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살인
해외 영화들에서는 탐정이 등장하는 모습을 흔히 접할 수 있지만, 우리 영화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설령 탐정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하더라도 그 캐릭터는 조연, 혹은 단역으로 영화의 겉을 맴돌 뿐 입니다. 영화 "그림자 살인"은 그간의 한국영화들과는 달리 탐정을 영화의 중심에 놓은 영화입니다. 우리 영화에서는 왜 탐정이 비중있게 그려지지 않았을까요? 너무도 유명한 '셜록 홈즈' 등이 그러하듯이 그 존재들은 우리가 아닌 해외의 존재들이다보니 우리나라라는 배경에서 그런 '탐정'이 등장하는게 낯익은 모습이 아니기 때문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그 낯설은 모습은 소설 등의 분야에서부터 탐정을 다루는 모습이 쉽게 등장하지 않았기에 더욱 커졌을테고 말입니다. (우리나라 장르 영화/소설의 그 토대 자체가 취약해서 정도일까요?)

"그림자 살인"은  탐정과 그가 겪게되는 사건들을 대한제국 말기라는 시대에 풀어놓습니다. 그 시기는 각종 서구의 새로운 문물과 이기들이 우리에게 소개되는 때로, 신문물의 새로운 등장으로 인한 새로움과 혼란의 시기에 등장하는 탐정이란 직업의 캐릭터는 다른 어느 시기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의 그의 존재를 자연스레 수긍케 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홍진호'(황정민 분)라는 탐정 캐릭터는 우리가 인식하고 있던 기존 서구의 탐정 캐릭터들이 혼재해 있습니다. 마치 그 시대 배경처럼. 장광수(류덕환 분)를 처음 만날때 단박에 그가 의사임을 알아채는 모습은 셜록 홈즈의 그것이고, 그의 전체적의 탐정 활동 모습은 "차이나타운"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했던 J.J. 기티스의 그것입니다. 거기에 더해진 것이 황정민이란 배우에게 어울리는 웃음기 머금은 능글맞음입니다. 이런 혼합된 캐릭터는 다른 캐릭터나 영화의 일부 장면에서도 그대로 느껴집니다. 의대생인 장광수는 군의관이었던 셜록 홈즈의 단짝 왓슨 박사를, 홍진호에게 망원경 등의 도구를 제공해주는 박순덕(엄지원 분)은 "007" 시리즈의 Q를 연상케하고 골목과 건물 지붕을 넘나드는 추격장면은 "본 얼티메이텀"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구한말이라는 우리의 시대 배경에 접목시킨 모습은 생각 외로 자연스럽고 뿐만 아니라 흥미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탐정 스릴러'라는 장르적 측면에서는 맥이 빠집니다. 영화는 고위관료 아들이 실종이 되고, 그 아들의 시신을 우연찮게 발견한 의학도 장광수가 자신이 혐의를 뒤집어쓸까봐 진짜 범인을 찾아달라고 홍진호에게 의뢰를 하며 시작합니다. 홍진호가 하는 일이라고는 기껏에야 떼인 돈 받아주기, 바람피는 마누라 뒷조사하는게 전부인 마당에, 그는 대번에 장광수의 의뢰를 거절합니다. 하지만 돈과 장광수의 설득으로 그는 사건조사에 나섭니다. 영화는 이른 시점에서 범인의 정체를 관객에게 들어내면서 홍진호가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 함께 추리하며, 머리를 쓰는 재미를 앗아갑니다. 그러면서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관객이 몰입하며 흥미를 느낄 요소가 사라집니다. 결국 영화는 범인의 정체가 결과적으로는 착각과도 같은, 그로 인한 속임수 같았다는 것을 관객에게 강요합니다. 또한 홍진호라는 주인공 캐릭터는 분명 매력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그 외 다른 인물들의 묘사와 행동은 실망스럽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순덕입니다. 순덕은 영화에서 Q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도 또한 다른데, Q가 초반에 등장해 이펙트를 남기고 사라진다면 순덕은 초반 이후 홍진호와의 과거 관계 암시를 위한 용도로만 집중적으로 사용되면서 영화 상에서 애매한 위치를 고수합니다. 지나치게 베일에 쌓인 둘의 관계는 흥미를 불러일으킬만큼 깊어지지도, 그렇다고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도 되지 않으며 서브 플롯으로의 역할을 자임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셜록 홈즈와 왓슨의 관계를 염두해 두고 만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장광수는 비록 홍진호에게 사건을 쥐어주는 역할을 하며 그와 자주 어울리긴 하지만, 중요한 상황에서는 철저하게 사건 외부의 인물로 작용합니다. 왓슨도 결국 사건 자체에 하는 일이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는 이야기의 서술자라는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급격하게 축소되는 장광수 캐릭터와 같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아쉬운 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저는 이 영화가 나름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는 좋았던 것은 이 영화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결코 시대에 억눌리거나, 그로 인해 함몰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장 근래의 예는 낭만의 화신이 사랑 때문에 독립의 화신으로 변모하고, 남은 것은 CG로 만든 화려한 경성 시가지의 모습 밖에 없었던 "모던 보이" 일 것입니다. (같은 해에 개봉한 "라듸오 데이즈"나 "원스 어폰 어 타임"도 마찬가지.) 홍진호의 어두운 뒷모습에 드리워진 것은 결코 시대의 아픔이나 무게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뒷모습에서 본 것은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으로 얼룩진 비극을 목도한 한 남자의 슬픔이었습니다. 주연인 황정민이 인터뷰에서 밝히는 바도 그렇고, 애초에 이 영화는 시리즈 물로 기획된 것 같습니다. 단순히 이 한 편의 영화로 봤을 때는 실망스러웠던 순덕과 홍진호, 그리고 홍진호의 과거에 대한 암시가 효과를 보일 시퀄, 혹은 프리퀄의 제작을 바라봅니다. 아쉬움 속에서도 황정민이 연기한 탐정 홍진호 캐릭터의 매력은 빛을 잃지 않았습니다.

제가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오락프로그램들을 전전하며, 얼굴을 내밀고 자신이 이번에 출연한 영화를 홍보하던 영화배우들과 그 영화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를요.오락프로그램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이선균, 오만석이 이상하리만치 오락프로 홍보에 치중할때 알았어야 했던건데요.

영화 "우리동네"는 전통적인 스릴러라기 보다는 사이코범죄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장르적 구별은 어쩌면 그다지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고, 영화는 극의 가장 기본적인 긴장을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앞 일이 내다보이는 뻔한 전개와 우리영화에서 지독하리만치 과거에 집착하는 버릇을 이 영화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세 명의 캐릭터의 얽힌 과거는 지나치게 뻔하고, 개연성 조차 희미합니다. 그리고 그런 과거를 밝히는 시점의 타이밍 역시 한발 빨라, 기본적인 극의 긴장감 조성에 실패하는데 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 동네
긴장감 조성 실패가 이 영화의 최대 단점이긴 하지만, 다른 실패 요인으로는 캐릭터의 진부성에 있습니다. 기존에 있던 살인범들의 이미지가 이 영화의 캐릭터에서 그대로 나타납니다.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눈에 힘 잔뜩 준 한 살인범과 실제로는 살짝 맛이가 눈이 풀린 연쇄살인범 하나. 류덕환의 연기가 훌륭했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것 같은데, 너무 진부한 캐릭터에 묻혀서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지를 느낄 수도 없었습니다. 데쟈뷰 현상이라고 할까요? 연기하는 배우 위에 다른 영화의 캐릭터가 겹쳐 보이기까지 하는...

얼마 전 개봉한 "세븐데이즈"가 미드에 익숙해진 2007년 한국관객의 특성을 파악해낸, 잘 만들어진 스릴러였다면("세븐"의 잔영은 크게 아쉽습니다만), 영화 "우리동네"는 관객들이 외면하기 시작한 기존의 한국영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기교도 없고, 관객을 위한 순수한 재미도 없습니다. 관객들이 왜 한국영화를 외면하는지, 그 본질을 제대로 알았으면 합니다. 불법복제방지 캠페인하면서 극장료 인상하려는 시도에만 열을 올리지 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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