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영화 “국가대표”라는 스키점프라는 종목을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입니다. 스포츠 영화는 안 된다는 국내 영화계의 오래된 전통(?)을 깨고 “킹콩을 들다”나 이 영화 “국가대표” 그리고 “돌 플레이어”라는 영화까지 줄줄이 대기 중인 것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흥행 성공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킹콩을 들다" 때도 적었던 이야기의 중복)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킹콩을 들다” 같이 “국가대표” 역시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팩트에 기반을 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찌됐든 ‘실화’라는 부분은 단순한 픽션보다는 더 관객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대표”에는 크게는 스키점프 선수 5명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습니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자신의 생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찾은 전 미국 청소년 알파인 국가대표 차헌태(하정우 분), 청소년 시기 전국대회에서 수상도 했으나 본드를 불어 자격이 박탈 된 최흥철(김동욱 분)과 엄한 아버지에게 잡혀 사는 마재복(최재환 분), 고령의 할머니와 정신지체 장애를 둔 동생 봉구(이재응 분) 때문에 군입대를 피해야 만든 강칠구(김지석 분)이 그들입니다. 해외 입양아, 한국 스키계의 아웃사이더인 이들은 방 코치(성동일 분) 아래 모여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됩니다.

영화는 이처럼 각자의 사연이 있는 오합지졸들이 스포츠를 통해 하나가 되고 다가오는 역경을 이겨낸다는 스포츠 영화의 전형적인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듯 합니다. (동계스포츠라는 점에서 “쿨러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그 공식을 따라가는 것에만 너무 많은 힘을 쏟았다는 것입니다. “국가대표” 내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그들이 영화의 중심에 놓여져 있지만, 그 캐릭터들만의 매력이나 성격, 그리고 그들 각각의 이야기에 대한 묘사가 너무도 부실합니다. 살아나지 않는 캐릭터성은 결국 이야기의 전개상에서도 그들의 갈등과 그 해결 과정이 너무도 단순하고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스포츠영화의 공식에 맞추기 위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안쓰러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연출력도 그에 따라 짜임새 있게 보이지 않는데, 일부 전개 과정에서는 불필요한 도돌이표를 찍으며 필름 재활용을 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지체되는 전개의 이유가 캐릭터성의 구축도 아닌 상황인지라 그저 의아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나마 클라이맥스의 스키 점프 경기 장면을 연출은 만족스럽습니다. 스키 점프라는 어쩌면 짧은 순간에 이뤄지는 실제 경기 장면을 상당히 임팩트 있게 스크린 상에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인상적인 경기장면을 뒤로 하고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신파는 피할 수 없는 옥의 티입니다. 그것이 관객에게 손쉽게 먹히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스포츠영화는 스포츠의 감동을 통한 눈물 보다는 신파의 눈물이라는 조금은 이상한 성격으로 규정되고 그대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커집니다.

P.S 오랜만의 감상기네요. 이 영화 본지가 대체 몇 주 전인지;

오감도
변혁, 허진호, 유영식, 민규동, 오기환. 이 다섯 명의 감독은 대체 이 영화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걸까요?

"오감도"는 '에로스'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다섯 명의 감독들이 각각 한 편씩의 연출을 맡은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각 감독들이 어떤 식으로 표현해 낼지를 비교해 보고 그 감독의 색을 찾아보는 것이 옴니버스 영화의 재미일 수도 있지만 그 재미를 음미할 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오감도" 속의 다섯 편의 완성도는 형편 없습니다.

각각이 한편의 단편영화라고 보기에도 어정쩡한 이야기 구성과 전개, 그리고 그 한편에서 어우러지는 배우들의 호흡도 인상을 찌푸릴만큼 삐그덕대며 연기력도 널을 뜁니다. 저렴한 제작비로 완성했다 하는데, 그 저렴한 제작비로 인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에도 못미치는 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최소 2편 이상의 장편 연출작을 내놓은 감독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친분으로 끌어모은 게 아닐까 생각되는 배우들을 데리고 단편 영화 찍을 때의 습작 수준에도 못미치는 영화들을 끌어모아다가 '에로스, 그 이상의 사랑 이야기'라는 괜시리 거창한 주제를 붙여서는 얼기설기 이어놨습니다. 보통의 옴니버스 영화들이 그 안의 모든 편이 마음에 드는 것은 상당히 드물지만 그 안의 모든 편이 다 마음에 안드는 이번과 같은 경우도 참으로 드문 것 같습니다.

"오감도"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 '에로스'? 아닙니다. 주궁장창 늘어지며 하품까지 나오게 하는 키스씬입니다. 대체 저 입술박치기는 언제 끝나나요?

달콤한 거짓말
로맨틱 코메디 "달콤한 거짓말"은 어쩌면 박진희의 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녀가 이 영화를 살리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야기로만 치면 그냥 진부합니다.

여기에 서른을 곧 앞둔 한 여성 방송작가가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지호(박진희 분)입니다. 명색이 방송작가이긴 하지만, 그녀가 맡은 프로그램은 조기종영되기 일쑤고, 이번에 맡았던 프로그램도 애국가 시청륭에 밀리면서 그녀는 백수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우연히도 차 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차의 주인은 그녀가 10년전부터 짝사랑해오던 선배 오빠 강민우(이기우 분) 입니다. 그는 지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때부터 지호는 기억상실인 것처럼 위장해 민우네 집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던 중, 지호와 어릴때부터 친구이자 옆집에 살던 동식(조한선 분)이 그녀를 알아보게 되면서 일은 점차 꼬이고, 그녀의 거짓말도 계속됩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지호 친구의 말처럼 'TV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고 영화는 애초부터 지적될 수 있는 클리셰들을 인정합니다. 그것은 이미 감안하고 있다는 식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그런 클리셰들의 전복이나 재조합을 유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뻔하디뻔한 클리셰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앞서 말한 이야기와 같이 진부하다라고만 볼 수 없는데에는 배우 박진희의 덕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슬랩스틱부터 다양한 얼굴 표정까지, 그녀는 웃음을 위해서 말그대로 최선을 다합니다. 발랄한 그녀의 매력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웃음이자 미덕입니다. 그에 비한다면 정작 그의 상대역인 두 남자 배우는 별다른 매력이 없습니다. 조한선은 미남이라는 이미지를 벗고자 추레한, 다분히 평범한 모습을 지속적으로 연기하는데, 그의 장점을 그런 역에서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이기우는 말 그대로 뻔하고 평범한 역할이고 말입니다. 이 두 주연급 조연남자배우들보다는 차라리 그보다 비중은 적은 지호의 동생 역의 김동욱이나 카메오 출연 정도인 DOC의 정재용이 만들어낸 상황이나 대사가 재미를 주는데는데 더 도움이 되고, 그래서 눈에 띕니다. 다시 정정해보자면 박진희와 조연들의 영화라고 할까요.

"달콤한 거짓말"의 아쉬움은 클리셰들을 이용한 재해석이나 전복이 없이 다분히 클리셰들을 적당히 다지는데만 주력했다는 것입니다. 박진희라는 배우의 덕으로, 그리고 크게 보자면 감독의 연출로 그런 부분이 무난하게 넘어갔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떤 큰 훅이 없는 모습은 그저 평범하기만 한 로맨틱 코메디 물로 그치게 만듭니다. 하지만 평범한 로맨틱 코메디물도 제대로 못만드는 우리나라 영화계를 두고보면, 그렇게 평범해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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