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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리뷰] 모던 보이 (2008)

1930년대의 경성은 얼마나 화려했는가. 영화 "모던 보이"는 경성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비극적 사랑을 나눠야했던 해명(박해일 분)과 난실(김혜수 분)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총독부직원인 이해명은 한때는 고종의 죽음에 누구보다 슬퍼했으나, 지금은 친일파인 아버지를 둔, 멋진 패션을 자랑하는 모던보이입니다. 그에게 나라를 빼앗긴 작금의 상황은 크게 문제될 일이 아닙니다. 그가 신경쓴다고 이 상태가 달라질 것도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우리 아버지가 점을 봤는데, 내 운이 앞으로 10년동안 꽝이다. 그러니, 총독부에서 내가 일하는 것이 독립에 일조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허무맹랑한 말이나 하는 것일 뿐. 그런 해명에게 로라라는 여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경성 최고의 '낭만의 화신', 해명은 그런 로라에게 한눈에 반하고는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그의 눈 앞에서 사라지고, 그녀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녀에게는 본명 난실 외에도 다른 여러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시대의 비극은 그 둘의 사랑을 크게 흔들어놓습니다.

"모던 보이"는 시대의 흐름에 그냥 몸을 맡기던 한 모던 보이가 사랑을 통해 그 흐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의 주 이야기는 해명과 난실의 멜로이지만, 해명이 난실의 정체에 대해 알아가는 일련의 과정은 일종의 스릴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명은 난실을 알기 전까지는 (나름의) 평화로운 삶을 살았지만 난실을 만난 후부터 그는 사랑을 좇으며, 시대의 또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해명은 말합니다. '소학교 때, 선생님이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는데,난 일본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나 형이나 다들 부자가 될려고 노력하는데, 그건 일본인이 되면 되거든.' 일제치하의 시대상황에서 어린 해명의 눈에 비치던 그것은 그의 삶도 어느새 일본인처럼 살게 만들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선인입니다. 같이 경성대학에서 수학했던 절친한 일본인 친구 신스케(김남길 분)는 그를 이용해 난실의 배후에 있는 테러박을 잡으려하고, 해명은 고문과 심문을 받으며, 조금씩 자신의 현실에 대해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난실을 사랑합니다. 영화는 일제치하라는 시대적 비극 속에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려 하고 있지만 점차 극이 흐를수록 커지는 것은 그들의 사랑이 아니라 일제 치하의 아픔입니다. 해명이 그토록 난실을 사랑하고, '낭만의 화신이 테러의 화신'이 되기까지 영화는 그저 첫눈에 반해서라는 이유 하나로 설명하려합니다. 또한 난실의 해명에 대한 마음도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시대적 비극의 무게에 치중에 이 영화가 가진 또다른 한축에 너무 소홀했습니다. 그렇게되면서 이 영화는 그간의 여타 다른 일제시대 배경영화와 그다지 차별성이 없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올해만 해도 "라듸오 데이즈", "원스 어폰 어 타임" 등의 영화가 있는데,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은 결국 모로가도 독립운동으로만 가면 된다입니다. 극의 이야기와 분위기, 흐름과는 어쩌면 무관하게 그쪽으로만 끌고가는 영화들은 식상함만 느끼게 할 뿐입니다. 또한, 이 영화가 이야기를 끌고가는 스릴러적인 부분은 이미 도시락폭탄이 터지면서 난실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된 마당인지라 (난실이 영화 속에서 자신은 아니라고 해도) 긴장감은 풀린 상태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스릴러 적인 긴장감도, 멜로라인의 애뜻함도 느껴지지 않는 영화는 그저 지루함만 증폭됩니다.

영화 속 배우 이야기를 하자면 주연을 맡은 박해일은 캐릭터에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줍니다만, 김혜수의 난실 연기는 종종 과도하게 오버스럽고, 때로는 어색합니다. 난실 역 자체가 등장 때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최소한 가지고 있어야 할 캐릭터의 일관성이 부족합니다. 그렇다보니 박해일과 김혜수의 연기 앙상블은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극을 이끌어가는 두 캐릭터간의 이런 모습은 또 다른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영화는 세트와 CG를 통해 그 시대의 경성을 세세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조선총독부건물, 경성역, 명동성당, 식당 테라스에서 보이는 야경 등. 그러한 모습을 보는 것이 한 재미일 정도로 인상적인 모습입니다만 정작 그 외에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인지라, 빛이 바래는 듯한 느낌입니다. 배경은 갖춰졌는데, 그 안에서 펼쳐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지 못해 더욱 아쉬운 영화, "모던 보이" 입니다.

P.S 이 영화를 지난 3월의 블라인드 시사회를 통해 먼저 봤더랬습니다. 편집이나 CG등이 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때의 감상 느낌은 이번에 정식개봉판을 본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원래 4월 개봉이었는데, 밀린거 보고 대충 자체에서의 평가도 어떤지 감이 왔고 말이죠. 뭐, CG등의 작업때문이라고는 합니다만.

P.S2 개봉을 뒤로 미룬 것이 나름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위에도 언급했지만, "라듸오 데이즈"나 "원스 어폰 어 타임" 등의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개봉한지 불과 3개월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어서 그렇습니다. 역시나 말했듯이 사실 크게 보면 별 차이가 안나는 영화들이라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