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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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예스 맨 (Yes Man, 2008)
2008.12.1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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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Ponyo On The Cliff, 2008)
2008.12.1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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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과속스캔들 (2008)
2008.12.1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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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1724 기방난동사건 (2008)
2008.12.0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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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매직 아워 (ザ マジックアワ: The Magic Hour, 2008)
2008.11.3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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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순정만화 (2008)
2008.11.2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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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영화제 리뷰] 비 카인드 리와인드 (Be Kind Rewind, 2007)
2008.11.2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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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추적 (Sleuth, 2007)
2008.11.2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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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영화제 리뷰] 레저베이션 로드 (Reservation Road, 2007)
2008.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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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맥스 페인 (Max Payne, 2008)
2008.11.2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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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 Lat Den Ratte Komma In, 2008)
2008.11.1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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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Antique, 2008)
2008.11.1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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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 '08 리뷰] 해피 고 럭키 (Happy-Go-Lucky, 2008)
2008.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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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미인도 (2008)
2008.11.1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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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007 퀀텀 오브 솔러스 (Quantum Of Solace, 2008)
2008.11.0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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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뱅크 잡 (The Bank Job, 2008)
2008.11.0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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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바디 오브 라이즈 (Body Of Lies, 2008)
2008.10.2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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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내가 결혼했다 (2008)
2008.10.2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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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하우 투 루즈 프렌즈 (How To Lose Friends & Alienate People, 2008)
2008.10.2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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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미쓰 홍당무 (2008)
200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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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an
2008. 12. 18. 01:15
2008. 12. 18. 01:15
짐 캐리의 신작 "예스맨"을 접하기 전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의 이전 출연작인 "라이어 라이어" 였습니다. "라이어 라이어"에서는 아들의 기도로 '거짓말'을 못하게 되었다면, 이번 "예스맨"에서는 한 강연회를 계기로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Yes!' 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한다는, 그래서 다분히 현실성을 띄게 되었다는 것이 좀 다른 점입니다. 현실적. 주체할수 없는 비현실적인 안면근육의 움직임으로 우리에게 폭소를 자아냈던 짐 캐리의 코메디 신작은 현실적입니다.
아내와 이혼 후, 많은 것이 달라진 은행 직원 칼 엘런이 짐 캐리가 분한 역할인데, 그는 이혼 후 주변사람들과 어울리기도 꺼려하고 혼자 있기 좋아하는 성격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한마디와 이전에 알고지내던 사람의 추천으로 한 강연회에 가게 된 칼은 그 곳에서 그간의 그의 생활패턴을 바꾸고자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간의 부정적인 마음가짐과 비사교적인 모습을 지우고 만사에 'Yes'를 외치는 긍정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면서 그는 새로운 여자친구도 만나게 되고, 그의 생활도 점차 나아집니다.
"예스맨"은 영화를 보기 전에도 대략 어느 정도 이야기의 줄거리가 예상될 정도로 어쩌면 뻔한 이야기입니다. 무조건 'Yes'만을 외치게 되면서 벌어지는 상황들로 인한 코믹함과 결국은 무조건 'Yes'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긍정적인 마인드가 사람을, 그리고 생활을 바꾼다는 결론까지 말입니다. 고된 생활과 스트레스로 지치고 외로운 현대인들에게 긍정의 힘을 통한 즐거움을 주겠다는 것이 이 영화의 모토입니다. 영화에서 긍정을 통한 결과는 전적으로 좋은 결과만을 낳고, 모토대로 즐거움을 줍니다.
주제나 이야기 면에서의 식상함을 가벼운 즐거움으로 연결시켜주는 것은 전적으로 짐 캐리의 몫입니다. 짐 캐리가 우리의 기억 속에 박혀있는, 그런 폭발적인 웃음을 이 영화에서 선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존재 자체로도 이 영화를 유쾌하게 굴러가게 할 정도로 그는 자기 몫을 충실히 합니다. "해프닝"에서는 영 안 어울리는 모습으로 극을 망쳤던 주이 디샤넬은 그녀의 오묘한 눈동자가 보이는 그것만큼이나 이 영화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모습을 선보입니다. 이들 주변의 인물들이 간간히 선보이는 웃음도 양념으로 적당하고 말입니다. "브레이크업 - 이별후애"에 이어서 페이튼 리드는 일상적인 현실 속의 가벼운 웃음을 다루는 데에 재주가 있어보입니다.
어쩔 수 없이 뻔한게 최대 단점이지만, 짐 캐리의 엉덩이를 보며 이 팍팍한 현실에서 잠깐 웃음을 지어보일 수 있기에, 어쩌면 이 영화는 그 역할을 다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Stephan
2008. 12. 17. 21:14
2008. 12. 17. 21:14
사람들은 나이를 한살한살 먹어가면서 성장을 하고, 그리고는 세상을 알아갑니다. 그로인해 순순했던 동심은 한낮 추억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곤 합니다. 언제부턴가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미세한 불균형이 느껴졌습니다. 정확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때 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어른의 추억 속 그 동심을 불러내어 마음까지 사로잡는데 그치지 않고 더불어 어른의 세상도 같이 보여주며 또 다른 공감대를 형성하는 그 균형감각이 점차 약해짐을 느꼈던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벼랑 위의 포뇨"를 두고, 감독 자신은 '다섯 살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애초부터 그런 의도였기 때문이지는 몰라도, 영화는 딱 그 나이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영화입니다. 성인은? 아닙니다.
호기심 많은 물고기 소녀 '포뇨'는 아버지 몰래 바다 위로 구경을 왔다가 '소스케'라는 한 소년과 만나게 됩니다. 소스케와 포뇨는 그렇게 만나 잠시 동안 즐거운 시간을 갖습니다. 하지만 바다의 주인인 포뇨의 아버지 '후지모토'가 그녀를 다시 바다로 데려가게 되고, 그 때부터 소스케를 만나기 위한 포뇨의 고군분투가 시작됩니다.
기본적인 이런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벼랑 위의 포뇨"는 미야자키 하야오판 "인어공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가 비극이었다면, 디즈니 판은 해피엔딩이었기에, 디즈니 쪽과 더 가깝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영화에는 어떤 큰 갈등구조가 없습니다.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크게 악의를 품고 있거나, 사악한 인물은 없고 다들 동화 속에만 있는 인물들입니다. 이야기도 딱딱 들어맞는다거나, 두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의 뜬금없는 '사랑해!' 처럼 그냥 사랑은 사랑이니까 참 좋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지브리답게 환경에 대한 보호와 애착도 조금은 드러내고 말입니다. 영화에는 이야기나 그 전개과정에서 성인들이 보기에는 무리가 좀 따릅니다. 앞서 이야기한 큰 갈등구조가 없음으로 인해 영화는 전반적으로 단조로와서 지루하기가 십상이며, 역시나 앞서 말한 대로 그런 이야기가 앞뒤 관계에 맞게, 그리고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전개되지도 않습니다. 영화에는 아이들을 위한 예정된, 그래서 어쩌면 강요된 순수함과 강요된 교훈만 남아 있습니다. 이런 영화 내내 가득한 것은 '포뇨'의 캐릭터 성입니다. 그녀는 귀엽습니다. 그리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서 매력 있습니다. 캐릭터샵에 가서 그녀의 봉제인형을 사들게 할 만한 그것 말입니다. 신작 지브리 영화에서 남는 것이 그저 캐릭터상품 밖에 없다라... 그저 안타까움만 가득합니다.
지브리는 분명 위기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더 이상 예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지브리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는 또 그 밖에 없습니다. 어떤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지브리는 재미와 감동을 전하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아니라, 그저 캐릭터상품 찍어내는 공장 밖에는 되지가 않습니다. 팬들은 물론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Stephan
2008. 12. 17. 06:02
2008. 12. 17. 06:02
살다보면 때때로 전혀 기대치 않았던 상황에서 의외의 좋은 결과나 재미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반대일때가 많아서 그렇지, 종종 겪는 그런 경험은 그 순간을 더욱 즐겁게 합니다. 영화 "과속스캔들"은 기대와는 다른 의외의 결과로 인한 즐거움이 큰 영화입니다. 극장을 들락날락거리면서 영화 상영전 나오는 이 영화의 예고편을 많이도 봤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차태현이라는, "엽기적인 그녀" 한편의 캐릭터로 근 10년의 연기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배우의 존재도 그러했지만, 예고편 상으로 어떤 끌림 같은게 전혀 느껴지지가 않아서였습니다. 30대 후반의 연예인과 그 연예인의 딸이라고 찾아온 여자, 그리고 그녀의 아들. 소재도 눈에 띄지 않고, 꼬마아이가 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한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간에 등장했던 영화 속 아역 캐릭터들이 대부분 그러했으니까 말입니다.
실제 영화상에서도 이 영화가 어떤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혹자들은 예고편 등의 마케팅의 문제라고도 하지만, 누가 가져다 한들 영화 이전의 마케팅만으로는 이 영화를 포장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별난게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기대와는 다른 재미를 주었던 가장 큰 이유는 코메디 영화라는 본분을 잘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코메디 영화의 지저분한 특징 중 하나는 코메디를 코메디로 끝내려하지 않고, 꼭 불필요한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몸부림을 친다는 것입니다. "과속스캔들"에 그러한 면이 전혀 없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절제의 미덕을 충실히 살린 편입니다. 코메디 답게 적절한 때에 웃겨주고 빠져주고, 딴길로 안새는 호흡 조절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주인공인 박보영 - 차태현 - 왕석현 의 배우들이 보이는 연기 앙상블도 이 영화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한 요인입니다. 차태현이야 사실 앞에도 언급했지만 한우물만 파다보니 식상할지언정 어색하지는 않고, 박보영은 갓 주연 타이틀을 딴 배우 답지 않게 안정적인 연기를 펼칩니다.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아역배우 왕석현의 연기도 귀엽고 말입니다.(왕석현이 연기한 황기동 캐릭터의 성격이 잘 맞아 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에 맞지 않는 조숙함이 식상함이나 거부감으로 치닫지 않고 그저 웃음이란 목적에만 맞게)차태현의 식상함을 그저 웃음으로 넘기며 받아들이게 하는 데에는 이 두 배우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간의 한국 코메디 영화가 기본만 충실히 했어도 관객의 발길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이 "과속스캔들"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감히 말하자면, 한국영화계가 지향해야 할 바는 "놈놈놈" 같이 수백억이 들어가는 블럭버스터(그로 인한 과도한 스크린독점)가 아니라, 이러한 중간규모 영화들입니다. 모 아니면 도 식의 블럭버스터가 남기는 황폐함보다는 이러한 중간규모 영화 여러편이 만들어내는 아기자기함이 한국영화의 미래에 있어서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P.S ...올한해 한국영화 중 최고의 코메디 영화는 "미쓰 홍당무"인데, 그 영화가 흥행을 못한게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결국은 관객이 문제인건가...
Stephan
2008. 12. 4. 01:34
2008. 12. 4. 01:34
요즘은 어느 분야든 '퓨전'이라는 말이 그리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1724 기방난동사건"은 '퓨전'사극입니다. 퓨전이라는 의미를 떠올려보자면 '서로 다른 장르의 요소들이 만나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 정도가 될 터인데, 이것이 잘되면 야 웰메이드 퓨전 ~ 이라는 소리를 들을 테지만, 반대의 경우는 그저 난잡한 교배일 뿐입니다. 이 영화는 아쉽게도 전자이기보다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1724년 조선 경종 때, 마포에 살던 건달 천둥(이정재 분)은 어느 날 실수로 주막에 배달되어 온 기생 설지(김옥빈 분)를 보고는 그녀를 마음에 품게 됩니다. 그러나 배송 실수인지라, 그녀는 원래 배달지로 향하고 그에 낙심하고 있던 천둥 앞에 한 무리의 괴한들이 나타납니다. 괴한들의 대장과 서로의 모든 것을 건 격투 끝에 이긴 천둥은 자신이 상대한 이가 양주파의 대장 짝귀임을 알게 됩니다. 짝귀의 수하들은 그때부터 천둥을 형님으로 모시게 됩니다. 천둥은 얼떨결에 양주파의 대장이 되고, 설지가 야봉파에 배달(...) 된 것을 알게 됩니다. 설지의 문제도 있고, 순간의 치기도 있고 천둥은 주먹계를 두고, 야봉파 대장 만득이와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됩니다.
대충의 이야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영화는 배경만 조선시대로 바꾼 조폭물입니다. 사람 좋고, 주먹도 좋다는 천둥은 그래봤자 상인들에게서 자릿세 명목으로 돈이나 뜯는 놈일 뿐입니다. 그 후 전개되는 이야기도 세제인 영조의 모습이 얼핏 보이기는 하지만, 그저 조선시대판 조폭들의 세력 다툼만 전개가 됩니다. 영화가 구역질날 만큼 창궐하던 조폭코메디물을 따른다기보다는 어쩌면 "장군의 아들" 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나이들의 의리, 용기, 꿈, 그리고 기개로 조폭들의 삶을 포장하는데, 그렇다보니 주변 민간인들은 천둥을 마치 영웅처럼 따르고 그들을 응원합니다. (어이, 이봐 당신들 아까는 천둥한테 자릿세 명목으로 뜯겨서 울상이었잖아.) 어차피 만득이나 짝귀나 별 차이 없는 녀석들인데 말입니다. 정계에 있는 대감이 그의 지저분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만득과 짝귀 둘을 고려했다는 말에서도 그것은 알 수 있습니다. 이어서 중간에 등장하는 욕지거리를 이용한 코믹함의 연출시도는 또 조폭코메디의 전형 중 하나이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저 조폭물일 따름입니다. 광고 등에서는 조선시대 히어로라고 말하지만, 그저 그 지저분한 판에서만 이전투구 하는 그들에게 히어로라는 말은 무리가 따릅니다. 단순히 조폭물이라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천둥과 설지, 그리고 만득이 사이의 관계라든지 그안에서의 인물들 사이의 관계도 식상할 뿐더러, 단순한 이야기를 질질 끄는 느낌 역시 강합니다.
영화는 이런 이야기 면에서는 하등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CG 등을 이용한 화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프닝 크레딧부터 만화적인 느낌이 다분히 드는 영화는 그 후에도 곳곳에서 그런 느낌을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싸움 장면에서 얼굴이 흔들린다거나, 침이 가득 튀기는 모습 등이 그러합니다. 이런 부분은 나름 흥밋거리로 작용하는데, 마지막에서는 그것이 과해 우를 범합니다. 최후의 결투에서는 배경이 완전 CG처리가 된, 블루 스크린(혹은 그린 스크린?)에서의 합성장면인데 이 장면은 급작스러운 만큼 뜬금없고, 그간의 영화에서 가장 어색한 모습입니다. 무엇이든 과유불급인데 말입니다.
해놓은 것 없이 꿈만 창대했던 "1724 기방난동사건"에서 가장 아쉬워할 사람은 아마 배우들일 것입니다. 천둥 역을 연기한 이정재나, 설지 역의 김옥빈, 만득 역의 김석훈은 각자 나름의 연기적인 변신도 꾀했고, 그에 대해서도 무리 없다는 인상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영화가 그만큼에 썩 부합하지 못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배우들은 차후 좋은 작품에서의 모습을 기대 해봅니다. 김옥빈은 다음 개봉할 작품이 아마도 박찬욱 감독의 "박쥐" 죠?
Stephan
2008. 11. 30. 16:10
2008. 11. 30. 16:10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의 미타니 고키 감독의 신작, "매직 아워"는 어쩌면 뻥의, 뻥을 위한, 뻥에 의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는 거짓말보다는 뻥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립니다.) 영화의 시작은 얼핏 보기에도 이국적인 모습의 거리와 건물에서 시작됩니다. 보스의 애인인 마리(후카츠 에리 분)와 위험한 사랑의 한 때를 즐기던 빙고(츠마부키 사토시 분)는 그들의 관계를 알아챈 보스의 부하들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콘크리트 덩어리를 다리에 달고서는 바다 속 물고기밥이 될 위험에 처한 빙고는 순간 기지를 발휘해, 자신이 보스가 찾던 전설의 킬러 데라 토가시를 자기가 안다고, 그래서 데려오겠다는 거짓말을 해 목숨을 구합니다. 그렇지만 데라 토가시를 알지도 못하는 빙고는 결국 무명배우 무라타(사토 코이치 분)를 보스 앞에서는 데라 토가시로 연기하게 하고, 무라타 본인에게는 영화 촬영이라고 속이게 되면서 점차 사건을 키워나가게 됩니다.
앞서 말한, 영화의 무대가 되는 이국적인 항구 도시의 모습은 모두 다 세트입니다. 빙고의 가게 직원인 나츠코(아야세 하루카 분)는 빙고와 이야기하면서 마을의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마치 우리는 영화에 살고 있는 것 같아. 이 모든 일이 영화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합니다. 세트로 지어진 영화의 배경에서 이처럼 현 상황을 영화에 빗대어 한탄하는 나츠코의 모습은 영화라는 허구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관객에게 그것을 재확인 시킴과 동시에 극 속에서는 또다른 사건, 빙고가 그것을 보고 또다른 뻥을 만들어내는 촉발제 역할을 합니다.
빙고는 자신의 정체를 신인감독이라고 소개해 무라타를 자기의 계획에 끌어들이고, 무라타는 실상도 모르고 그저 배우로서의 자신의 연기에만 충실합니다. 무라타 본인이 의도치 않았지만, 그가 한 것은 빙고의 보스와 보스의 부하들에게는 뻥인 것입니다. 애초에 빙고의 계획에서 나온 뻥은, 무라타의 이 뻥으로 전이되면서 주체할 수 없는,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점차 번져갑니다. 이 전개의 과정은 관객들에게는 말 그대로 폭소의 바다입니다. 미타니 고키는 영리하게도 세트로 지어진 무대와 그것이 허구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툭 제시해놓은 후에, 이것은 가짜이니 앞으로는 그것을 보고 그냥 즐겨주세요 하는 식으로 이 영화를 만들어냅니다.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함이 아닌, 재미난 허구로 그려내는 미타니 고키의 솜씨는 인상적입니다.
이제 또 다른 중요 요소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배우입니다. 빙고 역의 츠마부키 사토시는 그간의 모습과는 다소 동떨어지게 2:8 가르마를 빗어올린 코믹한 모습으로 열연합니다. 그리고 무라타 역의 사토 코이치는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영화의 처음에서 '매직 아워'에 대해 설명을 하는 그의 모습과 이어서 영화 속 가짜영화의 진지한 연기로 인한 코믹함, 그 코믹함 뒤에 배우에 대한 꿈을 지니고 있는 그의 열정은 진정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주제 그 자체입니다. 영화는 빙고와 무라타 외에도 수많은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 그들의 조합으로 큰 웃음을 자아내는데, 각 캐릭터들을 연기한 다른 배우들 역시 좋은 모습을 보입니다. (...이쁜 아야세 하루카..퍽!)
"매직 아워"는 전개를 통해 있는대로 크게 벌여놓은 사건의 마무리 역시 참으로 상쾌하게 뻥을 이용해 이끌어냅니다. 보스에게 또 다른 가짜 상황극을 준비하다가 일은 의도치 않게 흘러가지만, 결국은 어떻게든 원래의 그 뻥의 계획대로 나아갑니다. 그 결말에는 영화 속 모든 이들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선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상황이 주는 커다란 웃음과 무라타의 모습이 주는 감동을 큰 무리없이 가득 담아내고 있습니다. '뻥'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분들이라면, "매직 아워"는 더없이 큰 웃음을 주는 선물보따리로 다가갈 것 입니다.
Stephan
2008. 11. 28. 08:38
2008. 11. 28. 08:38
영화 "순정만화"는 강풀 원작인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원작에서 몇몇 부분을 각색했습니다. 숙(강인 분)의 나이가 한수영(이연희 분)과 다르다거나, 배경계절이 여름으로 고정된 것, 김규철(김강우 분)의 존재 여부 등이 그러합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일부분, 혹은 많은 부분이 각색되었다고 생각될 수 있을 것입니다.
18세의 여고생 수영과 30세 동사무소 직원 김연우(유지태 분), 29세의 권하경(채정안 분)과 25세의 동사무소 공익근무요원 강숙(강인 분).
사실, 영화에서 만족스러운 연기를 선보이는 것은 유지태 뿐입니다. 그의 순박해보이는, 그리고 머쓱해보이는 표정과 말투는 김연우의 캐릭터를 충분히 살리고 있습니다.(저 얼굴의 이면 어딘가에 이우진이 있다는 것이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그래서 그런지 영화는 연우-수영 커플의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분량 차이부터해서 숙-하경 커플이 연우-수영 커플에 비해 조금 죽는다고 할까요? 연우-수영 커플의 또다른 한명인 한수영 역의 이연희는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서 발연기로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 속에서는 본인에 맞는 역할을 해서인지 무난한 모습을 보입니다. 사실 그 부분에서는 그녀의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그녀는 여러모로 예쁘게 나옵니다.(여자분들도 예쁘다~ 라고 할 정도니..) 연기 좀 더 가다듬고, "클래식" 같은 작품만 만난다면, 손예진이 그러했듯 단번에 (남자들의) 첫사랑의 로망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손예진이 아직까지도 그 이미지를 잘 활용하는 것을 보면, 그 자리는 참 구미가 당기지요.) 그에 반해, 숙-하경 커플 중 숙 역의 강인은 두번째 영화 연기 도전으로 아직까지는 미숙한 모습을 보입니다. 버스 안에서나 하경에서 화를 내는 장면에서는 보는 이가 부끄러울 정도의 모습을 보이는데, 숙-하경 커플의 비중이 줄어든 것 만큼이나 아쉬운 모습입니다. (절대 제가 남자라서 이러는 것 아닙니다.) 그리고 비중이 줄어들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듯한 하경 역의 채정안. 줄어든 비중 탓으로 그녀에게서 크게 두드러진다고 말할 부분을 찾기는 무리입니다.
영화는 이들의 사랑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리고 있는데, 보는 이들에 따라서 그 잔잔함이 지루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이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착한' 사람들 뿐인지라, 영화 내에 어떤 큰 갈등구조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굴곡없이 슬렁슬렁 쉽게 전개되는 영화의 이야기는 때때로 심심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영화는 인물들의 내면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향적인 사랑의 모습을 아름답게 포장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는데, 진정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겉뿐만 아니라 안도 보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래도 그간 강풀 원작 영화들이 워낙 죽을 써놔서인지, 이 정도면 무난하다는 말을 듣기에는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P.S 강인의 인터뷰를 보니, 원래는 같은 그룹의 최시원이 캐스팅됐었다고 하더군요. SM의 이연희+슈퍼주니어+소녀시대 패키지 캐스팅?!
P.S2 솔직히, 이 영화에서 이연희 너무 예쁘게 나옵니다-_-... 이연희 나올 때마다 헤벌레~ 했다는 것 인정합니다. 쿨럭;
Stephan
2008. 11. 26. 19:00
2008. 11. 26. 19:00
미셸 공드리의 "비 카인드 리와인드"의 배경은 미국 뉴저지 퍼세익입니다. 그 곳에 위치한 한 허름한 비디오가게가 주 무대입니다. 비디오 가게의 이름은 'Be Kind Rewind'로 영화의 제목과 같은데, '(VHS테이프를) 감아서 반납해주세요.' 라는 뜻입니다. 시대에 맞지 않게 그 비디오 가게는 DVD가 아닌, 여전히 VHS테이프만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장사가 잘 될 리가 있을려구요. (2005년도 기준으로 미국 가정 내 DVDP 보급률이 76.2%라고 합니다.) 시청의 도시환경개선정책에 의해 기준에 맞게 수리를 하지 않으면, 이 건물은 철거 될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플레쳐 씨는 다른 대여업체의 운영상황을 조사하러 잠시 자리를 비웁니다. 그리고는 가게점원이던 마이크(모스 뎁 분)에게 가게를 맡깁니다. 대신 절대 제리(잭 블랙 분)는 가게에 들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합니다.
제리는 가게 근처의 고물상의 트레이너에 사는 괴짜입니다. 마을에 있는 발전소가 사람들의 뇌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머리에 쇠로 된 뚜껑을 덮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제리는 마이크를 꼬드겨 발전소를 정지시키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사고를 당합니다. 플레쳐 씨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마이크는 제리를 가게에 들이게 되는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제리가 만진 모든 비디오 테이프가 싹 지워집니다. 제리는 발전소에서의 사고로 자석인간이 된 것입니다. 뒤늦게 사실을 안 마이크와 제리는 손님들의 항의에 부딪히고, 결국은 그들이 직접 영화를 찍기로 결심합니다.
"이터널 선샤인", 그리고 "수면의 과학"에서 현실과 기억(상상)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미셸 공드리의 이 영화는 이전 작들보다는 더욱더 현실에 가깝습니다. 특히나 "수면의 과학" 바로 다음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변화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셸 공드리가 어디가지는 않는데, 발전소에 대한 괴상한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제리의 캐릭터는 분명 공드리의 그것입니다. 그러한 망상으로 인한 발생한 사고와 전기인간이 된 제리로 인해 벌어지는 모습은 분명 상상의 세계가 현실과 만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기억. 모두 다 지워진 비디오를 처리하기 위해 제리와 마이크는 기억 속 영화의 모습에 의지해 직접 영화를 찍습니다. "고스트 버스터즈",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우리가 왕이었을 때", "킹콩",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등이 그렇게 제작됩니다. 하지만 기억의 모습과는 다르게 현실의 각종 제약으로 인해 그들의 영화는 심하게 조악한데, 그 모습은 영화 속 제리와 마이크뿐만 아니라 관객의 기억 속의 그것들과도 심하게 비교되는 것으로 그러한 괴리감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미셸 공드리는 단순히 그 웃음으로만 그치지 않고, 그 웃음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제리와 마이크가 영화를 만드는 모습은 "수면의 과학"에서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비록 심하게 조악한 영화지만, 그 영화들은 사람들에게 불티나게 대여가 됩니다.(심지어 뉴욕에서 까지 찾아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제약 앞에 어려움을 겪다가 자신들의 마지막 영화를 찍기 위해 힘을 모으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에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보는, 그리고 가게 밖에서 그 영화를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영화 만들기의 (어려움을 동반한) 재미와 영화가 주는 즐거움과 공감대를 보여줍니다.
"비 카인드 리와인드"는 웃음과 훈훈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분명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영화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존재합니다. 천부적인 이야기꾼 찰리 카우프먼의 존재. 특유의 상상력과 그것을 옮기는 영상 감각만으로 공드리가 생각하는 즐거움과 공감대를 매끄럽게 선사하기에는 각본가로서의 모습은 그의 장점에 아직 못 미칩니다.
P.S 스폰지에서 수입해서 올초만 해도 5월에 개봉예정이라고 했었는데, 계속 밀리더니 영화제에서야 만나게 되었네요.
Stephan
2008. 11. 25. 10:18
2008. 11. 25. 10:18
마이클 케인과 주드 로가 주연을 맡은 영화 "추적"은 앤서니 셰퍼의 연극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 저명한 스릴러 소설가 앤드류 와이크 역을 맡은 마이클 케인은 같은 연극을 원작으로 한 조셉 L. 맨키비츠 감독의 1973년 작 영화에서 2007년 이 영화에서 주드 로가 맡은 마일로 틴들 역을 맡았다고 하니 나름 참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전 보지 못했습니다만...)
영화는 원작이 연극이었다는 점을 굳이 알지 못하더라도 그런 낌새를 느낄 정도로 연극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몇몇 외부의 배경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영화의 거의 모든 이야기와 사건은 앤드류 와이크의 교외 저택 내부의 세트에서 진행됩니다. 저택 내부의 모습도 일반적인 영화의 세트와는 다른 좀 이질적인 모습입니다. 영화는 마이클 케인이 맡은 앤드류 와이크, 주드 로가 맡은 마일로 틴들 이 두 명이 주고받는 대사로만 진행됩니다. 일종의 2인극 형태의 모습을 취하고 있기에 주변 세트 등도 의도적으로 더 연극적인 느낌을 낸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렇다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처럼 극단적(?)으로 연극적 요소를 영화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습니다.)
영화에는 와이크와 틴들 두 명의 캐릭터만 등장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한명의 캐릭터가 더 등장합니다. 와이크의 아내이자 틴들의 애인인 메기입니다. 와이크와 틴들이 마주하게 된 원인은 모두 메기 때문입니다. 메기는 와이크에게 이혼을 요청하지만, 와이크는 그것을 계속 거부하고 있고 그래서 애인인 틴들이 그를 직접 대면해 메기를 자기 것으로 확실히 하려합니다. 그 과정에서 둘은 서로를 속이고, 서로에게 속으며 엎치락뒤치락 하는 게임을 벌이게 됩니다.
사실, 이 둘은 첫 대면부터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차를 타고 온 틴들은 문 앞에서 벨을 누릅니다. 문을 연 와이크는 틴들에게 묻습니다. '차를 타고 왔습니까? 당신의 차는 어떤 것이죠?' 틴들은 자신이 타고 온 차가 아닌 오른쪽의 더 큰 차를 가리키며, 그것이 자신의 차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와이크가 말합니다. '당신의 차보다 큰 차는 내 차입니다. 참 괜찮은 차죠?' 이렇게 두 사람의 게임은 시작됩니다. 둘은 서로 참 다릅니다. 와이크는 수많은 스릴러 소설을 펴내 명성이 자자한 작가이고, 틴들은 와이크가 미용사로 잘못 알고 있었긴 하지만, 무명배우입니다. (원작에서는 원래 틴들의 직업이 미용사였다고 하니, 일종의 원작에 대한 헌사겠지요?) 와이크는 노인이지만, 틴들은 젊은 청년입니다. 와이크는 점잖고 고상해보이지만, 틴들은 가볍고 싸 보입니다. 와이크 역을 맡은 마이클 케인의 연기는 역시 눈에 띕니다. 찰나의 순간에 선한 인상에서 계략을 가득 품은 음흉한 노인으로 변모하는 그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말썽꾸러기 도련님 뒤치다꺼리 하기 바쁜 알프레드는 잊으십시오. 그런 케인의 모습에 주드 로 역시 뒤쳐지지 않는 모습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간의 주드 로의 이미지입니다. 잘나가는 바람둥이의 이미지 때문인지, 저렴해보여야하는 틴들의 캐릭터에는 약간의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둘이 맞부닥치는 연기대결이 이 영화의 볼 거리 중 하나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캐릭터라고 말한 메기는? 메기는 영화상에서 직접 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와이크와 틴들이 그녀 문제로 만났지만, 그녀는 등장하지 않는 다라... 예상하셨겠지만 그녀는 일종의 맥거핀입니다. 시발점은 그녀였고, 서로의 게임 도중 그녀의 문제가 화두로 등장하며, 주의를 환기시키기는 하지만 그녀의 역할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영화는 와이크와 틴들의 게임입니다. 와이크는 틴들에게 자기가 제안한 게임에 대해 설명해주며 '지금 내가 하는 게 너인 거야. 네가 나에게 이렇게 하는 거지.' 라고 말합니다. 틴들은 그 말로 인해 그 다음 행동에 혼란을 겪습니다. '지금 이게 당신인가요? 아님 나인가요?' 이처럼 영화는 게임에서의 우월적 위치가 바뀌면서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 결정적인 아쉬움은 이야기의 단순한 구조입니다. 두 사람의 엎치락뒤치락 거리는 승부의 모습과 그 결말의 구조가 지금에서 보면 그다지 크게 흥미를 끌 만한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재미야 물론 있지만, 결과적으로 영화는 심심한 감이 다분합니다. 꼭 어떤 자극적인, 그래서 충격적이라고 말할 반전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은 가짜/두 번은 진짜로 이어지는 결말은 예상 가능한 범주이고 그렇다보니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Stephan
2008. 11. 22. 21:28
2008. 11. 22. 21:28
호아킨 피닉스, 제니퍼 코넬리, 마크 러팔로, 엘르 패닝 등의 눈에 띄는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 "레저베이션 로드"는 뺑소니 사고로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와 그 가족, 그리고 그 사고를 일으킨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오던 에단(호아킨 피닉스 분)과 그의 가족은 잠시 휴게소에 들릅니다. 그리고 전처와 함께 살고 있는 아들과 만나 야구장에서 게임을 즐기고 돌아오던 드와이트(마크 러팔로 분)는 그 휴게소 앞을 지나갑니다. 그때 에단의 아들 조쉬는 길가 수풀에서, 잡았던 반딧불을 놓아주려고 합니다. 드와이트는 실수로 조쉬를 치게 되고, 당황한 마음에서 뺑소니를 치고 맙니다.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에단은 큰 충격에 빠지게 되고 그의 아내 그레이스(제니퍼 코넬리 분)와 딸 역시 충격을 받습니다.
에단은 경찰이 아들을 죽인 뺑소니범을 빨리 잡아주기만을 바라지만 그것은 뜻대로 되지 않고, 에단은 인터넷에서 뺑소니에 관해 조사하면서 뺑소니에 관한 법이나 처분이 터무니없이 빈틈이 많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다른 뺑소니피해자 모임을 알게 된 에단은 그가 스스로 범인을 찾아나서려 합니다. 한편, 드와이트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라디오 뉴스를 통해 알게 되고 큰 죄의식을 느낍니다. 자신의 범죄를 숨기려던 드와이트는 점차 자수를 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힙니다.
영화는 아들을 잃은 에단과 에단의 아들을 죽게한 드와이트의 모습을 교차해가면서 보여줍니다. 드와이트가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 모습을 보인 후, 에단이 택시를 타고 경찰서로 오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입니다. 서로 반대 입장의 두 사람의 모습과 더불어 영화는 뺑소니 사고로 아들을 잃은 에단 가족의 갈등도 그립니다. 에단의 아내 그레이스는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잊으려하지만, 에단은 자신의 직접 나서가며 범인을 잡으려 애씁니다. 결국 서로 다른 모습의 부부는 큰 언쟁까지 벌이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의 뺑소니 사고에 직접적으로 얽힌 이들의 심리와 갈등 그리고 변화의 과정을 영화는 좇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각 인물의 심리 상황을 치밀하게 그리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러한 심리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묘사가 부족하고, 그저 이야기를 따라가기에 급급합니다. 또한, 사고 주변 인물들의 관계도 너무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에단은 변호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게 되는데 에단의 사건 담당 변호를 드와이트가 맡게 됩니다. 그리고 에단의 딸의 학교 음악선생님은 드와이트의 전처입니다. 이렇게 작위적인 인물간의 관계는 눈에 거슬린다는 점을 넘어서 후반부에 가 에단이 범인이 드와이트임을 알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그러한 모습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심리 묘사의 깊이나 갈등의 골도 얕고, 영화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서도 썩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영화의 모양새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이 영화에서 그나마 건질 만한 것은 아이를 잃은 슬픔을 연기하는 호아킨 피닉스와 제니퍼 코넬리입니다. 영글지 못한 영화의 감정적 흐름에서 펼쳐보이는 호아킨 피닉스와 제니퍼 코넬리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보이기에는 넘친다 싶을 정도입니다.
Stephan
2008. 11. 22. 00:15
2008. 11. 22. 00:15
언제나 게임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원작의 명성에 걸맞지 않는 모습으로 원작 게임팬들과 영화팬들 양쪽에게서 쓴소리를 들어왔습니다. 이제 그것은 거의 징크스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 "맥스 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에서 뉴욕시
강력계 형사이던 맥스 페인은 아내와 아이가 정체모를 집단에게 살해된 후, 미해결처리부서로 자리를 옮겨 혼자서 배후를 쫓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이전 파트너의 죽음과 모나 삭스라는 여성과의 만남을 통해 맥스 페인은 점점 아내와 아이를 죽인 집단의 정체에 대해
알아가게 됩니다.
원작 게임 "맥스 페인"은 흥미로운 스토리와 게임 디자인, 불릿타임이라는 시스템 등을 통해 전세계 게임팬들을 즐겁게 했던 게임입니다. 영화화된 "맥스 페인"은 그 스토리를 나름의 각색으로 지극히 심심하고 뻔한 이야기로 변주시켜놨습니다. 원작은 그 스토리와 캐릭터의 조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에 비하면 영화판은 스토리도, 캐릭터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있습니다.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캐릭터는 스토리 속에 스며들기가 요원할 뿐이고, 허술한 스토리는 그 캐릭터들을 포용하기도 버겁습니다. 그렇게 해서 남는 것은 스크린 가득한 지루함입니다.
영화가 신경쓰고 있는 것은 원작게임에서 풍기던 우울한 그림자를 비쥬얼적으로 표현해내는 것 뿐입니다. 잔뜩 흐린 뉴욕의 하늘에는 눈과 비가 흩날리고, 영화 속의 뉴욕은 그런 하늘처럼 잿빛입니다. 영화는 마치 이전 "씬 시티"가 그랬던 것 처럼 그래픽 노블의 영상화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종종 선보이는데, "씬 시티"의 그것과는 비교하기 무안할 정도로 어떤 뚜렷한 특색이나 장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것은 원작게임에서 극찬을 받았던 불릿타임의 시각화에서도 그러한데, 이미 "매트릭스" 이후로 영화에서 줄기차게 선보이는 불릿타임인지라, 이 영화에서 불릿타임이 나오는 순간은 마치 시간과 공간이 정지해버린 듯한, 그런 영원할 듯한 지루함을 선사합니다.
배우에 있어서도 마크 월버그는 적격은 아니라하더라도 나쁘지는 않은 모습을 선보입니다만, 모나 삭스 역의 밀라 쿠니스는 최악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영화가 캐릭터 구축에 신경쓰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녀 자체가 그 역에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크레딧이 끝나고는 마치 후속작을 암시하는듯한 쿠키 영상이 등장하는데, 글쎄요... 제발 그것만은 참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정도 망쳤으면 충분한 것 아닐까요?
Stephan
2008. 11. 16. 17:05
2008. 11. 16. 17:05
왕따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성별의 구분이 무의미하지만)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렛 미 인"은 영상미와 서정적인 정서, 호러적 장치를 절묘히 활용하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올해 부천국제영화제를 비롯해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12살의 오스칼은 부모님의 이혼 후, 엄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오스칼은 학교에서 왕따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그는 직접적으로는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반항하지 못하고, 그저 집에서 칼을 쥐고 상상 속에서 그 아이들에게 복수를 하곤 합니다. 오스칼은 또한 각종 살인사건 기사를 스크랩해가면서 살인의 방법에 대한 지식도 쌓아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오스칼의 옆집으로 누군가가 이사를 옵니다. 한 소녀와 중년의 남성. 오스칼은 그 소녀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혼자 놀고 있던 오스칼의 곁에 어느새 다가온 소녀. 이엘리라고 이름을 밝힌 소녀는 오스칼과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겉으로 느껴지는 성별의 차이는 물론이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금발의 오스칼과는 달리 이엘리는 칠흙같은 흑발입니다. 이엘리는 오스칼에게 말합니다. '난 너랑 친구가 되지 않을거야.' 오스칼은 말합니다. '누가 언제 너랑 친구한댔어?' 친구가 필요했던 오스칼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미리 선수를 친 이엘리. 소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아이들의 이런 만나과는 다르게 한편에서 잔혹한 살인 행위가 벌어집니다. 소녀와 같이 사는 중년의 남자은 지나가는 행인을 납치한후 그의 피를 받아냅니다. 뜻하지 않은 방해로 피를 가져오지 못한 남자는 집에서 이엘리에게 한소리를 듣고는 그저 사과하기에 급급합니다.
오스칼의 왕따 생활은 계속 되고, 이엘리와의 만남 역시 계속 됩니다. 처음과는 달리 둘은 점차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피를 구하지 못한 이엘리는 직접 나서게 됩니다. 이로써 이엘리가 뱀파이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이엘리는 혼자 걷는 사람을 습격해 피를 빱니다. 하지만, 오스칼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오스칼과 이엘리가 가까워질 수록 마을에서는 정체불명의 살인 사건들이 하나둘씩 일어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오스칼도 이엘리가 뱀파이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오스칼은 이엘리를 여전히 친구로 받아들이고, 이엘리에게 사랑을 줍니다.
영화는 뱀파이어를 이용한 장르적 특성들을 곳곳에 등장시킵니다. 뱀파이어,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따르는 동행인, 낮에는 잠을 취하고 몸에서는 알 수 없는 악취가 가득 나는 등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이엘리에게 피를 빨리고도 살아남은 여자는 역시나 뱀파이어가 되고, 그녀는 극단적인 최후의 수단을 택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뱀파이어 장르에서 흔히 눈에 띄는 섹슈얼한 느낌은 빠져 있습니다. 이엘리와 오스칼의 나이는 그런 섹슈얼함을 배제하게 하는데, 영화에서 보여지는 섬뜩한 피와 죽음의 이미지와 공포는 이엘리와 오스칼 사이의 사랑의 순수함을 더욱더 부각시킵니다. 이러한 순수함은 서로 다른 이질적 존재인 둘이 사랑을 하게 되는 가장 기본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이 둘의 사랑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엘리는 오스칼에게 말합니다. '나는 너야.' 이엘리는 오스칼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스칼은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실행한 어떤 용기도,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스칼과는 다른 존재인 이엘리는 오스칼에게 용기를 주고, 자기가 오스칼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엘리는 또다른 오스칼로, 오스칼이 되고 싶던 그 무엇입니다. '나는 너야.' 이엘리는 오스칼에게 자신이 오스칼의 내면의 또다른 모습임을 그렇게 밝힙니다. 어린이들의 동화의 이면에는 섬뜩한 현실의 진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동화 '왕자와 거지'가 영국 헨리8세 시대의 인클로저 운동과 혹독했던 빈민구제법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사랑이라는 감상적인 동화 이야기의 이면에는 왕따 소년의 분노와 파괴 본능이 만들어낸 결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점차 자신의 내면의 진실과 가까워져간 오스칼은 결국 핏빛 가득한 잔혹함을 선보입니다. 그리고 오스칼은 떠납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가방에 담겨져 있는 이엘리는 표면적으로 드러나 이제는 하나가 되어 자유롭게 소통하게 될 수 있게 된 오스칼의 또다른 자아이며, 가방은 오스칼의 마음입니다.
"렛 미 인"은 점점이 찍힌 핏자국과 그로 인해 더욱 도드라지는 순순한, 순백의 눈밭을 그리다가 그 눈 아래 있는 더더욱 검붉은, 아픈 핏덩이을 드러내보이는 잔혹동화입니다. 동화의 눈밭만 볼 것인지, 아니면 그 눈밭 아래 감춰진 현실을 볼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관객의 몫이지만, 두가지 선택 중 어느 것이라도 만족을 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Stephan
2008. 11. 16. 08:27
2008. 11. 16. 08:27
애초에는 이 영화를 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홍보 모양새에서 퀴어물 냄새가 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호모포비아는 아니지만, 동성끼리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이해는 못하는 부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종 퀴어영화를 접할 때 곤혹스러운 것이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선을 도통 따라잡지 못해 영화를 이해 못하는 사태까지 가곤 합니다. 퀴어물은 질색이라고 할까요. 그래도 보게 된 이유는 홍보는 그런 식인데, 영화는 전혀 그 쪽이 아니다더라는 말이 많아서였습니다. 원작만화를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원작은 그런쪽 분위기가 나는데 이번 영화는 아니라고 하더군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이하 앤티크) 어떤 사람을 찾고 싶어서지만 표면적으로는 손님이 여자가 많아서라는 이유로 케이크 가게 '앤티크'를 연 진혁(주지훈 분)과 고등학교 시절 진혁에게 고백했다가 '뒈져버려, 호모 새끼야.'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그러나 이제는 천재 파티쉐이자 마성의 게이가 된 선우(김재욱 분), 전직 동양챔피언으로, 은퇴후 중국집 배달을 하다가 선우의 케이크 맛을 보고 그의 제자가 된 기범(유아인 분), 진혁의 집에서 어릴때보다 살며, 그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보디가드 타입의 수영(최지호 분)을 주요인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크게는 다른 세명 보다는 진혁의 과거에 얽힌 비밀의 타래를 풀어가는 것이 주된 이야기이고, 나머지 인물들은 그런 과정에서의 양념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첫 우려와는 다르게 "앤티크"는 퀴어하고는 거리가 먼 영화입니다. 그저 네 남자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유쾌한 분위기로 그려내는 영화입니다. 요즘 극장가면 볼 수 있는 모 인터넷회사의 광고가 있습니다. '약간의 스릴, 약간의 로맨스, 유머 약간 합치면 또 새로운 영화.'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저 문구 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딱히 특출난 점은 없습니다. 오히려, 각각의 이야기 사이의 결집력은 약하고, 각각의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지도 않고 그저 약간은 보여줬다는, 생색 내기 수준입니다. 각각의 상처를 갖고 있는 네 명의 인물들이 케이크 가게 '앤티크'라는 공간을 통해서 그 상처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인물들의 비중은 심히 적고 진혁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지면서 생색 내기 식으로 보여주는 다른 인물들은 초라해집니다. 진혁의 이야기에 다른 이들의 이야기의 배합비율은 그다지 맛없게 배합/조리 되어 있으며, 그것을 보기에는 좋은 꽃미남이라는 크림으로 가려놓은 격입니다. 그 크림 위에 약간의 스릴, 약간의 (동성애적) 로맨스, 그리고 유머 약간이라는 장식재료를 얹어놓았습니다. 그렇게 겉모습이 얼핏 보기에는 참 맛있게 보인다는 것이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입니다. 한입 베어 물면 달달하고, 이맛저맛 다 느껴지는게 맛도 좋은 듯 합니다. 하지만, 조그만 씹다보면 그 첫 느낌은 사라지고 찝찝함이 남습니다. 비중이 적은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저 산만한 느낌만 가중시키고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진혁의 이야기의 흐름이 곧 영화의 흐름과 일치하는데, 밝은 듯 했던 진혁의 뒤에 가려져 있던 아픔과 후반부에서 미스테리 스릴러로의 급격한 변화과정과 마무리는 원작에 대해 숙지가 된 팬들이 아닌 이상에야 당황스럽게 만드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희생해가며 만들어낸 결과인지라, 더욱 아쉬움을 자아냅니다.
그래도 장점인 그 크림이랑 위에 얹은 재료가 보기는 좋은지라, '무난'이라는 가격표가 붙은 킬링타임용은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P.S 그래도 남자끼리 뽀뽀할때는 닭살이 좌아아아악;;;
Stephan
2008. 11. 16. 08:26
2008. 11. 16. 08:26
마이크 리 감독의 신작 "해피 고 럭키"라는 포피라는 30세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그녀의 캐릭터는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해피'라고 정의내려질 수 있습니다. 그녀는 만사에 걱정이 없고, 긍정적입니다. 길가에 세워놓았던 자전거가 도둑맞아 없어지자, '어떻게 하니, 작별인사도 못했는데..' 하는 식입니다. 그녀는 그저 눈 앞의 현실을,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갑니다.
그런 그녀의 쾌활한 성격은 어쩌면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에는 딱 들어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포피는 교사로서의 자신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해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직업에도 충실하고, 자신의 삶도 즐길 줄 아는 독신여성이라... 어쩌면 우리네 골드미스들이 동경할 롤모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전거를 잃어버린 포피는 결국 운전면허를 따기로 결심하고, 운전교습을 신청합니다. 그녀의 운전교습 강사는 스콧이라는 무뚝뚝한 남성입니다. 활발한 포피의 자유분방함은 '엔라하!'를 외쳐대는 스콧의 원칙, 까칠함과 계속 충돌을 일으킵니다. 스콧의 갖은 구박 앞에서도 포피는 꿋꿋이 자신의 '해피 바이러스'를 전파하려 합니다. 일반적인 이야기라면, 결국 스콧은 포피의 '해피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느끼며 새로운 것들에 눈을 뜨게 되겠지만, 이 영화에서 포피와 스콧은 결과적으로 파국을 맞습니다. 포피와 스콧은 서로 섞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마이크 리 감독의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행복 바이러스의 전파에도 결국은 한계가 있고,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포피는 계속 그렇게 살 것이고, 스콧은 또 그대로 그렇게 살 것이라는.
"해피 고 럭키"는 포피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이기에 이 영화를 받아들이는데는 포피의 캐릭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관건일 것입니다. 포피의 그 활발함, 긍정적인 마인드를 말 그대로 받아들이시는 분들은 아마도, 그녀의 해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그녀를 보니 참 즐거웠다.'라고 하실 겁니다. 해피함으로 넘쳐나는 그녀는 어쩌면 피곤하고, 우울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효과도 낼 테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공감할 수 없는 포피의 캐릭터에서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느끼실 겁니다. 포피는 만사에 과하게 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이 과도하게 긍정적입니다. 결혼을 한 동생이 미래준비에 대해 물어보자, '연금도 안내고 있다'고 해서 동생을 놀라게 합니다. 그녀는 미래 대비에는 별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지금의 즐거움만이 그녀의 관심사입니다.그리고, 자신의 그 행복감을 전파해주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포피는 학교에서 친구를 때린 아이가 상담을 받는 것을 지켜보고는 그 상담방법을 그대로 한 부랑자에게도 시도합니다. '다 알아요. 말해봐요.' 우리는 이것을 흔히 '오지랖이 넓다'고 합니다. 그녀의 오지랖은 스콧이라는 존재 앞에 오해 끝에 최악의 결과로 끝나게 됩니다. 포피는 스콧에게 '행복을 주고 싶었을 뿐이예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스콧이 그녀에게 받은 것은 그녀의 의도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친구 조이가 말합니다. '모두에게 행복을 줄 수는 없어. 행복은 스스로 만드는거야.' 포피는 답합니다. '기회를 놓치는 사람도 있어.'
뉘앙스를 보면, 제가 그녀의 해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아니면 그녀의 캐릭터에서 짜증을 느꼈는지는 금방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의 캐릭터는 마치 스토너 무비에 등장하는, 마리화나에 취한 인물 같습니다. 그 정도로 포피는 과합니다. 포피의 해피 바이러스가 다가오기에는 그녀의 캐릭터는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적절한 유머도, 평범하지 않은 극의 마무리도 좋았지만 가장 큰 포피의 캐릭터는 포용하기에는 무리였습니다.
P.S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증오와 혼돈의 상징인 조커보다, 시작을 알 수 없는 해피함으로 무장한 포피가 더 무섭습니다-_-
P.S2 주변에 포피같은 사람이 있다면... 어휴...
Stephan
2008. 11. 15. 15:51
2008. 11. 15. 15:51
영화 "미인도"는 조선시대의 화가, 신윤복이 여성이었다는 가설을 이용한 픽션입니다. SBS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동명의 원작소설도 같은 소재를 이용하고 있지만, 영화 "미인도" 쪽의 시나리오가 소설보다 먼저 나왔다고 하더군요.
신한평의 가문은 대대로 화원가문으로, 한평은 아들인 윤복이 어린나이에도 그림솜씨가 뛰어난 것이 대견스러워 지인들 사이에서 아들의 솜씨를 뽐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그림은 아들 윤복이 아니라 딸 윤정이 그린 것으로 한평과 윤복은 지인들 앞에서 큰 창피를 당합니다. 그로인해 윤복은 자살을 하고, 한평은 딸 윤정을 원망하나 그 솜씨를 이용해 화원 가문으로서의 위세를 유지해보려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한평은 그렇게 윤정을 아들 윤복으로 둔갑시켜서 당시 조선 최고의 화원으로 불리던 김홍도의 제자로 집어넣습니다. (이후 말한는 윤복은 성인이 된 윤정을 뜻합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후, 윤복은 김홍도의 제자로, 도화서에서도 출중한 기량을 선보입니다. 속화를 통해 민심을 알고자 했던 정조는 아끼던 김홍도에게 속화를 그리라 명을 내리고, 홍도는 윤복을 대동하고 저자거리로 나섭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연찮은 기회에 강무를 만나게 되는데, 강무는 윤복이 여자라는 사실을 우연히 눈치채게 되고 그 후, 윤복과 강무는 점차 서로에게 끌리게 됩니다.
"미인도"는 크게는 윤복이 강무를 통해서 여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에는 자주 거울이 등장하는데, 거울은 윤복이 윤정으로서의 자신을 보는 도구입니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를 비춥니다. 비록 겉모습은 남자복장을 하고 있지만, 윤복은 남자가 아닌 여자 윤정입니다. 거울은 윤복이 아닌 그 안의 진짜 윤정을 비춥니다. 옷이 하나하나 벗겨지고 알몸이 되었을때, 그리고 강무와의 섹스를 통해 윤복은 여자로서의 윤정을 느낍니다. 윤복은 강무와의 사랑을 통해 거울 앞에 진짜 윤정으로서 서게 됩니다. 영화는 윤복을 새장에 갖혀있는 새와 동일시합니다. 윤복이 새를 놓아주어 자유로와졌듯이 윤복도 사랑을 하면서 자신을 자유롭게 합니다. 하지만, 그 새가 죽은 것처럼 윤복은 큰 시련을 겪습니다. 그것은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그림을, 속박되지 않은 진짜 감정을 그리며 날아가고 싶던 윤복을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합니다. 스승 김홍도와 홍도를 사랑하는 기녀 설화의 음모, 도화서의 윤복을 질투하는 동료들이 그를 그리 만듭니다. 영화는 신윤복이라는 존재를 다루는데 있어서 당연히 그의 그림들도 등장시킵니다. "단우풍정", "월야밀회", "기방무사", "월하정인", "이부탐춘", "주유청강" 등이 그것입니다. 윤복이 바라보던 풍경이 그대로 화폭으로 옮겨집니다.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영화가 잘 흘러갈 것 같지만, 아쉽게도 "미인도"는 그렇지 못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신윤복을 다루는데 있어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엮었다는 것입니다.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윤복도 그려내야지, 그림에 대한 순수한 열망을 가진 윤복도 그려야 하고, 강무와 윤복의 사랑도, 그리고 비극도, 홍도의 윤복에 대한 마음, 홍도로 인해 질투심을 가득 품은 기녀 설화의 이야기도 하다보니 영화의 이야기가 너무 번잡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정돈되지 못하고, 정도를 잡아주지 못한 지나친 서브스토리가 영화의 큰 줄기까지 침해해 극을 흐린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벌려놓은 이야기에 비해 영화의 마무리는 너무 얄팍하고, 억지스럽습니다. 그리고 윤복의 노출은 그렇다치더라도 기방에서의 체위재현 장면은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할애받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번잡한 이야기에, 흐름에 별 이유도 없는 노출 장면은 이 영화의 정체성을 심히 의심스럽게 만듭니다. 또한, 이후의 정사씬 및 노출 장면이 극의 전개에 크게 효과적인가 생각해보면 사실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보니 그저 이 영화의 노출은 노골적인 홍보전략에만 유용하게 쓰인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충분히 재미있을 수도 있었던 영화가 그런 가능성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모습인지라 그 실망감이 더욱 큰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그것보다도, 작품을 위해 노출을 불사한 배우들에게는 더욱 안타까운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P.S 뭐, 개봉직전에 노출씬 10분 삭제라고 하던데 이전 작업 중이던 버전과 봤을때, 거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설화(추자현 분) 장면이 하나 통째로 날라갔네요. 기방에서의 체위재현 장면 후에 바로 이어서 한 양반이 설화를 무너뜨리겠다고 도전(?)을 합니다. 자기가 설화를 애무하는 도중 설화의 연주가 끊기면 자기가 이기는 것이라 말이죠. 결국에는 열심히 주물럭거립니다만, 자기 혼자 싸고 맙니다.
Stephan
2008. 11. 6. 09:54
2008. 11. 6. 09:54
![007 퀀텀 오브 솔러스](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62BCB345882946C08)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뻔 했던 007 시리즈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마틴 캠벨 감독의 2006년작 "카지노 로얄"을 이어서 2008년 돌아온 007 시리즈 22편 "퀀텀 오브 솔러스"는 말그대로의 속편입니다. 그간의 007 시리즈가 몇몇 작품간의 일종의 연계성은 있었지만, 각각의 분리된 한편으로 봐야했다면 이번 "퀀텀 오브 솔러스"는 전작의 스토리가 그대로 이어져 전개가 됩니다.
미스터 화이트를 잡아온 본드와 M은 그 배후 조직에 대한 정보를 캐내다 그들이 MI6에도 침투해 있는 등 생각보다 깊숙하고 넓게 퍼져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베스퍼에 대한 사랑과 배신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본드는 그 조직에 접근해가는 과정에서 그녀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으로 인해 정도를 넘어선 살인행각을 벌입니다. 본드가 알아낸 배후인물은 도미닉 그린이라는 인물로, 겉으로는 환경보호기업을 경영하는 사업가인 척을 하고 있으나 그가 노리는 것은 석유같은 기존의 자원이 아닌, 새롭게 각광받는 천연자원의 독점을 통한 알력 행사입니다. 본드는 그 과정에서 만난, 본드와 같이 복수심에 불타는 여성 카밀과 함께 그린의 계획을 막아서게 됩니다.
영화는 전통적인 프리 타이틀 액션을 선보입니다. 격렬한 카체이스 장면에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 "퀀텀 오브 솔러스"의 오프닝 시퀀스에는 본드와 총, 그리고 여성의 이미지가 합쳐져 선보이는 섹슈얼한 이미지가 느껴집니다. 그 배경으로 잭 화이트와 알리시아 키스가 참여한 테마곡이 흐르는데,아쉽게도 이 곡에서는 왠지 모를 어색함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전작의 오프닝 시퀀스에 흘러나온 'You Know My Name'의 좋았던 느낌과 비교하자면 더더욱 그러한데,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입니다. 이 오프닝 시퀀스에서 선보이는 섹슈얼한 이미지는 전작인 "카지노 로얄"의 오프닝 시퀀스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오히려 전통적인 007 시리즈의 그것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전작이 기존 007과의 차별성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던 것을 보면 이 오프닝 시퀀스는 의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시작부분에 어김없이 등장하던 ("카지노 로얄"에서는 순서가 바뀌었지만.) 건 바렐이 등장하지가 않습니다. 건 바렐 장면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뜨기 직전에 나오는데, 오프닝 시퀀스의 섹슈얼한 이미지가 등장하는, 전통에 대한 회귀와 건 바렐 장면에서 보이는 전통의 탈피가 결국은 이 영화 "퀀텀 오브 솔러스"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액션의 향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속편의 법칙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줄어든 런닝타임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보편적인 법칙을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감독이 "몬스터 볼", "연을 쫓는 아이" 의 마크 포스터라는 점에서 이는 더욱 의외입니다. 마크 포스터는 액션 연출 경험이 전혀 없다는 약점을 의식해서인지 액션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면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전작에서 보이는 '제이슨 본' 스러운 액션도 여전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액션이 육해공 전체에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카지노 로얄"의 느낌보다는 지난 007 시리즈의 그것을 연상케하는 느낌이 강한데, 특히나 보트 액션 장면은 "007 위기일발"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런 모습은 "007 골드핑거"에서의 금칠을 당하고 침대에서 죽은 여성의 모습을 오마쥬한 장면이라던지,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의 장면이 본드가 영국 수상 최측근의 경호원을 상대하는 장면으로 설정만 바뀌어 그대로 등장하는 것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의도적인 연출입니다. 캐릭터가 주는 전작의 이질감을 이런 일종의 오마쥬들로 완하시키고, 많은 사람들이 007 시리즈 최고작품으로 꼽는 "007 골드핑거"의 명장면을 등장시켜, 그 작품을 이어 최고의 007 시리즈로 거듭나보이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전체적인 모습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영화의 액션장면의 경우는 굉장히 빠른 호흡을 보이는데, 이를 속도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편집이 지나치게 빨라 어떤 액션의 흐름을 쫓아가기가 버거울 정도입니다. 또한, 거의 모든 액션장면이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 정도로, 신선함이나 인상적인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액션의 배치에 있어서도 이펙트가 오히려 뒤로 가는 액션장면일수록 점차 떨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신경을 쓰기 했지만, 액션 연출을 처음 경험해본 마크 포스터의 약점이 그대로 들어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 모습 하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연출을 맡게 되면서 사람들이 기대했을 캐릭터, 이야기에 대한 깊이는 찾을 수 없고, 액션에만 끌려가기에 바쁜 모습을 만드는 결과도 낳습니다. 많은 이들이 마크 포스터의 007 감독 내정에 의아하다는 입장을 표했습니다. 그가 감독으로 선정된 이유는 의외의 선택이 낳은 (긍정적인) 의외의 결과가 주는 놀라움에 대한 바람이었을 테지만, 그 선택은 실패에 가깝습니다.
"카지로 로얄" 이전 시리즈의 모습은 의외로 본드 캐릭터 자체에서도 어렴풋이 등장합니다. "카지노 로얄"에서 변혁을 꾀하며 취했던 그 캐릭터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그런 모습은 왠지 모를 이질감을 자아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의 본드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새롭게 재설정한 캐릭터를 밀고 나가지 못하는 모습은 시작의 야심찬 모습과 비교하자면 뒷심 부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액션 장면에서 보이던 모습들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아쉬움은 시대적 변화에 따른 제임스 본드의 현재 위치입니다. 이전 냉전시대야 참으로 간단하게 선악을 나누어 이야기를 전개해나갔지만, 냉전시대가 끝난 후로 007 시리즈는 갖은 방법으로 새로운 갈등구조를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했고,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카지노 로얄"에서는 금융자본과 테러의 조합을 선보였는데, 이번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는 선악 구분 자체가 모호하다고 스스로 이야기합니다. 현재 세계정세에서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여부에 따라 활동하고, 그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개발도상국 국가에 대한 착취와 뒷거래에 대해서 영화는 이야기하는데, 도미닉 그린은 그것으로 자신의 목적과 행위를 정당화시킵니다. 영국 MI6의 첩보원 신분인 제임스 본드가 그러한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당연합니다. '난 정의를 위해 살테야.' 라는 슈퍼맨이 아닌 이상 현시점의 제임스 본드는 세계평화와는 무관합니다. 영국의 이익에 어느 쪽이 유리하냐가 본드의 판단이 될 지언데, 이 영화의 본드에게는 그런 모습보다는 (복수심으로 포장한) 왠지 모를 정의감이 느껴지면서, 그런 기준에서 저만치 벗어나 있습니다. "카지노 로얄"에서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21세기 제임스 본드의 딜레마가 이 영화에서 크게 느껴집니다.
영화에는 비중으로 치면 작은 본드걸, 큰 본드걸이 등장합니다. 젬마 아터튼과 올가 쿠릴렌코가 그들입니다. 젬마 아터튼은 본드와 잔 여자의 운명을 그대로 따르게 되고, 올가 쿠릴렌코는 액션도 펼쳐보이면서 현대적인 의미의 본드걸을 지향해보고자 합니다. 하지만 올가 쿠릴렌코는 그 액션에서도, 극 속에서의 존재감도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전작에서 본드의 마음에 크게 자리잡았던 안티히로인 베스퍼 린드, 에바 그린의 모습이 그만큼 인상적이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 "퀀텀 오브 솔러스"의 방향성은 과도기입니다. 이 영화는 3~4편의 영화를 크게 한편의 영화로 봤을때, 그 영화의 전반부가 끝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전반부는 본드와 베스퍼 린드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편에는 본드의 보드카 마티니 주문이나, '본드, 제임스 본드' 대사가 없습니다. 한편으로 볼 경우, 이미 "카지노 로얄"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본드는 베스퍼에게서 벗어났습니다. 이어서 건 바렐이 등장합니다. 전작 "카지노 로얄" 한편의 흐름으로 보자면 이제 막 오프닝이 끝난 것입니다. 그리고 "퀀텀 오브 솔러스" 한 작품만 두고 보자면, 전통과 새로운 변혁 사이에서의 교접합을 찾으려는 모습이 크게 드러나는데, 바람과는 다르게 "카지노 로얄"에서 오히려 한발 뒤로 퇴보한듯 보입니다. 그래서 실망감도 몰려옵니다. 하지만 바로 전 언급했던, 크게 여러편의 영화를 한 작품으로 묶는 관점으로 본다면, '건 바렐' 이후에 펼쳐질 다음 007 시리즈가 나온 다음에야 완전한 평가가 내려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작품은 역시나 이번 작품에서 이어질 것으로 보이니까 말입니다. 그렇기에 문제는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것인가 이고, 그래서 다니엘 크레이그가 다시 제임스 본드를 맡을 수 있느냐입니다.
P.S "카지노 로얄"보다 런닝타임도 짧은데 비해, 액션도 훨씬 많은데..오히려 지루한 느낌이...
P.S2 전통에 대한 회귀는 영화의 마지막 대사에서도 나타납니다. M이 본드에게 다시 돌아와달라고 하자, 본드는 자신은 떠난 적이 없다고 답합니다. 전통으로의 회귀라면, 더이상 다니엘 크레이가 있을 자리는 없을 것인데, 어떻게 될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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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an
2008. 11. 2. 15:18
2008. 11. 2. 15:18
영화 "뱅크 잡"을 보기 전에 알려진 줄거리를 통해서 볼 때는 "오션스" 시리즈나 국내의 "범죄의 재구성" 같은, 범죄를 도모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의 스릴을 재미의 기초로 하는 케이퍼 필름 장르가 아닐까 생각했더랬습니다. 영화에는 일정부분 그런 재미가 있기도 합니다.
주인공인 자동차 딜러 테리(제이스 스타뎀 분)가 마틴의 제의를 받고서는 자기가 알고지내던 주변인물들을 불러모아 로이드 은행의 금고를 털기로 하고, 그 과정에서 이들이 세우는 계획과 실행 중에 벌어지는 각종 사건은 케이퍼 필름이 주는 그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추구하는 진정한 재미는 그것들을 기초로 해서 사건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입니다. 로이드 은행의 금고에 있던 것은 실로 다양한 것들로, MI5가 노리고 있는 마이클 X의 영국왕실의 치부를 담은 사진, 고위정부직에 위치한 이들의 매춘굴에서의 모습들을 담은 사진, 유흥업계의 거부가 경찰에게 주던 뇌물을 기록한 장부 등이 그것입니다. 뜻하지 않은 이러한 물건들이 테리 일당에게 들어오게 되면서 이들의 성공적일 것만 같았던 계획은 틀어집니다. 동료들이 하나씩 인질로 잡히고, 물건들을 노리는 각각 다른 인물과 단체로부터 압박이 들어옵니다. 이 영화의 재미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 중심에 있는 테리와 테리의 물건을 노리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합니다.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테리는 기지를 발휘해서 모든 일의 진행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 MI5, 영국왕실이 테리라는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비틀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묘한 재미를 자아냅니다.
영화는 제이슨 스타뎀이라는 액션 배우를 내세움에도 마지막의 아주 잠깐을 제외하고는 인상적인 액션장면을 선보이지 않습니다. 제이슨 스타뎀의 액션을 기대하셨던 분들이라면 다소 실망할 모습이긴 하지만, "뱅크 잡"은 어떤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볼거리보다는 중간중간 (우리에게는 다소) 썰렁한 영국식 유머로 간을 치고, 인물과 이야기 사이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긴장감과 속도감을 극전개의 원동력으로 삼아 만들어진 스릴러 물입니다. 그러한 재미를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가볍게 즐길만한 오락물로 "뱅크잡"은 괜찮은 선택일 것입니다.
P.S ...MI6였으면 그냥 007 시켰으면 간단했을텐데...
P.S2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2056년(쯤이던가..)에야 이 사건에 대한 기밀문서가 공개된다고 하네요. 볼 수 있겠죠? 그나저나 케네디 대통령 암살 관련한 CIA문서의 기밀 보관기간이 언제까지더라...
Stephan
2008. 10. 26. 15:48
2008. 10. 26. 15:48
리들리 스콧, 러셀 크로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름만으로도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인물들이 뭉친 영화 "바디 오브 라이즈". 하지만 그런 네임밸류로 인한 기대치가 컸던 것일까요? 정작 영화는 그 기대감만큼의 큰 만족은 주지 못합니다.
영화는 중동을 누비는 CIA의 현장요원인 로저 페리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CIA 본부에서 근무하는 에드 호프먼을 중심으로, 9.11 이후의 미국과 중동의 갈등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유럽 등지에 자살폭탄테러를 일으키는 '알 살림'을 잡는 것이 그들의 목표입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 전쟁에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입장의 호프먼과는 달리 페리스는 무모한 희생은 지양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작전을 펼친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견해 차이로 페리스의 작전 중에 뜻하지 않은 호프먼의 개입으로 인해 페리스 입장에서는 작전을 망칠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페리스가 작전을 위해 관계를 맺는 암만의 요르단 정보부 부장 '달려라'(...) 하니(마크 스트롱 분)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각자가 원하는 이득을 위해서 겉으로는 손을 잡지만 뒤에서는 나름대로의 또다른 작전을 세웁니다. 호프먼과 약간의 갈등을 빚기도 했던 페리스는 작전의 성공을 위해서 하니에게는 통보하지 않고 호프먼과 힘을 합쳐 또다른 작전을 실행합니다. 하지만 이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작전을 추구하던 페리스가 호프먼과 같은 행동을 한 것으로, 그 결과로 페리스는 사랑하던 여자를 납치당하고 그 자신이 테러리스트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정의라는 거대한 목표로 인해 희생당한 수많은 희생들을 묵인하고 지속적으로 자행되는 작전의 종지부에서 돌아오는 것은 수행자를 향한 또다른 폭력입니다. '거짓의 실체'. 리들리 스콧은 정의라는 이름, 그 이면을 지목합니다. "바디 오브 라이즈"가 그리는 중동을 배경으로 한 첩보의 세계는 아군과 적의 구분이 희미한 곳입니다. 이러한 것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력 뿐만 아니라, 기술력에도 의존합니다. 최근의 영화들에서의 유사한 인상을 풍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신경질적인 현장요원에 알맞춤이며, 배역을 위해 20kg이 넘게 찌웠다는 러셀 크로우는 겉으로는 유들유들하나 속에는 시꺼먼 계략을 가득 담은 듯 한 에드 호프먼을 훌륭히 연기해냅니다. 그리고 위성과 도청 등을 이용한 첩보의 세계를 비쥬얼적으로도 무리없이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이들, 이것을 이용한 첩보의 세계는 영화의 긴장감을 이끕니다.
문제는 이것들이 9.11 이후의 영화들에게서 수없이 되풀이되었다는 것입니다. 리들리 스콧의 연출력으로 감추려고 애는 써보지만, 감시(이 영화에서는 정찰기이지만) 장면을 비롯해, 거의 클리셰라고 불릴만한 장면들이 스쳐지나가며, 영화 속 이야기도 이제는 지루하기까지한 그것입니다. 굳이 리들리 스콧까지 이런 이야기를 또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이런 진부함은 배우들의 호연을 비롯해 영화를 빛나게 해줄 수 있었을 다른 요소들을 모두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 패배하면, 이런 식상한 이야기들을 주제로 한 영화들은 그만 나오게 될까요? 이게 다 부시 때문입니다.
Stephan
2008. 10. 26. 06:59
2008. 10. 26. 06:59
"아내가 결혼했다"는 자유연애주의자이던 여자와 결혼한 한 남자와 그 아내가 또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원작소설인 "아내가 결혼했다"는 군대있을 때 읽었습니다. 한창 책을 많이 읽을때라 당시 베스트셀러는 다 읽었는데, 그 때 베스트셀러였거든요. 축구이야기와 버무려진 사랑과 결혼이야기. 재미있었습니다. 중반정도까지만 말이죠. 중반부이후부터는 축구 에피소드와이 연계가 억지성이 커지고 소설 속에서 말하는, 일상적인 사회 가치관의 전복적 상황에 대한 설명이 심하게 미약해 그저 궤변으로 밖에 느껴지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2회 세계 문학상 당선작? 이게 왜?' 가 제 생각이었습니다. 단순히 말장난으로 재미만 좇는 소설. 그래서 사실 영화화된다고 했을때 우려도 됐습니다. '참 영화로 만들 소설도 없다.'라는 생각. 김주혁-손예진이라는 배우들이 캐스팅되었다고 해도 말입니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영화화된 것을 보니, "사랑과 전쟁"의 진정한 극장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름 빵빵한 캐스팅, 스페인까지 날아가 찍은 FC 바르셀로나의 경기 모습 등, 얼마 전에 개봉한 "사랑과 전쟁" 극장판보다야 이게 낫지 않을지. 차이가 있다면야, "사랑과 전쟁"은 불륜이든 아니면 시댁과의 갈등이든 결국은 그 갈등이 이혼법정까지 가는 갈등으로 작용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 속에서도 나오듯이) '병신, 쪼다새끼'인 주인공 남자가 그런 그녀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이 세상에 이런사람저런사람 다 있습니다.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 다른 동네는 일부다처체 사회이기도 하고, 저기 중국오지를 가면 모계제 사회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지닌 이야기가 문화인류학적인 생각으로 포용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홍보하는 대로) 발칙한 이야기를 마치 전통적인 일부일처제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포장시키려고 하지만, 전혀~ 입니다. 그에 반하려면 그만큼의 이유와 근거가 있을지인데, 그저 그 전통적 가취관에 대한 반발 하나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또한, 중간중간 남자의 바람, 여자의 이혼등의 에피소드가 엇물리면서 '남자는 되는데, 여자는 하면 안돼?' 식의 투정에 가까운 이야기를 비교삼으라는 듯이 끄집어내는데, 말그대로 미취학아동스러운(...꼬맹이들아, 미안.) 발상입니다. 설득력없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로맨틱코메디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 싸놓은 영화가 바로 이 영화입니다.
김주혁은 그간 보여준 그 이미지 그대로의 모습을 되풀이합니다. 김주혁 빙 김주혁. 이젠 질립니다. 손예진은 어쩌면 이 영화의 가장 큰 희생양일지도 모릅니다. (선택은 본인이 했겠지만.) 손예진이란 배우의 이미지와 매력은 그저 이 영화에서 어설픈 이야기의 설득력을 무마하기 위한 용도로만 소비되었기 때문입니다. "무방비도시"에 이어서 그녀는 스크린에서는 여전히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결혼했다" 소설을 원작으로 정했을 때부터 실패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P.S ...홍보는 맨날 노출에만 포커스를-_- 여전히 등만 보이시고, 대역이신 것을. 이게 파격적인 노출이면, "미인도"는 하드코어게요?
Stephan
2008. 10. 20. 09:19
2008. 10. 20. 09:19
헐리우드로 통칭되어지는 쇼비즈니스계의 이면과 그 속에서 재미를 줄 것만 같았던 영화 "하우 투 루즈 프렌즈"는 그보다는 식상한 주제와 뻔한 전개로 맥을 빼놓는 단조로운 코메디 영화입니다.
영화는 토비 영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전 읽지 못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은 살짝 바꾼 시드니 영입니다. 영국의 한 부도직전의 잡지사 편집장으로 일하던 시드니(사이몬 페그 분). 어느 날 그는 뉴욕의 유명한 연예잡지에 스카우트됩니다. 그는 회사 동료인 앨리슨(키어스틴 던스트 분)과도 가까워지고 한편으로는 떠오르는 신인배우인 소피(메건 폭스 분)에게도 흑심을 품습니다. 자신감과는 다르게 시드니는 이 잡지사에 영 적응을 못하고 특히나 홍보담담자에게 검수를 맡으며 기사를 써야한다는 사실이 특히 그를 더 당황케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 길을 택하게 되고, 숨겨져 있던 비밀의 방문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X-파일"의 질리안 앤더슨이 분한 홍보담당자와 잡지사와의 관계를 통해 일견 이 쇼비즈니계의 실제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크게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고, 세간의 눈길을 끌기 위한 배우의 대담한 행동 역시 그러합니다. 영화는 진짜 대중들이 궁금해할만 한 어떤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이야기할 뿐입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사이몬 페그의 캐릭터가 지닌 코믹성을 바탕으로 한 농담과 중간 중간 펼치는 몸개그가 전부입니다. 코스튬파티 이후 시드니가 고속 성공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영화는 날림에 가까운 전개와 식상한 결말을 향해 치닫습니다. 원작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간 소식을 전하면서 보기로는 이 영화의 이야기와는 결말부에 와서는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원작도 읽어보지를 않은 상태에서의 섣부른 판단일수도 있지만) "하루 투 루즈 프렌즈"는 결국 헐리우드의 장기 중 하나가 발휘된 영화입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정확하게 그어진 기준선 안에 맞추고, 그것을 보편화된 대중성으로 포장하는 능력 말입니다. 때때로 이 능력은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대부분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단점입니다.
Stephan
2008. 10. 16. 21:58
2008. 10. 16. 21:58
종종 '올해 한국영화 상반기는 "추격자", 하반기는 "멋진 하루"다.'라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오늘부로 하반기는 바로 이 영화, "미쓰 홍당무"입니다. 29년동안 꾸준히 삽질인생을 살아온 안면홍조증 환자 양미숙을 그리고 있는 "미쓰 홍당무"는 무지막지한 웃음 폭탄을 선사하는 영화입니다.
'세상이 공평할 거란 기대를 버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 열심히 살아야 돼.' 라는 우리 미스 양의 어록이 떠오른후 시작되는 영화는 고등학교 시절 얼굴이 시뻘개친채, 반 단체사진에 찍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뛰어오른 그녀의 얼굴을 비춥니다. 그 때부터 시작된 그녀의 안면홍조증은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고, 그녀는 연모하는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자, 지금은 동료교사인 서종철 선생 앞에서 열심히 (진짜) 삽질 중입니다. 아... 삽질!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왕따 인생을 걸어오고 있는 양미숙은 사실, 동정의 여지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괴팍합니다. 집 살 돈을 모은다고 교무실에 묵고 있으며 요상한 좌욕기에, 거울에 붙어있는 일종의 좌우명은 '1등에 목 맬 바에야 목을 매고 만다.' 일 정도니 말입니다. 미숙은 4년전의 티코 안에서의 일 때문에 종철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오고 있는데, 그때 이쁘다는 이유로 남들에게 대우받는 이유리가 유부남인 종철과 사이에 좋아하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 사이를 방해하려 계획합니다. 미숙은 유리와 같은 고등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쳤으나, 러시아어의 수요가 떨어지면서 유리에 밀려 중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종철 + '이쁜 것들!'에 대한 증오가 그녀의 삽질을 부추깁니다. 그 계획에 미숙이 끌어들이는 이는 종철의 딸 종희. 종희는 학교에서 왕따로, 부모의 이혼을 막기 위해 미숙과 의기투합합니다.
"미쓰 홍당무"의 가장 큰 매력은 양미숙을 필두로 한 캐릭터들에 있습니다. 외모적 컴플렉스와 자기 자신을 옹호하는 각종 궤변으로 무장하고, 사회성에서도 부적합한 성격을 가진 양미숙은 존재 자체로도 큰 웃음을 주며, 그녀의 행동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습니다. 거기에 더해 양미숙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인 왕따 종희는 월등한 'EQ'로 미숙을 당황케 할 정도의 활약을 보입니다. 그리고 미숙이 뒤로는 이를 갈고, 앞에서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이유리는 누구나 좋아할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으나 자기 자신을 내숭으로 감싸고 있으며, 거기에 살짝의 백치미도 더하고 있습니다. 이 주요 여성캐릭터들이 펼치는 소동은 크게는 미숙-종희의 계획이 이행되는 모습을 통해서 보여지지만, 산발적으로도 각각의 캐릭터들이 펼치는 이야기들이 더 크게 두드러집니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주고받는 대화나 상황은 그 각각으로 큰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만큼 영화는 이들 캐릭터성에 기대는 면이 큽니다. 역시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주인공인 양미숙으로 그녀의 캐릭터는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으로 비춰집니다.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어처구니없는 행동들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비웃음은 중간중간 당혹감을 주는데,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드는 컴플렉스의 면모가 종종 우리네가 가지는 그것과 겹쳐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런 비웃음은 씁쓸한 자조적 미소가 되며, 동정할 여지가 없던 양미숙에게도 동정의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아니라면, 당신은 엄.친.아 or 엄.친.딸?!) 영화는 '이상한 행동에도 이유가 있다' 며 양미숙의 삽질을 감싸려하는 듯한 모습을 취하기도 하는데, 양미숙의 비호감적이고 엉뚱한 캐릭터가 불러일으키는 상황으로 인해 그러한 모습조차도 폭소를 자아냅니다. 삽질...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삽질에 이유가 있겠습니까. 하라고하니까는 여기 팠다가 덮었다가 저기 팠다가 덮었다가...되짚어보면 대체 뭐한건지 알 수 없는 그 삽질. 내가 한 삽질에 이유를 붙이려고 들수록 이 역시도 별 필요없고, 그래봤자 달라질게 없다는 것을 느끼는 그 과정을 양미숙이 밟고 있습니다. 영화는 마무리 부분의 해결 과정에서 학교라는 공간 내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축제라는 이벤트를 활용하는 조금은 진부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변함없이 왕따, 아웃사이더이자 삽질인생을 역시나 주욱 살아갈 미숙을 그리면서 그 부분을 그저 약간의 아쉬움 정도로만 남게 만듭니다. 미숙에게 한바탕 큰 삽질 후에 남은 것은 변함없는 현실과 그나마 앞으로의 삽질 인생을 같이할 친구 정도입니다.
양미숙을 연기한 공효진은 망가지는 모습에도 개의치 않고, 비호감 자체인 역할을 너무도 훌륭하게 연기해냈습니다. 그녀의 필모 중 가히 최고의 모습을 이 영화에서 보입니다. 최근 "미인도", "박쥐" 등의 영화에서 여배우의 노출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여배우의 노출이 곧 이미지 변신이나 연기력 인증으로 비춰지는 지금의 모습에서 "미쓰 홍당무"와 "미쓰 홍당무"의 공효진은 여배우가 노출만으로 자신의 연기력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이고 있습니다.(물론, 다른 여성 캐릭터를 연기한 황우슬혜와 서우도 기대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합니다.) 제작자로 참여한 박찬욱 감독이라는 든든한 방패막 및 지원군도 큰 효과를 내긴 했겠지만, 이경미 감독은 독특한 생각과 이야기로 인상적인 장편데뷔작을 만들었습니다. 이경미 감독의 이후의 행보에도 기대를 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