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리포터의 보도에 따르면, "유주얼 서스펙트",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지운 감독과 함께 가진 오픈 토크에서 또다른 "엑스맨" 영화 연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밝혔습니다. 브라이언 싱어는 추가로 그와 관련해 20세기 폭스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언급했습니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는 1,2편을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을 맡았으며, 3편은 브랫 래트너가 연출을 맡았으나 전작들과는 달리 혹평을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울버린을 내세운 스핀오프 "엑스맨 탄생: 울버린"을 개빈 후드가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브라이언 싱어는 자신은 SF나 판타지 물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데 그러한 소재를 통해서 심각한 문제들에 해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들을 통해 관용과 사회 구조에 대해 논했던 "엑스맨"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전에 "디파티드"의 마크 월버그가 "프리즈너"(Prisoners)라는 스릴러 영화에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던 적이 있는데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전한 헐리우드 내 소식에 따르면, 그 프로젝트에 "유쥬얼 서스펙트", "작전명 발키리"의 브라이언 싱어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는 보스턴에 거주하는 한 남자가 자신의 딸과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납치되자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려 나서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각본은 아론 구지코우스키의 첫 데뷔작으로, 헐리우드 내부에서는 "양들의 침묵"이나 "세븐"과 비교될 정도로 큰 기대를 모으는 각본이라 합니다.
브라이언 싱어는 이에 대해 '아직 모르겠지만, 물론 관심이 간다. 좋은 각본이다. 그리고 마크 월버그와 작업해 보고 싶다.'라고 답했습니다.
스릴러로 다시 돌아온 브라이언 싱어와 톰 크루즈와 만난 영화 "작전명 발키리"(Valkyrie)의 트리비아입니다. 이하 경어가 생략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 토비아스 모레티가 아돌프 히틀러 역으로 내정되었으나, 스케쥴 문제로 출연이 성사되지 못했다.
- 영화에서 슈타우펜버그 대령의 아내, 니나 슈타우펜버그를 연기한 카리세 판 하위텐은 세바스티안 코치와 연인이었으며("블랙북"에서 같이 출연하기도), 코치는 2004년 독일에서 방영된 TV영화 "슈타우펜베르크"에서 슈타우펜버그 대령을 연기했었다.
- 애초에 독일 국방부는 벤들러블럭(영화 속에서 히틀러 암살 모의가 논의되고, 후에 모의자들이 처형되는 곳)에서의 촬영을 불허했다. 하지만, 탐 크루즈와 작가 크리스토퍼 맥쿼리의 간청으로 이를 허락한다. 벤들러블럭에서 매일밤 촬영하기 전에 매번 모든 사람들은 슈타우펜버그 대령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 독일군 병사를 연기했던 11명의 엑스트라가 움직이는 트럭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었다. 한명은 심각한 등부상을 입었고, 나머지는 타박상 및 머리 부상을 입었다. 보험 회사 측은 조사를 통해 엑스트라들이 불필요하게 측판에 가까이 있었기에 트럭이 움직였을때 측판이 열려 그들이 떨어지게 되었다고 결론내렸다.
- 현상 중에 발생한 문제로 인해서 몇몇 장명은 재촬영을 해야 했다.
- 영화는 애초에 2008년 8월 8일 개봉 예정이었으나 6월 27일로 개봉일이 앞당겨졌었다. 하지만, 제작자가 슈타우펜버그 대령이 그의 눈과 손을 잃게 되는 전투 장면을 찍을 적합한 장소를 찾지 못해 제작이 지연되자 개봉일을 10월 3일로 연기했다. 6월 촬영이 재개된 후 개봉일은 2009년 2월 13일로 연기되었다. 그후 테스트 시사 반응이 성공적이어서 최종개봉일은 앞당겨진 2008년 12월 25일로 결정되었다.
- 탐 크루즈는 슈타우벤버그 대령의 사진을 보고는 역에 매혹되었는데, 사진을 통해 그와 자신이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독일에서는 나찌의 상징인 스와스티카를 예술적인 목적의 전시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시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제작사는 실제와는 다른 스와스티카를 이용해 해당 법을 피했다. 제작자는 제대로 된 스와스티카를 사용하길 원했고, 그래서 스탭들은 촬영지 주변에 이에 대한 경고를 공고했다. 거주민들이 시에 공식적으로 항의를 해 시에서 촬영 장소 및 건물의 소유주에게 벌금을 물렸기 때문이다.
- 패트릭 윌슨이 캐스팅되었으나 스케쥴 문제로 출연은 무산됐다.
- 카리세 판 하위텐, 발데마르 코부스, 크리스티안 베르켈, 할디나 레진은 2차 세계대전시기를 배경으로 한 폴 버호벤 감독의 2006년작 "블랙북"에 출연했었다.
- 히틀러가 '발키리' 작전의 수정안에 서명할 때 그 만년필은 슈타우벤버그 대령의 가방에 꽂혀있었는데, 그 가방은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생산된 펠리칸 M100이다.
- 영화에 출연한 세 명의 배우들이 12월 12일에 태어났다. 케네스 크랜햄은 1944년, 톰 윌킨슨은 1948년, 빌 나이는 1949년.
- 네 명의 배우가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 출연했었다. 울브리히 장군 역의 빌 나이는 데비 존스, 비츨레벤 역의 데이빗 쇼필드는 머서, 괴들러 역의 케빈 맥낼리는 깁스, 브랜트 대령 역의 톰 홀랜더는 베켓 경을 맡았었다. 톰 홀랜더와 히틀러 역을 맡았던 데이빗 밤버는 2005년 영화와 BBC 미니시리즈 "오만과 편견"에서 각각 콜린스를 연기해었다.
- 두 명의 배우가 히틀러의 마지막 10일을 다룬 영화 "몰락"(Downfall)에 출연했었다. 크리스챤 버켈은 히틀러 친위대 의사였던 에른스트 귄터 쉔크를, 토마스 크레취만은 히믈러의 부관이자 에바 브라운의 형부였던 히틀러 친위대장 헤르만 페겔라인을 연기했다.
- 영화에서 트렉코프의 부관 (영화의 시작부문에서 히틀러 암살 시도 후 트렉코프와 함께 전화를 기다리던 이) 을 연기한 필립 폰 슐테스는 슈타우벤버그 대령의 손자이다. 영화에서 슈타우펜버그의 아내가 임신한 아이가 슐테스의 어머니이다.
'난 자라면서 나찌를, 히틀러를 죽이고 싶었다.' 는 탐 크루즈의 말처럼 많은 이들은 알게모르게 히틀러라는 존재 자체를 증오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유럽 뿐만 아니라 아시아까지 미친 나찌의 파시즘적인 군국주의의 영향과 그로 인한 인류사에서 유래없는 희생들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히틀러에 대한 증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역시 틀리지 않은데,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에서 뿐만 아니라 독일 내부에서도 자신들의 총통 히틀러를 세상에서 지우고 싶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영화 "발키리"는 역사 속에 기록된 독일 내부에서의 마지막 히틀러 암살 시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북아프리카 전장에서 일기를 쓰는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버그 대령(탐 크루즈 분)을 비추며 시작합니다. 히틀러의 광기가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을 황폐하게 할 것이라고 우려, 히틀러를 막아야한다고 생각한 그는 그런 심중이 드러난 바람에 이 곳 전장으로 발령이 난 상태입니다. 그는 그 곳에서 적군의 기습 폭격으로 인해 왼쪽 눈과 오른쪽 손, 왼쪽 손의 손가락 두개를 잃습니다. 병원으로 후송을 오게 된 슈타우펜버그는 베를린에서 히틀러 암살 시도를 모의하던 또 다른 세력과 접촉을 하게 되고, 히틀러를 죽이기 위한 계획을 짭니다.
슈타우펜버그 대령이나 다른 이들이 히틀러를 죽이려는 이유는 영화에서는 간단합니다. 히틀러는 결국 독일을, 유럽을 전화로 모두 불태울것이다. 그러니 그를 막아야 한다. 다만 슈타우펜버그에 대해서만은 조금 더 디테일하게 들어갑니다. 슈타우펜버그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그리고 아이들과 해후합니다. 집에는 바그너 곡의 '발퀴레의 비행'이 울려퍼지고, 남자아이들은 척척 각을 맞추어 행진을 하는 척하고 딸 아이는 그의 군모를 쓰고 경례를 합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슈타우펜버그의 눈빛은 아버지의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습에 슈타우펜버그와 가족은 지하실로 대피하고 울려퍼지던 '발퀴레의 비행'은 중단 됩니다. 영화 속에서도 히틀러를 통해 직접 언급되지만, 바그너의 저작활동은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완성화고, 그것을 통해 민족주의로의 결집과 나찌의 군국주의를 부추기는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에서 베트남 마을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던 장면에서도 흘러나오던 그 곡은 군국주의의 상징이라는 공통적 함의를 가지고 영화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들의 사심없는 행동을 통해 영화는 나찌즘이란 악령에 사로 잡혀 있는 독일과 그것을 바라보던 한 아버지, 나라를 위하는 군인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암살 음모를 다룬 스릴러지만 장르적으로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에 두고 있고, 그로 인해 이미 이야기의 결말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히틀러를 죽이려 하지만 실패합니다. 히틀러는 그들의 손에 죽지 않았고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는 "타이타닉"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감독 브라이언 싱어는 이에 대해 '관객들은 마지막은 알고 있지만, 이 특별한 이야기의 자세한 사항은 잘 모르고 있다. 그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합니다. 이미 "유주얼 서스펙트"로 브라이언 싱어가 자신의 재능을 입증하기도 했지만, 이 후 세 편의 코믹스 영화를 연출한 후 다시 스릴러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그 재능을 잃지 않았습니다. 약점을 안고 있음에도 영화는 곳곳의 촘촘한 스릴러적인 기교로 극의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히틀러의 벙커와 외부 건물에서 히틀러 암살 시도 직전에 보이는 모습은 긴장의 끈을 팽팽이 잡아당깁니다. 영화는 영리하게 전체를 히틀러 암살 시도에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영화의 2/3 지점에서 폭탄이 터지고, 슈타우펜버그 대령 일행은 그들이 계획했던 발키리 작전을 이용한 베를린 장악 계획을 실행합니다. 그들의 계획은 성공할 듯 보입니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히틀러의 '내 목소리를 기억하나?' 한마디로 모든 것은 바뀝니다. '난 자라면서 나찌를, 히틀러를 죽이고 싶었다.' 그 바람을 영화는 이용합니다. 관객들은 슈타우펜버그들에게 동화되고 이미 역사를 통해 인지하고 있는, 예정되어 있는 그들의 실패와 그로 인한 몰락은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거기에 전반부와 같이 시침뚝 떼고 밀어붙이는 스릴러적 기교가 결합되면 또다른 의미의 서스펜스가 발생합니다. 치명적 약점을 오히려 이용하는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키리"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그리고 있는 영화이지만, 또한 우리가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인지하게 해주는 영화입니다. 나찌의, 히틀러의 광기 속에도 그 중심부에서는 이성적인 이들이 존재했고, 그들이 그들의 이상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그들의 실행을 흥미로운 스릴러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히틀러 암살 시도를 다룬 브라이언 싱어 연출, 탐 크루즈 주연의 영화 "작전명 발키리"(Valkyrie)가 오는 22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 탐 형님도 한국에 들어오셨고(...입국한 사진 보니 팬 매너 최고!) 해서 "발키리"에 연관될 수 있는 포스팅을 올려봅니다.
히틀러에 대한 암살 시도는 당연하게도 슈타우펜버그 대령의 뿐만 아니라 수차례 계획되었고, 실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실패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히틀러의 목숨을 노렸으나 실패했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이 참 (무릎팍 식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포스트는 1939년 부터 1945년 까지 일어났던 주요 히틀러 암살 시도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하 경어가 생략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쿠르트 폰 해머스타인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39년 쿠르트 폰 해머스타인 장군은 히틀러가 지그프리트 라인의 방어시설을 시찰하러 올 때를
노려 암살을 시도했다. 해머스타인과 그의 공모자인 은퇴한 장성 루드빅 벡은 히틀러가 기지를 시찰할때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계획을 짰다. 그렇지만 히틀러는 그의 기지방문 요청에 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퇴역 명단에 올려버렸다.
2. 조한 게오르그 엘저
엘저는 고급가구제작 도제였으며 1929년에서 1932년 사이에는 스위스에서 일하다가 아버지의 목재소 일을 돕기 위해 독일로 돌아온다. 그는 나찌의 노동자 조합에 대한 탄압과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데 크게 분노했다. 그래서는 그는 수제 시한폭탄을 히틀러가 연설하기로 되어 있던 뮌헨의 벨게브로 맥주홀의 연단에 설치해 그를 암살하기로 결심했다. 그 폭탄은 1939년 11월 8일 수요일, 오후 9시 20분에 폭발하기로 설정되어 있었다. 8시 10분 히틀러는 맥주홀에 들어섰고 연설을 시작했으나 9시 12분 갑자기 연설을 마치고 맥주홀을 떠났다. 8분 후 폭탄은 예정대로 폭발했고 여덞명이 사망하고, 에바 브라운(히틀러의 애인)의 아버지를 포함한 65명이 부상했다. 사망한 이들 중 7명은 나찌 당원이었다. 엘저는 콘스탄츠에서 스위스 국경을 넘으려다 체포되었다. 엘저는 작센하우젠 수용소로 이송되었으며, 후에는 다하우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1945년 4월 9일, 유럽에서의 종전을 2주 앞두고 엘저는 처형당했다.
3. 에버하트 폰 브라이트부흐
1944년 3월 11일 기갑부대장 에버하트 폰 브라이트부흐는 오베르잘츠베르크에 있는 히틀러의 별장 버그호프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작은 브라우닝 권총을 숨긴체 들어가 히틀러를 암살하고 그 시도에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전쟁이 독일을 피할 수 없는 파멸로 이끌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히틀러를 막아야한다고 생각했다. 브라이트부흐는 회의장에 들어가 에른스트 부시 육군원수 뒤에 섰다. 그러나 문쪽으로 접근할때 그는 저지를 당했다. 히틀러가 누구도 그 자리에 위치시키지말라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하나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4. 프리츠 디틀로프 폰 슐렌베르크
프리츠 디틀로프 폰 슐렌베르크 백작은 1940년 7월 27일 파리에서 거행될 군 퍼레이드 도중 히틀러를 쏘기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7월 23일 비밀리에 이른 시간 파리를 방문해 파리의 모든 유명 건축물을 구경했다. 히틀러는 6시 부터 9시
까지 그렇게 둘러본 후, 파리를 떠났다. 그로부터 며칠 후, 슐렌베르크는 그가 계획했던 퍼레이드가 취소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5. 에르빈 폰 비츨레벤
에르빈 폰 비츨레벤 원수는 1941년 5월 히틀러가 파리를 방문할 때를 노려 그를 암살하려고 계획했다. 하지만 예정되었던 5월 21일을 앞두고 히틀러의 방문은 돌연 최소되었다.
6. 귄터 폰 클루게
동부 전선의 중앙집단군의 지휘자였던 필트 마샬 귄터 폰 클루게 원수는 1943년 3월 13일, 히틀러가 스몰렌스크의 본부를
방문했을때 실행할 세 개의 히틀러 암살 계획을 준비했다. 하지만, 몇몇 클루게의 참모들은 히틀러를 암살하는 방법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히틀러와 나찌에 반감을 품었던 헤닝 폰 트레쉬코브는 부관인 파비안 폰 쉴라브렌드오프, 루돌프 폰 게르스도프, 기갑부대의 게오르그 폰 부에슬라게르와 함께 히틀러를 암살한 계획을 모의했다.
폰 부에슬라게르와 그의 부대는 히틀러의 자동차 행렬을 무장한체 호위하기로 되어있었는데, 그들의 계획은 공항에서부터 히틀러가 탄
차량이 올때 일시에 궤멸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호위를 그가 데리고 온 나찌 친위대에 맡기면서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두번째 시도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였다. 신호가 주어지면, 트레스코브가 자리에서 일어나 식사를 하고 있는 히틀러를
향해 총을 쏘는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친위대가 히틀러 근처에서 호위를 하고 있어 이 계획 역시 시도도 못하고 수포로
돌아갔다. 히틀러가 베를린으로 비행기를
통해 베를린으로 돌아갈때 트레스코브는 쉴라브렌도프에게 지시해 히틀러와 같이 돌아가는 하인츠 브란트 대령에게 어떤 꾸러미를
전해주도록해다. 그 꾸러미 안에는 베를린의 헬무스 스티프 소령에게 전하는 선물인 브랜디 두명이 들이이었다. 또한 그 안에는 시한
폭탄도 들어있었는데 높은 고도로 인한 찬 공기로 인해 뇌관의 산이 얼면서 폭발하지 않아 실패했다. 히틀러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쉴라브렌도프는 즉시 베를린으로 날아가 브랜트 소령에게 전했던 꾸러미를 회수하고는 진짜 브랜디를 주었다.
7. 루돌프 폰 게츠도프
1943년 3월 20일, 루돌프 폰 게츠도프 대령은 병기고에서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했다. 숨겨진 폭탄은 그가 전시장에서 히틀러와 같이 있을 때 산에 의해 폭발하기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폭발하기 전에 히틀러는 건물을 떠났고, 게츠도프는 재빨리 화장실로 들어가 폭탄의 퓨즈를 제거해 변기에 넣고는 물을 내려버렸다.
8. 악셀 폰 뎀 부스체
1944년 2월 보병대장 악셀 폰 뎀 부스체는 히틀러에게 새로운 군의 겨울 오버코트를 소개하는 자리를 통해 자신과 함께 히틀러를 세상에서 지워버리기로 한다. 하지만, 그 전날 영국군의 공습 피해로 군복은 손상을 입고 부스체는 그의 본대로 복귀한다. 몇 주후 또다른 오버코트를 이용해 같은 작전이 준비된다. 오버코트의 모델로 자원한 이는 최초 암살계획 공모자 중의 한명의 아들인 에발드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였다. 이 계획에는 준장이던 헬무스 쉬티프도 가담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직전 영국 공군의 공습으로 이 계획은 취소되었다.
9.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영화 "발키리"의 스포일러가 될지 몰라 접어두겠습니다.
1944년 7월 11일 참모인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버그호프에서 열린 회의에서 히틀러를 암살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서류가방에 시한 폭탄을 숨겼다. 슈타우펜베르크는 공모자인 프리드리히 클라우싱 대위와 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버그호프로 들어간 슈타우펜베르크는 베를린에 있는 그의 동지에게 전화를 걸어 괴링과 히믈러는 이곳에 없다고 전했다. 베를린에서는 그들의 작전은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슈타우펜베르크는 계획을 접고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한다.
슈타우펜베르크의 두번째 암살시도는 동프러시아에 자리한 히틀러의 작전본부 '늑대의 굴' 에서였다. (히틀러는 늑대라는 별명이 있었다.) 1944년 7월 15일, 그는 히틀러의 브리핑에 참석했으나 히믈러가 이번에도 자리에는 없을 것을 보고는 당황한다. 두번째 시도 역시 실행도 하지 못하고 취소된다.
슈타우펜베르크의 마지막 시도는 1944년 7월 20일에 실행된다. 이번 계획은 계획이 실행되기 4일전, 슈타우펜베르크의 집에서 집행이 결정되었다. 히믈러가 있든 아니면 없든지 간에 무조건 이번 계획은 실행하기로 했다. 20일 오후 12시, 슈타우펜베르크와 프롬 장군은 필트 마샬 카이텔의 사무실에서 '늑대의 굴'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 브리핑을 했다. 오후 12시 37분, 슈타우펜베르크는 폭탄이 들어있는 그의 서류가방을 지도가 놓인 테이블 아래에 두고는 전화를 걸어야한다는 핑계를 대고는 방을 나왔다. 하지만 회의실에 있던 브란트 대령의 발에 가방이 걸리면서 가방은 더 깊숙히 밀어넣어졌다.12시 42분, 폭탄은 제대로 폭발했지만, 오크나무로 만들어진 튼튼한 테이블이 히틀러를 보호해주고 말았다. 그 때 슈타우펜베르크는 베를린으로 돌아오려고 하고 있었다. 오후 6시 28분 라디오 방송을 통해 히틀러가 가벼운 부상을 입긴 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날이 지나고 오전 12시 30분, 슈타우펜베르크와 그의 공모자들인 해프텐, 올드브리히트, 메르츠가 체포되었으며, 벤틀러슈트라쎄(벤들럭블럭)의 뜰에서 총살되었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히틀러 암살 기도 후 그의 아내와 네명의 자녀들은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들은 연합군에 의해 풀려났는데 체포 당시 임신 중이던 슈타우펜베르크의 아내는 수감 중에 아이를 낳았다.
1944년 8월 8일부터 1945년 4월 9일 사이에 90명의 사람들이 7일 20일 암살에 모의한 죄로 처형당했다.
10. 알베르트 슈페어
1945년, 국방장관이던 알베르트 슈페어는 히틀러가 일부러 주변인들에게 국가반역죄의 누명을 씌우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로 인해 슈페어는 히틀러를 제거해야 한다고 마음 먹게 된다. 슈페어는 관청의 정원을 수차례 걸으며서 히틀러의 벙커의 환기구가 어디로 향해있는지를 조사했다. 그는 계획을 확립했고, 정밀 병기 생산을 담당했던 디에터 스탈에게 혹시 그가 타분이라는 독가스를 좀 만들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그 독가스를 환기구를 통해 벙커러 흘려넣을 계획이었다. 스탈은 타분은 폭발에만 소용이 있기에 슈페어가 생각하는 목적에는 맞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다른 독가스를 찾았지만, 계획은 벙커의 입구와 지붕을 지키는 SS 보초병 때문에 계획은 실행되지 못한다. 굴뚝 역시 대안이 되지 못했다.뉘른베르그 재판에서 알베르트 슈페어는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P.S ...분명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 배웠는데, 독일 이름은 잘 못 읽겠...
그간 영화 "슈퍼맨" 시리즈에 관해 전해진 소식을 종합해보자면, 워너는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의 흥행 성적에 실망을 했고, 결국 "슈퍼맨" 시리즈를 리붓하기로 했습니다. 그에 관해서 "원티드"의 작가 마크 밀러가 다른 프류듀서와 한 미국 유명 액션영화 감독과 새로운 "슈퍼맨" 시리즈를 계획 중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슈퍼맨 : 강철의 사나이"를 준비 중이던 브라이언 싱어에 대해서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과연 그가 아직 그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는 것인지 등이 말입니다..
"배트맨 비긴즈" 부터 시작되어 이번 "다크나이트"에서 빵 터져버린 "배트맨" 시리즈의 엄청난 흥행으로 인해, DC 코믹스의 또다른 축인 슈퍼맨의 영화화가 그만큼 큰 부담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버라이어티의 앤 톰슨이 블로그에 포스팅한 내용을 보면, 워너는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처럼 시리즈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그저 리차드 도너의 첫 시리즈에 대한 향수를 끌어온 것 뿐이었다고 느낀 것이겠죠.
팬들의 실망감과 후속작에 대한 논란만큼 워너 내부에서도 후속작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오고가는 듯 합니다만, 어떤 확실한 결정은 없는 듯 합니다. 앤 톰슨은 포스트에서 밝히기로, 어서 워너에서 앞으로 "슈퍼맨" 시리즈에 대한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브라이언 싱어를 계속 연출자로 잡아두려 한다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당 포스트의 말미에서는 워너브라더스의 한 경영진이 밝혔다는 다음의 말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이는 워너 내부에서 "슈퍼맨" 시리즈의 리붓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간다는 뜻일까요? 브라이언 싱어의 후속작 "슈퍼맨: 강철의 사나이"는 2009년 6월 개봉계획으로 지금까지 알려져오고 있지만, 더이상 관련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그 때 개봉할 일은 없을 듯 합니다.
AICN에 따르면,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을, 탐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2차 세계대전 배경 영화 "발키리"(Valkyrie)의 개봉일이 앞당겨졌습니다.
"발키리"는 애초에 6월 26일 개봉 예정이었으나 10월 3일로 연기되었고,유나이트드 아티스트(UA)와 MGM의 결정에 따라 2009년 2월 13일로 또 개봉이 연기되었는데, 이번에 올해 12월 26일로 개봉일이 변경되었습니다. 개봉일 변경의 이유는 테스트 시사회의 반응이 좋아, 홀리데이 시즌을 노리기 위해서라고 하는군요.
영화 "발키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에 반대하여 그를 암살하려고 했던 독일 육군대령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를 그리는 작품으로, 톰 크루즈가 주인공 슈타우펜베르크 역을 연기합니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을,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영화 "발키리"의 개봉일이 또 한번 연기되었습니다. "발키리"는 애초에 6월 26일 개봉 예정이었으나 10월 3일로 연기되었고,유나이트드 아티스트(UA)와 MGM의 결정에 따라 이번에는 2009년 2월 13일로 또 한번 개봉일이 미루어졌습니다.
최초의 개봉일 연기는 감독인 브라이언 싱어의 요청이었고, 이번 연기는 UA의 대표인 폴리 와그너와 공동으로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톰 크루즈의 결정이었다고 합니다.
영화 "발키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에 반대하여 그를 암살하려고 했던 독일 육군대령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를 그리는 작품으로, 톰 크루즈가 주인공 슈타우펜베르크 역을 연기합니다.
예전에 브라이언 싱어와 브랜든 루스가 "슈퍼맨"의 차기작에서 하차한다라는 루머와 이어서 브랜든 루스의 하차를 부정하는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이번에 간만에 후속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로, 감독 브라이언 싱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IESB에 따르면, 브라이언 싱어가 "슈퍼맨 : 강철의 사나이"(Superman : The Man of Steel)로 명명된 후속작품의 감독을 100% 맡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슈퍼맨 리턴즈"의 각본을 담당했던 마이클 도허티와 댄 해리스가 하차하고 "트랜스포머" /J.J. 에이브럼스의 "스타트랙"의 각본을 맡은 로베르토 오씨와 알렉스 커츠만이 각본을 맡는 것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이후에 엠파이어 매거진 온라인이 이 소식과 관련된 브라이언 싱어와의 인터뷰를 전했는데, 작가 교체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브라이언 싱어는 '작가 노조 파업이 끝난 후 작가들과 작업을 다시 시작했고, 감독을 맡을 생각이다' 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전작의 액션성 부족에 대한 지적을 의식해서인지 농담을 곁들이면서, 이번에는 시체수를 세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테러와는 관련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전작인 "슈퍼맨 리턴즈"는 2억 7천만$의 큰 제작비를 들였으나 총 3억 9천만$의 흥행을 기록하면서 팬들의 평은 물론, 흥행에서도 미흡한면을 보였습니다. 브라이언 싱어는 과연 이번에 만회할 수 있을까요?
버라이어티의 앤 톰슨의 기사에 따르면, "슈퍼맨" 시리즈의 차기작을 "슈퍼맨 리턴즈"를 연출했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연출을 맡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워너 측에서 내심 실망한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브라이언 싱어의 스케쥴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재 그는 톰 크루즈와 함께 "발키리"를 촬영 중이며, "카스트로 스트리트의 시장", "당신은 내가 그를 죽이길 원하는가?" 등의 영화의 연출을 맡을 예정입니다. 워너브라더스는 2009년 6월 "슈퍼맨 : 강철의 사나이"를 개봉할 계획이기 때문에 브라이언 싱어의 스케쥴은 걸림돌입니다.
다음은 슈퍼맨 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슈퍼맨 리턴즈"에서는 브랜든 루스가 슈퍼맨 역을 맡았었는데, 라티노리뷰에 따르면 차기작에서는 브랜든 루스가 슈퍼맨을 맡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라티노리뷰 측에서는 "저스티스 리그"에서 슈퍼맨을 맡을 좀 더 어린 배우가 차기작의 슈퍼맨 역을 맡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말그대로 루머이기때문에 "슈퍼맨" 시리즈에 관해서는 계속 지켜봐야할 듯 합니다.
* 이후에 에인트잇쿨뉴스를 통해 브랜드 루스가 계속 슈퍼맨을 맡을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