약을 보입니다. 그리고 미숙이 뒤로는 이를 갈고, 앞에서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이유리는 누구나 좋아할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으나 자기 자신을 내숭으로 감싸고 있으며, 거기에 살짝의 백치미도 더하고 있습니다. 이 주요 여성캐릭터들이 펼치는 소동은 크게는 미숙-종희의 계획이 이행되는 모습을 통해서 보여지지만, 산발적으로도 각각의 캐릭터들이 펼치는 이야기들이 더 크게 두드러집니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주고받는 대화나 상황은 그 각각으로 큰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만큼 영화는 이들 캐릭터성에 기대는 면이 큽니다. 역시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주인공인 양미숙으로 그녀의 캐릭터는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으로 비춰집니다.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어처구니없는 행동들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비웃음은 중간중간 당혹감을 주는데,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드는 컴플렉스의 면모가 종종 우리네가 가지는 그것과 겹쳐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런 비웃음은 씁쓸한 자조적 미소가 되며, 동정할 여지가 없던 양미숙에게도 동정의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아니라면, 당신은 엄.친.아 or 엄.친.딸?!) 영화는 '이상한 행동에도 이유가 있다' 며 양미숙의 삽질을 감싸려하는 듯한 모습을 취하기도 하는데, 양미숙의 비호감적이고 엉뚱한 캐릭터가 불러일으키는 상황으로 인해 그러한 모습조차도 폭소를 자아냅니다.  삽질...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삽질에 이유가 있겠습니까. 하라고하니까는 여기 팠다가 덮었다가 저기 팠다가 덮었다가...되짚어보면 대체 뭐한건지 알 수 없는 그 삽질. 내가 한 삽질에 이유를 붙이려고 들수록 이 역시도 별 필요없고, 그래봤자 달라질게 없다는 것을 느끼는 그 과정을 양미숙이 밟고 있습니다. 영화는 마무리 부분의 해결 과정에서 학교라는 공간 내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축제라는 이벤트를 활용하는 조금은 진부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변함없이 왕따, 아웃사이더이자 삽질인생을 역시나 주욱 살아갈 미숙을 그리면서 그 부분을 그저 약간의 아쉬움 정도로만 남게 만듭니다. 미숙에게 한바탕 큰 삽질 후에 남은 것은 변함없는 현실과 그나마 앞으로의 삽질 인생을 같이할 친구 정도입니다.

미쓰 홍당무

양미숙을 연기한 공효진은 망가지는 모습에도 개의치 않고, 비호감 자체인 역할을 너무도 훌륭하게 연기해냈습니다. 그녀의 필모 중 가히 최고의 모습을 이 영화에서 보입니다. 최근 "미인도", "박쥐" 등의 영화에서 여배우의 노출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여배우의 노출이 곧 이미지 변신이나 연기력 인증으로 비춰지는 지금의 모습에서 "미쓰 홍당무"와 "미쓰 홍당무"의 공효진은 여배우가 노출만으로 자신의 연기력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이고 있습니다.(물론, 다른 여성 캐릭터를 연기한 황우슬혜와 서우도 기대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합니다.) 제작자로 참여한 박찬욱 감독이라는 든든한 방패막 및 지원군도 큰 효과를 내긴 했겠지만, 이경미 감독은 독특한 생각과 이야기로 인상적인 장편데뷔작을 만들었습니다. 이경미 감독의 이후의 행보에도 기대를 걸어봅니다.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지난 2000년 홀연히 온라인에 등장해 100만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폭발적 반응을 일으켰던 류승완 감독의 중편, "다찌마와 리". 2008년 여름 다찌마와 리가 '대형 스크린을 압도박하는 박력과 흥분'을 머금고 극장판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가 그것입니다.

지난 중편을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다찌마와 리"는 의도된 어색함과 6,70년대 한국영화에나 나옴직한 억양과 대사들로 큰 폭소를 자아냈던 작품입니다. 이러한 작품의 특성은 극장판에도 이어집니다. '그녀는 내 마음의 마지막 세입자.' 라던가, '더러운 죄악에 종지부를 찍을 내 주먹을 사라', '내 인생에 삼각은 오로지 삼각김밥뿐이오.' 등 듣는 것만으로도 폭소를 자아낼 주옥과 같은 대사들이 영화내내 넘쳐납니다. 이런 대사를 비롯한 이 영화 웃음의 핵심 코드는 철저한 뻔뻔함입니다. 이 영화가 첩보코메디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영화는 최근작으로는 "겟 스마트" 그리고 조금 더 뒤로가면 "오스틴 파워"가 있습니다. "겟 스마트"가 어쩌면 스티브 카렐의 처량하리 마치의 순진함이 뻔뻔함으로 승화된 경우라고 봤을 때, 이 영화는 "오스틴 파워" 쪽에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으나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단 한명도 빼지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앞뒤 안 가리는 뻔뻔함으로 무장하고 있는 이 영화는 진정한 뻔뻔(FunFun?!) 무비입니다.

멋드러지게 등장하는 다찌마와 리(임원희 분)에게 전작의 화녀와 충녀처럼 많은 이들이 환호하며, 연방 잘 생겼다는 말을 하는 이 뻔뻔함(임원희 씨께 사죄의 말씀을..쿨럭..)의 그 기반에는 이 영화의 (다른 말로는 느낌이 안 살아서 부득이하게) 쌈마이 정신이 있습니다. 저렴한 제작비 내에서의 최대한 효과를 이루어내려던 B급의 쌈마이 정신이 이 영화에 살아 있습니다. 이러한 의도적인 쌈마이는 영화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도도히 흐르는 한강과 성수대교, 그리고 뒤쪽에 지나다니는 냉동탑차를 두고서도 이곳은 두만강이라고 생색을 내지를 않나, 전혀 안 프린스턴 대학스러운 장소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프린스턴 대학이라고 우기는 그 불굴의 정신이란... 이 외에도 영화는 자체발광 쌈마이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인터넷 중편을 보지 않았더라도) '아, 이 영화 원래 이런 영화구나'라고 절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이 영화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의 웃음은 위에서도 언급한 쌈마이 정신에 기초한 웃음인데, 절정으로 치닫기 전의 한 액션신에서는 그런 웃음기가 싸악 가실정도의 뭔가 갖춰진, 그간의 영화흐름과는 이질적인 모습이 보입니다. 이는 '액션 키드'라고 불리우는 류승완 감독이 자신의 욕망을 주체못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하나의 액션 시퀀스로는 만족스러운 부분이나 영화 전체로 봤을 때는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일백프로 후시녹음인데도 불구하고 몇몇대사가 제대로 전달이 안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약간의 아쉬움은 존재하는 영화지만, 나름 기대했던 작품으로서 극장판 "다찌마와 리"는 올여름 한국영화중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내내 사람의 웃음을 자아내는데에 대한 만족감에 더해 이런류의 영화가 주류상업영화로 제작되어 한국극장가에 걸릴 수 있다는 즐거움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 정말 호방합니다.

P.S 200억들여서 해외로케이션 한 영화보다 28억 들여서 영종도에서 만주인척 찍은 영화가 더 만족스럽다니... 뭔가 불공평한데요.


류승완 감독의 신작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의 정식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최정예 비밀요원 다찌마와 리가 사라진 일급 기밀 문서를 찾기 위해 세계 전역을 넘나들며 펼치는 전격 첩보전!' 이라고 하는데, 배경은 일제시대로 보입니다.


전작인 단편 "다찌마와 리"에서 주연을 맡았던 임원희가 다시 한번 다찌마와 리로 등장, 또한 전작에서 '와싱톤' 역을 맡았던 류승범이 이번에는 국경살쾡이 역으로 등장하며, 공효진, 박시연 등이 출연합니다.

개인적인 2008년 여름 한국영화최고기대작인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오는 8월 14일 개봉합니다.

P.S ...76년작 "악인이여 지옥행 열차를 타라"가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데, 볼까 고민 중입니다.

지난 2000년, 홀연히 등장해 온라인을 들썩이게 했던 35분간의 단편, "다찌마와 리"가 장편으로 돌아옵니다. 오는 8월 개봉 예정인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이하 다찌마와 리)의 첫 티저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01




포털에 소개된 줄거리는 '최정예 비밀요원 다찌마와 리가 사라진 일급 기밀 문서를 찾기 위해 세계 전역을 넘나들며 펼치는 전격 첩보전! ' 이라는 군요. 예고편에서도 007를 패러디한 딱 그 느낌이지요. 아래의 이미지는 지난 칸영화제 때 홍보용으로 공개된 것입니다. 아래 사진을 통해 보면, 티저는 말 그대로 티저일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네요.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배경과 이야기는 변했지만, 다시 한번 '오늘 네 놈에게 오동나무 코트를 입혀주마!'를 들을 수 있을까요? 왠지 모르게 개인적으로 전 "놈놈놈" 보다 이 영화가 더 기대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