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르바비차"는 최악의 인종청소라고 불리워졌던 보스니아내전. 그 후에 남은 여성들의 아픔을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당시 전쟁중에 2만여명이 남는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했고, 그로 인한 상처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사라예보의 그르바비차에 사는 에스마는 사라를 홀로 키우는 미혼모입니다. 사라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이구요. 사라의 학교에서는 이번에 수학여행을 떠나는데, 그 비용으로 200유로가 필요합니다. 가난한 삶이지만, 그런 딸을 위해서 그녀는 야간에 클럽에서 서빙까지 하며 돈을 모읍니다. 사라는 학교에 아버지의 '전사자 증명서'만 가져가면 수학여행비가 무료라고, '증명서'를 떼오라고 하지만 에스마는 어물거리며 미룰 뿐입니다. 사실 사라의 아버지는 내전에서 전사한 보스니아 군인이 아니라 성폭행을 일삼던 세르비야 군인이었고, 사라는 그 때 생긴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거의 아픔을 가진 에스마 였기에 영화 속에서는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그녀의 상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딸과의 장난 중에도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불쑥 화를 낸다거나, 버스 안에서 남자를 보고 느끼는 두려움, 클럽에서 서빙 중 보는 남자와 여자의 야릇한 몸짓에 탈의실로 들어가 진정제를 먹으며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이런 상처는 에스마에게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딸인 사라 역시,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항상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자랑스런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사라인데, 어머니의 행동은 수상할 뿐입니다.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와 아버지의 '전사 증명서'가 아니라 200유로를 내고 간 날, 사라는 어머니에게 감정이 복받친채, 아버지에 대해 말해 달라고, 총을 겨눕니다. 10여년전 행해졌던 전쟁의 총부리가 이제는 어머니와 딸에게 다시 되물림 된 것입니다.
딸에게 진실을 이야기 해준 어머니 에스마,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된 딸 사라. 모두 상처를 입었습니다. 상처로 생긴 그 벽 앞에서 잠시 소홀해진 둘이지만, 수학여행을 떠나는 그 마지막에서 둘은 화해의 제스쳐를 취합니다. 그 때 흘러나오는 흥겨운 노래는 이들의 미래가 희망차길 바라는 감독의 또다른 제스쳐일 것입니다.
영화는 내내 특별한 과장이나 기교없이 담담하게 이 두 모녀의 상처와 아픔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런 담담한 시선이 오히려 이 영화의 진심에 더 가슴 아프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끝나도 끝나지 않는 그 가슴 아픈 전쟁의 상흔들. 저 역시 전쟁이 지나간 땅의 그녀들이 되풀이되는 전쟁의 상처와 비극에서 벗어나 즐겁게 노래부를 날이 오기를 바라봅니다.
P.S 영화에서 사라와 그 친구가 폐허같은 건물에 가는 것을 보고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독일 영년"이 떠올라서 혹시 자살이나 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도(?) 아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