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트로엘 감독의 "영원한 순간"은 1900년대 초의 스웨덴을 배경으로 마리아 라르손이라는 여성의 삶을 다룬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얀 트로엘 감독 부인 쪽 친척의 실제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는 한 대의 사진기와 마리아의 딸, 마야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복권에 당첨되어 얻게 된 이 사진기로 인해 엄마 마리아와 아빠 시그프리드 라르손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시그프리드(이하 시게)는 건강하고 힘센 남자로 그렇기에 부두에서도 항상 일거리를 얻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부두사람의 이미지처럼 시게는 술을 좋아하고, 종종 그 때문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마리아는 그 때문에 시게와 이혼까지 할 작정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을 향하지만, 친정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 때 그녀가 발견한 것은 과거의 사진기. 마리아는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사진사 페데르센도 만나게 됩니다.
영화는 마리아의 일생을 이야기하면서 중간중간 스웨덴의 사회사도 양념으로 첨부합니다. 북유럽에 불기시작한 사회주의의 바람과 영국과의 갈등, 그리고 1차세계 대전 등이 그러합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마리아의 가족도 그만큼의 영향을 받습니다. 노조를 만들어 파업에 참가한 시게와 그 틈을 노려 부두의 일을 도맡은 영국인들의 모습이나, 전쟁으로 인해 징집당한 시게의 이야기들이 그려지며, 어느새 비행선이 하늘에 등장할 정도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러한 이야기 속에서 시게는 여전히 돈을 벌어오는 일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으나 바람을 피기도 하는 등 가정사에는 그리 충실한 남편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그런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를 사진기와 사진에 대한 관심으로 돌려서 풀어나갑니다. 친절한 사진사 페데르센과의 만남 역시 그녀에게는 작은 위로거리입니다.
영화 속에서 마리아의 모습은 지금의 관점에서는 조금 답답한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의 우리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처럼 뭔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위치와 가치를 찾아나간다거나 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남편의 반응을 무시하고 사람들까지 불러모아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 사진에 빠져 가족을 돌보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의 관습과 가치관 속을 살아가는 마리아라는 여성에게는 요즘같은 그런 적극적인 모습보다는 이 영화 속에서 처럼 사진을 통해서 마음의 위안을 얻으며 가족을 아우르는 모습이 더 어울릴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에 영화는 사진을 그 대상을 영원히 지속시키게 만드는, 영원한 순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죽기 얼마 전에야 유일하게 자신을 담은 사진을 한장을 찍습니다. 딸 마야는 끝까지 가정을 지키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래도 '엄마는 아빠를 사랑했나 보다.' 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녀가 진정 시게를 사랑해서였는지, 아니면 사회적 가치관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였든 자신의 지금 순간을 영원히 남기고 싶은 행복한, 혹은 여유로운 때를 그녀가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순간"은 이런 마리아의 생애를 잔잔한 감성과 따사로움으로 그려냅니다. 갈등과 인내, 잠정적 화해가 되풀이는 조금은 단조롭다 할 수 있는 극의 전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바로 그 감성입니다.
P.S
이 사진의 정체를 아시는 분. PIFF의 "영원한 순간" 소개 페이지 및 포털에 소개된 페이지에 있는 스틸인데...영화 어디에도 저 장면은 없습니다. 아마 잘못 집어넣은 듯 하죠?
영화 "애모"의 초반은 빠른 전개와 각각 다른 이야기의 편집이 눈길을 끕니다. 한 고등학교 수업시간 불어교사 사빈은 아이들에게 한 남자가 자신의 부인의 짐에 폭탄을 숨겨 비행기를 폭파하려고 했던 사건을 다룬 기사의 번역을 시키고, 한편으로 자신의 학생인 사이먼에게는 그것을 이용해 연극수업을 위한 대본을 쓰게 합니다. 사이먼은 그 기사 속 등장하는 부부를 자신의 죽은 부모로 대체하여 마치 사실인냥 이야기를 지어나가고, 학교 수업시간으로 그치지 않고 인터넷 채팅방을 통해서 그 이야기를 퍼뜨립니다. 사람들은 그 일을 사실로 믿고 논쟁을 벌입니다. 영화의 초반은 학교에서의 사이먼과 사이먼이 지어낸 이야기, 사이먼과 사빈, 그리고 사이먼과 그의 삼촌, 사이먼과 외할아버지 사이의 이야기가 엇물리면서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흥미로운 초반 그리고 중반을 지나가면서 영화는 초반에서 흩어졌던 이야기들에서 진실과 거짓에 대한 가지치기 작업이 이뤄지고, 과거 사이먼 가족에게서 일어났던 아픈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애모"는 사이먼의 가족사를 통해 9.11 이후의 미국과 이슬람권 사이의 갈등과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 그리고 그러한 문제에 바탕을 둔 의심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를 그저 한 가족의 과거사로 풀어나가는 모습은 초반의 인상에 비해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고, 과정에 있어서 때로 빈약합니다. 영화는 마지막에 동방박사의 경배(adoration) 그림과 철저히 왜곡된 시선을 가진 외할아버지의 인터뷰를 담은 핸드폰을 불태우고, 아버지가 만들었던 바이올린 스크롤을 쥐고 있는 사이먼의 모습으로 마무리하는데, 이는 사이먼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리는 애잔함의 표현이자 기독교만큼이나 뿌리깊게 서구사회를 지배하는 이슬람에 대한 편견에 보내고픈 작별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지막 애잔함 같은 아쉬움이 뒤따른 영화였습니다.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는 1930년대 말 위니프레드 왓슨이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위니프레드 왓슨은 현재에 와서 '숨겨진 제인 오스틴'이라는 호칭을 받으며 새롭게 재평가 받고 있다고 합니다. '칙릿' 소설의 원조격이라는 이야기 역시 듣고 있구요. 저는 원작소설은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부산 내려갔을때, 스타벅스에 꽂혀있길래 서문만 살짝 훑어보기는 했는데, 핑크색의 책 표지는 소설/영화가 주는 이미지를 미리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제1차세계대전 이후, 그리고 유럽이 곧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참화에 또다시 휩쓸릴 위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때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미스 페티그루(프란시스 맥도먼드 분)는 가정교사 일을 하다가 줄줄이 해고를 당하고, 이제는 길거리에 나앉게 된 신세입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그녀는 자유연애주의자이자 성공에 대한 야심이 큰 라포스(에이미 아담스 분)의 집에 들어가고 되고, 그 때 라포스에게 닥친 위기상황을 깔끔하게 해결하면서 그녀의 매니저가 됩니다. 단벌의 가난한 여성이던 페티그루는 라포스와 함께 하면서 영국 상류사교계도 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라포스의 진짜 사랑도 찾아주고 자신의 새로운 사랑도 찾습니다.
영화의 이런 스토리는 일반적인 로맨틱 코메디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영화는 영국 사교계를 표현하면서 1930년대 영국의 유행이던 경쾌한 음악과 화려한 패션으로 귀와 눈을 즐겁게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영화에 종종 드러나는 전쟁에 대한 암시, 두려움과 교차가 되는데, 이는 곧 라포스와 페티그루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전쟁을 직접적으로 겪지 못한 라포스는 진짜 사랑 앞에서 흔들리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배우로서의 화려한 면을 좇습니다. 하지만 목사의 딸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지난 전쟁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이 있는 페티그루는 라포스보다 외모적인 아름다움에서는 떨어질지지는 몰라도 인생에서의 진짜 사랑에 대한 소중함은 잘 알고 있습니다. 페티그루는 훈련으로 중단된 클럽공연 중에 '지금 훈련은 곧 끝날테지만, 앞으로는 훈련만으로 끝나지 않을 지 모른다. 그러니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 며 라포스에 진짜 사랑을 따르라고 조언합니다. 사랑이 주는 행복을 페티그루는 알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런 대비된 사회 모습과 그것처럼 대비된 두 여인의 모습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며, 화려한 사교계의 모습과 더불어 그 과정에서 각 등장인물들 사이의 맛깔스러운 대사와 유머로 상황상황을 즐겁게, 그리고 매끄럽게 이어나갑니다. 라포스 역을 맡은 에이미 아담스는 전작 "마법에 걸린 사랑"과 유사한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지젤이 '내츄럴 본' 딴세계 공주였다면 라포스는 현실의 사랑과 성공과 화려함 사이의 선택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변함없는 것은 그녀가 이번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것입니다. 조엘 코엔의 아내이자, "파고"로 아카데미를 수상한 프란시스 맥도먼드도 극의 중심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이끄는 페티그루 역을 더없이 훌륭히 소화해냈습니다.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는 가벼운 터치의 유쾌한 로맨틱 코메디류를 찾는 분들에게는 알맞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영화 "일 디보"는 총리 7차례, 장관만 25번을 지내며 전후 이탈리아의 정치계를 지배했던 줄리오 안드레오티에 관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이지만, 그의 삶 전체를 조망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의 정치적 일대기 전체를 다루는 영화도 아닙니다. 영화가 집중하는 부분은 그의 정치생활의 말년입니다. "일 디보"의 시작은(용어설명을 제하고) 그의 어머니의 말로 시작합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말을 할 수 없다면, 그에 관한 말을 아예 꺼내지 마라.' 이어지는 장면은 경쾌한 음악과 함께 자행되는 암살들입니다. 영화는 이 시작부분을 통해서 줄리오 안드레오티의 정치적 자산과 그 성장동력이 무엇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어서 안드레오티가 당수로 있는 기독교민주당(기민당) 소속의 그의 손발들이 등장합니다. 안드레오티의 비서는 그들을 보고 말합니다. '또 먹구름들이 밀려왔네요.' 그들이 한명씩 등장할때마다 휘파람 소리가 울립니다. 그 휘파람소리는 마치 조롱기를 가득 담은 듯 합니다. '보세요. 이 버러지같은 놈들을.' "일 디보"는 영화 내내 줄리오 안드레오티와 그를 압박하는 이전 기민당 당수, 알도 모로의 독백이 그를 압박하는 형국을 취합니다. 알도 모로는 총리이던 1978년 극좌테러단체인 '붉은 여단'에 납치되어 54일째 되는 날 살해된체 발견되었는데, 안드레오티가 그 납치/살해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로의 독백은 모로가 납치되었을때 적었던 수첩에 적힌 내용으로 안드레오티는 그것을 입수해 발표 하려던 'OP'지의 기자 미노 페코넬리 역시 살해했습니다. 그렇게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등장해 그의 내면을 압박해오는 모로의 독백은 안드레오티에게 남아있는 일말의 가책입니다.
"일 디보"의 중심인 줄리오 안드레오티는 영화가 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의 전체가 드러나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비밀이 많습니다. 그런 비밀들로 인해 비어있는 부분에는 다른 것들이 채워집니다. 이탈리아 정치판의 모습, 사회의 모습들이 그것입니다. 영화는 줄리오 안드레오티라는 상징적인 인물을 통해서 전체 이탈리아 정치계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도는 영화 후반부의 줄리오 안드레오티의 독백으로도 드러납니다. 그의 과거 행적들에 대한 의혹이 하나씩 불거지고, 결국 청문회에 불려나가게 된 그는 청문회 출석을 앞둔 어느 날 의자에 앉아서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권력의 핵심과 정의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영원할 필요악이라고 강변합니다. 영화 내내 조용하고, 차분했던 그가 빠르게 내뱉는 그의 말들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이 의도한대로 인정할 수 없는 그의 말.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돌아가는게 바로 이탈리아 정치계입니다. 이는 비단, 이탈리아 정치계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안드레오티는 청문회에 나가서 '기억이 안납니다.'로 일관합니다.
영화는 빠른 편집과 전개로 속도감을 자아내며, 그 속도감 속에서도 각 장면 하나하나마다 공들인 티가 느껴질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화면 내에서 줄리오 안드레오티로 분한 토니 세르빌로의 연기 또한 인상적입니다. 구부정한 등에 깍지 낀 손을 가슴팍에 모은 체 조용조용 말하는 토니 세르빌로는 영화 속에서 그런 모습과는 다르게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가득 드러냅니다. 비밀에 가득 쌓인 존재이면서도, 보는 이를 압도하는 모습. 그의 연기는 영화를 빛나게 하는 또다른 한 축입니다.
P.S 이탈리아와 우리나라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글쎄요, 그 쪽은 이렇게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는데..
P.S2
L->R 실제 줄리오 안드레오티, 토니 세르빌로, 영화 속 안드레오티
글을 적다가 알게 된 건데... 토니 세르빌로가 역시 이번 PIFF에서 본 "고모라"에도 나왔더군요. 기억을 떠올려보면, 폐기물처리업자였던 것 같은데..분장을 저렇게 해놔서 동일인물인 줄 전혀 몰랐네요;;
별점을 보고 있는 여자. 그 여자 앞에 퀭한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의 고민은 노후가 걱정된다는 것. 둘 사이의 약간의 섬씽이 있은 후, 여자는 남자에게 그가 카멜레온 별자리라고 말합니다.
남자의 이름은 고로. 그는 결혼사기단의 일원입니다. 세명이 한패를 이룬 그의 일당은 돈 많은 여성에게 접근해 결혼까지 약속을 하고, 그 과정에서 여자에게서 돈을 빌립니다. 그리고는 결혼식장에서 또 다른 동료가 깡패같은 채권자로 등장해 물을 흐리고, 결국은 결혼은 없던일로. 그 때 번 축의금을 자기 몫으로 얻는 식입니다. 여느날처럼 그런 사기극을 치룬 일행은 우연히도 한 남자가 납치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그것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습니다. 그 남자의 정체는 한 장관의 비리를 폭로할 증인. 그것을 알게 된 일행은 혼란에 휩싸이고, 그들을 위협하는 손길이 덮쳐옵니다.
영화는 제목인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합니다.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닌 쪽으로 말입니다.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방향으로 영화는 정처없이 튀는데, 말그대로 역마살 맞은 전개입니다. 사기단이었다가 거대한 음모에 휩싸이며서 적에 쫓기는 고로. 쫓아온 적과 느닷없이 격투를 펼치고, 이어서 화려한 운전 솜씨를 발휘하며 카 체이싱 장면을 연출합니다. 그의 정체는 미상. 고아로 야쿠자 총알받이, 격투기 훈련생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는 것만 알려져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이 고로는 가까워진 점봐주던 여자, 케이코와 함께 도망을 가다가 방심한 틈에 그녀를 잃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고로의 복수. 이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그 황당함에 어이를 잃을 정도입니다. 고로는 최종적인 복수로 자신을 위협하던, 뒷처리 전문인 RCA(Risk Cover Ageny)와 장관에게 싸늘한 복수를 합니다. 그 때 외치는 RCA 대표(토요하라 코스케, "노다메 칸타빌레"의 부채선생)의 한마디, '우리가 존재하기에 이 나라가 존재한단 말야.'는 다시 한번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보냅니다. 국가의 비밀에 접근한 평범한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다는 이야기는 사실 헐리우드 영화들에서 자주 반복되는 소재이긴 하나, 이 영화에서의 그 소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인공과 그의 행동, 최소한의 흐름에도 맞지 않는 억지스러운 전개와 호흡, 액션장면이 겹치면서 말그대로 황당한 영화가 되버렸습니다.
...부산까지 내려가 밤새면서 이 영화를 봐야하는 건지 하는 생각에 순간 잠도 달아나고, 깊은 우울함에 휩싸여버리게 한 작품으로, "데스 노트 - 라스트 네임"에서 라이토 역을 맡은 후지와라 타츠야, "노다메 칸다빌레"에서 키요라 역을 맡은 미즈카와 아사미, 키시베 이토쿠 같은 나름 익숙한 얼굴들을 낯설게 만들어버린 졸작입니다.
P.S 부산 내려가 영화를 많이 보다보니 보면서 틈틈히 영화에 대해 적어놓곤 했는데, 이 작품에 대해서는 마지막에...'-_-... 미치겠음'이라고 적혀있네요. 쿨럭;
1930년대의 경성은 얼마나 화려했는가. 영화 "모던 보이"는 경성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비극적 사랑을 나눠야했던 해명(박해일 분)과 난실(김혜수 분)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총독부직원인 이해명은 한때는 고종의 죽음에 누구보다 슬퍼했으나, 지금은 친일파인 아버지를 둔, 멋진 패션을 자랑하는 모던보이입니다. 그에게 나라를 빼앗긴 작금의 상황은 크게 문제될 일이 아닙니다. 그가 신경쓴다고 이 상태가 달라질 것도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우리 아버지가 점을 봤는데, 내 운이 앞으로 10년동안 꽝이다. 그러니, 총독부에서 내가 일하는 것이 독립에 일조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허무맹랑한 말이나 하는 것일 뿐. 그런 해명에게 로라라는 여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경성 최고의 '낭만의 화신', 해명은 그런 로라에게 한눈에 반하고는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그의 눈 앞에서 사라지고, 그녀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녀에게는 본명 난실 외에도 다른 여러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시대의 비극은 그 둘의 사랑을 크게 흔들어놓습니다.
"모던 보이"는 시대의 흐름에 그냥 몸을 맡기던 한 모던 보이가 사랑을 통해 그 흐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의 주 이야기는 해명과 난실의 멜로이지만, 해명이 난실의 정체에 대해 알아가는 일련의 과정은 일종의 스릴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명은 난실을 알기 전까지는 (나름의) 평화로운 삶을 살았지만 난실을 만난 후부터 그는 사랑을 좇으며, 시대의 또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해명은 말합니다. '소학교 때, 선생님이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는데,난 일본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나 형이나 다들 부자가 될려고 노력하는데, 그건 일본인이 되면 되거든.' 일제치하의 시대상황에서 어린 해명의 눈에 비치던 그것은 그의 삶도 어느새 일본인처럼 살게 만들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선인입니다. 같이 경성대학에서 수학했던 절친한 일본인 친구 신스케(김남길 분)는 그를 이용해 난실의 배후에 있는 테러박을 잡으려하고, 해명은 고문과 심문을 받으며, 조금씩 자신의 현실에 대해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난실을 사랑합니다. 영화는 일제치하라는 시대적 비극 속에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려 하고 있지만 점차 극이 흐를수록 커지는 것은 그들의 사랑이 아니라 일제 치하의 아픔입니다. 해명이 그토록 난실을 사랑하고, '낭만의 화신이 테러의 화신'이 되기까지 영화는 그저 첫눈에 반해서라는 이유 하나로 설명하려합니다. 또한 난실의 해명에 대한 마음도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시대적 비극의 무게에 치중에 이 영화가 가진 또다른 한축에 너무 소홀했습니다. 그렇게되면서 이 영화는 그간의 여타 다른 일제시대 배경영화와 그다지 차별성이 없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올해만 해도 "라듸오 데이즈", "원스 어폰 어 타임" 등의 영화가 있는데,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은 결국 모로가도 독립운동으로만 가면 된다입니다. 극의 이야기와 분위기, 흐름과는 어쩌면 무관하게 그쪽으로만 끌고가는 영화들은 식상함만 느끼게 할 뿐입니다. 또한, 이 영화가 이야기를 끌고가는 스릴러적인 부분은 이미 도시락폭탄이 터지면서 난실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된 마당인지라 (난실이 영화 속에서 자신은 아니라고 해도) 긴장감은 풀린 상태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스릴러 적인 긴장감도, 멜로라인의 애뜻함도 느껴지지 않는 영화는 그저 지루함만 증폭됩니다.
영화 속 배우 이야기를 하자면 주연을 맡은 박해일은 캐릭터에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줍니다만, 김혜수의 난실 연기는 종종 과도하게 오버스럽고, 때로는 어색합니다. 난실 역 자체가 등장 때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최소한 가지고 있어야 할 캐릭터의 일관성이 부족합니다. 그렇다보니 박해일과 김혜수의 연기 앙상블은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극을 이끌어가는 두 캐릭터간의 이런 모습은 또 다른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영화는 세트와 CG를 통해 그 시대의 경성을 세세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조선총독부건물, 경성역, 명동성당, 식당 테라스에서 보이는 야경 등. 그러한 모습을 보는 것이 한 재미일 정도로 인상적인 모습입니다만 정작 그 외에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인지라, 빛이 바래는 듯한 느낌입니다. 배경은 갖춰졌는데, 그 안에서 펼쳐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지 못해 더욱 아쉬운 영화, "모던 보이" 입니다.
P.S 이 영화를 지난 3월의 블라인드 시사회를 통해 먼저 봤더랬습니다. 편집이나 CG등이 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때의 감상 느낌은 이번에 정식개봉판을 본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원래 4월 개봉이었는데, 밀린거 보고 대충 자체에서의 평가도 어떤지 감이 왔고 말이죠. 뭐, CG등의 작업때문이라고는 합니다만.
P.S2 개봉을 뒤로 미룬 것이 나름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위에도 언급했지만, "라듸오 데이즈"나 "원스 어폰 어 타임" 등의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개봉한지 불과 3개월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어서 그렇습니다. 역시나 말했듯이 사실 크게 보면 별 차이가 안나는 영화들이라서 말이죠.
영화 "이글 아이"는 거대한 음모에 빠진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쌍둥이 형이 죽은 후, 자신의 통장에 입금된 거액의 돈을 확인한 제리,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 폭발물질과 무기들이 가득 도착해있습니다. 그 때 걸려오는 전화 한 통화. '곧 FBI가 들이닥칠테니 피하라.' 경고를 무시한 제리는 FBI에 잡혀 심문을 받게 되고, 그때 그 전화속 목소리로 인해 탈출에 성공합니다. 아들을 연주회에 보내기 위해 홀로 기차를 태운 엄마, 레이첼. 그날 밤 그녀에게도 제리와 같은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아들을 살리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대로 해라.'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의 인도로 두 사람은 만나게 되고, 길을 같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인도를 받아 길을 갈수록 그들은 거대한 음모의 정체에 점차 다가가게 됩니다.
"이글 아이"는 현대사회의 고도로 발달된 테크놀로지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조종할 수 있다는 일종의 '빅 브라더'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는 현실에서도 어느정도 가능한 내용이고, 실제로도 이루어지는 부분으로 이메일은 물론, 핸드폰, 거리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CCTV 등을 통한 감시가 그것입니다. 영화는 그런 각종 테크놀로지의 집약적인 활용을 보여주는데, 그에 따라서 다양하고 현란한 CG와 영상, 편집이 동원됩니다. 헐리우드 영화들이 다 그렇듯이 이러한 모습은 볼거리라는 점에서는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영화는 분명 이러한 '빅 브라더'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후반부에서 음모의 실체가 드러나면서부터는 그것보다는 인간이 예상치못한, 인공지능 기계의 문제로 비춰집니다. 얼마전의 "월-E"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은 역시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할'을 연상시키는 거대 테크놀로지의 집합체입니다. 영화는 9.11 이후의 영화들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미국이 테러를 막기위한 명분으로 행하는 과한 군사적 행동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헐리우드다보니 '미안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류의 뻔한 내용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이글 아이"는 어떻게 본다면, 식상한 내용을 화려한 볼거리고 메우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액션 스릴러로 정의될 수가 있겠지만, 그래도 영화의 전개과정에서의 나름의 스릴과 긴장을 유지하는 모습은 오락영화로서의 기본적인 재미는 선사하고 있습니다.
"트랜스포머", "인디아나 존스4"에 연속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한몸에 받고 있는 차세대 헐리우드 스타 샤이아 라보프는 그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그의 연기가 실망스럽다는 것은 아니고, 안정적인, 딱 샤이아 라보프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직까지 그에게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 그 이상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좀 이른 듯 합니다. 든든한 백이 있다는 것도 작용하겠지만, 그 나이에 큰 영화의 주연을 맡아 이끌어나간다는 것이 말 처럼 쉬운 일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여담으로 이번에도 샤이아의 'No, No'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는 그와 관련된 유튜브 영상. (...예전에 본 이 영상때문에 이후 샤이아의 작품에서는 'No,No,No.'가 나오기만을 기다린다는..)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신작 "스카이 크롤러"는 또다른 현재, 아니면 멀지 않은 미래의 유럽 어느지역으로 추정되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눈을 사로잡습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격렬한 도그파이팅을 선보이는 전투기들, 슬로우모션으로 흩뿌려지는 탄피들, 360도, 전후좌후로 이동하는 시점. 이 공중전이 끝나고, 구름 너머 영화의 제목이 등장합니다.
오프닝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작부분에서 주인공 간나미 유이치가 한 공군기지로 배속받는 모습이 보입니다. 기지의 책임자인 구사나기 스이토는 유이치의 보고를 받으며, 기다렸다는 말을 합니다. 기지를 둘러보며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는 유이치. 유이치는 다음날 동료 도키노와 함께 정찰 비행을 나갑니다. 그 정찰비행 중 유이치는 자신의 전임자인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진로에 대해 궁금해진 유이치는 그에 대해 묻고다니지만, 다들 그에 대해서는 숨기는 기색이 역력하고, 구사나기가 진로를 쐈다는 이야기만 듣게 됩니다만 여전히 그 정체는 안개 속에 쌓여 있을 뿐입니다. 영화는 진로의 정체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이 베일에 쌓인체 전개가 됩니다. 그 전개 중에 하나씩 이야기되는 식입니다. 현재 이 전쟁은 어떤 국가와 국가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라우테론과 록스톤이라는 군수회사가 위임받아 치루고 있는 전쟁으로,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파일럿들은 그 회사의 직원들입니다. 그리고 이 파일럿들은 나이가 들지 않고 계속 청소년의 모습인체 전투 중 죽지 않는 이상 영원히 사는 '키르도레' 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전쟁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합니다. 기지에 방문을 온 민간인들은 유이치에게 '당신들때문에 우리가 평화 속에 살아요.'라며 고마움을 표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후반부의 이 전쟁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집니다. 이 영화 속의 세계의 모습은 대부분이 공군기지와 그 주변의 모습으로만 보여주고 있지만, 얼핏 보이는 그 외부의 모습에서는 풍요롭고 안정되어 보이는 사회로 보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전쟁은 왜 발생한 것일까요? 인류의 역사상 전쟁이 없던 날은 불과 며칠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느날 전쟁이 사라진다면, 전쟁이란 불안과 위협을 통해 사람들이 갈망하던 평화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집니다. 오래된 인식과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함이라는 필요악적 명분으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쟁은 국가가 아닌 거대기업체 라우테론과 록스톡이 위임받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 필요악적 명분보다는 기업이 관여하면서 결국은 돈이 크게 관여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는 영원히 나이들지 않고 전쟁을 치뤄야하는 '키르도레'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전쟁이라는 것이 과연 정당한 명분이란 것이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러한 전쟁에 끊임없이 투입되고 있는 젊은이들. 영화는 전쟁과 '키르도레'들을 통해 현재의 전쟁에 대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키르도레'들은 위에 언급된 내용과는 다른 의미도 띄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픈 가장 큰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는 영원히 청소년인 상태로 남아있는 '키르도레'들과 그들과는 반대로 그들이 절대 상대할 수 없는, 성인 남자로 알려져 있는 적 파일럿 '티처'가 등장합니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파일럿들은 전쟁이나 그들이 행하고 있는 전투자체에 대해서는 무감각합니다.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드라이브인 식당의 주인이 전투에 참가할지도 모를 유이치에게 말합니다. '조심해요.' 그러나 유치이는 답합니다. '뭘요?' 그들에게 창공을 향해 날아가는 일은 당연한 일을 넘어 즐거운 일입니다. 유이치는 하늘이 좋다고 말합니다. 하늘에서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모습들과는 다르게, 지상에서의 그들의 모습은 지루하고, 나른한 듯한 모습일 뿐입니다.하지만 그 좋아하는 하늘에는 그들이 상대하기 벅찬 '티처'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창공 가득을 누리지 못하고, 돌아와야만 합니다. 유일한 죽음이 두려워 '티처'를 보면 도망치기에 바쁩니다. 전쟁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 놓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각 회사를 옮겨다니는 '티처'는 현재의 기성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영원히 자라지 않은 '키르도레'는 현재의 젊은이들입니다. 기성세대인 '티처'가 만들어놓은 현재의 모습에 대해 젊은이들은 지속된 패배의 모습에 도전이라기보다는 적정한 균형만을 유지하며, 새로운 모습을 포기합니다. 분명 새로운 것을 꿈꾸는 마음과 열망은 있지만, 적당한 타협만을 찾습니다. 영화에서 유이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간이 어른이 될 필요가 있는가'라며 스스로를 늙지 않는, 현재성만을 갖는 인물로 스스로 정의해버립니다. 하지만, 후반에 가서 자신의 존재론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은 유이치는 '키르도레'임에도 아이까지 낳은, 그들과 같은 존재이면서도 성숙함으로 좀 더 나아간 구사나기에게 '당신은 무언가를 바꿀때까지 살아남아요.'라고 말하고는 '티처를 격추하겠다'라며 출격합니다. 하늘에서 지상의 풍경을 바라보는 유이치의 독백.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은 오늘과 다르다. 매일 다니던 길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설사 그 길이 같다 하더라도 그 곳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독백은 엔딩크레딧이 끝나고 나오는 쿠키영상의 결과가 암울한 비극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작은 한걸음임을 이야기합니다. 감독 오시이 마모루가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메세지입니다.
"스카이 크롤러"는 오시이 마모루의 전작들처럼 존재론적 고민 등이 등장하긴 하지만, 기존 작품들에서 보이던 다분히 현학적인 대사들은 많이 줄어든 편입니다. 이는 오시이 마모루의 그런 점을 좋아하던 팬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 될테지만, 그가 이 영화를 통해 말하는 바를 들어주길 원하는 대상들이나 그런 이전의 모습으로 인해 거부감을 일으키던 기존 관객들에게는 더욱 어필할 수 있는 요소일 것입니다. 또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공중 전투씬의 스펙타클함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주는 메시지를 떠나서라도 단순히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오시이 마모루는 아직 건재합니다.
P.S 이런식으로도 생각해봤습니다. 하늘에는 성인 남자인 '티처'가 있고, 지상에는 '마마'(엄마)라고 불리우는 정비사 사사쿠라가 있습니다. 여자 파일럿이 있긴 하지만, 이 대결을 유이치와 '티처'의 대결로 본다치면, 일종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발현이 아닌가 하고 말이죠. '키르도레'가 청소년시기라는 것도 그렇고, 기성세대의 억압이라고 봤을때도 그렇고...
P.S2 야외상영장에서의 상영중단사고만 없어서도 참 좋았을텐데 말이죠. 뭐, 기계적 오류야 사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요.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인 "스탈린의 선물"은 카자흐스탄의 감독 루스템 압드라쉐프가 연출을 맡은 작품입니다.
영화는 구 소련시절, 소수민족들이 척박한 중앙아시아 땅으로 강제이주를 당하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유대인소년 사쉬카 역시 강제이주를 당하던 중으로 그의 부모님은 수용수에 갇혀있으며, 이주기차안에서 사쉬카의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렇게 고아가 되버린 사쉬카는 같은 기차 안의 사람들의 도움과 기차가 정지한 카자흐스탄에서 철도관리일을 하는 카심 할아버지를 만나 목숨을 구합니다. 사쉬카는 카심과 같이 살게되면서, 베르카와 예지크, 그리고 다른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영화의 제목인 "스탈린의 선물"은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스탈린의 70회 생일을 맞아 사람들이 준비하는 선물입니다. 영화에서는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 중간중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방송을 통해서 넌지시 알려줍니다. 스탈린 정권을 찬양하는 방송들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사쉬카는 가장 잘만든 선물을 만든 사람은 그 선물을 직접 스탈린에게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이 아끼던 양을 자진해서 내어줍니다. 스탈린이 자신의 부모님을 풀어주었으면 하는 소망과 함께. 하지만, 어린이의 이런 순수한 바람과는 다르게 스탈린이 바라던 선물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카심이 불안감에 사쉬카를 이스라엘로 떠나보내고 얼마 안 있어, 그들의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스탈린이 원하던 진짜 선물이 보내집니다. 거대한 버섯구름과 함께 모든 것을 앗아가버리는 핵폭탄. 스탈린이 원하던 것은 인민들의 선물이 아니라, 냉전의 한축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줄 무기였습니다.
"스탈린의 선물"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사쉬카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억압이 가득한 암울한 시대를 순수한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방식은 진부한 방식으로, 영화는 이를 해소시킬 어떤 모습도 보이지를 못합니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 시대를 그렸던 "말레나"가 많이 떠올랐습니다. 13세 소년이 자신의 성적 판타지의 대상인 말레나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되는 영화와 이 이야기는 시대가 가지는 유사성 등에서 어쩔 수 없이 흡사한 분위기를 보입니다. 또한, 사쉬카와 카심의 관계는 같은 감독의 "시네마 천국"에서의 그 관계가 떠오를만큼 이 모습 역시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며 시대의 비극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의 작위성은 눈에 거슬립니다. 다분히 카자흐스탄이라는 공간적 특이성과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그 모습이 이런 단점들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개막작이 지니는 PIFF의 방향성('발굴과 발견')에는 맞았을지 모르겠지만, 그 방향성이 추구하는 결과에는 이 "스탈린의 선물"은 크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후아유", "사생결단"의 최호 감독의 신작 "고고70"은 70년대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의 일련의 사건들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영화입니다. 그룹 데블스의 탄생과 활동을 영화는 그리고 있습니다. 새마을운동과 유신, 그리고 이어진 긴급조치 9호등의 당시 사회적 사건들이 맞물려 그려지지만, 이 영화에서 그러한 사건들은 배경적 요소로 스쳐지나갑니다. 이 영화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타오르는 젊음, 그 젊음에서 우러나오는, '좋아, 그냥 가는 거야!', 한바탕 놀아보자입니다.
70년대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기에 개인적으로 우려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한국영화계의 주요관객층은 20대, 좀 더 범위를 넓히면 10대인데 80~90년대 생인 (저를 포함한) 그들이 70년대의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컸기 때문입니다. 이 우려는 반은 맞았고 반은 비켜갔습니다. 만약, 영화가 앞서 언급한 박정희 정권의 일련의 사건들이 크게 중심이 되었고, 영화 속 그들의 모습이 그러한 억압에 저항하는, 자유를 꿈꾸는 모습으로 크게 비쳐졌다면 단연코 실패했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보다는 '놀자'라는 단순명쾌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금요일 밤, 클럽데이면 홍대앞을 가득 채우는 젊은이들이나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70년대를 살아가던 아버지 뻘 세대의 그들이나 놀고 싶다는 그 욕망에 그저 충실할 뿐이니까 말입니다. 영화는 이 '놀자' 정신을 바탕으로 세대의 공통점을 이끌어냅니다만, 반은 맞은 우려는 결국 그 '놀자'를 위해 구성된 영화의 극적구성이 그저 연대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모든 포커스는 공연과 음악에 맞추어져 있을 뿐이지, 일반적인 극적인 흐름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그러한데, 각 캐릭터들의 성격 및 특징들이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음악이 등장하는 공연장면의 촬영을 비롯한 연출 등은 인상적이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극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연 장면은 분명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큰 즐거움을 선사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음악은 분명 신나고 좋더라도, 단순히 '놀자'라는 공통점과 그 음악 하나만으로 영화를 즐기라고 말하기에는 조금은 부족해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조승우는 이미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이것 밖에 본적이 없다는...) 등에서 가창력을 충분히 선보였기에, 이 영화에서의 그의 모습은 마치 당연한 것 처럼 보입니다. 워낙 그 방면으로 알려진 배우인지라 왠지 본전치기하는, 손해보는 느낌이랄까요. 그 외의 차승우 같은 경우는 역시나 음악을 위해 희생한 연기력 정도로 봐야할 듯 합니다. 영화의 홍일점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한 신민아는 의상이나 춤 등에서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나, 영화 자체가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놓는다거나 그 캐릭터를 살리려 하고 있지 않기도 하고 이번에도 '신민아..어떤 영화에 나왔더라..'에서 그리 벗어날 것 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헬보이"를 처음 봤던 때가 기억납니다. 2004년 여름. 방학 때이고 해서 한창 시사회 돌아다닐 적이었습니다. 처음 보고 인상 깊었었기에 시사회로 또 한번 보기도 했었죠. 그리고는 감독의 이름을 기억했습니다. 길예르모 델 토로. (헬보이 버스트 포함 한정판 DVD를 구입하기도..) 그리고 몇년 후, "판의 미로"라는 영화가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 및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감독은 길예르모 델 토로. 제 감이 틀리지 않았음에 혼자서 기뻐했더랬습니다.
2008년, 헬보이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헬보이는 여전히 ‘초자연 연구 방어국(Bureau for Paranomal Research and Defence, 이하 BPRD)에서 임무를 수행중입니다. 리즈와도 연인관계이고, 동료인 물고기 인간 에이브 사피엔도 함께 합니다. (다만, 전편에 등장했던 젊은 요원 존 마이어스는 헬보이에 의해 남극기지로 발령되어, 극중에서는 사라졌습니다.) 영화는 헬보이가 어린시절 들었던 전설 속 환상의 세계에서 살던 존재들이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등장하고, 그것을 막기 위한 헬보이 일행들의 활약을 그리고 있습니다.
후속작의 공식답게 "헬보이 2 : 골든 아미"(이하 "헬보이2")는 외형적으로도 눈에 띄게 커졌습니다. 전작의 아쉬움 중 하나였던, 등장하는 크리쳐의 수가 많아졌습니다. 초반에 등장하는 윙크와 누아다 왕자를 비롯한 엘프들, 이빨 요정, 고블린, 엘리먼트, "판의 미로"에서 따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죽음의 천사, 그리고 트롤마켓의 다양한 생물들은 길예르모 델 토로의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이것을 보면, 전작 "헬보이"에서 길예르모 델 토로가 자신의 그 실력을 다 보여주지 못해 얼마나 안타까워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이번 작은 본인말마따다 '내 마음대로 만들었다' 라고 하니까 말입니다. 또한, 도시 이러한 다양한 크리쳐의 등장만큼 CG 등의 사용 빈도 수도 많아져서 영화 속 세상을 더욱 풍성하고, 화려하게 만듭니다.
이런 시각적 즐거움에 더해서, 또 다른 축인 캐릭터들도 건재합니다. '난 무뚝뚝하고 제멋대로이며, 마초적인 도시남자!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 라고 끼워맞출 수 있을 듯(-_-)한 헬보이는 이번에도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주인공으로 외모도 비록 그렇지만 슈퍼히어로나 다름없는 그는 시니컬하고, 제멋대로인 모습에 더해 툴툴거리면서도 리즈와의 관계 때문에 마음앓이하는 모습은 그의 매력을 더 살려줍니다. 동료인 에이브 사피엔은 이번에는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러한 두 캐릭터들의 상황에 의해 이 둘은 어색한 듯 어울리는 화음의 노래를 영화 속에서 선보이며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니다. 존 마이어스 요원이 빠진 대신 등장한 새로운 캐릭터 요한은 영매라는 독특한 능력을 선보이는데 중간에 언급되는 그의 과거들은 후속작에서의 그의 캐릭터의 활약상에 기대를 품게 합니다. 셀마 블레어가 맡은 리즈 역할 역시 여전히 아름답고 말입니다. 영화는 전작에서 헬보이에 크게 집중했던 것에 비해서 BPRD의 다른 캐릭터에게도 많은 분량을 할애합니다. 주인공인인 헬보이를 중심에 두면서도, 각 캐릭터의 비중을 적절히 분포한 모습이 눈에 띕니다.
"헬보이2"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작보다는 조금 더 밝아졌습니다. 전작의 어두운 모습을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실 수도 있는 부분일텐데, BPRD의 정체가 대중에게 공개되어서 그들의 활동의 제약성이 조금은 느슨해진 면도 있고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한 장면들이 많아진듯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쩌면 후속작에서 더욱 더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이기 위해서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작에서는 영화 중간중간 헬보이의 미래에 대한 내용이 살짝살짝 등장하는데, 완결인 3편을 비극적으로 만들겠다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발언에 비추어 봤을때, 3편은 더 없이 무거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종의 강약조절의 느낌이랄까요. 영화의 내용에는 전작에 비해서 조금은 진중한 메세지가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누아다 왕자를 비롯한 엘프들과 엘리먼트를 보면, 결국은 그들은 자연의 입장이고 인간들은 탐욕적으로 그 자연을 헤치고 개발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나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경멸하고 무시하는 모습 역시 비판하고 하고 있습니다. (..."엑스맨"?!) 그렇기 하지만, 이러한 메시지들이 전면으로 부각되는 것은 아니고, 영화의 재미는 헬보이의 사랑,모험,활약이라는 것은 변함없습니다.
길예르모 델 토로가 스크린에 옮겨낸 "헬보이" 시리즈는 2편까지 오면서, DC/마블 코믹스 원작 영화들이 자리잡고 있는 슈퍼히어로물 영화들 속에서도 본인 고유의 매력을 가진체 자신만의 위치를 확립하고 있습니다. 이는 색다른 재미를 제공해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또한 이번에 길예르모 델 토로가 보인 수많은 크리쳐를 비롯한 여러 모습들은 앞으로 나오게 될 "헬보이3"는 뿐만 아니라, 그의 또다른 프로젝트, 그가 선보일 영화 "호빗"의 중간계에 대한 기대를 더욱 더 크게 합니다. 길예르모 델 토로, 그는 이젠 정말 이름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길 위치에 와 있습니다.
하루의 시간 동안 서울을 배경으로 한 남성과 여성의 이야기. 비엔나를 거닐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비포 선 라이즈"가 떠오를만도 하지만, "멋진 하루"는 그보다는 채권자와 채무자 관계의 두 남성이 도쿄를 '산책'하던 미키 사토시 감독의 최근 개봉작 "텐텐"에 더 가까운 느낌입니다.
아는 누구는 그냥 산 땅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 값이 뛰어 꽁돈 3000만원을 벌었다는데, 정작 우리 자신의 인생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루하루 평범하고, 때로는 그 평범함이 지나쳐 비루해 보일 때도 있고 말입니다. 350만원. 희수(전도연 분)는 1년전 연인 사이였을 때 꿔준 돈을 받기 위해 경마장으로 병운(하정우 분)을 찾아갑니다. 등장부터 무언가 가시가 많이 돋친 희수와는 달리 병운은 세상만사 둥글둥글, 능글맞고 여유롭습니다. 당장 돈이 없는 병운은 오늘 중으로 주겠다는 말을 하고, 그 말을 못 믿겠는 희수는 병운을 따라 나섭니다. 이들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병운의 인간관계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중년의 사업가 여성, 예전에 스키 강습해주던 주차단속요원 아가씨들, 호스티스, 예전 사귀었던 여자후배의 남편, 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딸 하나 있는 이혼녀 등. 병운은 희수와 함께 이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빌립니다. 분명히 카드 돌려막기 같은 것은 위태위태한 일인데 이 남자, 빚 돌려막는 것이 너무도 능수능란합니다. 희수는 그런, 특히나 여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약간의 깨름칙한 시선으로 병운을 바라보지만 병운은 정작 여자들과 그런 관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연인이었던 사이지만, 희수는 병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요? 영화는 이 둘의 과거의 관계에 대해 직접적으로는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과거 모습은 둘이 차를 타고, 또는 걸으면서 겪는 상황 하나하나에 조금씩 스며들어 있습니다. 지금은 문을 닫아버린, 둘이 자주갔던 제주갈치 식당, 햄버거는 식사가 아니라는 병운의 투정, 좋아하는 캔커피, 이어폰을 나눠듣던 음악, 희수의 신발끈을 묶어주며 이별하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병운의 모습, 그리고 둘이 처음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 "텐텐"에서 후쿠하라가 아내와의 추억의 장소들을 찾아다니고, 그 과정에서 후미야가 잊고지내고 싶었던 추억을 찾는 것처럼 희수는 하루의 시간동안 그 일종의 추억이라는 느낌을 떠올리게됩니다. 그것은 병운보다는 대부분이 희수에게서 보여지는 느낌입니다. 영화는 둘의 과거 관계처럼 희수의 현재의 상황 역시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희수의 모습에서 병운을 바라봅니다. 희수가 바라던 것은 추억과 그를 통한 어떤 로맨스적 감성이었을까요? 아닐 겁니다. 평범보다 못한 비루한 인생사(라고 추측되는)에서 희수가 원했던 것은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빌려준 돈 350만원? 희수는 350만원이 당장이라도 필요한듯 절실하게 굴기는 하지만, 중간에는 통장으로 보내라고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350만원은 애초에는 목적이었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수단입니다. 350만원을 빌려 준 채권자 입장의 희수는 채무자인 병운에게는 당연 유리한 입장입니다. 1년만에 병운을 찾아가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고 재촉하는 희수는 그 순간, 일상에서 벗어난 일종의 일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일상에 찌든 압박감을 표출하고 싶었고, 그 대상은 채무자인 병운이 적임자입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영화 내내 짜증내고 화를 냅니다. 그렇지만, 병운의 모습은 그런 그녀를 누그러뜨립니다. 둥글둥글 세상만사 여유로워 보이는 병운 앞에서, 그리고 자신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상황의 병운을 보면서 희수는 잠시나마 자신의 삶에 대한 압박을 조금은 덜어냈을지도 모릅니다.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는 희수의 모습과 더불어 마지막에 짓는 그녀의 미소는, 비록 그녀의 삶이 결코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그 압박감을 잠시 지울수 있었던 멋진 하루에 보내는 미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생사가 그렇듯이 희수와 병운의 관계는 그런 식으로 매듭지어지지는 않을지도... 그 둘 사이에는 여전히 유효한 차용증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생각은 보는 사람의 자유?)
"멋진 하루"는 병운과 희수의 소소한 하루를 찬찬히 조명하고 있습니다. 경마장부터 해서 서울의 구석진 뒷골목, 고급 오피스텔, 패스트푸드점, 지하철. 일상의 혹은 일상에서 상관없이 지나쳐 가는 공간들. 그러한 공간들 사이에 느껴지는 허전함 마저도 어느새 가득채워버리는 무언가. 그것들은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의 살피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희수와 병운을 연기하는 두 배우는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전도연의 그 자연스러운 연기야 이제는 언급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이고, 그런 전도연과 함께 전체극의 거의 대부분을 이끌어가는 하정우도 충분히 좋은 모습을 보입니다. 지하철 창가로 비추는 약간은 노을져보이던 따뜻한 햇빛, 그 감정. 일상의 한자락에서 잠시의 여유를 줄 쉼표로, "멋진 하루"는 훌륭한 선택일 것입니다.
P.S 영화의 버스정류장 장면에서 엑스트라치곤 예쁜 여자분이 있길래, 의아해했는데 엔딩 크레딧을 보니...(직접 확인하세요^^)
P.S2 이윤기 감독의 영화는 처음봤는데(;) 이 영화를 보고나니 그의 전작들에 급관심이 갑니다.
전쟁을 배경으로 인간애를 통해 감동을 자아내는 영화들은 많습니다. "쉰들러 리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영화들이 언뜻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 중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도 역시 여러 편 존재하는데, 영화 "황시"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황시"는 1937년의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의 중국 침공과 난징학살이 자행되던 가운데, 종군기자 조지 호그(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분)는 적십자로 위장을 해 난징에 오게 됩니다. 그곳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참혹한 광경을 보게 된 조지 호그는 일본군에 발각되어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게일라 활동을 펼치던 잭(주윤발 분)을 만나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호그는 잭의 권유로 '황시'라는 곳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전쟁의 상처로 인해 고아가 된 60여명의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영화는 난징에서 벌어진 학살의 모습과 더불어 곁가지로 잭의 입을 통해서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과의 관계도 살짝 언급합니다. 또한, 역에서나 피난 도중의 폭격 장면 등을 통해서 전쟁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배경의 모습을 그리면서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조지 호그의 행적입니다. 호그가 황시로 가 아이들을 만나고 어색한 반목의 갈등을 겪다가 서로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과 아이들에게까지 미치는 전쟁의 마수를 피하기 위해 멀고 먼 이주를 하게 되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황시"는 이 과정에서 그저 조지 호그의 행적 만을 따라갑니다. 호그가 가지고 있는 이상이나 마음가짐, 생각 등은 영화에서 크게 드러나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호그 뿐만 아니라 호그 주변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잭이나 호그와 사랑을 나누게 되는 피어슨, 그리고 아이들. 그저 그들의 행적만을 그리는 영화는 어떤 감정적인 동요나 그에 따른 감동을 느끼기에는 조금 역부족인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영화는 그래서인지 엔딩 크레딧 부분에서 지금은 노인이 된 당시의 아이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여주는데, 그런 모습은 오히려 휴머니즘과 감동을 억지로 느끼게 하려는듯해 거추장스럽게 느껴집니다.
"황시"에는 영화가 주려던 의도에 못미친다는 이런 아쉬움 뿐만 아니라, 헐리우드에서의 아시아 배우의 사용가치가 어떤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 같아서 또 다른 아쉬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것이 주윤발, 양자경이라도 그들의 역할은 그것 뿐입니다.
'개그는 개그일뿐 따라하지 말자.'나 '콩트는 콩트일뿐 오해하지 말자'라는 쇼프로그램의 말과 비슷하게, 영화 "영화는 영화다"는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과 같을 수 없다'라는 간단한 메세지 정도만 전하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재밌습니다.
영화는 인기배우로 스타의 자리에 있는 수타(강지환 분)와 깡패인 강패(소지섭 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수타는 스타라는 지위에 취해서 경솔하고 오만하며,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해 같이 출연하는 동료배우 여럿을 병원에 입원하게 만듭니다. 강패는 한때, "초록 물고기"의 단역으로도 출연하며 영화배우를 꿈꾸었고, 지금도 부하들 몰래 홀로 극장을 찾아 영화보는 것을 즐기지만, 지금은 깡패로 조직에 해가 되는 인물들을 바다 속에 잠재우기도 합니다.
동화 '왕자와 거지'가 그랬던 것처럼 서로 다른 인생을 살던 두 인물은 우연히 조우하게 되고, 극과 극은 같다라는 말처럼 서로에게 이끌립니다. 왕자와 거지가 서로 닮은 외모였다면, 둘에게는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왕자가 그랬던 것처럼 제안을 하는 것은 밝은 세상에 있는 수타입니다. 동료배우와의 트러블로 더이상 같이 출연하겠다는 배우가 없자, 수타는 고육지책으로 강패를 상대배우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영화를 점차 촬영하면서, '나도 배우가 안됐다면 너 정도 주먹은 됐어.'라는 수타도, '영화? 그거 다 가짜아냐?' 라는 강패도 점차 자신이 몰랐던 것들에 대해 차차알아가면서 변화를 겪습니다. 그것은 둘의 로맨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강패는 같이 출연하는 여배우와 마치 영화 같은(깡패와 인기 여배우의 만남) 사랑을 하고, 수타는 언제나 자기자신의 진실한 모습이 아닌 카메라가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 대중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여자와 어색하고 쑥쓰럽지만 솔직한 현실적인 사랑을 하게됩니다. 다른 삶에서도 그러한데, 강패는 영화 속의 대사를 똑같이 읊으며, 죽여야 할 사람을 놓아주고 강패는 가학적 폭력 앞에서 자존심을 버리고 현실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통해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그러면서 영화는 마지막에서나 드러나는 가장 큰 액자와 그 속의 또다른 액자를 보여주는 식의 연출을 통해 '영화는 영화일뿐.'이라는 영화 자체의 의도를 드러냅니다. 이러한 의도로 인해 영화 속 전개 과정에서 일부 진부할 수 있는 장면들이 그러한 의도에 의해 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그러한 부족함을 이런 방식으로 메우려했다고도...)
이런한 영화의 의도는 영화의 전체적인 재미와는 어쩌면 무관할 수 있는 부분으로, 이 영화의 재미는 서로 다른, 그러면서도 닮은 수타와 강패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묘미를 크게 했던 것은 수타를 연기한 강지환과 강패를 연기한 소지섭의 안정적인 연기였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왠지모르게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의 이미지/연기톤이 비슷했던 소지섭보다는 그간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선보인 강지환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한, 이 두 배우 외에도 이 둘 사이에서, 리얼한 영화를 찍고 싶어 안달이 난 봉감독 역을 맡은 고창석은 영화를 더욱 맛깔나게 하는 주연과 같은 조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 속에서 여자가 존재하고 활용되는 방법이나 다른 여타 모습들에서 김기덕의 냄새가 스물스물 피어오르긴 하지만(각본이 김기덕 감독) 입봉작으로서 장훈 감독은 무난 혹은 무난 이상의 상업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원작 "20세기 소년"이야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전세계에서 2000만부가 넘게 팔린 작품이고, 국내에서도 역시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한 작품이니까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마무리가 좀 용두사미 격이 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지만, "몬스터"에서 큰 인상을 받았던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이고, 마무리 전까지는 꽤나 흥미로웠던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인기 작품을 다른 매체로 옮기기까지에는 물론 많은 고민이 노력이 동반되었을 것입니다. 만드는 사람의 부담 역시 컸을 것이구요. 영화판 "20세기 소년"은 총 3부작으로 이번에 개봉한 작품은 그 중의 첫편으로 '1장 강림'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감독인 츠츠미 유키히코는 원작을 영화화하는데 있어서 '원작을 완벽하게 카피하자고 생각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는 어떤면에서는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으로도 작용합니다. 원작과 똑같다 라는 것입니다. 원작 자체도 마치 영화와 같은 장면 구성과 점프컷 등이 이야기와 더불어 호평을 받았는데, 영화는 그런 원작을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원작과의 일백프로 싱크로율을 바란 팬들에게는 만족스러운 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원작이 '영화와 같은'이라는 찬사가 붙었던들, 코믹스와 영화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전에 이런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했습니다. 국내의 봉준호 감독에게도 이 프로젝트 연출직에 대한 제의가 왔으나, 원작자의 강한 입김과 애매한 편집권때문에 결국은 고사했다고. 츠츠미 유키히코의 '원작을 완벽하게 카피하자고 생각했다'라는 말은 어쩌면, '내가 한것은 그저 레디~액션과 컷 밖에 없다'라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자존심인지 아니면 안일함인지, 그저 원작을 변형없이 충실히 스크린으로 옮겨온 이 작품은 원작을 봤다는 전제와는 무관하게 전혀 흥미롭지 않습니다. 원작과는 같은데, 원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재미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똑같은데, 지루해.'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원작자가 맡은) 각색과 촬영현장에서도 이어진 원작자의 간섭이 부른 참극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코믹스와 영화는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 착각. 코믹스의 연출은 영화에는 결코 맞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배우들을 대거 기용해 화제를 모았습니다만(...저는 일본 드라마/영화는 잘 몰라서 모르겠지만.) 감독의 연출력의 실패인지, 그들의 연기는 너무도 어색합니다. 일본영화특유의 밋밋함과 또 특유의 오버스러운 모습이 제대로 합쳐지지 못한체 비틀대면서 그 안의 배우들도 같이 흔들리는 듯 보입니다. 또한 600억의 큰 제작비가 들어갔음에도 전체적 때깔은 TV 드라마 수준을 벗어나지를 못하며, CG는 너무도 어색합니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이제 돈 들어가면 어느정도 그만큼의 때깔은 나오는 수준인데, 이번 작품도 그렇고 일본영화는 돈 들어간만큼의 무엇이 나오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뭐랄까 대규모 블럭버스터보다는 소소한 영화들이 더욱 빛을 내는 그런 분위기가 아닌가 합니다.
3부작 중 1부일 뿐이지만, 원작에 비해 초라한 영화, 원작을 망친 영화 같은 리스트에 올라가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P.S ...몇몇 캐릭터들은 마치 코스프레를 하러 나온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오쵸나 만죠메는 그냥 그렇다쳐도 마지막 칸나의 등장에서는....
P.S2 자막으로도 나오지만, 엔딩 크레딧이 끝나면 2부 예고편이 나옵니다. 그런데, 봐도 별 기대가 안되는...
저는 "스타워즈"의 팬입니다. 어디를 가서 누군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물으면, 일단 가장 먼저 "스타워즈" 를 먼저 입에서 꺼내고 그 다음에 다른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 생각하는 부류입니다. 그렇다고 매니악한 팬보이분들처럼 "스타워즈"에 관한 설정/상식들을 줄줄 읊어댈정도는 아니긴 하지만요.
이번에 3D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한 "스타 워즈: 클론전쟁"(이하 클론전쟁)은 저에게는 마치 최근에 개봉했던 주성치의 "장강7호"와 비슷한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주성치가 연출/주연을 맡았는데, 주성치 영화 같은 맛은 안나는... "클론전쟁"은 오비완, 아나킨, 요다에 R2D2, C3PO 등의 "스타워즈"의 캐릭터들이 나오고, 광선검 듀얼도 등장하지만 이전 실사판의 감흥을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왜 이런 느낌을 받았나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그냥 짧게 생각해보니..) 이 영화의 기획의도자체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는 올 가을부터 TV를 통해 방영될 100부작 애니메이션을 위한 작품입니다. TV 방영을 앞두고의 일종의 이목 끌기가 주목적이지, 어떤 하나의 극장용으로 기획된 작품이 아니기에 여러모로 '포스'가 부족한 것이지요. 그것은 기본적인 이야기에서도 드러나는데, 지난 EP2에서의 오비완-아나킨의 사제 구도나 후반부에서 조금씩 등장하는 아나킨의 고뇌/갈등 등이 그저 인물만 교체되었을뿐 어떤 진전없이 되풀이되는 모습입니다. 앞으로 100부작의 이야기를 풀어놔야하다보니 극장에 걸리는 작품임에도 이야기를 크게 이끌어날 수가 없던 것이었겠지요.
또한, 다른 이야기로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이 너무도 밋밋합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플롯이야 전통적으로 복잡하거나 그런 것은 없었지만, 이번 작품은 (육체적 나이는 저만치 던져놓고 마음 만은 여전히인) 소년을 불타오르게할 만한 이야기 속의 매력적인 요소가 없다시피 합니다. 갈등이나 감정적 기복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랄까요. 그렇다보니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광선검 듀얼에서도 어색한 3D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더해져 그 감흥이 심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일단, 광선검 듀얼에서 보이는 액션합이 3D가 주는 자유도가 있음에도 실망스러웠던 것도 한몫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번에는 총제작자로만 나서셨던 루카스옹께서는 팬들이 "스타워즈"라는 타이틀만 붙으면 무조건 만족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저 100부작 TV 시리즈에 관심을 집중시켜서 새로운 어린 세대들에게 "스타워즈"를 전도할 목적만 생각하셨던지요. 루카스옹, 이러시면 배신입니다!
P.S 저번 주에 디지털 상영으로 보겠다고,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점에서 봤습니다. (학교 앞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 상영관은 대체 우퍼가 있기나 한건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체적으로 사운드가 영 그렇더군요. 작품만 마음에 들었다면 씨너스 이수5관에서 한번 더 볼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씨너스 이수5관은 왜 이제야ㅜ_ㅠ... "맘마미아"도 5관에서 보긴했지만, 번갈아 상영해주지...)
영화 "신기전"을 본 것이 오늘로 두번째 입니다. 첫번째는 지난 6월 쯤이었습니다. 일종의 워크프린트 버전이었던지라 편집도 완성본이 아니고, CG도 다 입혀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보면서 얼마나 혀를 찼으며, 고개를 저어댔고, 욕을 해댔는지...
영화의 내용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그것이야 도로 바꿀 수 없다하더라도 편집이나 CG는 제대로 되서 나오겠지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더랬습니다.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신기전"의 내용은 별 것 없습니다. 명나라에 쥐어잡혀 살던 세종 시기의 조선을 배경으로 신기전이라는 신무기를 만들어서 명/여진 연합군을 쓸어버리고 한민족 만세!를 외친다는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별 것 없지만 그 내용이 담고 있는 것이 구역질이 나니 문제지요. 세종시대의 대명외교가 사대외교인 것만은 맞으나 그 사이에서 국가내부 문제에 있어서는 나름 자주적인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의도적으로 수탈의 이미지를 덧씌웁니다. 이 부분은 일종의 민족적인 트라우마입니다. 이 트라우마를 이용해 영화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느냐... 신기전이라는 신무기를 만들어 그 수탈의 주체인 명과 그 명과 함께 기어들어온 여진족을 몰살시켜버려서 그것을 쾌감으로 인식시키고 나아가 범민족적 마스터베이션을 선보입니다. 이 영화는 오로지 그러한 목적으로 밖에 계획되지 않은 영화입니다. 홍보용으로 떠들어내는 '우리 역사/우리 조상의 자랑스러움' 이랑은 전혀 상관없습니다. 불쾌한 민족주의적 감상만 가득할 뿐입니다.
영화는 이런 내용을 떠나서라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주인공 설주(정재영 분)의 흐릿한 캐릭터와 진지-코믹-청순-비련 외 기타등등 사이를 정신없이 오고가는 히로인 홍리(한은정 분)의 모습은 너저분하기 그지없습니다. 블럭버스터 액션 영화류에 등장하는 히로인들의 이미지를 한 곳에 모아 끓인, 실패한 잡탕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캐릭터들의 방황을 닮아서인지 아니면 영화의 흐름에 역마살이 끼었는지 전개가 바람따라 구름따라 정처없습니다. 어느새 그냥 신기전을 만들다가 또 어색하게 다른 이야기로 갔다가 또 신기전으로 돌아왔다가 또 다른 이야기로 마실을 나갑니다. 이런 역마살 흐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뻔하게 예측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 예측 범위 안에는 물론 지극히 억지스럽게 연출된 비장미 같은 것도 있습니다.
영화는 그렇게 흘러가다가 야심차게 준비한 모래밭에서의 대결투에 와닿습니다. 뻔히 낮에 찍은 것이 드러나보이는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야심한 밤'이라고 눙을 치는 명나라 장수의 코메디로 시작되는 이 부분은 영화 "영웅"과 "300"을 지나 지리하게 같은 장면을 리와인드하다가 영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마지막을 연상시키는 한 씬을 보여주면서 마무리로 치닿습니다. 예, 딱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입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딱 그것과 일치합니다. 거기에 더해 그 직전 '이게 진정 나랏님의 선택이냐'고 비분강개하는 설주의 모습은 이 영화의 제작을 맡았던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의 것과 같으며, 또 영화는 나아가 "한반도"와 같습니다. 조선시대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실미도" + "한반도"가 "신기전"의 정체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나름의 하이라이트인 이 마지막 부분은 어설픈 CG와 효과로 인해 더 안 좋은 모습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는 정두홍 무술감독이 참여했습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도 그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보일 뿐입니다. 그가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그래서 '한국형 액션'이라고 까지 불리게 된 '개싸움'이 그대로 등장합니다. 다만 손에 칼들만 좀 많이 쥐어줬다라는 점이 차이일 뿐이지요. 정두홍은 자기 자리에서 그저 표류하고 있습니다.
제작자인 강우석 감독은 '민족주의'에 기대고 싶지 않다라고 했지만 글쎄요, 추석을 앞둔 때에 개봉한 이 영화는 말그대로 다분히 '민족주의'에 호소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실미도"로 천만관객을, 영화판의 기대치와는 달랐지만 그래도 400만을 넘었던 "한반도"를 연출한 강우석 감독은 알고 있습니다. 영화가 흥행하려면 사회적 이슈거리가 될 무엇인가가 동반되야 하고, 지금 이 시기에는 어떤 것을 이용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돈 벌기 위해서라지만, 역겹습니다.
P.S 홍리, 한은정의 '당신이예요. 당신이 있기 때문이에요!' 는 예전 딴지일보에서 워스트로 선정했던 "비천무", 김희선의 '그 사람 죽으면 나도 죽어요'와 같은 포스를 보입니다.
뮤지컬 "맘마 미아!"는 무척이나 유명한 작품입니다. 저같이 뮤지컬을 많이 접하지 않은 사람도 알만한 작품이니까 말이죠. 그것은 그룹 아바의 노래가 아마 큰 이유를 차지할 것입니다. 역시나 아바를 잘 모르는 저 같은 사람도(...뭐가 이렇게 모르는게 많은지...) 그들의 노래 'Honey, Honey', 'Mamma Mia', 'Dancing Queen', 'Gimme! Gimme! Gimme!', 'The Winner Takes It All' 등은 익숙한 곡들입니다.
"맘마 미아!"는 결혼을 앞둔 소피의 진짜 아빠 찾기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엄마 도나의 다이어리에서 자신의 아빠일지도 모르는 세명의 남자의 존재를 알게된 소피는 그들에게 자신의 결혼식 초청장을 보냅니다. 한걸음에 달려온 샘, 해리, 빌, 그리고 그들과 만난 도나와 소피의 이야기가 "맘마 미아!" 입니다.
영화는 앞서 말했던 아바의 노래라는 메리트를 살리는데 충실합니다. 뮤지컬 영화이기 때문도 그렇지만, 적절한 때에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영화의 분위기를 돋구며, 그 노래가 영화의 이야기, 그리고 인물들의 감정을 설명해줍니다. 배우들에 있어서도 전문배우들이 아닌지라 아쉬움은 남지만, 그것을 감안한다면 샘 역의 피어스 브로스넌을 제외하고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배우답게 연기로서 그 아쉬움을 상쇄해줍니다. 도나 역의 메릴 스트립은 너무도 멋진 연기를 선보이며, 특히나 보컬에 있어서 제일 큰 아쉬움을 자아냈던 피어스 브로스넌은 그간의 그가 쌓아온 이미지와 연기로서 만회를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007" 시리즈를 촬영했던 파인우드 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는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시종일관 즐겁고 흥겨운 분위기를 내면서 들뜨게 하는 즐거운 이 영화지만, 아쉬운 점도 존재합니다. 노래에 신경을 썼는데, 그 노래에만 신경을 너무 크게 썼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노래 외적으로 봤을때는 영화의 전개에 있어서 캐릭터의 상황변화와 심리 등의 이해를 돕는 얼개가 단단하지 못합니다 . 한창 노래에 빠져 있다가 정신차리고 보면, 조금은 허술한 그런 모습에 흠칫 놀라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이런 아쉬움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아바의 노래가 가진 그 매력, 그리고 뒤로 보이는 아름다운 그리스의 풍경들은 그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면서 아쉬움을 누그러 뜨립니다.
이런 말을 별로 안 좋아하기는 한데, 영화 "맘마 미아!"는 108분의 시간 동안 노래와 춤에 동화되어 같이 즐기는 목적만으로는 충분히 몫을 해내고 있습니다. 엔딩 크레딧에까지 이어지는 그런 모습에는 넘어가지않고는 못 배긴다라고 할까요. 이 영화 그렇게 즐겁습니다.
P.S 용산CGV는 "맘마 미아!"의 디지털상영을 골드클래스에서만 하는 만행을-_-... 뭐, 덕분에 간만에 씨너스 이수5관에서 감상했으니 됐지만요.
이 영화가 아마 개봉이 한달 정도 밀렸지요? 개봉관 확보차원에서 그랬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만..
아뭏든, 이전 시사회때 평이 좋았던 것 같은데, 제가 일부만 살펴봤나 봅니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처음부터 지르자면, "스페어"는 전혀 인상적이지 못한, 실망스러운 액션영화입니다.
영화는 사채업자 명수에게 돈을 빌린 광태가 친구 길도에게 자기 장기를 팔테니 돈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하고, 그런 광태의 장기를 사러 일본 야쿠자인 사토가 한국으로 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일단 액션 자체로도 만족스럽지 않은데 심하게 말하면 헛발,헛손질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 전체적인 액션 연출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또한 액션을 받춰줘야 할 이야기는 지지부진, 제자리 맴돌기만 상영시간 내내 하고 그런 이야기를 위해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액션신이라고 할만한 부분에서는 필요없는 교차편집이 등장하면서, 정작 액션의 맥을 지속적으로 끊어먹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나마 눈에 띄는 점은 스코어에 우리나라 전통 악기를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스코어는 생각 외로 영화에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입니다만 문제는 중간중간 마당극 처럼 영화 외적인 두명의 화자가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입니다. 실상 그 둘의 대화가 별 재미도 없을 뿐더러, 영화의 흐름을 끊어먹습니다. 그 둘의 대화가 등장할 때마다 관객은 그들과 더불어 영화를 너무 외부에서 바라보는 존재가 되면서 영화에 대한 몰입에 방해를 받는 모습입니다. 시도는 좋았으나 결과는 신통찮다랄까요.
캐릭터를 보자면 주인공인 광태가 뭐라해야할지, 제일 마음에 안듭니다. 싸가지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지나칠 정도로 순진한것 같기도한데 이상하게 싸움은 잘하고 일단 짜증이 나는 스타일인것은 분명합니다. 주인공은 주인공인데, 좀 붙잡혀서 맞고 정신 좀 차렸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일까요? 주인공 때문에 짜증나는 것도 참 드문 일인데 말입니다.
아, 이 영화를 본지는 한달이 조금 더 넘은 듯 합니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봤거든요. 그 때는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이번주에 어떤 영화가 개봉하나 보다보니 이 영화가 정식 개봉을 하더군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만 저는 읽어보지를 않았습니다. 영화는 센다이 시로 대학입학을 위해 이사온 시이나가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를 흥얼대다가 옆 집에 사는 가와사키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시작합니다. 가와사키는 또다른 이웃인 부탄인 도르지가 여자 친구를 잃은 슬픔으로 집에 틀여박혀 있는데, 그런 그가 대사전을 갇고 싶다고 하니 그것을 가져다 주자고 시이나에게 말합니다. 도르지가 사전을 갖고 싶은 이유는 '집오리'와 '들오리'의 차이를 알고 싶어서라는 말과 함께. 이상한 것은 가와사키는 사는 것이 아닌, 사전을 훔치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타지에 와서 약간 얼얼하고, 순진한 시이나는 그 꼬임에 넘어가 가와사키를 돕습니다. 이 후 학교생활을 하던 시이나는 애완동물가게 주인인 레이코를 알게되고 그녀에게서 가와사키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점차 가와사키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의심이 지속되던 어느날, 시이나는 레이코를 통해서 진실을 알게 됩니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단순한 전개가 아니라, 레이코와 가와사키의 말을 통한 서로 상반되는 플래시백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서로 엇갈리는 그런 상황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그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얽혀있던 매듭이 모두 말끔히 풀어집니다. 영화는 그렇게 풀어진 진실과 그 과정을 통해서 이야기하고픈 바를 드러냅니다. 복잡한 이야기 속의 '집오리'와 '들오리'의 차이. '외국인'과 '내국인', '외지인'과 '내지인'의 차이, 시이나와 도르지의 입장과 그로 인한 동질성 같은 것이 그것일 것입니다. 일본어를 배워서 다른 일본인들과 같아지고 싶었던, 그래서 사전을 갖고 싶었던, 가와사키가 되고 싶었던 도르지와 (어머니나 다른 이들이 말하던 것처럼) 그 고장 전통의 우설요리를 먹어봐야한다던 시이나는 들오리가 되고 싶었던 집오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타지에서 집오리인 시이나가 역시나 다른 의미의 집오리인 외국인을 외면하던 모습에서 도르지를 알아가는 모습으로의 변화는 그 둘이 신의 목소리라고 칭하는 밥 딜런의 노래를 코인로커에 넣으면서, '신도 눈감아 줄것'이라고 하는 것처럼 어쩌면 집오리와 들오리의 경계 자체 역시 눈감아 주기를 원하는 바람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풀어서 보면 단순한 이야기지만, 이야기 전개의 특이성이 그 단순함을 잊고 흥미를 끌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양날의 검처럼 장점에는 단점도 존재하는데 그러한 이야기 전개가 영화의 전체적인 의미와 흐름을 손쉽게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게 했다는 것으로, 영화의 이야기하는 바가 그 안에 매몰된다는 느낌입니다. 더해서 그러한 복잡한 전개 끝에 나오는 진실이란 결과 자체가 앞에서 끌어오던 궁금중에 비해서는 조금은 초라하다는 것도 말입니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는 장점보다는 그러한 단점이 더 크게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제가 평소 생각하는 일본영화들의 느낌인데, 뭔가 극적인 부분에서의 이펙트가 약하고, 밋밋해진다는 것이랄까요.)
P.S 부천국제영화제에서 나름 화제가 됐던 작품이긴 하지만, 주연배우인 에이타의 GA가 있지 않았다면 당시 그 정도의 반응이 과연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P.S2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샤론, 마론' 이야기가 우리나라로 치면 '여기 있는 말뚝은 말 멜 말뚝이냐 말 못 멜 말뚝이냐', '경찰성 철창살은 쌍철창살이나 외철창살이냐' 와 비슷한 건가요? 그것만 할 줄알면 일본어 다 할 줄 안다고 영화 속에서 언급되던데..