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스캔들
살다보면 때때로 전혀 기대치 않았던 상황에서 의외의 좋은 결과나 재미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반대일때가 많아서 그렇지, 종종 겪는 그런 경험은 그 순간을 더욱 즐겁게 합니다. 영화 "과속스캔들"은 기대와는 다른 의외의 결과로 인한 즐거움이 큰 영화입니다. 극장을 들락날락거리면서 영화 상영전 나오는 이 영화의 예고편을 많이도 봤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차태현이라는, "엽기적인 그녀" 한편의 캐릭터로 근 10년의 연기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배우의 존재도 그러했지만, 예고편 상으로 어떤 끌림 같은게 전혀 느껴지지가 않아서였습니다. 30대 후반의 연예인과 그 연예인의 딸이라고 찾아온 여자, 그리고 그녀의 아들. 소재도 눈에 띄지 않고, 꼬마아이가 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한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간에 등장했던 영화 속 아역 캐릭터들이 대부분 그러했으니까 말입니다.

실제 영화상에서도 이 영화가 어떤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혹자들은 예고편 등의 마케팅의 문제라고도 하지만, 누가 가져다 한들 영화 이전의 마케팅만으로는 이 영화를 포장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별난게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기대와는 다른 재미를 주었던 가장 큰 이유는 코메디 영화라는 본분을 잘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코메디 영화의 지저분한 특징 중 하나는 코메디를 코메디로 끝내려하지 않고, 꼭 불필요한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몸부림을 친다는 것입니다. "과속스캔들"에 그러한 면이 전혀 없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절제의 미덕을 충실히 살린 편입니다. 코메디 답게 적절한 때에 웃겨주고 빠져주고, 딴길로 안새는 호흡 조절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주인공인 박보영 - 차태현 - 왕석현 의 배우들이 보이는 연기 앙상블도 이 영화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한 요인입니다. 차태현이야 사실 앞에도 언급했지만 한우물만 파다보니 식상할지언정 어색하지는 않고, 박보영은 갓 주연 타이틀을 딴 배우 답지 않게 안정적인 연기를 펼칩니다.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아역배우 왕석현의 연기도 귀엽고 말입니다.(왕석현이 연기한 황기동 캐릭터의 성격이 잘 맞아 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에 맞지 않는 조숙함이 식상함이나 거부감으로 치닫지 않고 그저 웃음이란 목적에만 맞게)차태현의 식상함을 그저 웃음으로 넘기며 받아들이게 하는 데에는 이 두 배우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간의 한국 코메디 영화가 기본만 충실히 했어도 관객의 발길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이 "과속스캔들"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감히 말하자면, 한국영화계가 지향해야 할 바는 "놈놈놈" 같이 수백억이 들어가는 블럭버스터(그로 인한 과도한 스크린독점)가 아니라, 이러한 중간규모 영화들입니다. 모 아니면 도 식의 블럭버스터가 남기는 황폐함보다는 이러한 중간규모 영화 여러편이 만들어내는 아기자기함이 한국영화의 미래에 있어서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P.S ...올한해 한국영화 중 최고의 코메디 영화는 "미쓰 홍당무"인데, 그 영화가 흥행을 못한게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결국은 관객이 문제인건가...

바보
‘어느 동네에나 한명쯤 있었을 법한 바보’의 이야기. “바보”는 스물 일곱 살의 풍납동 바보 승룡이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온라인카툰으로 유명한 강풀의 동명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온라인상에서의 만화 “바보”를 재밌게 봤던지라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지고 갔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와 비례해 어느 정도의 불안감도 있었구요. 영화는 기대감과 불안감 모두에 부응(?)하는 모습입니다. 우선 기대감이 충족됐던 부분은 영화가 전체적으로 원작의 분위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의 배경도 그렇고, 승룡이의 그 캐릭터도 그렇고 말이죠. 거기에 더해 이 영화에서 원작의 캐릭터와 비교했을 때 최고의 싱크로율을 선보이는 상수 역의 박희순. 하지만 기대감 쪽 보다는 불안감을 좀 더 보았습니다. 99분의 러닝타임에서 주인공인 승룡이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각색 과정에서 승룡이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축소되거나 아예 생략되었습니다. 희영과 지호, 희영과 상수의 이야기들이 잘려나갔고, ‘작은 별’과 관련해 승룡이와 엄마의 이야기, 동생인 지호가 왜 그토록 오빠를 싫어했는지 등이 그렇습니다. 원작에서의 이런 주변 인물들을 다룬 이야기는 중요한 서브플롯으로 인물들의 관계에 대한 이해, 그를 통해 작품의 배경적 이해 및 분위기 설정에 기여하고, 나아가 가장 중요한 승룡이의 이야기가 단순한 신파조 이야기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일종의 보완제 역할을 합니다. 그런 서브플롯을 대폭 삭제하면서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그저 그런 눈물 빼는 영화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또한, 이로 인해 원작을 보지 못한 관객들에게는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를 못합니다. 승룡이의 따뜻한 캐릭터가 물론 있지만, 그 캐릭터에 힘을 돋아주고 설명에 도움을 주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빠진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실책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더해 승룡이역을 맡은 차태현은 외형적인 모습, 복장, 영화의 분위기 등으로 얻어진 승룡이의 캐릭터로 인해 덕을 보는 것이지 실상 연기적으로는 실망스러운 모습.

원작의 팬들은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마시고, 원작을 모르시는 분들은 따뜻한 이야기(조금 뻔하지만)를 보러간다고 생각하시고 마음 편히, 가볍게 관람하시면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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