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위대한 배우이자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차기 연출작인 "휴먼 팩터"(The Human Factor)의 촬영장 사진이 공개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존 칼린의 책을 바탕으로 넬슨 만델라 前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실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는 자신의 조국이 흑백 인종 차별 등으로 통합되지 못하는 것을 보며 럭비를 통해 하나의 나라로 만들 결심을 합니다. 만인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통해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할 수 있다고 생각한 만델라는 럭비 팀을 지원하고 1995년, 그들은 불가능할것만 같았던 럭비월드컵의 결승에 올라 우승을 하게 됩니다. 당시 넬슨 만델라는 럭비 저지를 입고 시상대에 등장해서 럭비팀 주장 프랑스와 피에나르와 함께 우승컵을 들어올렸는데 그 장면은 스포츠가 어떻게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으며 지역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와 관련한 영상은 아래 동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넬슨 만델라 역은 모건 프리먼이, 프랑스와 피에나르 역은 맷 데이먼이 연기합니다. 이번 촬영장 사진에서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피에나르로 분한 맷 데이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012345678

"휴먼 팩터"는 북미기준 올해 12월 개봉예정입니다.


이 시대의 위대한 감독이자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하 경어가 생략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 1930년 5월 3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
- 클린턴 이스트우드 주니어 Clinton Eastwood Jr.
- 193cm

클린트 이스트우드

유년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주노동장이자 제철소 노동자이던 아버지 클린턴 이스트우드 시니어와 공장 노동자였던 어머니 마가렛 루스 이스트우드(결혼 전 성은 러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스트우드는 우량아로 태어났는데, 태어날 당시 몸무게가 거의 5kg(11파운드) 이었다. 이스트우드는 영국,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아일랜드 혈통이다. 그는 중산층의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는데, 아버지가 미국 서부해안지역에서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기에 빈번히 이사를 다녔다. 이스트우드가 십대 시절 동안 가족은 캘리포니아주 피드몬트에 정착했다. 이스트우드는 1949년 오클랜드 테크니컬 하이스쿨을 졸업했다. 그는 18세 혹은 19세 때 오레곤 주의 스프링필드의 펄프공장에서 일했다. 오클랜드에서는 주유소에서도 일했으며, 소방관으로도, 그리고 바에서 피아노로 래그타임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중인 1950년, 이스트우드는 군대에 징집당했고, 군용비행기에 탑승했는데 그 비행기는 샌프란시스코 북쪽 드레이크만에 추락했다. 그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탈출했는데, 사고 원인 조사를 위한 청문회에서 증언한 기록이 남아있다. 그 비행기는 그와 다른 이들을 한국으로 실어나르는 비행기였다. 이스트우드는 군 생활동안 동료 병사이자 후에 배우가 되는 마틴 밀너, 데이빗 얀센과 친구가 되었다.


영화 경력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950년 대 중반 연기를 시작했는데, "괴물의 복수"(Revenge of the Creature), 타라툴라(Tarantula), 프란시스 인 더 네이비(Francis In The Navy) 같은 B급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이스트우드는 당시를 '배울 게 많은 시절이었다. 적은 예산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스토리로라도 만들어야 했다. 많은 배우와 아이디어, 감독을 접했다. 그것을 통해 배웠다. 이 사람처럼 해야겠다던가 이 사람처럼은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것을.' 이라며 그 때를 긍정적으로 회고했다. 그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1958년, TV 시리즈 "로하이드"(Rawhide)에서 로디 예이츠 역을 맡으면서 부터이다. 1959년 1월부터 시작해 7년간 이어진 이 시리즈에서의 로디 예이츠역으로 그는 미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스트우드는 로디 예이츠를 '평원의 멍청이'라고 생각했다 한다.) "로하이드"에 출연하는 중에 이스트우드는 "시마론 상공의 습격"(Ambush at Cimarron Pass, 1958) 같은 여러 영화에 출연했는데, 그는 그 영화를 두고 '역대 서부영화 중 가장 형편없는 영화일 것'이라고 평했다. 1959년, 이스트우드는 웨스턴 코메디 TV 시리즈 "매버릭"(Maverick)의 'Duel at Sundown' 에피소드 중 제임스 가너와 다툼을 벌였는데, 그래서 그는 후에 세르지오 레오네와 만나기 전까지 다른 영화를 찍지 않았다.

1960년대

이스트우드가 "로하이드"에 출연할 당시 그를 본 한 스튜디오 고위층은 193cm에 이르는 그의 키로 인한 존재감과 더불어 이스트우드가 카우보이 같다고 생각했다. 이스트우드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1964)의 오디션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애초에 그는 주인공 역으로 처음 고려되었던 인물이 아니었다. 원래 감독은 제임스 코번을 '이름 없는 사내'(Man With No Name)로 염두에 두었으나
제작사는 헐리우드의 메이저 스타를 캐스팅할 여력이 없었다. 레오네는 이후 찰스 브론슨에 이 역을 제안했으나 브론슨은 각본이 형편없다며 거절했다. (브론슨은 그 후 세르지오 레오네의 1968년 작 "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에 출연한다.) 또한 타이 하딘, 제임스 코번 같은 TV 스타들도 이 역을 거절한다. 레오네는 관심을 최초의 이태리서부극 "Gunfight at Red Sands"에 출연한 리차드 해리슨에게 돌린다. 해리슨은 그의 이전 경험이 큰 인상으로 남지 못했고, 그렇기에 그 제안을 거절한다. 프로듀서는 덜알려진 미국 배우의 명단을 작성하게 되는데, 리차드 해리슨에게 자문을 구한다. 해리슨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추천한다. 해리슨은 후에 '내가 영화계에 기여한 가장 큰 일은 "황야의 무법자"에 출연하지 않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추천한 일일 것이다' 라고 이야기했다.

"황야의 무법자"는 스페인에서 촬영했으며, 구로자와 아키라의 "요짐보"에 대한 명백한 헌사였다. (스테판 주 : 혹자들은 당시는 다른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영화들을 그냥 갖고와 쓰는게 흔한  일이었고, 그에 따라서 세르지오 레오네도 (오마쥬나 헌사 이런거와는 무관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다 썼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작 세르지오 레오네 본인이 그에 대해 직접 밝힌 적은 없다고...) "황야의 무법자"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기초와도 같은 영화가 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후 "달러 3부작"을 관통하는 '이름 없는 사내"의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스트우드는 헐리우드 대로의 샵에서 블랙진을 샀고, 산타 모니카의 의상 회사에서 모자를 샀으며 트레이드 마크가 된 시가는 비버리힐즈 샵에서 구입했다. 정작 이스트우드 본인은 비흡연가였다. "황야의 무법자"는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인의 공동제작이었기에 세트장에서는 그 언어들이 주로 쓰였다. 레오네는 영어로 말하지 않았으며, 이스트우드는 이탈리아인 출연진이나 스탭들과 대화를 할때는 스턴트맨이던 베니도 스테파넬리를 통했다. 스테파넬리가 비공식 통역가였던 셈이었다. 레오네는 이스트우드가 만들어낸 특색있는 캐릭터를 즉각 수용하고, 그에 대해 '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좋았다. 왜냐하면 얼굴에 두가지 표현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모자를 썼을때, 다른 하나는 벗었을 때.' 라고 언급했다. 레오네는 이후 이스트우드를 삼부작의 이어지는 "석양의 건맨"(For a Few Dollars More,1965)과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에 잇달아 캐스팅 한다. 레오네는 기존의 웨스턴영화들보다 더욱더 무법천지이고 황량한 서부를 그려냈다. 삼부작은 모두 흥행에 성공했으며 그 중 "석양의 무법자"가 두드러졌는데 이스트우드는 메이저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그는 그의 총잡이, 현상금 사냥꾼 캐릭터를 통해 미국 카우보이의 이미지를 새롭게 정의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 스타덤으로 이스트우드는 '터프 가이' 형의 캐릭터를 더 연기하게 된다. 1968년 출연한 "독수리 요새"(Where Eagles Dare)에서 이스트우드는 리차드 버튼에 이어 두번째로 비중있는 역이었으나 80만 불의 출연료를 받는다. 같은 해에 이스트우는 돈 시겔의 "일망타진"(Coogan's Bluff)에서 뉴욕에서 온 고독한 보안관을 연기한다. 이 영화는 폭력성으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이후 10년간의 돈 시겔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콤비 플레이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었으며, 이후 이스트우드가 "더티 해리" 시리즈에서 연기하는 마초 히어로의 프로토타입과도 같은 모습을 보인다. 이스트우드는 1966~68년의 "배트맨" TV 시리즈에서 투페이스로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시리즈가 그 전에 종결된다.

1969년, 이스트우드는 뮤지컬 코메디 영화인 "페인트 유어 웨건"(Paint Your Wagon)에 리 마빈 등과 출연하며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1970년대

1970년, 이스트우드는 전쟁 영화 "켈리의 영웅들"(Kelly's Heroes)에 출연했으며 돈 시겔 연출의 서부극 "호건과 사라"(Two Mules for Sister Sara)에 셜리 맥클레인과 함께 출연했다. 두 영화는 모두 별난 유머가 가미된 터프가이의 액션이 등장하는 영화였다. 시겔이 연출한 또다른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The Beguiled, 1971)에서 이스트우드는 미국 남북전쟁 시기, 부상을 입은 북군 장군으로 남부의 여학교에 성적 노리개로 억류 되는 역할을 맡는다.

1971년은 이스트우드의 경력에서 전환점을 맞이한 시기이다. 그는 자신의 제작사 멜파소를 통해 그는 자신의 첫 연출작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Play Misty for Me)를 내놓는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돈 시겔의 영화 중 가장 큰 흥행성공을 거둔 "더티 해리"(Dirty Harry)에서 무뚝뚝한 형사 해리 캘라한을 연기한 것이었다. 더티 해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인상 깊은 역이었다. "더티 해리"는 현재의 '거친 경찰을 다룬 영화'(loose-cannon cop genre)의 원조라고 평가되어진다. 이스트우드는 터프하고, 허튼짓은 용서치 않는 경찰로 길거리의 범죄에 신물이 난 이들을 끌어들였다. "더티 해리" 시리즈는 이후 5편까지 이어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You've got to ask yourself one question: 'Do I feel lucky?' Well, do ya, punk?'

이스트우드는 1970년대에 두 편의 우화적인 서부극을 연출한다. "평원의 무법자"(High Plains Drifter, 1972)와 "무법자 조시 웰즈"(The Outlaw Josey Wales, 1976)가 그것이다. "무법자 조시 웰즈"는 손드라 록과 함께 하게되는 여섯편 중 그 시작이 되었다. 영화에는 실제 그의 아들이기도 한 카일 이스트우드가 일곱살의 나이에 출연하기도 했다.

1974년 이스트우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대도적"(Thunderbolt And Lightfoot)에서 제프 브리지스와 호흡을 맞췄다. 이 영화는 마이클 치미노가 각본 및 연출을 맡은 영화로 치미노는 "더티 해리 2 - 이것이 법이다"(Magnum Force)의 각본을 맡았었다.

1975년, 이스트우드는 암벽 등반이라는 또다른 재능을 스크린에서 선보인다. 자신이 연출 및 주연을 맡은 "아이거 빙벽"(The Eiger Sanction)에서
암벽 등반 장면을 스턴트 없이 자신이 직접 해낸다. 이 영화는 암벽등반을 다룬 영화의 고전이 되었다. 이 영화는 CGI가 등장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디지털을 이용한 어떠한 조작이나 처리도 하지 않은 영화다.

1977년, 이스트우는 자신이 연출 밑 주연을 맡은 영화 "건틀릿"(The Gauntlet)에서 살인 사건 증인인 여성을 라스 베가스에서 피닉스의 법원까지 호송하던 중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경찰 역을 맡았다. 스티브 맥퀸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애초에 이 영화에 캐스팅 되었으나 둘이 서로 다투면서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이스트우드와 산드라 록이 그 둘의 역을 맡게 된다.

1978년, 이스트우드는 "더티 화이터 2"(Every Which Way But Loose)에서 특색없고 엉뚱한 코메디 배역을 맡았다. 이스트우드는 미국 서부를 배회하는 트럭 운전수 필로 베도에를 연기했는데, 영화 속에서는 그는 잃어버린 연인을 찾고자 친구이자 매니저인 오빌과 그의 훔친 것으로 보이는 애완 오랑우탄 클라이드와 함께 한다. 이 영화는 비평가들에게는 혹평을 받았지만, 흥행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는데 1978년 개봉한 영화들 중 두번째로 큰 흥행을 거둔 영화가 된다. 이 영화에는 이스트우드와 자주 작업을 함께 한 산드라 록, 제프리 루이스, 댄 바디스, 빌 맥키니가 출연했다. 1960년 알카트라즈로 후송된, 당시 미국에서 가장 거친 죄수 중 하나였던 모리스는 'The Rock'이라는 별칭이 붙은 알카트라즈를 탈옥하기 위한 꼼꼼한 계획을 세우고 1962년, 다른 두명의 죄수와 함께 탈추해 샌프란시스코 만에 닿는다. FBI는 당시 탈옥한 죄수들은 익사했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1980년대

이스트우드는 1980에 두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는 "브롱코 빌리"(Bronco Billy)와 필리 베도에를 다시 연기한 "더티 화이터"(Any Which Way You Can)에 출연했다. "더티 화이터2"와 같이 "더티 화이터"는 큰 흥행을 기록한다.

1982년, 이스트우드는 제작 및 연출, 주연을 맡아 냉전을 소재로 한 "파이어폭스"(Firefox)를 만든다. "더티 해리" 시리즈의 네번째 작품인 "더티 해리 4 - 써든 임팩트"(Sudden Impact, 1983)는 시리즈 중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게 되며, 이스트우드를 1980년대의 확실한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그가 산드라 록가 함께한 마지막 작품이다.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그의 연설 중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인 '해봐, 묵사발 내줄테니.'(Go ahead, make my day.)를 사용하기도 했다. (스테판 주 : 이 대사는 미국영화연구소 선정 100대 명대사 중 6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1980년대 세 편의 이스트우드 영화에서 실제 그의 아이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아들 카일은 "고독한 방랑자"(Honkytonk Man)에서 그의 조카 역으로 나와으며, 딸 앨리슨은 "브롱코 빌리"에서 단역 고아로 나왔었는데 "연쇄 살인"(Tightrope)에서 조금 더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했다.

이스트우드는 시대극 "시티 히트"(City Hear, 1984)를 연출 및 버트 레이놀즈와 함께 출연했으며, 군대 이야기를 다룬 "승리의 전쟁"(Heartbreak Ridge, 1986)을 연출 및 주연을 맡았다. 그는 이어서 "페일 라이더"(Pale Rider, 1985)의 연출 및 주연을 맡으면서 서부극으로 복귀했는데, 이 영화는 서부극의 고전인 "셰인"(Shane, 1953)에 오마주를 바친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이스트우드의 다섯번째이자 마지막 "더티 해리" 시리즈인 "더티 해리 5 - 추적자"(The Dead Pool, 1988)는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평론가들에게는 혹평을 받았다. 이스트우드는 주류의 코메디 성향의 영화들을 번갈아 했는데, "핑크 캐딜락"(Pink Cadillac, 1989)이나 좀 더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연출을 맡은 "버드"(Bird)가 그것이다. "버드"는 재즈 뮤지션인 찰리 '버드' 파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로 이스트우드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음악과 관련된 영화였다. 이 영화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1990년대

1990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후계자"(The Rookie)의 연출을 맡아 찰리 쉰과 함께 주연을 맡았으며, 명감독 존 휴스턴이 험프리 보가트와 캐서린 헵번이 주연한 "아프리카의 여왕"이라는 영화를 찍을 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그대로 영화화한 "추악한 사냥꾼"(White Hunter Black Heart)의 연출 밑 주연을 맡았는데 이 영화는 일부 평론가에게서 호평을 받았다.
캐서린 헵번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요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스트우드는 그의 탁월함을 1990년대 초 다시 선보인다. 그는 그가 연출 밑 주연을 맡은 "용서받지 못한 자"(Unforgiven)로 마지막으로 한번 서부극으로 돌아온다. 그는 영화에서 나이든 과거의 총잡이 역할을 맡았다. 영화에는 진 핵크만, 모건 프리먼, 리차드 해리스 같은 훌륭한 배우들도 함께 했으며, 웨스턴 장르의 기반을 바꾸고 모호하고, 공상적이지 않은 새로운 장르적 변혁을 꾀하는 시작이 되었다. 영화는 흥행과 비평에 모두 성공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볼프강 페더슨이 연출을 맡은 "사선에서"(In the Linf of Fire, 1993)에서 과거 대통령의 암살을 막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다 다시 대통령의 경호원으로 돌아오게 된 프랭크 역을 연기했다. 이 영화는 블럭버스터로 그 해 박스오피스 흥행작 Top 10에 든다. 이스트우드는 같은 해 자신이 연출을 맡아 케빈 코스트너와 함께 출연한 "퍼펙트 월드"(A Perfect World)를 내놓는다. 그는 계속해서 그의 영역을 확장하는데, 1995년 메릴 스트립과 함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에서 사랑을 연기한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흥행에도 성공을 거둔다. 이후 그는 "미드나잇 가든"(Midnight In The Garden Of Good And Evil) 등의 감독직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이스트우드가 연출하고 그와 진 핵크만, 에드 해리스, 로라 린니 등이 함께 출연한 정치 스릴러 "앱솔루트 파워"(Absolute Power, 1997)는 괜찮은 흥행을 기록한다.이스트우드의 다음 영화 트루 크라임(True Crime, 1999)에는 그의 아내 디나와 이전 여자친구인 프란시스 피셔, 딸 프란체스카가 출연했다.

2000년대

2000년, 클린트 이스투드는 "스페이스 카우보이"(Space Cowboys)의 연출을 맡았으며 토미 리 존스, 도널드 서덜랜드, 제임스 가너와 함께 출연했다. 이 영화는 이전 7년간의 그의 영화들 중 가장 큰 흥행을 기록했다. 2002년, 이스트우드는 사디스트적인 연쇄 살인범을 쫓는 전직 FBI 요원을 다룬 영화 "블러드 워크"(Blood Work)를 연출 및 출연했다.

2003년 이스트우드는 살인, 자경주의, 성폭력에 관한 보스턴 배경의 범죄드라마 "미스틱 리버"(Mysric River)를 연출한다. 흥행 성공과 더불어 이 영화를 통해 주연인 숀 펜과 조연인 팀 로빈스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각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미스틱 리버

2005년, 이스트우드는 그가 연출, 제작, 스코어, 출연한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로 비평과 흥행을 모두 거머쥔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클린트 이스트우드 본인이 감독상을, 힐러리 스웽크가 여우주연상, 모건 프리먼이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전세게예서 2억 1600만 불의 흥행을 기록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들 중 가장 큰 흥행을 기록한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2006년, 이스트우드는 2차세계대전의 이오지마 전투를 다룬 두 편의 영화를 연출한다. 첫번째 영화는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로 수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세운 군인들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두번째 영화인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Iwo Jima)는 태평양 전쟁을 일본군의 시각으로 그려냈다. 두 영화는 모두 비평적으로 큰 호응을 받았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노미네이트 되었다. 감독 스파이크 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영화에 흑인들을 단 한명도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비난했는데, 그에 대해 이스트우드는 리가 잘못 알고 있다며, 잠자코 있으라고 답했다.

2008년 이스트우드는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을 맡은 "체인질링"(Changeling)을 연출한다. 같은 해 그는 차기작 "그랜 토리노"(Gran Torino)를 통해서 '스스로 선택했던 연기생활 중단"을 끝낸다.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의 연출, 제작, 주연 및 테마곡을 공동으로 작곡했다. 이 영화로 이스트우드는 한주에 3000만불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에 출연한 배우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주연배우가 되었다. 2월말까지 북미에서 1억 3600만불을 벌어들이는 영화는 북미에서 이스트우드의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 큰 흥행을 기록했다.


연출 경력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배우로서 보다 감독으로서 평론가들에게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1971년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Play Misty for Me)로 감독 데뷔를 한다. 그는 때로 "로하이드"의 에피소드 연출을 맡으려 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될 뻔도 했지만, 스튜디오의 회장과 프로듀서와의 이견차이로 뜻대로 되지는 못했다. 1985년, 이스트우드는 TV 시리즈 "어메이징 스토리"(Amazing Stories)에서 하비 카이텔과 산드라 록이 출연한 'Vanessa In The Garden' 에피소드를 연출하는데, 이는 작가/총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와의 첫 작업이었다. (이후 "퍼펙트 월드"와 "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 제작자로 참여한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한다.) 이스트우드는 훌륭한 연출 실력과 더불어 "언포기븐", "퍼펙트 월드", "미스틱 리버", "밀리언 달러 베이비", "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등과 같은 씁쓸함을 남기는 작품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다양한 영화들을 연출했는데, 어떤 것은 명백히 상업적이었으며, 다른 것들은 매우 개인적이기도 했다.

이스트우드는 연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화들을 제작하기도 했고,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드는 효율성으로 업계에는 잘 알려져 있다. 이스트우드는 '감독으로서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배우로서 더 선호하는 것에 그 판단의 기준을 두고 있다.'라고 밝혀오고 있다. 지난 시간 동안 그는 다른 많은 영화감독, 제작자로 관계를 맺어오고 있으며, 같은 스텝, 프로덕션 디자이너, 촬영기사, 편집기사, 다른 기술 부문 인력들과 꾸준히 함께 일하고 있다. 그와 같은 모습으로 그는 워너브라더스와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워너브라더스는 그의 거의 모든 영화에 투자했으며 배급을 맡았다. 하지만 2004년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는 그는 여전히 스튜디오에게 자신의 영화에게 관심을 보이게 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테판 주 : 어찌됐든 그의 최신작 "그랜 토리노" 역시 워너브라더스 입니다.) 2000년 대에 그는 자신의 일부 영화 속 음악의 작곡을 맡았다.

2007년 12월, 이스트우드는 유니버셜의 "체인질링"의 연출 작업을 마무리한다. 이 영화는 1920년대 LA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J. 마이클 스트라친스키가 각본을, 론 하워드와 브라이언 그레이저가 제작을 맡았으며,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을 맡았다. 그 다음으로 그는 워너브라더스의 "그랜 토리노"의 연출을 맡았다.

이스트우드의 차기 연출작은 넬슨 만델라의 일대기를 다룬 "휴먼 팩터"(The Human Factor)로 2008년 출간된 존 칼린의 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는 모건 프리먼이 넬슨 만델라로, 맷 데이먼이 럭비팀 주장 프랑스와 피에나르 역을 맡을 예정이다. (스테판 주 : 1995년,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한 후 축하하던 모습과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존 칼리는 영화화 판권을 모건 프리먼에게 팔았다.

이스트우드와 워너브라더스는 닐 암스트롱의 공식 자서전인 제임스 R. 한센의 "First Man: The Life of Neil A. Armstrong"의 영화화 판권을 구입했다. 제작 일자는 발표되지 않았다. 2008년 11월, "퀸", "프로스트 vs 닉슨"의 피터 모건이 각본을 맡은 "Hereafter"의 감독으로 이야기되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이스트우드는 배우로서는 은퇴하겠다고 밝혔지만, '만약 좋은 서부극 각본이 들어온다면, 또 모를 일이다.' 며 일말의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그는 2008년 "그랜 토리노"에 출연했다. 이스트우드는 "그랜 토리노"가 자신의 마지막 연기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트우드는 현재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의 새로운 도서관을 위한 펀드에 기부를 하고 있다. 2007년 초 이스트우드는 재즈의 전설인 데이브 브루벡을 다룬 브루스 릭커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영화는 임시적으로 "Dave Brubeck – In His Own Sweet Way"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 작업은 몬터레이 재즈 페스티발 측의 공인을 받았으며, 2006년에 열린 페스티벌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이스트우드의 영화 스텝들은 초기 리허설, 사운드 체크, 그리고 최종 공연을 담았다. 릭커와 이스트우드는 현재 토니 베넷을 다룬 다큐멘터리 "The Music Never Ends"를 작업 중이다.


수상 경력

이스트우드는 총 10 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올랐는데, 8차례는 감독상과 작품상이었으며, "용서받지 못한 자"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두 부문 모두를 수상했고, "미스틱 리버"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로는 수상하지 못했다. 나머지 두차례는 "용서받지 못한 자"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남우주연상에 오른 경우였다. 이스트우드는 같은 영화로 남우주연상과 감독상 후보에 오른("용서받지 못한 자"와 "밀리어 달러 베이비") 두 사람 중 한명으로 다른 한명은 워렌 비티이다.("천국의 사도"와 "레즈")

이스트우드는 두 개의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살아있는 세 명의 감독들 중 한명이다. (다른 두 명은 밀로스 포먼과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이스트우드는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다.

이스트우드는 두 명의 배우 팀 로빈슨과 모건 프리먼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년 연이어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게 했다. (팀 로빈슨은 "미스틱 리버", 다음 해 모건 프리먼이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수상) 이스트우드는 또한 "미스틱 리버"로 숀 펜에게 남우주연상을,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힐러리 스웽크에게 여우주여상을, "용서받지 못한 자"로 진 핵크만에게 남우조연상을 안겼다.

이스트우드는 다른 수많은 상을 받았는데, Kennedy Center Honors의 공로상을 비롯해 퍼시픽 대학교에서 명예학위를, 남가주 대학교에서 명예학위를 수여받았다. 1995년, 평생을 영화제작에 공로를 바친 이에게 아카데미가 선사하는 Irving G. Thalberg Memorial Award를 수상했다. 2006년 이스트우드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그래미상 베스트 스코어 부문 후부에 올랐다. 2007년 이스트우든느 MPAA(미국영화협회)가 영화계에서의 업적으로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개인에게 수여하는 Jack Valenti Humanitarian Award를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통해 받았다.

2006년 12월 6일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아내 마리아 쉬버는 이스트우드를 캘리포니아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으며 2007년 초 이스트우드는 프랑스의 자크 리라크 대통령에게서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받았다. 시라크대통령은 수여식에서 '프랑스는 이스트우드가 가진 배우로서의 훌륭한 재능과 감독으로서으 천재성, 영화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경의를 표한다'고 훈장 수여 이유를 밝혔다. 시라크 대통령은 또 이스트우드가 작품을 통해 미국이 지닌 복잡성, 즉 위대함과 취약성을 함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2007년 9월 22일 이스트우드는 버클리 음대에서 명예 음악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또한 그는 2007 Cinema for Peace Award에서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로 작품상을 받았다.

이스트우드는 2008 전미영화평론위원상에서 "그랜 토리노"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정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951년 공화당원으로 등록했으며, 1968년 리차드 닉슨의 대통령 유세를 지원했다. 그는 그 자신을 자유의지론자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정계에도 진출해 캘리포니아 해안 도시인 카멜의 시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시장 임기동안에 "승리의 전쟁"과 "버드"를 만들기도 했다.

2001년, 이스트우드는 캘리포니아주 파크 레크리에이션 위원회에 위촉되었으며, 2004년에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로 인해 다시 한번 위촉되었다. 이스트우드는 슈워제네거를 주지사 선거에서 지지했었다.

이스트우드가 부위원장으로,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처남인 바비 쉬라이버가 위원장으로 있던 캘리포니아 주 파크 레크리에이션 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캘리포니아 주립 해안공원을 관통하려는 도로 건설 계획을 반대하고 나었다. 이스트우드와 쉬라이버는 2006년 도로 건설에 대한 재판을 지원했으며, 캘리포니아 근해 위원회가 이 프로젝트를 거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08년 3월 이스트우드와 쉬라이버의 임기는 끝났는데, 그들은 재임명되지 않았다. 천연자원보호협회 NRDC(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는 그들이 도로 건설을 반대했기에 재임명되지 못한 것이 아닌지에 대해 입법부의 조사를 요구했다. NRDC와 정치 및 예술 잡지인 The New Republic에 따르면 이스트우드와 쉬라이버가 재임명되지 못한 것은 그들이 도로 확장건설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 확장건설은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지원했다. 슈워제네거는 언론에 이스트우드와 쉬라이버의 자리를 앨리 허프먼과 린디 드코븐이 대신한다고 밝혔으나 교체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2004년,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이스트우드와 데니 드비토, 빌 듀크, 프로듀서 탐 워너와 프로듀서 겸 감독인 릴리 자눅을 캘리포니아 영화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했다.

이스트우드는 2008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존 맥케인을 지지했다.


출처 : 위키피디아 & Etc...


그랜 토리노
흔히들 알고 있듯이, 감독이자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보수파입니다. 그렇기에 공화당을 지지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보수파, 공화당. 이러면 네오콘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강경 보수 우익인 신보수주의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는 보수라는 큰 틀 안에서 자유의지론자에 가까운 성향을 띤 인물입니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달러 3부작', 혹은 그의 "용서받지 못한 자"처럼 총 하나 홀로 들고 자신의 판단과 정의로 서부를 누비는 총잡이, 그리고 "더티 해리",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보이던 안락사 문제와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전통적 가족상의 어긋남과 그 붕괴를 대체하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주목, "미스틱 리버"에서는 무너져 내린 정의를 수수방관하는 미국을, "체인질링"이 부당한 공권력에서 맞서는 한 어머니의 위대한 개인의지의 발로를 그리고 있는 것처럼 그의 연출작, 출연작에는 그런 그의 성향이 상세히 드러납니다. 그가 과거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자유의지론적(libertarian) 시선을 좋아한다고 밝히기도 했으니, 이건 확인사살 정도가 될까요?

그러한 그의 시선은 그가 연출 및 주연을 맡은 최신작 "그랜 토리노"에서도 이어집니다. '사실, 연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내 나이대의 이야기였고, 나에게 딱 맞는 역할이라고 느껴졌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말처럼 이 영화는 그에게 딱 부합하는 영화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은 역할은 한국전 참전용사이기도 한 월트 코왈스키라는 노인입니다. 코왈스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보수적인(이라고 쓰고, 꼰대스러운 이라고 읽습니다.) 노인입니다. 포드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던 코왈스키는 그런 자신의 아들이 도요타를 몰고, 또 그 차의 딜러로 일하는 것에 신경질을 냅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손녀를 보며 잔뜩 인상을 찌푸리는 것 역시 빼놓지 않습니다. 그가 거주하는 동네는 백인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이제는 동양계인 몽족들이 이주해와 거의 몽 타운이 된지라 그 또한 그에게는 짜증나는 일입니다. 코왈스키의 옆 집에도 몽족 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랜 토리노

영화는 빈번히 성조기와 코왈스키를 같이 잡으며 둘을 동일시합니다.

처음에는 옆집의 그들과 갈들을 빚던 코왈스키는 수(아니 허 분)라는 소녀를 알게 되면서 점차 변화를 겪습니다. 그리고 수를 통해 그녀의 동생인 타오(비 방 분)를 만나게 됩니다. 타오는 몽족 갱단의 신고식으로 인해 원치않은 일이지만 코왈스키의 1972년 형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다가 들키고 그 이후로 감정의 골이 있는 상태이지만, 수의 노력으로 그 둘은 점차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수와 타오를 괴롭히는 몽족 갱단의 횡포는 점차 심해지고, 코왈스키는 그의 인생에서의 중대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코왈스키는 몽족 갱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만 하는 타오를 '겁쟁이'(big fat pussy)라고 칭하며, '스스로 맞서 싸우라고'라고 말합니다. 자신과 가족의 안녕은 자기 스스로가 나서야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오는 그의 말을 따르지 못합니다. 그는 아직 어리고, 아직 많은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코왈스키는 그런 타오를 재촉하기 보다는 일종의 멘토의 역할을 자임합니다. 지금은 아닐지라도 언제가는 스스로로 나설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키는 것입니다.

영화는 코왈스키와 타오의 이런 관계를 통해 "밀리언 달러 베이비" 처럼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코왈스키와 아들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코왈스키는 무뚝뚝하고 자식에게 정을 표현하는 법을 몰랐고, 아들은 어떻게 하면 아버지 집을 팔아치울까 아니면 혹시 아버지를 통해 풋볼 티켓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손녀의 관심사는 할아버지가 죽으면 그랜 토리노는 내가 차지할 수 있을까 입니다. 코왈스키에게 양로원 팜플렛을 내미는 아들 내외의 모습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매기에게 재산위임계약서에 서명하라던 그녀의 가족들 같습니다. 매기(힐러리 스웽크 분)가 혼자였던 것 처럼 "밀리언 달러 베이비" 속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딸에게도 외면 받는 실패한 트레이너였으며, 이 영화의 코왈스키 역시 혼자입니다. 코왈스키가 새롭게 관계를 맺는 이들은 그가 경멸하던, 그와 다른 인종인 수의 가족입니다. 수의 초대를 받고 간 파티에서 문화의 차이도 느끼긴 하지만 새로운 경험과 만남으로 인해 점차 그들에게 마음을 열게 됩니다. 수는 그런 코왈스키에게 아버지가 해주지 못했던 타오의 롤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일종의 유사가족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이들은 "용서받지 못한 자"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모건 프리먼처럼 인종의 경계를 넘어선 관계입니다. 극도의 보수주의자로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코왈스키가 그 생각의 벽을 허물고 수와 타오의 가족과 가까워지고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반인종차별주의적 생각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 밀리언 달러 베이비 밀리언 달러 베이비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로 자노비치 신부(크리스토퍼 칼리 분)가 있는데 그는 코왈스키의 아내가 신신당부했다며, 그에게 고백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마음의 평온을 얻으라고 합니다. 그는 끈질기게 그를 찾아와 설득하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합니다. 코왈스키는 자노비치 신부에게 자신은 교회를 믿지 않으며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어떤 명령(과 같은 외부의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그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들에서처럼 그에게 중요한 것은 종교나 법이 강제한 무엇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생각과 판단, 그리고 그 행동입니다. 그의 마음을 괴롭히던 것의 해결 역시 종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그는 성당을 찾았고 신부에게 물음을 던졌지만, 그에게 명확한 답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죽어가는 그의 또 다른 '혈육'을 위한 결정에 종교는 반대를 표했지만 그는 그녀를 위해 결심을 하고 행합니다. "그랜 토리노"에서도 그는 자신의 마음을 위로할, 그로 인해 평온해질 방법을 종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찾아 결정합니다. 몽족 갱단들이 있는 한 수와 타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결코 평화로워질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판단이 가장 우선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는 타오의 얼굴에서 그를 괴롭히던 과거의 상을 떠올렸을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일어선 그 분연한 의지와 결단은 다른 이들에게는 평화를, 그에게는 그를 괴롭히던 마음의 불안을 잠재워줍니다. 십자가의 예수와 같은 그의 모습은 그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자노비치 신부는 말합니다. 코왈스키에게서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웠다고.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영화 속 코왈스키의 차 '그랜 토리노'는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차입니다. 몽족 갱단들이 눈독을 들이는 차이기도 하며, 코왈스키의 지인 역시 관심을 가집니다. 그가 가진 그 차는 단순히 멋있는 자동차가 아니라 성공을,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합니다. 코왈스키가 소유하고 있던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드는 몽족 갱단의 모습은 결국 미국의 주류인 백인보수층이 다른 인종들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자신들의 성공을 훔쳐서 좀먹으려는 존재들. 그들은 처음 코왈스키가 보여줬던 것처럼 총을 겨누며 막아섭니다. 하지만, 코왈스키는 변합니다. 타오와 정을 나누면서 그는 타인종이 무조건적인 악이 아니라 타오와도 같은 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타오를 가족과도 같은 관계로 받아들입니다. 코왈스키가 타오에게 가르치는 것은 그저 남자답게 사는 방법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성공해 일어나는 방법입니다. 코왈스키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닌 타오에게 자신의 그랜 토리노를 넘겨주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그 성공의 희망을 주류 백인들만의 울타리에 가두고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타오로 대변될 수 있는 다른 인종의 미국인들과도 나누는 것입니다. 영화는 그것이 저무는 세대가 새로운 세대에게 주는 선물이자 역할이라고 말합니다. 코왈스키의 굳은 결심과 어우러진 그 의미는 더욱 빛나며 누구나 꿈꿀 수 있고 그렇기에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아메리칸 드림'이 지금의 미국을 있게 했다는 것에 비추어 그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합니다.

그랜 토리노

'아메리칸 드림'의 또다른 상징. 코왈스키의 그랜 토리노.

영화 "그랜 토리노"는 인생의 경험이 많은, 그리고 신념이 굳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때로는 웃음을 주며,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가슴 깊이 울리는 감동을 함께 전해 줍니다. 강압적으로 윽박지르는 설교를 늘어놓는게 아니라 머리와 가슴으로 모두 생각케 하는 뜻깊은 교훈을 남기는 그런 이야기. 그 이야기는 그의 인생 모든 경험이 총집대성된 이야기입니다. 과거에는 서부의 총잡이로, 때로는 강력계 형사로, 가장 최근에는 한 모성을 지지했던 그의 인생 이야기말입니다. 그는 너무도 훌륭한 감독이자, 배우이자, 그리고 보수주의자입니다.

우리나라 나이로 여든의 고령에도 누구 못지않은 정력적 활동으로 끊임없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주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님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전작 "체인질링" 때에도 했던 말이지만 감독님, 오랫동안 저희 곁에 머물러주세요.

P.S 아카데미는 이 영화를 왜 작품상이나 감독상 후보로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숀 펜이 수상소감에서 웃으며 말한 바처럼 '그들이 호모를 더 좋아해서' 일까요? (농담)

P.S2 영화에서 나름 눈에 띄는 장면은 그의 "용서받지 못한 자"를 연상케 하는 장면입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신 분들이라면 그 장면으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감정의 교차 혹은 반전을 느끼실 수도...

P.S3 프레스 블로그에서 주최한 시사회를 통해 본 영화로, 국내에는 3월 19일 개봉합니다.

P.S4 영화의 예고편 등의 부가영상 및 소개는 홈페이지 http://www.gran-torino.co.kr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체인질링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체인질링"은 "미스틱 리버" - "밀리언 달러 베이비" - "이오지마" 연작 같은 그의 최신작을 두고 보자면 범작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말마따다 그의 범작은 왠만한 감독들의 걸작 수준이란 것이 나름 의미심장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영화는 1920년대 말 LA에서 벌어졌던 믿을 수 없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화국에서 일하던 크리스틴(안젤리나 졸리 분)는 어느날 그녀의 9살 난 아들 월터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됩니다. 경찰에도 신고하지만 도움은 되지 못하고 그렇게 5개월이 지난 후 경찰은 아이를 찾았다며 한 아이를 그녀 앞에 세웁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크리스틴의 월터가 아니었습니다. 경찰은 사건을 종결하고 자신들의 업무능력에 대한 신뢰성을 위해서 억지로 크리스틴에게 월터를 떠 맡깁니다. 크리스틴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해오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공권력이란 이름의 폭압적인 올가미 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근작들이 캐릭터의 행동에 대한 합법과 불법, 혹은 선과 악의 구분을 짓는데 있어서 의도적으로 모호한 위치를 견지하면서 그를 통해 캐릭터에 깊이와 풍성함을 자아냈다면, 이번 "체인질링"에서는 그 선과 악의 경계가 매우 뚜렷하게 갈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절절한 모성애를 바탕으로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는 크리스틴은 분명 선이고, 그런 크리스틴이 맞서게 되는 부패와 무능력의 온상인 LA경찰 및 LA 시, 그들이 휘두르는 공권력은 악입니다. 이 두 인물 혹은 집단 사이에는 다른 방식으로의 시선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기존과 같은 캐릭터를 연출해낼 수 있을 법도 했던 아동연쇄살인범 노스콧의 역할은 그저 살인을 행한 자로만 마무리를 짓고, 그래서 그의 살인행각이 드러나는 시점 이후부터는 관객들이 크리스틴을 향한 연민보다는 살인범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나아가서는 궁극적으로 영화상에서(그리고 당시 실제) 보여지는 공권력이라는 거대한 힘을 향한 분노와 증오를 일으키게 만듭니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전개가 감독의 의도가 지나치게 뻔히 노출되는 모습이긴 합니다만 감독이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인지시키려고 했던 메세지를 위해서라면 어쩌면 가장 나은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믿을 수 없이 부조리한 공권력을 향했던 분노는 경찰 반장 및, 경찰청장의 사임, 시장의 재선도전 포기 등의 일종의 해피엔딩으로 일단락되고 관객의 마음은 다시 크리스틴으로 돌아옵니다. '
싸움은 먼저 걸지 않되, 마무리는 내가 한다'는 자신의 신념으로 끝까지 굽히지 않았던 크리스틴의 행동은 80여년이 지난 우리네 현실에 비추어봤을 때 과거의 그 순간과 다르지 않은 지금의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그 희망을 통한 의지와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번 영화에서 큰 기교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2시간 20여 분 동안 끊임없이 관객을 쥐었다 폈다하는 솜씨를 선보입니다. 사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공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영화일런지 모르겠습니다.

영화에서 주연인 크리스틴 역을 연기한 안젤리나 졸리는 아이를 잃은 모정을 말그대로 애가 끓게 연기를 하고 있는데 아마도 여러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의 실제 생활과 무관하지는 않아보입니다. "원티드"에서 보여줬던 액션성 강한 섹시한 여전사의 모습에서 그와는 너무도 다른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하는 안젤리나 졸리의 모습은 그런 대비를 인지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인상적입니다. 이런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 뿐만 아니라 존스 반장 역의 제프리 도너번 등의 조연들의 출중한 연기는 이 영화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P.S 곧 개봉을 앞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또다른 연출(및 주연작) "그랜 토리노"가 기대됩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연출,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영화 "체인질링"(Changeling)의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영화는 1920년대 미국 LA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며, 유괴당한 아이를 우여곡절 끝에 되찾지만, 그 아이가 바꿔차기 당했다는 의혹을 가진체 점차 광적으로 변해가는 여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영화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 크리스틴 콜린스 역을 맡았으며, 역할을 위해 체중감량을 해 그 모습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체인질링"에는 그 외에도 존 말코비치, 제프리 도노반 등이 출연합니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분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기도 했던 "체인질링"은 북미기준 10월 31일 개봉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