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_차일드44"베를린" 메인 포스터와 "차일드 44" 표지


류승완 감독의 신작 영화 "베를린"을 전야 상영을 통해 감상했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감독인지라, 그의 신작을 빨리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상당히 잘 뽑혔습니다. 재미있는 오락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머리에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했던 무엇. 톰 롭 스미스의 2008년 작 소설 "차일드 44"가 그것입니다. 국내에는 한때 절판되었다가 다시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스탈린 치하 러시아 비밀경찰인 MGA (KGB의 전신)의 유능한 요원인 레오는 2차 세계대전의 전쟁 영웅출신으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인물. 그러나 자신의 임무와 가족에 대한 깊은 갈등 끝에 부하 바실리의 음모로 민병대로 좌천된다. 그러나 좌천된 후 알게된 한 아동 살인사건을 계기로 사건의 연쇄성과 중요성을 깨달은 뒤, 아내 라이사와 함께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걸고 고군분투하게 된다.


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이유는 영화 "베를린"의 주요인물들과 사건들이 소설 "차일드 44"의 2/5 지점 혹은 전체 분량의 절반 가량의 이야기와 동일 혹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류승완 감독의 최근 인터뷰에는 영향을 받은 책에 이 책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당거래"가 개봉할때 즈음의 그의 인터뷰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대화 중 금연 필터를 끼운 채 담배를 태우곤 하던 류 감독의 요즘 목표는 금연. 최근에는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차일드 44> 등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3남매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 시사인 기사 : 류승완, “나쁜 새끼들은 살려두면 안돼” 中



"차일드 44"의 국내 번역가인 박산호 씨는 영화 감상 후, 한 카페 게시판 글을 올려 아쉬움과 실망감을 토로 했습니다.


무엇이 이런 유사성 혹은 씁쓸함을 자아냈을까요? 아래는 소설에서 발췌 정리한 부분입니다.


아래 발췌한 부분에 대한 모든 권한은 해당 책을 출판한 "노블마인" 및 "차일드 44"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아래는 상업적 용도가 아닌 영화와 소설의 유사성을 말하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소설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소설을 읽지 않으실 분은 상관이 없겠지만, 읽을 예정이실 분들은 피해주십시오.




장르적 클리셰로 치부하고 넘길 수 없는, 극의 주요 등장 인물의 성격과 배경은 물론이고, 사건을 발생시키고 전개 시키는 모티브가 되는 요건이 동일합니다. 그로 인해 유사한 설정까지 의혹을 자아냅니다. 이 영화, 각본은 류승완 감독으로 크레딧에 올라가 있습니다.


결국은 보는 관객의 판단이겠지만, 씁쓸함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었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moviestory.net/1567


P.S 소설 "차일드 44"는 리들리 스콧이 제작을 맡아 그의 제작사에서 영화화 예정입니다. 톰 하디와 누미 라파스가 캐스팅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고백
2010년, 부천국제영화제에서 "고백"을 본 후, '최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감상기를 바로 적기보다는 (이미 수입되어서 곧 개봉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한번 더 보고 적어야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게 벌써 6개월이 훌쩍 지나서 'CGV 무비 꼴라쥬 해피 뉴 무비'전을 통해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감흥과 충격은 그대로였고, 최고였습니다.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의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연출한 영화 "고백"은 미나토 가나에의 베스트셀러 "고백"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마지막 한 부분을 빼면 거의 동일한 진행 방식과 내용을 취하고 있지만, 영화 "고백"은 소설을 영화라는 매체로 옮김에 있어서의 그 장점을 극대화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흔히 동쪽의 팀 버튼이라 불립니다. 울증의 팀 버튼, 조증의 나카시마 테츠야라는 차이는 있지만, 영화 속에서 보이는 그 독특한 상상력과 영상미 때문입니다. 전작 "파코와 마법 동화책"까지는 그간의 조증 가득한 세계관을 이어 외로움과 아픔을 승화된 기쁨과 환희로 감싸안았던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감각적인 영상은 분명 그대로이지만 이번 "고백"에서는 그간의 행보와는 다른 모습을 선보입니다.

모리구치 유코(마츠 다카코 분)가 창백한 얼굴로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라는 말로 시끄러운 교실을 잠재우며 시작하는 영화는 그와 동시에 관객들에게도 그 침묵의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무채색으로 일관된 영상은 영화 내내 서늘할 정도의 차가움을 느끼게 합니다. 과연 나카시마 테츠야의 작품이 맞는가? 라고 할 정도로.

영화는 유코의 딸 마나미를 죽인 범인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하지만, 각각의 인물들의 고백들로 퍼즐을 완성시켜나가면서 일본 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HIV 바이러스의 존재를 점차 드러냅니다. 유코는 말합니다. '에이즈는 불치병이 아니예요. 일찍 발견해 치료하면 발병을 막을 수 있어요.' 자신의 우월함을 인정받기 위해(그리고 또다른 목적을 위해) 아무런 거리낌없이 친구를 이용하고 살인을 감행하는 소년과 생명의 무게를 조롱하는 그의 웃음, 자신들의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집단으로 소수를 거리낌없이 단죄하는 어린 학생들, 살인에 대한 동경과 모방. 영화는 반복적으로 13세 미만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는 일본의 청소년법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발병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사회가 스스로 놓치고 있지 않느냐는 물음입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청소년 범죄가 급증하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었을 때도 그 문제 제기는 유효합니다. 앞서 말했던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들과는 다른 차가움과 서늘함이 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에 대한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존재합니다.

영화는 106분의 뮤직비디오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영상미와 음악의 활용을 선보입니다.(영화 본편은 물론이고 예고편에서도 사용했던 Radiohead의 Last Flowers 같은.) 감각적인 영상 편집은 그것이 단순한 보기 좋음이 아니라 영화의 스토리를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기능합니다. 끊임없이 관객을 자극해 스크린 깊숙한 곳으로 붙들어 놓고, 한편의 복수극이자 사회성 짙은 스릴러의 스토리를 강한 충격과 함께 전달합니다. 유코의 마지막 한마디가 울려퍼지며 영화가 마무리되는 순간 극도의 긴장감이 풀리며, 참았던 한숨을 토해내게 합니다. 다만, 원작과는 다르게 마지막에 덧붙인 하나의 대사는 영화의 결말을 두 가지 가능성을 향해 열어놓는데, 이런 가능성을 열어놓은 감독의 선택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이 영화를 성공적으로 만든데에는 배우들의 호연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유코 역의 마츠 다카코는 물론이고, 나오키, 슈야, 미즈키 를 비롯한 1학년 B반 학생들을 연기한 아역들의 인상적인 연기는 영화 속 무서운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영화 "고백"은 말하건데, 제 개인적인 2010년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입니다. 나카시마 테츠야는 영상 표현력의 완성도를 한층 더 끌어올림과 동시에 그 영상미를 통한 강력한 스토리 전달력으로 자신에 대한 명성과 기대를 다시 한번 입증해 냈습니다. 일본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감독임에 틀림없습니다.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지만, 그럼에도 그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그전에 앞서 많은 분들이 "고백"을 접하시고 저와 같은 기대를 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S 국내 정식 개봉일은 오는 2월 17일입니다.  국내개봉은 3월로 연기되었다 합니다. 이런...

글러브
강우석 감독의 근래의 필모그래피를 보자면 영화 "글러브"는 조금은 이질적인 영화입니다. "공공의 적" 이후의 그의 작품들이 사회적 이슈에 천착한 소재를 담았다면, "글러브"는 스포츠를 소재로한 휴먼 드라마입니다.

영화는 음주파문으로 물의를 일으킨 왕년의 프로야구 스타 김상남(정재영 분)이 자숙 차원으로 청각장애 야구부 ‘충주성심학교’ 임시 코치직을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우석 감독의 영화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는 어떤 정치색은 이 영화에 없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인, 요즘 영화같지 않은 왠지 옛날 영화같은 때깔과 투박해보이만 에두르지 않는 연출은 그대로 입니다. 이번 영화를 통해 강우석이 변했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하지만 정치색이 없다고, 사회적 이슈에 칼날을 세우지 않았다하더라도 후자의 이유로 강우석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140분의 런닝타임 동안 이런 스포츠 드라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클리셰'로 범벅이 되었다 할 수 있는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감동을 자아내기 위한 주인공의 웅변조 연설 역시 강우석 영화답게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그리고 즐기는 스포츠냐, 승리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스포츠냐라고 서로 주장하던 주원과 상남의 말다툼의 결론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영화는 아이들의 분투와 눈물에만 그 초점을 맞춥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 긴 런닝타임동안 적절한 완급조절 함께 관객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갑니다. 그렇기에 그 수많은 클리셰와 억지스런 감동 만들기가 큰 무리없이 이야기 속에 녹아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커다란 감동이나 그에 따른 감흥은 없을지언정(모든 단점을 상쇄할 그 무언가가 없지만) 강우석이 영화에서 가고자 하는 방향은 목적지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듯이 영화에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20여년의 세월 동안 강우석이 감독으로 국내 영화판에 굳건히 서있는 발판이 아닐까 합니다. 좋든 싫든, 강우석은 그런 감독입니다.

P.S 정재영은 동치성이 더 어울립니다.
P.S2 LG Twins 만세입니다.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
김명민-오달수 주연의 영화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이하 조선명탐정)은 조선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조가 노론을 견제하며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려 하고, 천주교로 인한 사회/정치적 갈등이 야기되던 그 시기, 영화는 찾을 探에 바를 正 이라 하여 '탐정'이라는 가상의 관직이 있는 걸로 설정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김명민이 분한 탐정은 좀 많이 허당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예리한 추리력을 바탕으로 공납 비리의 배후를 캐나갑니다. 그리고 그러던 중에 개장수 서필을 만나 티격태격하게 됩니다.

영화 개봉 이전 공개된 스틸이나 예고편에서의 김명민의 코믹스러운 모습은 최근에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과는 거리가 있는지라, 조금의 괴리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 김명민의 모습은 참으로 자연스러습니다. 드라마 "불량가족"에서도 코믹한 모습을 선보이기는 했지만, 이 영화 속의 김명민은 분명 또다른 캐릭터의 또다른 모습을 너무도 능글맞게 표현해냅니다. 역시 '명민좌' 입니다. 김명민이 연기하는 탐정은 영화상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많은 설정들이 자연스레 '정약용'을 떠올리게 합니다. "조선추리활극 정약용"이라는 케이블드라마가 있었는데, 그 드라마를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비교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일단 저는 그 드라마를 보지 못해서...)

탐정의 사이드킥(?)인 서필 역은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가 아닐까 합니다.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이 탐정과 서필이 함께하는 장면이기에 탐정의 캐릭터를 받쳐주면서도 서필의 캐릭터를 확실히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필을 연기한 오달수는 '역시 오달수!'라는 소리가 나오게끔 코믹하고 능청맞은 서필 캐릭터를 소화해 내고 있습니다. 그가 있었기에 탐정-서필 콤비가 비로서 완성되었습니다.

김명민, 오달수 두 배우에 비교가 되서인지 한객주 역의 한지민은 조금 아쉽습니다.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 중 거의 처음이 아닐까 할정도로, 섹시한 인물을 연기하지만 그간의 모습들과의 간격을 좁히기에는 무리가 많은 모습을 보입니다.(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렇기에 나중에는 편해지는...)또한 그런 캐릭터를 관객이 받아들이기만큼의 시간이 허용되지 않았단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 영화가 워낙 탐정-서필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포커스가 탐정과 서필에게 맞춰져있기에 당연스럽게도 코믹스러운 장면의 거의 대부분은 그 둘이 함께하는 장면입니다. 두 배우의 호흡이 좋기도 하지만 전작 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와 극장판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김석윤 감독의 솜씨 역시 크게 몫을 했다 생각합니다. 이런 장면 연출에 재능있는 감독과 좋은 배우라는 요소가 잘 갖추어졌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상영시간 내내 코믹스러운 장면과 액션신을 동반한 빠른 속도감으로 관객을 붙들기는 하지만, 추리극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탐정과 서필의 코믹스러운 장면에만 포커스가 맞춰진 이야기는 정작 탐정이 파헤쳐지는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이 많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코믹스러운 장면과 사건의 전모를 파헤쳐가는 장면 사이의 이질감은 영화 내내 사라지지 않으며,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는 그 과정에 있어서의 스토리텔링은 영화의 빠른 속도감과는 다르게 지나치게 복잡합니다. 관객의 이해를 구하기 전에 이미 영화는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고 착각한 체 어느새 다른 이야기(대부분 코믹장면)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영화는 표방하고자 했던 부분에서 코믹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추리극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조선명탐정"은 계속 한 영화를 떠오르게 합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주드 로-레이철 맥아담스의 "셜록 홈즈"입니다. 이 두 영화는 추리극이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 그리고, 김명민과 오달수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의 매력이 영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셜록 홈즈"는 이미 후속작이 결정되어 올해 12월 개봉 예정입니다. 김명민 등의 배우는 "조선명탐정"의 후속작에 대한 욕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캐릭터들의 매력을 유지하고, 아쉬운 점을 보완한다면 굳이 후속작이 못나올 이유도 없고, 그리고 또한 그 캐릭터들의 매력은 이 한 편으로 끝내기에는 분명 아쉽습니다. 그럼 관건은? 결국 흥행 여부입니다.


그린 호넷
영화 "그린 호넷"은
부유한 신문사주의 철없는 아들 브릿 리드(세스 로건 분)가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후, 아버지의 자동차 정비공 케이토(주걸륜 분)를 만나 도시의 정의를 지키는 슈퍼히어로로 재탄생한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세스 로건과 그의 단짝 에반 골드버그가 제작 및 각본을 맡은 영화로, 이전의 그들의 영화들과 궤를 같이 합니다. 히어로물을 표방하고 있지만 주인공 브릿 리드는 몸만 어른이고 생각은 여전히 고등학생 같은, 세스 로건의 이름을 곱씹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런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 역시 세스 로건들의 이전 영화들처럼 농담가득한 대사들과 가벼운 분위기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딱히 심각한 생각없이 가볍게 즐기는 팝콘 무비적인 성격이 짙습니다.

하지만, 개연성 없는 이야기의 전개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겉도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이 영화에 대해 그리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합니다.

세스 로건이 연기하는 브릿 리드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있지만 정의에 대해 깨닫고, 불의에 항거하는 그의 캐릭터로 변환 과정의 감정선이 너무도 급격합니다. 그에 따라 과정에 공감하기 어렵게 합니다. 주인공을 정의의 사도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그 목적을 위해 기본적인 개연성은 지워버린 것입니다.

또한, 세스 로건이 선보이는 시도때도 없는 가벼움은 필요한 시점에서 극의 중심을 잡아주지 못합니다. 세스 로건과 호흡을 같이하는 주걸륜의 케이토 캐릭터는 세스 로건의 그 가벼움에 휘말려 어떤 캐릭터로 정의내려야 할지 모르는 애매모호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아니, 세스 로건의 가벼움에 휘말렸다기 보다는 애초에 이 영화의 각본에서 케이토의 캐릭터에 대한 어떠한 방향성도 잡히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영화의 홍일점인 브릿 리드의 여비서 르노어 케이스역의 카메론 디아즈는 더욱 안타깝습니다. 브릿과 케이토 사이의 철부지스런 잠깐의 갈등을 만들기 위해서만 기능하는 르노어 케이스는 그 비중에서도, 중요성에서도 과연 카메론 디아즈가 맡았서야 하는지 의문이 들게 합니다. 카메론 디아즈가 이런 푸대접을 받아야 할만큼의 위치는 아직까지는 아닌 것 같아 그 안타까움은 더 큽니다.

영화가 배우를 만드는 것이지, 배우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님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것이 크리스토프 왈츠가 연기하는 이 영화 속의 악당 처드노프스키입니다. 이런 히어로물에서 중요한 것이 주인공에 대적하는 악당의 매력임이 분명함에도 처드노프스키는 시시껄렁한 농담과도 같은 가벼움과 멍첨함, 악당으로서의 존재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캐릭터입니다. 크리스토프 왈츠가 선보였던 최근의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과연 같은 배우가 맞는지 의심을 품을 정도로 형편없는 모습을 보입니다. 좋은 배우를 데리고 이처럼 엉망으로 만들기도 참으로 힘들 것입니다.

"그린 호넷"은 애초에 케이토 역을 주성치가 맡고, 연출까지도 주성치로 내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성치가 하차하고 "이터널 선샤인"의 미셸 공드리가 감독직을 맡게 됩니다. 미셸 공드리가 이런 히어로물에 어울릴 것인가? 라는 물음은 결국 미셸 공드리는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로 귀결 되었습니다. "이터널 선샤인" 이후 초짜 예술가의 포트폴리오 같던 "수면의 과학"과 자전적인, 그래서 자신의 시네필적인 모습을 선보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비 카인드 리와인드"로 실망만 자아내던 미셸 공드리입니다. "그린 호넷"에서 미셸 공드리는 액션 연출에는 재능이 없으며, 그 자신의 능력만으로 영화의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어붙이고 진행시킬 능력이 없음을 확실히 드러냈습니다. 찰리 카우프만의 각본같은, 제대로 된 물건이 없으면 그는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라쿠나社를 찾아 "이터널 선샤인"의 행복했던 기억을 지우고 싶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셸 공드리에게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에게 가졌던, 마지막 남았던 일말의 기대감을 이젠 철회합니다.


사랑스런 그대
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이하 PiFan)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올해 PiFan은 인도영화의 약진과 여전히 강세인 일본영화들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만 반대로 가장 PiFan 다운, 장르 영화에 대해서는 너무도 인색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로그래머까지 추천작이라고 낚아 버리는...)

그 와중에 "사랑스런 그대"는 그 실망에서 건진 거의 유일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그대"는 CF 감독 출신인 숀 번의 연출 데뷔작인 호주 영화입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합니다.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실의에 빠져 지내고 있는 브렌트(하비에르 사무엘 분)는 학교에서 존재감없고, 예쁘지 않은 여학생 롤라(로빈 맥리비 분)의 댄스파티 파트너 요청을 거절하게 되고 그것은 곧 불행으로 이어집니다.

영화는 댄스파티에 대한, 섹스에 대한 십대의 욕망과 짝사랑의 소유욕, 정신나간 피의 광기, 그리고 일종의 섹스코메디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영화 "미져리"와 "쏘우" 등의 잔영이 느껴집니다. 댄스파티가 시작되기전 숨고르기를 하던 영화는, 핑크 드레스를 갖춰입고 메이크업을 한 롤라의 모습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빠르게 전개 됩니다. 브렌트의 발에 식칼이 꽂혀 피가 흘러내리고, 일반적인 성장통인 마냥 아무렇지도 않게 전기드릴를 사용하는 롤라의 모습은 제목 중 '사랑스런'의 역설적인 의미를 드러냅니다. 영화는 중간중간 캐릭터의 심리나 상황을 설명하는 음악을 삽입하는데, 도식적이긴 하지만 음악 선곡의 탁월함이 눈에 띕니다. 특히 롤라의 테마곡인 케이시 챔버스의 'Not Pretty Enough'가 그러합니다.

감독 숀 번은 영화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잘 통제하면서, 썩 훌륭한, 재미난 호러 영화를 완성시켰습니다. 또한, 영화의 주인공인 하비에르 사무엘과 로빈 맥리비의 연기 역시 인상적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앞으로 눈여겨 볼 신인감독을 찾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올해 PiFan 상영작 중 PiFan에 가장 어울리는 피칠갑 영화 "사랑스런 그대"가 부천에서 상하나 건져가길 기대해봅니다.

P.S 예고편 및 케이시 챔버스의 'Not Pretty Enough' 첨부합니다.





인셉션
Nolan is back! "다크 나이트"로 전세계를 뒤흔든 크리스토퍼 놀란이 신작으로 돌아왔습니다. "인셉션". "다크 나이트"의 성공으로 스튜디오에게서 이전보다 더한 권한을 부여받았을 것이 분명한 놀란은, 그 기회를 자신의 오리지널 각본을 바탕으로 한 첫 대작에 사용합니다.

기억과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는 그간 놀란의 작품세계에 지속적으로 보여지는 공통주제였으나 "인셉션"에서는 그에서 한발 더 나아가 꿈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전 작품세계를 끌어안습니다.

"인셉션"의 큰 스토리의 골격 자체는 어쩌면 매우 단순합니다. 타겟이 된 대상의 꿈에서 의뢰인이 요구한 정보를 빼오는 추출자 돔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어떤 사정으로 인해 고향 미국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고 해외를 떠도는 신세입니다. 그러던 중 사이토(와타나베 켄 분)가 그의 경쟁기업의 상속자 피셔(킬리언 머피 분)의 머리 속에 어떤 정보를 심어준다면('인셉션') 그가 무사히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 제안합니다.

놀란의 거대한 지적 유희의 미로

놀란은 이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며 복잡한 지적유희를 동반한 거대한 미로를 창조했습니다.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아래인지 모를 '펜로즈 계단', 그리고 코브와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 분)가 거울 안에서 끝없이 반복되어 이어지는 이미지를 통해 꿈, 그리고 꿈 속의 꿈, 꿈 속의 꿈 속의 꿈으로 연결되는 그 안에서 과연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꿈인지 구분할 수 있을 것인지 지속적으로 반문합니다. 꿈은 무의식의 현실이자 자아를 비추는 거울이기에 끊임없는 꿈 속에서 현실의 자아와 무의식의 자아를 구분해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그에 더해 반복되어 나타나는 맬을 통해 자아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는,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의 존재와 피셔를 통해 보여주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모습, 각 단계별 꿈에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을 부여하면서 '상대성이론'까지 버무립니다. 롤링 스톤지의 평론가 피터 트레버스가 "인셉션"을 두고, 관객의 수준을 지나치게 높게 보았다라고 언급한 것이 일견 맞는 것도 같지만, 눈을 현혹하는 자극적인 시각효과의 반복만을 통해 사고할 기회를 접게 만든 헐리우드 여름 블록버스터라는, 일종의 타성에 젖었던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그 틀에서 깨어나 생각하는 즐거움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종 영화 포럼과 게시판에서는 "인셉션"에 대한 이야기와 토론이 넘치고 있습니다. 어딘지 보일 것 같으면서, 보이지 않는 미로의 출구의 끝을 찾기 위한 즐거운 게임입니다.

"인셉션"은 분명 이처럼 꿈과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영화에 대한 메타포를 함유한 넓은 의미의 메타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에 대한 영화

영화 보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과연 영화를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는 '꿈을 꾸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눈꺼풀을 덮어 암흑이 찾아오는 그 순간, 자아가 잠시 무의식에 자리를 내주는 그 순간 꿈이 시작되고, 영화관이 암전이 되어 암흑이 찾아오는 그 순간, 스크린에는 영사기가 쏟아낸 빛이, 새로운 세상이 찾아옵니다.

"인셉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영화와 관계된 역할들로 대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코브는 감독, 사이토는 제작자, 아리아드네는 각본가, 아서는 일종의 조감독, 피셔는 관객으로 말입니다.
꿈은 분명 혼자만의 것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여러 사람이 꿈을 공유합니다. 유서프의 공간에서 하나의 꿈을 공유하는, 꿈을 꾸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보면,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한편의 영화를 공유하는 관객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또한, 코브는 아리아드네에게 꿈을 설계할 때, 기억을 사용하면 현실과 꿈이 구분이 되지 않아 위험하다 말합니다. 기억을 가져오더라도 전체가 아닌 일부만을 가져오라 합니다. 많은 관객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갈구하고 진부한 이야기는 싫증냅니다. 하지만,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이야기에는 마찬가지로 거부 반응을 일으킵니다. 보는 관객 대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아주 작은 그리고 결정적인 공통 분모가 있어야만 영화와 관객의 교감이 수월해집니다. ("인셉션"에도 출연한 조셉 고든-레빗의 "500일의 썸머"에서, '누구에게나 썸머가 있다.'를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실력좋은 각본가와 설계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피셔, 즉 관객에게 원하는 주제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놀란은 "인셉션"을 통해 다신 한번 놀라운 꿈(영화와 동일어로써)의 세계로 관객들을 인도했습니다. 놀란은 엔딩 크레딧의 끝머리에서 영화 속에서 '킥'으로 사용되었던 에디트 피아프의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rien, 마리온 꼬틸라르가 "라비앙 로즈"에서 연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케 한 바로 그 에디트 피아프)를 들려줍니다. 이제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가라는 친절한 안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닐 것입니다. 코브가 피셔에게 그랬던 것 처럼 놀란은 영화를 보던, 꿈을 꾸던 우리의 깊은 무의식 속에 분명 '인셉션'을 성공시켰습니다. 지금 당장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 '씨앗'이 점점 커져가 어느 순간 우리의 머리를 가득 채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놀란이 심어놓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지금 시점에서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그리고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스크린으로 옮기는데 있어서 가장 적합한 감독은 바로 두말할 필요없이 팀 버튼일 것입니다. "가위손", "비틀쥬스", "배트맨",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에서 그가 선보였던 비정상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비쥬얼로 인해 말그대로 '이상한'(그래서 더욱 매혹적인) 루이스 캐롤의 기념비적인 이 아동소설을 그가 어떻게 표현해냈을까 큰 기대를 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원작 그대로를 따르고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영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섞어놓은, 아니 그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원작에서 앨리스가 7살 6개월의 어린아이였다면, 영화의 앨리스(미아 와시코우스카 분)는 흔히 말하듯 말만한 숙녀입니다.

앨리스는 자신을, 그리고 여성을 바라보는 시대의 관습과 시선을 불편하게 여기는 캐릭터로 갑작스레 받게된 귀족 자제의 청혼을 부담스러워하다 하얀 토끼를 따라 땅 속 세계에 발을 딛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CG의 손길을 받기 시작한 이 이상한 나라는 '팀 버튼'의 그것과 유사하다할만 하지만, '팀 버튼'에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무난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팀 버튼의 페르소나 조니 뎁이 연기하는 미친 모자 장수와 팀 버튼의 반쪽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연기하는 왕대가리의 붉은 여왕, 지나친 우아함이 코믹함으로 다가오는 앤 해서웨이의 하얀 여왕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괴팍하고, 창의적이며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무엇을 기대했던 분들에게는 실망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루이스 캐롤의 상상력, 그리고 원작의 거대함이 팀 버튼을 압도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원작이 어떤 개연성 없이 그리고 목적없이 앨리스의 땅 속 세계, 그리고 거울 속 세계에서 겪었던 일을 그려냈다면 영화는 원작의 넌센스 시인 "재버워키" 속 기사의 모험담을 앨리스에게 주입시킵니다. 좋마운 날에 날뜩한 칼로 재버워크를 죽이도록 정해진 것이 바로 앨리스라는 것입니다. 정신없는 내러티브의 원작을 영화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선택한 이 각색은 결과적으로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이야기의 무난한 흐름은 가져왔을 지언정, 루이스 캐롤 원작이 가지는 매력은 사라져버렸으며, 나아가 근래의 "나니아 연대기" 같은 고난을 겪고 성장해 영웅으로 거듭나는 주인공을 그리는 헐리우드 판타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영화는 그런 영웅 앨리스가 현실로 돌아와 하는 일이 서구 제국주의 확산에의 일조라는 데에 다다르면서 그 실망을 배가시키게 됩니다.

모자 장수는 자신에 대해 갈등하고 고민하던 앨리스에게 '너에게는 전에 있던 무엇인가가가 없다.'라고 충고합니다. 그것은 앨리스에게 하는 말임과 동시에 팀 버튼이 만들어낸 이 판타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게 하는 말입니다.

500일의

작년 이즈음, 여느때처럼 해외 영화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가 선댄스영화제서 상영된 이 영화에 대한 호평들을 보았습니다. 애초에는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인 조셉 고든-레빗과 조이 데샤넬이 주연하는 영화라 눈에 갔지만, 그 호평들을 보자하니 과연 어떤 영화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갔습니다.

그리고 그 때로부터 1년 후 그 영화를 봤습니다. "500일의 썸머"는 (남자라면) 누구나 겪는, 그런 보편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나레이션을 통해 그것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그런 사랑 이야기를 머리 속 가득 헝클어진 기억의 파편들처럼 비순차적으로 섞어놓으면서도 또한 그런 조각난 파편들이 나름의 흐름을 갖추며 이어져나가는,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기억, 나쁜 기억 그렇게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 치는 것이 바로 지난 사랑입니다. 대부분의 헐리우드 로맨틱 코메디물이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갈등을 빚지만 결국은 Happily ever after 로 마무리 되는 공식을 따른다면 이 영화는 그 지점에서 통상적인 로맨틱 코메디물과 궤를 달리합니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남자 톰 헨슨(조셉 고든-레빗 분)은 운명적인 사랑 따위는 환상이라 믿는 여자 썸머 핀(조이 데샤넬 분)에 첫눈에 반하고, 그 둘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 그들의 좋았던 기억, 그리고 권태기의 기억들은 시간을 뛰어넘어 이어집니다. 톰의 가슴 떨림, 그리고 톰의 절망은 지극히 평범한 치수(?)의, 그러면서도 독특한 썸머를 통해서 보는 이들의(적어도 남자들의) 머리 속 또다른 썸머와의 기억을 끄집어냅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 남자가 여자를 만나고, 남자와 여자가 헤어진다는 이야기의 보편성(우리 모두는 '썸머'와 사귄 적이 있다.)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보편적이고 평범한 만남과 이별, 그 500일의 이야기는 특별해집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특별함에 의미를 두지 말라합니다.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을 것 같은, 그 특별하다 생각하는 우리네들의 그 날들이 돌아보면 각자 인생 수만일 중의 하루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 자연스러운 일상이라고 말입니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이 영화가 마치 사랑에 대해 냉소적일 것이라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물론 그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운명이다라는 것만을 믿고 하나의 사랑에 집착하기보다는 지나간 사랑은 지나간 사랑으로, 사랑은 운명이되, 그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따스한 희망의 메세지를 던져주는 것이 바로 이 영화입니다. 톰은 그걸 배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알아야겠죠.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답게 마크 웹은 비쥬얼인 다양한 시도를 통해 영화의 감각적인 기호와 호기심을 증폭시킵니다.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들이 내러티브에 있어서의 취약성을 종종 드러내고는 하는데, 시간상으로 분절된 이야기를 연결해나가는 시나리오의 특성인지 몰라도, 그런 면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특성이 마크 웹이란 감독에게 잘 부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이터널 선샤인"의 미쉘 공드리가 떠오르는데, 이후 미쉘 공드리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작품들이 기대치에 못미쳤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마크 웹에 대한 평가는 적어도 차기작까지는 지켜봐야 할 듯도 싶습니다. (발표된 바로는 "스파이더맨" 시리즈 리부팅작의 감독으로 내정되었습니다.)

골든 글로브 코메디-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조셉 고든-레빗은 노미네이션에 그친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입니다. (골든 글로브가 흥행성에 더 비중을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때문입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셜록 홈즈"의 연기가 당연히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브릭"에서 처음 본 이후 눈 여겨 보고 있는 배우인데, 인디영화와 블럭버스터를 넘나드는 그의 필모는 꽤나 흥미롭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까지 그를 택한 걸 보면 더욱 흥미로워집니다.) 우리의 썸머, 조이 데샤넬은 어쩌면 연기적인 부분보다는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주는 신비함으로 기억되는 배우로, 이 영화에서도 역시 그런 그녀의 이미지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해프닝" 같은 거 찍지 말아요. 하한선은 "예스맨" 정도로.) 비록 우리 모두에게 비수를 꽂은 썸머이지만 조이 데샤넬이 사랑스럽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처럼 누구나 사랑을 합니다. 톰이 느낀 썸머와의 관계는 500일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일자는 의미가 없습니다. 각자가 채워야 할 숫자니까 말입니다. () Days of Summer. 자 여기에 빈칸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썸머와 채웠던 날들, 그리고 어텀과 함께할 날들을 하나씩 카운팅해보세요.


셜록 홈즈
'셜록 홈즈'.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제 어린 시절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남자 아이들에게 셜록 홈즈는 모리스 르블랑이 창조한 '아르센 뤼팽'과 함께 열광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통찰력과 놀라운 두뇌 회전, 어찌보면 괴팍한 성격의 캐릭터가 주는 매력이란...

가이 리치가 연출을 맡은 이번 영화 "셜록 홈즈"는 그런 소설 속 셜록 홈즈와 그의 단짝 왓슨과는 큰 틀에서의 설정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코넌 도일의 소설이 원작이 아니라 리오넬 위그램의 그래픽 노블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보니 가이 리치도 자신의 영화 속 홈즈는 소설의 홈즈와는 다르게 액션 히어로가 될 것이라고 말해오기도 했고, 실제로도 그러합니다. 홈즈에게 초점이 맞춰지긴 했지만, 주드 로가 연기한 왓슨 박사 역시 소설과는 다른 색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잠긴 문을 따려던 홈즈의 뒤에서 그 문을 걷어차는 왓슨이란...

영화는 어떤 면에서 보자면 이런 소설과 다른 캐릭터가 주는 매력과 그 앙상블이 재미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액션 블럭버스터로 변모한 "셜록 홈즈"에게 일종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캐릭터의 매력과 액션 장면이 주는 재미는 분명 있으나, 영화는 다소 심심한 감이 있습니다. 마크 스트롱이 연기하는 이번 작에서의 적 블랙우드 경의 캐릭터가 그 캐릭터의 상징성은 일단 뒤로 하고, 존재감이 셜록 홈즈에 비해서 심히 뒤쳐지면서 극의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일 것이고 나름 선방하긴 했지만 가이 리치가 여전히 자신의 리즈 시절(?) 때의 그 감각을 다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일 것입니다.

이 영화가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라고 했을 때, 분명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어서 상당히 애매하다 할 수 있습니다. 어찌됐든 캐릭터의 매력을 알리는데는 성공했다는 것은 나름 위안거리이긴 합니다.

P.S 레이첼 맥아담스 비중만 늘려줬더라도 전 만족했을 겁니다! 쳇...
2012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은 두려움과 동시에 희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일련의 재난영화들이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롤랜드 에머리히의 신작 재난영화 "2012" 역시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관심을 불러모으는 2012년 종말설을 더욱 부채질하는데는 영화라는 거대한 대중매체만큼 큰 효과도 없을 것입니다. "2012"는 그러함과 동시에 그 관심을 그대로 자신의 관객으로 만들고 말입니다.

"2012"는 마야인들의 예언을 이야기하며 더불어 인류를 종말의 위협으로 밀어넣는 원인으로 태양자기폭풍을 선택했습니다. 대두되고 있는 종말론 속 근거들 중 하나입니다. 영화 속에서 원인에 대해 숨가쁘게 이야기하지만, 영화도 자세하게 말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관객도 자세하게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뭔가 과학적으로 그럴싸한 이유로 어마어마한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뉘앙스를 심어주면 됩니다. 인도에서 이러한 위험을 알아차린 애드리안 헴슬리 박사(치웨텔 에지오포 분)는 이 사실을 미정부에 알리게 됩니다.

과학자와 함께 또다른 이야기 축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캐릭터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습니다. 잭슨 커티스(존 쿠샥 분)는 소설가에 이혼남으로 전처는 결혼을 해 그는 가끔식 그의 아이들을 보러갑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이런 설정을 가진 캐릭터는 장르를 불문하지 않고 나오는데 가족애를 유독 좋아하는 그네들의 습성 때문인가 합니다. 작게는 가족애로 시작해 크게는 인류애를 드러내야 하기도 하고.

이렇게 초반에 캐릭터 소개를 정리한 후 영화는 본격적으로 재앙을 스크린에 선보입니다. 대지진으로 인해 처참하게 파괴되는 LA 도심의 모습은 묵시록의 그것을 보는 듯 강렬한 인상을 자아냅니다. 고가도로는 허물어져 내리고 바벨탑처럽 높이 솓았던 마천루들은 힘없이 쓰러집집니다. 화염과 죽음으로 가득한 도시. 천사들의 도시는 침몰하는 배처럼 그 생을 다합니다. LA 대지진 가능성이 이야기되는 가운데 그 모습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오싹함으로 미국인들에게는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재앙의 장대한 시작을 열어젖힌 LA 침몰 장면 이후 영화는 곧바로 옐로우스톤 화산 폭발로, 그리고 존 F. 케네디의 백악관 귀환으로 이어가며 인류의 종말을 그려갑니다.

이러한 인류 종말의 위협의 해결책으로 영화가 제시한 것은 '21세기판 노아의 방주' 입니다. (잭슨의 아들 이름도 노아입니다.) 성경의 묵시록적 예언이 현실화될 것을 우려한 인류가 선택한 것은 역시나 성경 속 재앙에서 인류를 구해냈던 방주가 선택되었습니다. 그 해결책이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그 준비 과정이 현 시대를 반영하는 것 같아 눈길을 끕니다. 과거의 경우 말그대로 미국이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식이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국제공조를 바탕으로 방주가 제작이 됩니다. 이 같은 모습은 나름 흥미롭지만 그 외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인류애를 부르짖으며 어떻게든 감동을 일으키려는 구닥다리 캐릭터와 구닥다리 전개는 여전하고, 결말 역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언제나 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에서 지적되었던 바대로 이 영화 역시 단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멍이 커다랗게 보이고, 목적을 위해 과정의 당위성이나 이해도를 무시해버리는 시나리오, 별 공감 안되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Size does matter'.  이러한 단점을 거대한 시작적 효과를 통한 스펙타클함으로 덮는게 그의 장기입니다. 잘되면 "투머로우", 안되면 "B.C 10,000"이 되버리는 모 아니면 도 방식입니다. "2012"가 창조해 낸 거대한 재앙의 스펙타클함은 인정할 만합니다. 하지만, 과도한 스펙타클의 남발은 뒤로 갈 수록 그것을 무감각하게 됩니다. 현실감을 상실한체 그저그런 게임같이 말입니다. "노잉"이 유뷰브 영상을 연상시키는 사실적인 재앙으로 시작했다가 철학적 고민에 휩싸인체 음모론을 끌어들여 지구종말이라는 과감한 결정을 함으로써 한숨을 내쉬게 만들었다면 "2012"는 자신이 창조한 재앙이 자신의 또다른 재앙들을 집어삼킨 결과를 낳았습니다. 뻔하디 뻔한 아쉬운 소리를 해댔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B.C. 10,000" 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재앙이었고, "2012"는 롤랜드 에머리히가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것을 보여준 그의 영화들 중 하나입니다. 시각적 스펙타클함 가득한 '킬링타임'용 블럭버스터. 롤랜드 에머리히에게 그것만 바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불꽃처럼 나비처럼
총체적 난국.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말하는데 있어서 이만한 표현이 더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승우, 수애가 주연을 맡은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이미연이 "나 가거든"의 뮤직비디오에서 연기한 '나는 조선의 국모다.'의 명성황후 이미지와 그리 다르지 않은 명성황후 민자영을 그리고 있습니다. 둘다 야설록의 소설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0분 가량의 뮤직비디오와 2시간의 영화를 비교한다는 것은 좀 어폐가 있습니다만 무리를 해서 비교하자면 차라리 그 10분짜리 뮤직비디오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영화는 무명(조승우 분)의 어린시절과 이어서 무명과 민자영(수애 분)의 만남을 보여주며 시작해 연결고리 없는 사건과 사건의 배치로만 이어나가다 명성황후의 죽음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2시간의 이야기를 보여줌에 있어서 앞뒤 사건 사이의 정황이나 이음새를 가다듬지는 못하고 그저 멀리 떨어져있는 징검다리 돌 위를 위태롭게 건너뛰고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모양새만 보여주는 것으로 극의 전개와 상황의 변화를 관객이 납득할 수는 없습니다. 시대극으로서, 명성황후와 해당 시대의 그 밀접한 관계를 그려내기에도 실패하면서 영화는 멜로 영화로서의 위치도, 시대극으로서의 위치도 잡지 못하는 꼴을 보입니다.

극의 연결성을 떨어뜨리는 데에는 액션신도 한 몫을 합니다. 급작스러운 등장으로 전개의 맥을 딱 끊어먹기 때문인데 더 큰 문제는 액션신 그 자체로 보더라도 난발된 CG부터 해서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중간의 대결장면은 마치 "1724 기방난동사건"의 그것을 보는 듯 해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영화에 있어 무엇이 더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를 분간 못하고 눈요기로 어떻게 좀 해보려는 듯 한데 여러모로 패착입니다.

영화의 완성도 여부와 그에 대한 책임은 결국 감독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어떤 때는 가혹하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이번 영화만큼은 무엇보다도 감독의 탄식이 나오는 연출력이 영화가 최악의 길로 빠지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것이 자명하기에 다른 어떤 이유도 내밀지 못할 것입니다. 조승우와 수애라는 그 나이 또래에서 인정받은 배우들과 100억원에 가까운 제작비를 들여 나온 결과물이 이러하기에 그 초라함은 커져만 갑니다.

내 사랑 내 곁에
'모든 사람은 죽는다. 스테판은 사람이다. 고로 스테판은 죽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적 삼단논법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이에 따라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죽음이란 것은 결코 억울하거나 슬픈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죽음이란 녀석은 이성적/논리적 판단의 범위를 넘어선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냉정하게 정의 내리면서 이해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죽음과 사랑은 결코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으로 판단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는 내 운명"의 박진표 감독의 신작 "내 사랑 내 곁에"는 이미 예견된 죽음을 향해 가는 한 남자와 사랑으로 그의 곁에 있고픈 한 여자의 이야기로, 죽음과 사랑의 공통분모에 대해 그리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앞서 언급한 감독의 전작 "너는 내 운명"에서의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바뀐 것처럼도 보이지만, 전작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는 남자와 여자를 바라봅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주인공 종우(김명민 분)에게 루게릭병이라는, 죽음이라는 결말이 정해진 질병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죽음이 예견되어 있지만 종우와 지수(하지원 분)는 시쳇말로 죽음 앞에 쿨한 모습을 보입니다. 죽음은 두렵지 않으며, 누구나 맞이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지수는 장례지도사로 죽음에 단련된 이입니다.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이 둘의 사랑을 그리며 영화는 이런 류의 스토리에 예상되는 신파의 분위기를 회피하려 합니다. 이 영화에서 중심인물은 종우와 지수이지만 영화는 이들 뿐만 아니라 종우와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 역시 비춥니다.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돌아보려는 의미가 강합니다.

신파를 덜어내고 죽음을 되돌아보려는 영화의 의도는 눈에 들어오지만 그런 의도를 그려내고 전달하는데는 결과적으로 힘에 부치는 모습입니다.

우선 캐릭터들이 그리는 그들의 감정선의 흐름에 대한 표현이 미흡해 그들이 모습에 호응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죽음과 사랑이라는 것이 이성적/논리적 판단으로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이지만 영화라는, 이야기라는 틀을 통해서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이기에 어느 수준 이상의 이해를 위한 친절을 동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는 뻔한 신파는 피해보려고 하지만, 이런 류 이야기에서의 클리셰에서는 그다지 벗어나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가는 것은 클리셰로 정형화된 이미지를 통해 기대되는 반응이지 결코 이 영화가 바라보려는 방향에 대한 반응이 아닙니다. 죽음에 대해, 사랑에 대해 다르게 바라보려고는 했지만, 결코 관객을 그 의도대로 따르지 못하게 만듭니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주연배우 김명민의 감량으로 많은 화제를 낳았습니다. 배우 김명민의 그 고생에 대해서는 그저 참으로 안쓰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이후로 그의 영화계 에서의 행보는 실망이었고(영화를 선택하는 그의 안목이 특히), 그것은 이번 "내 사랑 내 곁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영화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이하 지 아이 조)는 올여름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중 가장 실망스러운 영화로 생각됩니다.

하스브로의 유명한 완구를 기반으로 한 "지 아이 조"는 근미래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신무기를 운반하던 듀크(채닝 테이텀 분)가 정체모를 일당들에게 습격을 당하며 시작합니다. 그 일을 계기로 듀크와 동료는 '지 아이 조'라는 조직에 대해 알게 되고 신무기를 악당들에게 빼앗긴 후, '지 아이 조'의 일원이 되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들을 상대하게 됩니다.

내용은 말그대로 초간단합니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팝콘 무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컨셉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그 컨셉의 정도가 너무도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차피 이런 영화에서 스토리야 기대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이 영화는 그 정도가 너무합니다. 기본적인 배경의 설명 역시 과감하게 생략하고 들어가는 영화는 간단하게 획일화한 선과 악의 구분을 통해 영화의 갈등 구조를 유지합니다. 그러한 갈등 속에 각각의 편에 여러 명의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그 캐릭터들이 뚜렷한 족적을 남기는 것도 없이 영화 상에서 희미한 잔영만을 남길 뿐입니다. 이 캐릭터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영화의 재미나 구성면에 있어서도 큰 도전이었을텐데, 결국은 실패로 돌아간 것입니다. 아니, 영화를 보노라면 애초에 그럴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뜩이나 위태위태한 스토리라인 속에 캐릭터들의 매력 조차 제대로 펼쳐보이지 못하면서 영화는 나락의 구렁텅이를 향해 한발한발 내딛어 갑니다. 그리고 가장 최악은 뒤늦게 설명하는 배경을 통해서 되지도 않는 반전을 시도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서기 2009년에 이런 식의 진행을 해 나가는 배짱이 가히 놀랍기 까지 합니다. 반전을 시도함에 있어서는 그 이전 영화의 흐름에 있어서 충분한 배경을 깔고 그것을 바탕으로 뒤짚기를 시도하는 것이 기본일진데 이 영화는 그저 순간의 충격을 주고자 아무런 준비없이 그저 말일뿐인 '반전'을 보여줍니다. 이 반전의 충격은 놀라움이 아니라 황당함과 허망함의 충격입니다.

같은 하스브로의 완구를 바탕으로 영화화된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경우, 어차피 유치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동일할지 모르나 그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최소한 거부감은 없게 풀어놨습니다. (물론 2편은 1편에 비해 못하지만.) 그리고 자신이 가진 단점을 압도적인 시각적인 효과로 완전히 감싸안았습니다. 하지만 "지 아이 조"는 나름 힘을 기울였을 CG까지 유치함이 더해져 이야기의 단점을 커버하지 못합니다. 액션신의 효과나 연출 역시도 이 영화만의 특색있는 모습이 아니라 어디에서인가 본 것 같은 모습으로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이며, 후반부의 클라이막스 전투 장면은 마지막의 강한 한 방이 아니라 오히려 맥없는 자포자기의 수준을 보입니다.

개봉 직전, 영화가 형편 없어 테스트 시사 후 감독인 스티븐 소머즈가 해고되었다는 악성 루머가 돌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본편을 보고난 후에는 그 루머가 '악성'이 아니라 진짜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이 영화, 그 정도입니다.


업
픽사의 소속원들은 모두 천재일꺼라느니, 픽사네들은 대체 뭘 먹고 살길래 이런 영화들을 계속 만들어내냐라는 뻔한 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픽사는 역시 픽사니까 말입니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모두가 거침없이 호평을 말하는 장면은 두말할 필요없이 칼과 엘리의 결혼부터 노년까지 이어지는 몽타주일 것입니다. 단 몇 장면만으로 칼과 엘리의 이야기와 칼이 홀로 고독하게 고집불통의 노인이 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장면은 결혼 생활의 행복과 그 안에서의 시련, 그 시련의 극복, 그리고 배우자와 사별하는 아픔을 아무런 대사도 없이 그려내고 있는데, '넌 말이 없어 참 좋아.' 라는 이 몽타주 직전의 엘리의 대사가 불현듯 떠오르면서 픽사의 전작 "월-E"가 자연스레 떠오르기까지 합니다. 픽사가 원하는 그 것. 굳이 대사가 없이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드러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보자면 칼과 엘리의 몽타주와 비슷한 장면은 "토이 스토리2"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사라 맥라클란의 "When She Loved Me"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그려지는 제시의 이야기가 그 것입니다. 두 장면의 공통점은 보는 이의 가슴을 더없이 아련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업"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아마도 수만개의 헬륨가스 풍선을 달고 하늘로 떠오르는 집이라는 만화적 상상력일 것입니다. 총천연색의 풍선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공중으로 집이 두둥실 떠오르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러한 칼의 여행길의 시작 이전에 주목할 만한 부분은 그의 집과 그 주변입니다. 노년의 칼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칼의 집은 재개발이 한창인 공사장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노년의 칼 자체가 괴팍한, 자신의 집에서 은거하는 노인이라는 설정을 위함도 있지만, 개발과 그 개발 속에서도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는 칼의 모습은 불연듯 무언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를 거대한 개발 앞에서 우리 주변의 수많은 추억이 깃든 장소와 물건, 누군가의 소중한 기억들이 어떻게 산산조각이 났는지는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체하며 그저 수수방관해 오고 있습니다. 칼에게는 결국 양로원으로의 종용이라는 형태로 그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을 포기하라는 압력이 들어오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실에서는 칼이 자신의 집을 지킬 방도는 없습니다. 그래서 빌려온 것이 바로 수만개의 풍선,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집 띄우기라는 만화적 상상력입니다. 현실에서는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일이기에 말도 안되는 만화적 상상력이 동원이 되는 것입니다.  냉험한 현실의 벽을 크게 느낄 수록 풍선을 달고 하늘을 나는 집에 열광하게 됩니다.

만화적 상상력으로 두둥실 떠오른 집은 결국은 '중력'이라는 현실의 장애물이 제거된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의 집은 일정 높이에서 부유합니다. 중력이 적용되지 않는 이 풍선 단 집을 지상으로 당기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칼이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한 원인은 그의 사별한 아내 엘리의 소원입니다. 삶을 마무리하고 저 멀리 갈 ('Up' to Heaven) 칼을 이 세상에 붙드는 것은 파라다이스 폭포에 본부를 짓고 싶어했던 엘리의 소원, 그리고 그것을 이뤄주고자 하는 칼의 인생에서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파라다이스 폭포를 향한 모험을 거듭해갈 수록 칼의 목표는 그에게 (그리고 같이 동행하는 러셀과 더그, 케빈에게까지) 시련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케빈의 집 바로 코 앞에서 석양이 지는 가운데 쓸쓸히 홀로 공중에 뜬 집을 끌고 가는 칼의 모습입니다. 아내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그의 어찌보면 낭만적인 꿈의 실현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모하는 모습입니다. 그토록 갈망하던 소원을 이루었지만, 칼의 마음은 그 것이 끝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이제는 당신의 모험을 찾으세요.' 라는 엘리의 마지막 말이 기폭제가 되어 칼은 진짜 그의 모험을 향해 나아갑니다.

찰리 먼츠의 '모험의 정신' 호에서의 대결 중에 칼은 스스로의 결정으로 집(엘리, 그리고 엘리의 꿈)를 내려놓게 됩니다. 이제는 스스로의 모험을 찾기 위해. 그제서야 집은 중력의 힘을 받아 지상으로, 아래로 내려갑니다. 칼은 엘리를 떠나보냈지만 새로운 삶의 이유를 얻습니다. 러셀과 더그입니다. 영화 중간에 비춰지던 러셀의 가정사를 통해 드러난 러셀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 칼의 또다른 삶의 이유이자 목표입니다. 그리고 더그의 새로운 주인의 역할도 칼의 몫입니다. '모험'이 가져다 준 End가 아닌 And의 삶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들이 '모험의 정신' 호 아래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 장면을 통해 다시 한번 영화는 삶에서 (그것이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모험의 가치를 드러냅니다. '모험의 정신'이 있다면 끝이란 없다고 말입니다.

"업"을 통해 다시 한번 증명해보였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와 주제를 풀어나가는 화법, 아름다운 화면들. 픽사는 두말 할 필요없이 거장입니다.

"업"을 통해 보이는 것은 "인크레더블" 이후 픽사의 확실한 행보입니다. "인크레더블" 이후 픽사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전통적 타겟층이던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도 즐길만한 장면과 캐릭터가 있긴 하지만 영화의 주제는 어른들에게 더욱 할 말이 많습니다. 이러한 픽사의 변화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픽사의 팬인 어른으로써 왠지 더 만족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픽사의 최초 3D 상영 방식의 애니메이션인 "업"은 기존의 3D 상영 방식의 영화들이 추구하던 방향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기존 3D 상영 방식의 영화들이 3D라는 시각적인 효과를 보이려고(흔히 홍보 사진에 나오는 사람을 덮칠 듯이 튀어나오는 공룡 같은) 부단히 노력했다면, 픽사의 이 "업"은 그보다는 3D를 통한 자연스러운 입체감과 원근감을 표현하는 것을 그 목표로 삼고 있는 듯합니다.  3D 상영의 효과가 홍보상의 그것과는 격차가 심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영화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봤을 때, 픽사의 이런 모습은 최선의 방법이었다 생각하게 됩니다.

국내 상영본은 3D 디지털 자막이 없던지라, 일반 상영 자막과 3D 디지털 더빙을 모두 보았는데, 더빙이 그리 크게 이질감이 들지 않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칼의 목소리를 연기한 이순재 씨는 그간의 이미지와 더불어 목소리까지 칼이라는 캐릭터에 훌륭하게 동화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다만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마지막 엘리의 메시지가 더빙 판에서는 따로 나레이션으로 흘러나오거나 하지를 않아서 일종의 옥의 티로 남았습니다.

더빙판도 만족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최고는 3D 디지털 자막인데, 이번 "업"도 그렇고 국내 극장가에서 약세를 면치 못하는 픽사 영화이기에 이런 불편함은 어쩔 수 없이 계속 감수해야 할 듯 해 너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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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영화 “국가대표”라는 스키점프라는 종목을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입니다. 스포츠 영화는 안 된다는 국내 영화계의 오래된 전통(?)을 깨고 “킹콩을 들다”나 이 영화 “국가대표” 그리고 “돌 플레이어”라는 영화까지 줄줄이 대기 중인 것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흥행 성공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킹콩을 들다" 때도 적었던 이야기의 중복)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킹콩을 들다” 같이 “국가대표” 역시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팩트에 기반을 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찌됐든 ‘실화’라는 부분은 단순한 픽션보다는 더 관객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대표”에는 크게는 스키점프 선수 5명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습니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자신의 생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찾은 전 미국 청소년 알파인 국가대표 차헌태(하정우 분), 청소년 시기 전국대회에서 수상도 했으나 본드를 불어 자격이 박탈 된 최흥철(김동욱 분)과 엄한 아버지에게 잡혀 사는 마재복(최재환 분), 고령의 할머니와 정신지체 장애를 둔 동생 봉구(이재응 분) 때문에 군입대를 피해야 만든 강칠구(김지석 분)이 그들입니다. 해외 입양아, 한국 스키계의 아웃사이더인 이들은 방 코치(성동일 분) 아래 모여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됩니다.

영화는 이처럼 각자의 사연이 있는 오합지졸들이 스포츠를 통해 하나가 되고 다가오는 역경을 이겨낸다는 스포츠 영화의 전형적인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듯 합니다. (동계스포츠라는 점에서 “쿨러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그 공식을 따라가는 것에만 너무 많은 힘을 쏟았다는 것입니다. “국가대표” 내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그들이 영화의 중심에 놓여져 있지만, 그 캐릭터들만의 매력이나 성격, 그리고 그들 각각의 이야기에 대한 묘사가 너무도 부실합니다. 살아나지 않는 캐릭터성은 결국 이야기의 전개상에서도 그들의 갈등과 그 해결 과정이 너무도 단순하고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스포츠영화의 공식에 맞추기 위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안쓰러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연출력도 그에 따라 짜임새 있게 보이지 않는데, 일부 전개 과정에서는 불필요한 도돌이표를 찍으며 필름 재활용을 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지체되는 전개의 이유가 캐릭터성의 구축도 아닌 상황인지라 그저 의아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나마 클라이맥스의 스키 점프 경기 장면을 연출은 만족스럽습니다. 스키 점프라는 어쩌면 짧은 순간에 이뤄지는 실제 경기 장면을 상당히 임팩트 있게 스크린 상에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인상적인 경기장면을 뒤로 하고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신파는 피할 수 없는 옥의 티입니다. 그것이 관객에게 손쉽게 먹히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스포츠영화는 스포츠의 감동을 통한 눈물 보다는 신파의 눈물이라는 조금은 이상한 성격으로 규정되고 그대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커집니다.

P.S 오랜만의 감상기네요. 이 영화 본지가 대체 몇 주 전인지;

해운대
어떻게 보면 “해운대”는 영리한 영화입니다. 막대한 CG를 쏟아 붓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같은 외양을 갖기 위해서는 제작비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영화는 초중반까지는 드라마를 구축하고, 막판에 메가 쓰나미를 등장시킵니다. 제한된 제작비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구상은 좋았으나, 효과적인 방향으로의 실현은 요원했을 뿐입니다.

윤제균 감독은 반복해서 ‘한국형’ 재난 영화를 외쳐왔습니다. 그것은 영화의 홍보에도 이어졌는데, 과연 그 ‘한국형’이란 무엇일까요? 윤제균 감독의 말들을 보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헐리우드의 영웅주의를 그 기준으로 둔 것 같습니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그러한 영웅주의를 배제한 이야기가 있는 영화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헐리우드’와 대비되는 ‘한국형’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불만입니다. 차이점을 전혀 내세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내세웠던 기치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투머로우”를 넘어서겠다 였지만, 그리고 “투머로우”와의 비교를 해보자는 뉘앙스였지만 “투머로우”는 “해운대”와 같은 카테고리로 묶여서 비교를 하기에는 핀트가 좀 어긋난 재난 영화입니다.(CG를 통한 비교로 발전된 기술력을 과시할 용도도 물론 있겠지만.) 재난영화 라는 장르가 같을지야 모르겠지만 그 구조 등은 다른 영화라 오히려 더 비슷합니다. 그런 영화들이 이미 헐리우드에 있으니 또 그와는 다른 색다른 것도 없으니 '한국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보다는 '한국 배경' 재난영화라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해운대”는 “괴물” 같은 (모두가 인지하는 공통의) 장르적 속성에서의 일탈을 꾀한 영화가 아니라 그저 장르 안에 안주하는 영화로 보고 싶은 면만 본 ‘헐리우드식’ 재난 영화와의 비교를 꾀한 영화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해운대”의 비교대상은 “투머로우”가 아니라 “타이타닉”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쪽은 더욱 더 넘사벽) ‘한국형’이라는 유니크한 타이틀을 내세우는 것은 그저 말장난입니다.

“해운대”는 해운대 토박이 만식(설경구 분)-연희(하지원 분) 커플, 해운대 해양구조대원 형식(이민기 분)- 삼수생 희미(강예원 분) 커플, 지질학자 김휘(박중훈 분)- 이혼한 아내 유진(엄정화 분)의 세 커플을 주요 등장인물로 등장시키며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이 드라마의 구성 및 전개는 전형적인 윤제균 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구사하는 유머와 그의 캐릭터들, 그리고 전작 “1번가의 기적”에서 쏠쏠히 재미를 봤던 아이를 활용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윤제균 감독이 주장하는 ‘헐리우드식’ 과의 차이를 위해서 영화는 재난을 경험하게 될 일련의 소시민들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 윤제균 식이 주는 재미(와 그에 따른 역기능도)는 분명하나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구심점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분리된 세 커플이 서로 나눠가지는 주목도와 분산된 이야기는 ‘쓰나미’를 향하는 영화의 흐름에 가속도를 붙이지 못합니다. 정작 이야기에 신경을 쓰겠노라고 했지만 클리셰라고 정의할 수 있는 인물이나 상황같은 요소들이 노출되고 구태의연한 흐름으로 인해 정작 차별화를 두는데 실패합니다. 말그대로 전형성을 답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전형성의 답보, 그 구태의연한 상황이 배우들을 어떻게 망치는지 보여줍니다.) 또한 재난이라는 상황 중에 그리고 그 이후에도 불쑥 끼어드는 개그 코드는 고조된 감정을 흩뜨립니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우려했던 CG가 그런 우려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는 헐리우드의 CG의 질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그것을 통해 관객에게 주고 싶었던 느낌을 방해없이 전달할 만큼의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확연히 구분되는 드라마와 CG 등장 재난씬이라는 영화의 전개 구분이 큰 단점으로 작용하지만 반대로 CG의 압박감이 짓누르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효과도 있습니다.

분명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마음을 갖고 몇몇 보였던 장점들을 파악하고 살린다면 좁게 국한된 한국영화의 장르 개발에 도움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게 위안이 된다면 말입니다.

P.S 다스 베이더 경을 경배하라!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딱히 애정이 없는 시리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참 불편합니다. 요만큼의 애정이라도 있어야 좋은 소리를 하든 싫은 소리를 하든 제 개인적으로 재미가 있을텐데 말이죠.

예, 평소 제 블로그를 자주 접하시는 분들이라면 제가 이 "해리포터" 시리즈를 '그냥 극장에 걸리는 영화니까' 본다는 것은 아실 것입니다. 저는 원작소설이든 그것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든 이 시리즈 자체에 재미를 못 느끼고 있거든요. 이 시리즈를 보러 극장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은 능동적이 아니라 다분히 수동적인 느낌이라(이런 영화는 이 시리즈가 유일할 듯) 그것도 불편함의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번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는 전작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 이어서 일부 장면을 IMAX DMR 3D로 볼 수 있습니다. 전작이 끄트머리에서 3D 안경을 사용했다면, 이번 영화는 영화의 오프닝 및 초반 일부가 3D로 상영됩니다. 전작에서 시간은 흘렀지만 여전히 이 영화의 3D 상영은 별 이펙트가 없습니다. 내가 고작(!) 이걸 보자고 조조임에도 달랑 천원 할인되는 IMAX DMR 3D 버전을 봤단 말인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영화는 마지막 대단원을 향하기 위한, 그 대단원으로 가는 길의 디딤돌 역할을 합니다. 그 역할을 위해 영화는 전작보다 한층 어두워졌고 미스테리적 요소도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단순히 그 디딤돌 역할일 뿐이기 때문에 시리즈 전체로서라면 몰라도 이 영화 한편으로만 본다면 다분히 심심한 영화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크게는 두 개의 축으로 나눠집니다. 론과 헤르미온느의 애정전선이 이어지는 과정 및 지니를 바라보는 해리의 타오르는 눈빛(응?), 그리고 볼드모트와 관계된 호크룩스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분위기는 분명 어둡고 암울한 모드인데 정작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청소년 시기를 맞은 호그와트의 세 주인공들의 러브 모드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볼드모트와 호크룩스의 이야기는 왠지 러브모드에 무임승차를 한 느낌이 역력합니다. 이 영화에서 썰을 푸는데 있어서는 그들의 사랑이야기도 사랑이야기지만 준비해놓은 미스테리함을 더 깊이있게 그리고 결말을 내는데 역량을 더 동원했어야 합니다. 불쌍한 말포이는 이번에도 거의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혼혈왕자의 정체가 드러날 때의 이펙트 역시 한없이 약하고 말입니다. 앞서 심심하다라고 표현한 것은 영화가 풍기는 외적 분위기와 다른 그 속의 이런 내용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많은 분량을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안에 맞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가 드러난 결과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미스테리함을 살리기 위해서는 살려야 할 부분이 너무 많고, 그러다보면 다른 필요한 전개상의 요소들을 살릴 수는 없고. 그래서 결국에는 중요하고 굵직한, 그래서 마지막 이야기에 필요한 부분은 살려두고 러브모드를 더 많이 살려둔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어차피 소설의 팬들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이는 것만으로도 흥행은 보증되는 시리즈이니 별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도 (애정이 없는 이가 봐서인지 몰라도) 시리즈가 갈 수록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두 편으로 나눠 개봉하는 마지막 이야기로 확실한 막판 뒷심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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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플라이트
해체 위기의 남자수영부의 부원들이 펼치는 수중발레("워터 보이즈"), 여고생들의 스윙밴드 도전기("스윙걸즈")를 연출했던 야구치 시노부 감독이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곳은 공항입니다.

언급한 두 편의 영화들이 육체적인 '성장' 뿐만 아니라 광의의 '성장'의 개념이 자연스러운 청소년과 그들의 공간을 다루었다면 "해피 플라이트"는 어른들의 세계, 그 중에서도 전문직이라고 할 수 있는 공항에서 펼쳐지는 한 일상의 단면을 엿보고 있습니다. '성장'이라는 것이 구지 청소년에게만 해당 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사람은 '성장'하기에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이전의 영화들에서도 그러해듯이 "해피 플라이트"에도 하나의 목표와 그를 둘러싼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하네다 출발, 호놀룰루 도착의 항공기에 기장 최종승격 테스트를 받기 위해 올라탄 부기장 스즈키(다나베 세이치 분), 첫 국제선 데뷔를 하는 스튜어디스 에츠코(아야세 하루카 분), 후배 직원 교육에 신경쓰랴, 고객담당업무에 신경쓰랴 정신없이 바쁜 나츠미(타바타 토모코 분) 등 공항의 각각의 업무를 맡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들이 겪는 갈등과 그 성장통의 과정은 다르지만 이들의 목표는 같습니다. 안전한 항공기의 운항과 고객서비스. 스즈키는 예기치 못하게 발생한 항공기의 결함에 당황하지만 하나하나씩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승객이 주문한 서비스를 순서가 뒤바낀체 기억했다가 실수를 하고는 낙심한 에츠코지만 다시 용기와 웃음을 되찾습니다. 이들에 닥친 문제의 해결은 결코 그들 자신들만의 노력과 그 성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스즈키에게는 그가 무서워하던 기장 하라다(토키토 사부로 분)과 관제탑 및 통제부서 직원들의 노력이 있었고, 에츠코에게도 그녀의 실수를 호되게 나무라던 무서운 팀장이 있었지만, 그 팀장의 슬기로운 대처능력을 지켜보고 그 팀장과 동료 스튜어디스들의 독려로 에츠코는 성장해나갑니다.

우리의 인생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때로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그래서 좌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끝은 아닙니다.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믿고 또한 자신을 믿고 다시 일어나 새로운 도전에 나서며 끊임없이 성장하는 모습이 우리 삶의 원동력이자 곧 우리의 삶 자체입니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공항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통해 우리 삶을 축소해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잊고 살기 쉬운'이라고 흔히들 이야기되는, 그래서 다분히 진부한 주제이긴 하지만 "해피 플라이트"에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자신이 창조한 여럿의 캐릭터들과 그 캐릭터들 하나하나가 잉여자원이 아닌 꼭 필요한 캐릭터로 자기 몫을 다하게 만드는 조율능력, 깔끔한 이야기 전개와 마무리는 이 영화에 따스한 시선을 보내게 합니다. 물론 그 시선의 이면에는 아야세 하루카를 향한 제 음흉한 시선도..(퍽!)

P.S 거의 10개월만입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정상 보지 못하고 서울로 다시 올라와야 해서 참 아쉬움에 남았던 영화였으니까 말입니다.

신정원 감독의 데뷔작 "시실리 2km'가 '펑키 호러'라는, 공포물 스러운 뉘앙스를 풍기는 외향만 취하고 실제로는 코메디 영화였듯이 이번 영화 "차우" 역시도 괴수물의 탈을 쓴 코메디물입니다.

전작 "시실리 2km"가 거의 모든 지향점이 코메디로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 "차우"는 그나마 조금은 더 괴수물의 특성을 보여주려한 기색이 있다는 것이 그 차이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10년째 범죄없는 마을인 것을 자랑으로 삼던 삼매리에 식인멧돼지가 출몰하는 위기가 닥치고 서울에서 음주운전단속을 하던 김순경(엄태웅 분)이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삼매리로 전근을 오게 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삼매리를 위협하는 식인멧돼지의 횡포는 점점 심해지고 김순경과 식인멧돼지에게 손녀를 잃은 전설의 포수 천일만(장항선 분), 유명 포수 백만배(윤제문 분), 멧돼지를 연구하는 대학원생 수련(정유미 분), 의뭉스러운 신형사(박혁권 분)은 식인멧돼지를 잡기 위해 녀석의 본거지로 향합니다.

신정원 감독은 불쑥불쑥 코메디를 치면서 주위를 환기시키기를 자주 하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전작 "시실리 2km"보다 그 정도가 더한 모습을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코메디적 감각은 상당히 좋다는 것입니다. 괴수물과 코메디의 만남 자체가 B급 코메디의 향취가 절로 나기도 하지만서도 기본적인 감각이 없다면 그 기운을 충분히 살리기 어려울 텐데, 영화는 적어도 코메디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한 웃음을 선사해 줍니다.

문제는 괴수물이라는 측면에서인데, 괴수물이라는 느낌이 영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식인멧돼지의 몇몇 CG의 퀄리티가 썩 좋지 못하다는 것 같은 문제가 아니라 정작 괴수물의 분위기를 타야할 때조차조 예의 그 코메디로 분위기를 반전시켜버립니다. (마치 정준하가 그토록 바라는 불꽃같은 애드립을 보는 듯한.. 예능에서라면야 좋았을테지만.)

앞서 말했듯 "시실리 2km"야 그냥 코메디물이라 치부되어도 될 정도지만 이번 "차우" 같은 경우는 여러모로 괴수물로서의 모습을 보이려고 꾸준히 시도는 합니다. 하지만 정작 계속 치고 들어오는 코메디 때문에 영화의 분위기는 심히 난잡해져갑니다. 처음에야 그 코메디로 웃을 지언정 뒤로 갈수록 영화는 주인공들 따라 저 멀리 산으로 가는 느낌입니다. 영화는 이야기 중에 종종 이 식인멧돼지란 것이 결국은 인간의 욕심이 불러낸 것이다 같은 메세지를 던져주려고 하는데 그 주제 자체도 한없이 진부할 뿐더러 영화를 산으로 가게 만드는 데도 어느정도 한 몫을 합니다.

전체적으로는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더 큰 영화긴 하지만, 배우들 측면에서는 매우 긍정적입니다. 주조연 가릴 것 없이 자기의 캐릭터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연기합에 있어서도 착착 들어맞는 모습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혁권 더 그레이트', 박혁권 씨의 그 능청맞은 연기가 마음에 들었고 그리고 사랑해요, 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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