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도
변혁, 허진호, 유영식, 민규동, 오기환. 이 다섯 명의 감독은 대체 이 영화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걸까요?

"오감도"는 '에로스'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다섯 명의 감독들이 각각 한 편씩의 연출을 맡은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각 감독들이 어떤 식으로 표현해 낼지를 비교해 보고 그 감독의 색을 찾아보는 것이 옴니버스 영화의 재미일 수도 있지만 그 재미를 음미할 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오감도" 속의 다섯 편의 완성도는 형편 없습니다.

각각이 한편의 단편영화라고 보기에도 어정쩡한 이야기 구성과 전개, 그리고 그 한편에서 어우러지는 배우들의 호흡도 인상을 찌푸릴만큼 삐그덕대며 연기력도 널을 뜁니다. 저렴한 제작비로 완성했다 하는데, 그 저렴한 제작비로 인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에도 못미치는 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최소 2편 이상의 장편 연출작을 내놓은 감독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친분으로 끌어모은 게 아닐까 생각되는 배우들을 데리고 단편 영화 찍을 때의 습작 수준에도 못미치는 영화들을 끌어모아다가 '에로스, 그 이상의 사랑 이야기'라는 괜시리 거창한 주제를 붙여서는 얼기설기 이어놨습니다. 보통의 옴니버스 영화들이 그 안의 모든 편이 마음에 드는 것은 상당히 드물지만 그 안의 모든 편이 다 마음에 안드는 이번과 같은 경우도 참으로 드문 것 같습니다.

"오감도"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 '에로스'? 아닙니다. 주궁장창 늘어지며 하품까지 나오게 하는 키스씬입니다. 대체 저 입술박치기는 언제 끝나나요?

마린 보이
"마린 보이"는 저 푸른 바다 위의 팔라우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 살고 싶었던 수영강사 천수(김강우 분)가 도박판에서 모든 돈을 잃고 빚까지 얻어 목숨이 위태롭게 된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천수가 자신의 눈을 너무 믿었던 것이 패인이었습니다. 자신이 본 것이 옳다고, 자신이 옳다고 무조건적으로 믿게 되면 때로는 뼈아픈 결과를 내기도 하는 법입니다. 영화는 전반부에 많은 것들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그 패를 믿게끔(도박판에서의 천수처럼) 유도하고는 마지막에 그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역시나 천수처럼)

천수는 빚을 탕감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사장(조재현 분)의 일을 돕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마약반 형사(이원종 분)가 강사장을 돕도록 하는 끄나풀 역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강사장과의 사이에서는 매력적인 유리(박시연 분) 때문에 갈등을 빚습니다.

영화는 소위 말하는 쿨한척을 하는 영화입니다. 주인공 천수는 목숨이 왔다갔다한 상황에서는 과도한 낙천스러움을 잃지 않으며, 영화가 비록 스릴러로서 잘 짜여진 영화인 것은 분명 아닌지라 그 점을 영화의 속도감으로 가리려 합니다. "무한도전" 찮은이형의 So~ Cool처럼 본인이 생각하기에만 제대로 쿨한 것 같다는게 문제이긴 합니다만. 찮은이형의 쿨함은 웃음을 주지만, 이 영화에서의 그런 쿨함은 그저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가 않습니다. 특히나 에필로그 격 결말의 내용은 어정쩡한 쿨함의 진수입니다. 영화 보고 남는 것이 극중 유리역의 박시연의 몸매 정도 밖에 없다는 것이 결국은 이 쿨함을 드러내는 또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볍게 즐기고는 잊어주세요. 그런 의도라면 어느정도 수긍이 가고, 대략 어느 선까지는 그에 부합하는 면을 보입니다.

영화는 제목과도 같은 '마린 보이'라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는 않습니다. 영화 초반부에는 '마린 보이'라는 소재에 대해서 무언가 크게 다룰 것 같은 일면도 보이지만,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바다가 아니라 땅 위에서 벌어지는 캐릭터들의 과거 속 진실과 그로 인해 얽히고 엃킨 관계들, 그로 인한 갈등입니다. 사실상 일종의 카체이스, 총격씬 같은 일체의 액션장면은 거의 모두가 지상에서 이뤄지는데 이 것들은 극의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인물간의 갈등을 표면에 내세우다가 후반부에 들어서는 액션 장면들을 채워넣는데, 영화에 많은 것을 담으려는 노력은 십분 이해하겠지만, 돌연 변하는 전/후반부의 흐름은 눈에 걸립니다. 거기에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집어넣은 액션 장면의 규모나 그것이 주는 이펙트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담는 것이 아니라 담긴 것이 적더라도 그 하나하나를 가지고 빛나게 하는 능력이 아쉽습니다.

올한해 한국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한다면 장르영화 , 그 중에서도 스릴러가 많이 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리턴","검은집","세븐데이즈", "우리동네" 등.  "가면"은 그런 올한해 한국영화의 흐름을 마무리하는 스릴러 장르의 영화입니다.

가면
영화 "가면"은 올한해 만들어진 한국 스릴러 영화 중 "세븐데이즈"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우리나라 관객이 많이 접하고 익숙해진 미드의 시각적인 면이나 편집의 영향을 받아 소화한 영화임에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니 "세븐데이즈"가 마지막 법정의 모습에서, "가면"은 경찰서의 모습에서 보이는 현실과는 다른 모순도 비슷합니다. "세븐데이즈"가 그런 보여지는 면 안에 모성애적 코드를 집어넣었다면, "가면"은 동성애적 코드와 우리사회에서의 시각, 군대내에서의 성추행/성폭행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류의 스릴러 장르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범인을 밝혀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관객에게 긴장감을 주고 호기심을 이끌어내느냐, 거기에 곁들여 범인에 관련된 일종의 반전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면"은 그런면에서는 부족해보입니다. 영화 중반부에 이미 쫓는 인물이 누구일것이라다는 것을 너무 크게 알려버리면서, 그 후로는 스릴로서의 긴장감을 만들어내지를 못합니다. 더 이상 스릴러의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고 할까요. 크레딧 직후에 보여지는 영상은 반전으로 다시 한번 스릴러로 회귀하려는 듯한데, 이미 늦었습니다. 그에 어느정도 일조하는 것이 조경윤(김강우 분)을 연모하는 동료형사 박은주(김민선 분)의 캐릭터인데, 그녀의 캐릭터 때문에 긴장감이 끊어진 중반부 부터는 조경윤과 박은주, 그리고 차수진(이수경)의 관계에 오히려 더 관심이 가게 만듭니다. 속으로는 사랑을 키우면서, 겉으로는 동료인 척 하는 박은주의 캐릭터가 또다른 '가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영화 "가면"은 주연배우의 김강우 씨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영화입니다. '스릴러를 표방한 멜로'. 이미 충분히 눈치챌 수 있는 범인이 밝혀지고, 진행되는 엔딩 역시 그러한 정의에 부합합니다. 그렇기에 어느정도 사회성 짙은 소재로 스릴러적 면모를 보이던 영화가 멜로로 귀결되는 모습은 스릴러를 기대하고 간 관객에게는 실망을 안겨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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