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의 감상기를 적으면서 이 내용이 혹시 스포일러로 작용하지 않을지 전전긍긍해서 뺀 몇몇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이렇게 적어봅니다. 영화의 내용이 무차별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리도 되지 않은 그냥 제멋대로의 생각입니다.
1. 영화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의도적으로 약간의 속임수를 쓴 수미쌍관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혜자(김혜자 분)가 갈대밭에서 춤을 추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갈대밭은 혜자가 후반부에서 고물상 노인을 죽인 후에 등장합니다. 극의 흐름상, 그리고 오프닝과 같은 장면이 등장함에 있어서 자연스레 이제 이 영화가 이렇게 마무리 되는 구나 라는 생각을 보는 이들이 은연 중에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의 그런 엔딩은 조금 맥이 빠지는 엔딩이다라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다른 시퀀스가 들어옵니다. 바로 혜자의 약재상 안입니다. 혜자는 약재를 썰고 있는데, 이 장면은 영화의 초반부의 오프닝 이후에 바로 이어졌던 것과 같은 장면입니다. 이처럼 영화는 반으로 접었을때 서로 마주보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엔딩은 다른데 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지만, 엔딩과 오프닝의 공통점은 혜자의 춤입니다. 장소가 아닌 그녀의 한서린듯한 묘한 춤.
2. 이런 구조로 인해서 후반부의 약재씬에서 긴장감이 더욱 증폭됩니다. 초반부의 작두의 서걱거림과 혜자의 불안한 시선 그리고 이어진 피의 모습이 후반부의 장면에서도 재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예상이 들게 유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생각해보면 치매 걸린 할머니의 장례식에서의 모습도 기억에 남습니다. 혜자가 담배피던 임산부에게 싸다귀를 맞은 직후 막걸리를 이리저리 뿌리며 난간으로 다가가는 할머니. 왠지 그 할머니가 그대로 난간에서 떨어져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할머니가 난간으로 점차 다가갈 수록 증폭됩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막걸리 통만을 난간 아래로 던져버립니다.
4. 원빈의 바보 캐릭터. 사실 영화 개봉전에 나온 많은 예측들 중 하나가 원빈이 실제로는 바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실제로는 자기가 살인을 저지르고 시치미를 떼는 것일 수도 있다 라는 예측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영화가 긴장감을 유지하는 또다른 요소는 바로 그런 생각들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영화 속 원빈의 캐릭터는 굉장히 묘합니다. 분명히 모자른 캐릭터가 분명한데, 그 속에서 그게 아닐지도 모르는 차가움과 섬찟함을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영화의 마지막까지도 이어집니다. 이 모습이 또다른 예측가능한 결말과 균형을 이루면서 영화를 조율해나간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 진태를 연기한 진구의 모습이 사실 원빈보다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진태 캐릭터는 개인적으로 약간 이 영화의 헛점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진태가 혜자에게 실마리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그 후에는 그저 잠시 소모되고 뒤켠으로 사라져버리는 캐릭터로 급하게 변합니다. 진태와 혜자의 사이에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은데 제가 두번이나 보고도 그에 대해 잘 이해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여튼 그렇습니다. 진구의 좋은 연기는 제가 느끼는 그런 틈이 크게 부각되지 않게 했다랄까요.
6. 사실 감상기를 적은 직후까지는 감상기에도 적었던 바대로 봉준호 감독이 전작들과는 다르게 개인의 '모성'이라는 관념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와 그로 인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아닌. 하지만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혜자의 그런 지독한 모성이 발휘된 원인은 무엇인가? 아니 그전에 도준이 살인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도준이 바보가 된 것이 혜자가 농약든 박카스를 줘서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일단 그 부분은 올린 '시네마토크'를 봐주시고, 그것을 제외하고 보도록 하겠습니다. 면회를 하면서 혜자와 도준은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눕니다.(정확하지 않습니다.) '너 괴롭히는 녀석은?' '혼쭐을 내준다.' '한대 맞으면' '두대 갈긴다.' 도준이 어릴때 가장 많이 들었을 말이 '바보' 였을 것입니다. 그런 놀림이 '병신'이라는 말보다 '바보'라는 말에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혜자는 너무 힘들어서 도준과 같이 죽으려 했다 말합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힘들게 했을까요? "괴물"에서 그려졌던 것이 편모 가정의 불안함이었다면 이 영화에서 편부 가정이라는 모습 즉, '과부'와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사회적 괄시가 드러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세팍타크로 형사가 '너 엄마랑 자냐?' 라고 물을때의 그런 느낌. (일종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멸시와 괄시가 세상에 둘뿐이 없다는 생각을 혜자에게 하게 했고('네가 내 전부인데.') 그로 인한 강박이 '바보'에 반응하는 도준을, 그리고 그의 살인을 만든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보면 결국은 이 영화 역시 루저들과 그들이 속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약인가요?
7. 이병우 씨의 음악은 영화상에서 정말 효과적으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8. 기도원에서 탈출한 종팔이는 자신을 위해 모든 걸 바쳐줄 '엄마'가 없었습니다.
9. 이 영화의 엔딩은 참 인상적입니다. 나쁜 기억을 잊게 해준다는, 자신만이 아는 침자리에 침을 놓고 일어나 관광버스에서 춤을 추는 혜자. 그런 혜자를 비추는 카메라는 정신없이 흔들리고 그런 모습과 더불어 붉은 노을은 불안함을 증폭시킵니다. 정말 그들은 모든 기억을 잊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