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거장들의 31편의 선물보따리, "그들 각자의 영화관"을 보고 나서 문뜩 저에게 있어 영화관과 영화가 주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영화관에 얽힌 추억, 그리고 의미들을 말이죠. 말그대로 잡담인지라, 그냥 두서 없이 적어내려가겠습니다.

그들 각자의 영화관

- 제가 영화관이란 공간에서 언제 처음으로 영화를 봤는지는 정확히는 기억이 안납니다. 추측해보기로는 1988년에서 1989년 사이 같은데 당시 어머니 손을 붙잡고 갔던 곳은 지금은 없어진 봉천극장입니다. 연속상영을 하는 극장이었는데, 그 때 지금은 목사가 된 개그맨 김정식 씨가 출연한 "슈퍼 홍길동"(몇편인지는 기억이 잘..)과 "우뢰매"(역시 몇편인지 잘 기억이..)를 연속상영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극장들이 그러했듯이, 좌석은 그냥 들어가서 아무데나 앉고, 그냥 버티고있으면 몇번이고 계속 볼 수 있는 방식이었죠. 늦게 도착해서 앞편의 거진 2/3를 놓친지라, 계속 앉아서 주욱 봤더랬지요.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상당히 재미있게 본 것 같습니다. 분명 어설픈 합성이지만, 구름 타고 날아다니던 김정식 표 홍길동을 아직도 기억나는걸 보면 말이죠.

슈퍼 홍길동 우뢰매

- 위의 경험이 먼저인지 이 경험이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는 그때 대부분의 남자애들이 그렇듯이 저도 태권도장을 다녔습니다. 그때 도장에서 뿌린 표가 있어서 가게 된곳이 아마 국기원에 있는 어느 곳이었을 겁니다. 태권도장-국기원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영화는 태권도에 관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소년이구요. 아마 내용이 이랬던 것 같습니다. '태권도 선수였던 아버지가 시합 중 사고로 돌아가십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단둘이 된 소년이 훗날 태권도 선수로 성장해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시합에게 이기게 됩니다.'...참 내용이 그렇고 그렇죠. 근데 그당시에는 또 그게 재미있었나 봅니다. 제 기억으로는 앞에서 팔던 이 영화의 (무려!) OST 테이프를 사들고 집에 와서 참으로 징글맞게 들었으니까요. 혹시 이 영화 제목 아시는 분?

- 동생까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신지라, 영화를 딱히 극장에서 본 기억은 없습니다. 부모님께서 딱히 문화생활을 누릴 시간도 없으셨구요.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참 책만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뭐, 비디오도 많이 빌려보곤 했지만요. 그 당시 유행하던 '강시'시리즈. '후레쉬맨' 시리즈 등등..어릴때의 그 기억때문인지 몰라도 전 아직도 제 인생 최고의 공포영화는 이름도 기억안나는 그 '강시'시리즈입니다. 영환도사 최고;;;

강시소자

- 극장은 아주 옛날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데이트코스의 대명사입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은 가지고 있을테지요. 저 역시도 그러한데, 첫사랑과 같이 본 영화는 잊지 못합니다. 때는 2002년 월드컵의 열풍이 불어닥칠때, 고3이던 저는 공부는 그냥 그럭저럭 하면서 딴쪽에 빠져있었습니다. 첫사랑 그녀한테요. 그 아이와 처음(이자 인생 처음으로 여자와 단둘이 데이트 목적으로..)본 영화가 조승우, 이나영 주연의 "후아유"입니다. 그 아이와는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다가 군대 있을때 채였지만... 그래도 영화 "후아유"는 아직도 기억에 크게 남아있습니다. 영화 자체가 좋았기도 하겠지만, 그때의 설레임 때문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배우로서의 조승우와 이나영을 좋아합니다. 왠지 모르게 추억을 공유한 듯한 느낌.(푸훗.)

후아유

-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때 처음으로 사운드의 중요성에 대해 일깨워 준 영화. "반지의 제왕"입니다. 당시 메가박스 1관(지금의 M관)에서 봤는데, 영화보는 도중에는 뒷사람이 계속 의자를 차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좀 기분이 상해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당시 PC통신 하이텔을 했는데, 그곳 영화게시판에서 이것저것보다보니..)그게 우퍼 때문이었더군요. 정말 처음이었다구요. 극장에서 의자가 흔들리는 경험은... 그후로 영화관의 미덕은 단순히 스크린뿐만 아니라, 최적의 사운드도 포함된다는 굳은 신념이 생기게 됩니다.

반지의 제왕

프로도와 빌보가 이러는 듯..'그것도 몰랐냐,멍청이..;;'

-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래도 영화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지금만큼 극장을 많이 찾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때야 공부한다 그랬다쳐도, 대학교와서도 그랬죠. 하지만, 군대갔다온 이후로는 제가 생각해도 좀 과하게 많이 가는 편입니다. 그게 아마도 일종의 마음의 상처 때문이라고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몇번 블로그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전 "스타워즈"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서 말해봤자 별 상관없는 것이니 생략하고... 제가 군대에 입대하고, "스타워즈 EP3 : 시스의 복수"가 개봉했습니다. 찾아보니 5월 26일에 개봉했군요. 5월 초에 100일 휴가를 나와서 못보고 들어간지라,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일병을 막 달때 모범병사로 뽑혀서 2박3일 포상휴가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7월에 딱 나온 후, 재빨리 상영극장을 찾았지만, 아뿔사...수도권에서는 이미 2주일 전에 마지막 상영을 했더군요. 그 허탈함이란.. 그후로는 휴가,외박나와서도 꼭 극장에서 영화 두편이상은 보고 들어갔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제대한 이후 아주 조금이라도 관심이 가는 영화는 가능하면 무조건 개봉한 그주에 보는 버릇이 생겨버렸습니다.

스타워즈EP3

이걸 극장에서 봤어야 하는데 ㅜ_ㅠ

- 영화를 좋아하다보면 연계되어 빠질 수 있는게 DVD 및 홈씨어터, 영화 관련 피규어 등입니다. 저도 그러했는데요, DVD도 한때는 많이 사모았습니다. 하지만, 차세대 매체도 나오고 극장에서 대부분의 영화를 소화하다보니 DVD수집에 흥미를 잃게 되더군요. 지금은 몇편빼고는 다 팔았습니다. 이와 관련되어 홈씨어터에도 조금 관심을 가졌는데, 이게 결국 돈인지라, 난중에 취직해서 돈 모으고 건드려야 겠다 생각하고 지금은 그냥 처음 샀던 입문용 5.1ch만 두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피규어.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을 좋아해서 관련 피규어들을 좀 모았었습니다. 이베이 등의 해외에서도 주문하곤 했는데, 그렇게 비싼건 모으지 않았습니다. 돈이 있어야지요. 뭐, 결국은 지름신과 돈의 갈등 끝에 현실이 승리하면서, 지금은 다 팔았습니다.

샌드트루퍼

한때 가지고 있던 샌드트루퍼 3형제

- 뜬금없이 영화관에서 영화보는 걸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뭐랄까 영화를 보는데 가장 최적화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영화가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주기 때문인데요, 상영관에 불이 꺼지고 눈 앞 가득 스크린만 들어오게 되는 그순간, 그곳에서 효과가 가장 극대화됩니다. 누구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거나,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날때 이용하는 수단이 있지요. 어떤이는 그게 술일수도 있고, 어떤이는 잠일수도 있고.. 저에게는 영화입니다. 그렇다보니 영화관에서 제 그것을 방해할때가 가장 짜증납니다. 끊임없이 속닥거리기, 전화하기, 핸드폰 확인하기, 상체 꼿꼿이 세우고 앉아 스크린가리는 사람(나보다 키도 작구만!) 등등...;;

- 아이들을 좋아해서인지 몰라도, 나중에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하면 애들데리고 극장을 자추 찾아 영화를 많이 보여주고 싶습니다. 물론, 극장에서 조용히하라는 주의는 꼭 주고 말입니다. 아, 그전에 일단 책을 더 많이 읽힐 생각이긴 하지만요.

- 이거 글 제목을 그냥 '스테판의 영화관'으로 할걸 그랬나요...

그들 각자의 영화관
여러분에게 '영화관'이라는 장소와 그 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떤 의미인가요? 옴니버스 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지난해 칸영화제의 60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거장이라 꼽히는 35인의 감독들이 그 물음에 대한 각자의 대답을 담은 33편의 단편(마이클 치미노와 코엔형제의 작품 경우 자신들의 이 영화가 상업적인 용도에 쓰이지 않았으면 해서, 그들의 작품은 빠져있습니다. 즉 31편)을 담은 영화입니다. 칸영화제의 생일을 위한 참 특별한 선물인 셈이지요.(작년 선물이긴 하지만요.)

그 중에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 몇개만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각각의 단편의 내용들이 있습니다.)

-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3분"(Three Minutes), 구스 반 산트의 "첫 키스"(First Kiss)
"3분"은 극장에 들어선 한 여자가 보이며 시작합니다.  그녀는 계속 누군가를 찾아 헤맵니다. 그리고는 결국 찾던 남자를 발견합니다. 스크린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 그녀는 그에게 절절한 사랑의 감정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앵글 밖에서 들려오는 한마디. '컷, 3분 다 됐어요.'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은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그 속으로 빠져듭니다. 영화관이 주는,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바로 그 순간을 말하고 있는 단편입니다. "첫 키스"는 극장에서 영사 준비를 하는 한 소년을 보여줍니다.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시원한 바닷가, 그리고 그 안의 아름다운 여인. 어느새 소년은 스크린 안에 들어가 아름다운 그녀와 키스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단편 역시 현실과 영화의 그 경계를 지우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제목인 "첫 키스"와 소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를 통해 영화관에서 이뤄지는 성장의 모습도 말하고 있습니다.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애나"(Anna), 첸 카이거의 "자전거 모터"(Zhanxiou Village)
이 두 작품은 공통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바로 영화라는 것이 그저 시각적인 방식으로만 소통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애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한 여자를 비춥니다. 영화가 계속 되는 도중 옆에 있는 남자가 그녀에게 영화의 내용을 조그마한 목소리로 설명해줍니다. 여자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영화관을 나온 그녀는 뒤따라 나온 남자에게 묻습니다. '영화가 흑백이었나요?' "자전거 모터"는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보고 있는 아이들을 보여줍니다. 그러던 중 배터리가 나가게 되고, 아이들은 자전거를 발전기 삼아 영화를 봅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쫓아내는 한 사내. 하지만, 아직 도망가지 않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가 사내에게 묻습니다. '영화 끝까지 보면 안되요?' 이때까지 흑백이던 영화는 컬러로 바뀌고, 앞이 보이지 않는 나이든 사내가 영화관 의자에 앉습니다. 이 사내가 그 어린 소년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 난니 모레티의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의 일기"(Diary of a Movie-Goer)
이 단편이 어쩌면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영화관에 대한 이야기이지도 모르겠습니다. 난니 모레티는 영화관에 얽힌 자신의 추억담을 이야기합니다. 이 극장에서는 어떤 영화를 보았고, 아들과는 영화관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였습니다.

- 장예모의 "영화 보는 날"(Movie Night)
어떤 산골마을에 간이영화관이 설치됩니다. 들뜬 마을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가운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슴 설레여보이는 한 꼬마가 보입니다. 영화가 상영되기를 기다리는 꼬마의 모습이 참 귀엽게 느껴집니다. 영화를 보고 싶은 순수한 어린이의 모습을 잘 표현해낸 단편입니다.

- 라스 폰 트리에의 "그 남자의 직업"(Occupations)
극장에 앉아있는 한 남자. 그리고 그 옆에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보입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옆의 그 남자는 몸을 비비꼬더니 라스 폰 트리에에게 계속 말을 겁니다. 자신이 영화평론도 하지만 또한 잘나가는 사업가라는 둥, 앞으로 가죽사업이 비전이 있다는 둥...계속 라스 폰 트리에의 신경을 건듭니다. 그의 마지막 질문, '당신의 직업은 뭐요?' 라스 폰 트리에가 답합니다. '살인자'. 그러고는 장도리를 꺼내어 그를 무참히 두들겨, 조용히시키는 라스 폰 트리에. 이제는 조용히 영화 감상할 시간입니다. 이 정도까지의 수위는 아니지만, 이런 생각을 유발하게끔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지요.

- 마누엘 데 올리비에라의 "독특한 만남"(Sole Meeting)
구소련의 후르시초프 서기장과 교황 요한 23세가 한자리에서 만납니다. 후르시초프의 보좌관의 묘하게 설득력있는 설명으로, 그는 교황을 동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오는 교황. 교황은 후르시초프의 배를 만지며, '우리도 공통점이 있네요.'라고 말합니다. 영화가 빗어낼 수 있는 유쾌한 상상력을 그린 단편입니다.

- 월터 살레스의 "칸느에서 8,944km 떨어진 마을"(A 8,944km de Cannes)
프랑소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가 상영 중인 극장 앞에 서있는 두 명의 남자. 그 두 남자는 티격태격 신나는 노래판을 한바탕 벌이면서 칸영화제의 60회 생일을 축하합니다.

-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최후의 극장에서 자살한 마지막 유태인"(At the Suicide of the Last Jew in the World in the Last Cinema in the World)
지구상에서 남은 최후의 극장의 남자화장실에서 자살하려는 최후의 유태인과 그의 모습을 해설하는 두 명의 캐스터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이 단편은 권총을 머리, 눈, 입으로 옮기면서 쏠까 말까 하는 유태인(데이빗 크로넨버그 그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그 짧은 3분의 시간동안 극도의 서스펜스를 유발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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