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러브
강우석 감독의 근래의 필모그래피를 보자면 영화 "글러브"는 조금은 이질적인 영화입니다. "공공의 적" 이후의 그의 작품들이 사회적 이슈에 천착한 소재를 담았다면, "글러브"는 스포츠를 소재로한 휴먼 드라마입니다.

영화는 음주파문으로 물의를 일으킨 왕년의 프로야구 스타 김상남(정재영 분)이 자숙 차원으로 청각장애 야구부 ‘충주성심학교’ 임시 코치직을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우석 감독의 영화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는 어떤 정치색은 이 영화에 없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인, 요즘 영화같지 않은 왠지 옛날 영화같은 때깔과 투박해보이만 에두르지 않는 연출은 그대로 입니다. 이번 영화를 통해 강우석이 변했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하지만 정치색이 없다고, 사회적 이슈에 칼날을 세우지 않았다하더라도 후자의 이유로 강우석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140분의 런닝타임 동안 이런 스포츠 드라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클리셰'로 범벅이 되었다 할 수 있는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감동을 자아내기 위한 주인공의 웅변조 연설 역시 강우석 영화답게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그리고 즐기는 스포츠냐, 승리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스포츠냐라고 서로 주장하던 주원과 상남의 말다툼의 결론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영화는 아이들의 분투와 눈물에만 그 초점을 맞춥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 긴 런닝타임동안 적절한 완급조절 함께 관객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갑니다. 그렇기에 그 수많은 클리셰와 억지스런 감동 만들기가 큰 무리없이 이야기 속에 녹아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커다란 감동이나 그에 따른 감흥은 없을지언정(모든 단점을 상쇄할 그 무언가가 없지만) 강우석이 영화에서 가고자 하는 방향은 목적지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듯이 영화에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20여년의 세월 동안 강우석이 감독으로 국내 영화판에 굳건히 서있는 발판이 아닐까 합니다. 좋든 싫든, 강우석은 그런 감독입니다.

P.S 정재영은 동치성이 더 어울립니다.
P.S2 LG Twins 만세입니다.

김씨표류기
"천하장사 마돈나" 이해준 감독의 신작 "김씨표류기"는 오늘날의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한 편의 우화입니다. 1000만이 넘는 인구가 사는 서울에서 무인도라니, 너무도 우화적 공간임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영화는 결국 이 시대의 소통과 고립,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남자 김씨(정재영 분)는 신용불량자로 자살을 결심하고 한강에 뛰어들지만 밤섬에 고립(!)되고 맙니다. 구조를 요청하려고 119, 전 여자친구에게 마지막 남은 배터리에 안절부절 하며 전화를 걸어보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지 않습니다. 자신의 '두 쪽'을 적나라하게 흔들어내며 밤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강변의 아파트와 차량을 보고 자신을 알아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습니다. 이 시대는 루저에게는 어떠한 응답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고립되어만 갑니다. 대도시의 한 무인도처럼.

그리고 여자 김씨(정려원 분)가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방을 전체의 세상으로 규정하고 그 안에 틀어박혀있는 전형적인 히키코모리입니다. 싸이월드에 여러 가상의 자신을 만들어놓고 그 거짓된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에 만족해하며 살아갑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이라는 간접적 소통의 창구에만 몰두하는 우리시대의 또다른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는 그렇게 자신들의 공간에서 표류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남자 김씨가 밤섬에 표류하면서 벌이는 좌충우돌 생존기와 그를 우연히 보게되는 여자 김씨와 서로를 인지하는 두 사람을 그린 중반부까지의 이야기와 둘의 만남까지를 그리는 후반부가 그것입니다. 영화의 중반부 까지는 너무도 사랑스러울 정도로 재치있고, 유머 있습니다. 큰 부분을 차지하는 남자 김씨의 무인도 생활에 푹 빠져들게 합니다. 그러한 재미 속에서도 영화의 주제의식은 굳건한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중반부까지의 만족에 비해 영화의 후반부는 크게 아쉽습니다. 중반부까지 이어져오던 영화의 전반적이나 밀도나 재치가 확연히 떨어지면서 영화의 주제만 너무 크게 부각시키기 위한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어느정도 예측 가능한 결말이라고 보았을때 그 결말을 향한 과정이 너무 조급하고 안일합니다. 이 크게 나눌 수 있는 영화의 두 부분의 이질감만 아니었다면, "김씨표류기"는 현실을 살아가는 어른들을 위한 가슴 따뜻한 우화라는, 그 목적성에 더없이 잘 부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앞부분의 영화는 그런 아쉬움에도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분명 그 의미를 다합니다.

P.S 이 영화의 PPL은 아마도 국내 영화사상 최고의 긍정적 PPL이 아닐까합니다. 주말에 '일요일은 내가 요리사~' 라고 외치며 사 먹었습니다.

신기전
영화 "신기전"을 본 것이 오늘로 두번째 입니다. 첫번째는 지난 6월 쯤이었습니다. 일종의 워크프린트 버전이었던지라 편집도 완성본이 아니고, CG도 다 입혀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보면서 얼마나 혀를 찼으며, 고개를 저어댔고, 욕을 해댔는지...

영화의 내용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그것이야 도로 바꿀 수 없다하더라도 편집이나 CG는 제대로 되서 나오겠지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더랬습니다.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신기전"의 내용은 별 것 없습니다. 명나라에 쥐어잡혀 살던 세종 시기의 조선을 배경으로 신기전이라는 신무기를 만들어서 명/여진 연합군을 쓸어버리고 한민족 만세!를 외친다는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별 것 없지만 그 내용이 담고 있는 것이 구역질이 나니 문제지요. 세종시대의 대명외교가 사대외교인 것만은 맞으나 그 사이에서 국가내부 문제에 있어서는 나름 자주적인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의도적으로 수탈의 이미지를 덧씌웁니다. 이 부분은 일종의 민족적인 트라우마입니다. 이 트라우마를 이용해 영화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느냐... 신기전이라는 신무기를 만들어 그 수탈의 주체인 명과 그 명과 함께 기어들어온 여진족을 몰살시켜버려서 그것을 쾌감으로 인식시키고 나아가 범민족적 마스터베이션을 선보입니다. 이 영화는 오로지 그러한 목적으로 밖에 계획되지 않은 영화입니다. 홍보용으로 떠들어내는 '우리 역사/우리 조상의 자랑스러움' 이랑은 전혀 상관없습니다. 불쾌한 민족주의적 감상만 가득할 뿐입니다.

영화는 이런 내용을 떠나서라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주인공 설주(정재영 분)의 흐릿한 캐릭터와 진지-코믹-청순-비련 외 기타등등 사이를 정신없이 오고가는 히로인 홍리(한은정 분)의 모습은 너저분하기 그지없습니다. 블럭버스터 액션 영화류에 등장하는 히로인들의 이미지를 한 곳에 모아 끓인, 실패한 잡탕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캐릭터들의 방황을 닮아서인지 아니면 영화의 흐름에 역마살이 끼었는지 전개가 바람따라 구름따라 정처없습니다. 어느새 그냥 신기전을 만들다가 또 어색하게 다른 이야기로 갔다가 또 신기전으로 돌아왔다가 또 다른 이야기로 마실을 나갑니다. 이런 역마살 흐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뻔하게 예측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 예측 범위 안에는 물론 지극히 억지스럽게 연출된 비장미 같은 것도 있습니다.

영화는 그렇게 흘러가다가 야심차게 준비한 모래밭에서의 대결투에 와닿습니다. 뻔히 낮에 찍은 것이 드러나보이는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야심한 밤'이라고 눙을 치는 명나라 장수의 코메디로 시작되는 이 부분은 영화 "영웅"과 "300"을 지나 지리하게 같은 장면을 리와인드하다가 영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마지막을 연상시키는 한 씬을 보여주면서 마무리로 치닿습니다. 예, 딱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입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딱 그것과 일치합니다. 거기에 더해 그 직전 '이게 진정 나랏님의 선택이냐'고 비분강개하는 설주의 모습은 이 영화의 제작을 맡았던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의 것과 같으며, 또 영화는 나아가 "한반도"와 같습니다. 조선시대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실미도" + "한반도"가 "신기전"의 정체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나름의 하이라이트인 이 마지막 부분은 어설픈 CG와 효과로 인해 더 안 좋은 모습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는 정두홍 무술감독이 참여했습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도 그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보일 뿐입니다. 그가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그래서 '한국형 액션'이라고 까지 불리게 된 '개싸움'이 그대로 등장합니다. 다만 손에 칼들만 좀 많이 쥐어줬다라는 점이 차이일 뿐이지요. 정두홍은 자기 자리에서 그저 표류하고 있습니다.

제작자인 강우석 감독은 '민족주의'에 기대고 싶지 않다라고 했지만 글쎄요, 추석을 앞둔 때에 개봉한 이 영화는 말그대로 다분히 '민족주의'에 호소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실미도"로 천만관객을, 영화판의 기대치와는 달랐지만 그래도 400만을 넘었던 "한반도"를 연출한 강우석 감독은 알고 있습니다. 영화가 흥행하려면 사회적 이슈거리가 될 무엇인가가 동반되야 하고, 지금 이 시기에는 어떤 것을 이용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돈 벌기 위해서라지만, 역겹습니다.

P.S 홍리, 한은정의 '당신이예요. 당신이 있기 때문이에요!' 는 예전 딴지일보에서 워스트로 선정했던 "비천무", 김희선의 '그 사람 죽으면 나도 죽어요'와 같은 포스를 보입니다.

강철중 : 공공의 적 1-1
....손에 드신 짱돌은 살포시 내려놔 주세요...일단 말로...

강철중: 공공의 적 1-1
돈이 없다 그래서 패고 말 안듣는다 그래서 패고 어떤 새끼는 얼굴이 기분 나뻐 그래서 패고 이렇게 맞은 애들이 4열종대 앉아번호로 연병장 두바퀴인 그 형이 돌아왔습니다.


바로 전작은 어울리지도 않는 갑갑한 양복아래 갇힌 철중이 형 보는 것이 내내 껄끄러웠습니다. 그 형이 다시 강동서 강력반 강철중 경사로 돌아온 것입니다. 강철중에게 가장 걸맞는 옷은 바로 이 형사 옷인 것 분명한데, 시간이 지나더니 살짝 변했습니다. 둘이었던 딸네미는 왠일인지 한명으로 줄어있고, 이래저래 약한 모습도 보입니다. 형~ 안 그러셨잖아요~ 그래도 경사 강철중은 강철중인지라, 기본은 갑니다. 캐릭터 영화로서의 전전작의 대성공의 아우라가 그래도 계속 이어지기는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작을 이용한 웃음코드의 사용도 적절한 편입니다. 고등학생 애들 데리고, 조폭 이야기로 썰을 풀려다보니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를 이끄는 힘 외로 욕설이 난무하고 또, 그것을 웃음에 이용하려는 시도가 눈에 거슬리긴 합니다만...그래도 1편의 아우라는 대단합니다. 그게 이 영화를 이끄는 원동력입니다.

세 편의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공공의 적들의 공통점, 이중성입니다. 1편의 적은 겉으로는 잘나가는 펀드매니저지만 진짜 정체는 천인공노할 패륜아였고, 2편은 번지르한 교육재단 이사장이나, 실상은 자본이란 이름하에 군림하는 제왕, 1-1은 거성기업이라는 이름을 내건 물류,유통, 건설 기업의 회장. 허나 진실은 수틀리면 바로 칼이 날아오는 조폭입니다. 이런 이중성이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이번 작품의 적은 조금 틀립니다. 장진의 각본 탓이겠지만 좀 인간적이라고 할까요. 좋게 말하면 악역 캐릭터에도 다층적인 면을 부여했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공공의 적"이라는 시리즈에서 본다면 강한 공분을 불러일으킬 포인트를 흐리게 합니다. 단순하기 하지만, 그게 이 시리즈의 핵심인데 말이죠.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영화의 시작은 변명입니다. 조폭이 멋있다고 아우성대는 아이들, 그에 한탄하는 강철중. '그게 다 드라마니까, 꾸며 낸거다' 라고 강변하지만, 결국 이 영화의 소재도 조폭입니다. 행동대장 문수는 차갑고 샤프하며, 이원술은 아이 데리고 주말농원 찾아가고 밤에 온 전화에 아내에게 눈치밥 먹는 아빠이기도 합니다. 공분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영화에 대한 변명, 또 조폭이야기라서 미안하다는 변명. 그게 영화의 시작입니다.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내뱉으면서도, 이 영화에 자체 평가로 Good을 달아버린 이유는 또 말하지만, 형사로 돌아온 강철중 때문입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달달한 유머에 살짝 변하기 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배급사의 막강한 지지력. 한국영화의 현 상황에 빗대면 주자 만루 상황에서 올라온 구원투수로, 잘하면 무실점으로 이닝 마무리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어떨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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